롱블랙 프렌즈 K
6월의 롱블랙 클래스, 많이들 기다리셨나요? 이번엔 저 K가 <공간 감상 수업>으로 찾아왔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좋은 공간들이 쏟아져 나왔죠. 저도 주말마다 성수, 서촌, 한남동의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곤 해요.
그 순간순간은 좋아요. ‘와 멋지다’, ‘근사하다’. 분명 무언가를 느꼈는데, 그게 제 안에 잘 쌓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공간의 무엇이 왜 멋진지’ 설명하려고 할 때면, 입이 잘 떨어지지 않거든요. ‘좋았어’라는 납작한 말로 퉁치곤 합니다.
그때마다 저까지 납작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제가 이번 롱블랙 클래스로 <공간 감상 수업>을 들고 온 이유예요.
우리를 공간 감상학의 세계로 안내할 사람은 조성익 홍익대학교 교수입니다. 30년 동안 ‘공간 일기’를 써왔다고 하니, 믿음이 갑니다.
조성익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TRU건축사무소 대표
공간 일기를 30년이나 써왔다고 하니 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네요. 좋은 공간을 만날 때마다 스케치북에 그림과 메모를 해둔 것이 다예요.
2019년 12월21일엔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카사 바트요Casa Batllo 주택의 섬세한 내부 공간을 스케치한 후, “이 집은 거대한 가구 한 점”이란 메모를 남겼죠. 2023년 6월26일 일기를 보면, 핀란드 헬싱키의 암석교회* 스케치 옆에 “돌로 덮은 덮밥 공간에 들어온 듯”이란 글이 적혀 있네요.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광장 근처 바위를 깎아 만들었다.
어떤가요? 별것 아니죠. 그 맛집의 물냉면이 왜 좋은지, 오늘도 입고 나온 티셔츠에 왜 자꾸만 손이 가는지를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에요. 그런데 유독 그 대상이 ‘공간’이 되면 어렵게 느껴져요. 나보다 크기 때문이에요. 내가 맛보고, 만지고, 입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거꾸로 내가 그 속에 담기는 대상이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공간도 충분히 맛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어요. 오늘 저만의 노하우가 담긴 공간 감상법을 알려드릴게요.
Chapter 1.
‘이유’까지 알아야 진짜 내 감각이 된다
롱블랙 피플은 감각을 기르고 성장하는 데 보람을 느끼는 분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좋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이유 또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겠죠. 한마디로 센스를 기르기 위해서일 겁니다.
맞습니다. 경험이 중요해요. 휙 보기만 해도 센스 있는 가구를 고르는 사람은, 아마도 평소에 인테리어 잡지를 200권은 읽었을 겁니다. 어쩌면 수년간 가구 편집숍을 다녀봤을 거예요. 뭔가를 사든 안 사든 습관처럼요.
하지만 그냥 보기만 한다고, 가기만 한다고 다 내 것이 되진 않아요. 나만의 관점을 길러야 내 것이 되죠. 관점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왜’를 따져 물으면 돼요. ‘아, 이 카페 참 아늑하니 좋네.’에서 멈추지 마세요. ‘나는 왜 이 카페를 아늑하다고 느낄까?’ ‘아늑함이란 무엇일까?’ ‘나는 왜 아늑함을 좋아할까?’…
그러면 보여요. ‘아, 이 카페는 천장이 참 낮네. 그래서 소리의 울림이 적구나.’ ‘아, 아늑함이란 소리의 울림이 결정하는구나.’ ‘생각해 보니 나는 소리에 예민하네. 그래서 아늑한 공간에 편안함을 느끼는구나.’ 그렇게 아늑함에 대한 지식이, 아늑한 공간에 대한 감각이 쌓이는 겁니다. 잊지 마세요. ‘왜’라고 물으면 보이고, 보이면 쌓이게 돼 있어요.
좋은 공간이 더 나은 나를 만든다
그런데 왜 하필, 공간을 감상해야 할까요? 공간이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바꾸거든요. 우리 몸은 무의식중에 알고 있어요. 친구와 수다 떨기 위해 찾는 카페가 따로 있고, 혼자 집중하고 싶을 때 찾는 카페도 따로 있어요. 일이 힘들었던 날에는 혼자 기분 전환을 하러 가는 바도 있습니다. 그 공간에 가면 내가 어떻게 변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이왕이면 좋은 공간에 나를 두면 좋겠죠. 공간이 건네는 좋은 목소리를 들으면, 우리 삶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거든요. 때로는 인생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제겐 미국 샌디에이고의 소크 연구소Salk Institute가 그랬어요.
샌디에이고 라호야La Jolla에 광활한 태평양을 내려다보고 자리 잡은 소크 연구소. 숱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생명과학 연구소로 지식이 탄생하는 사색의 공간이죠. 저는 그 입구에서 모퉁이를 탁 돌자마자, 조금 울컥했어요.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 사이로, 저 멀리 바다의 수평선이 보였죠.
한참을 서서 그 공간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웅다웅하며 살던 삶이 허망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 저 수평선처럼 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렇게 어떤 공간은 훌륭한 고전처럼, 때로는 시구처럼 우리 삶에 지표를 제공한답니다.
Chapter 2.
공간 감상은 손에서 시작된다
자, 이제 공간 수업을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셨나요? 무엇부터 배우면 좋을까요. 시작은 ‘묘사’입니다. ‘힙하다’, ‘안락하다’, ‘로맨틱하다’ 같은 감상을 말하기 전, 먼저 공간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관찰하고 이해하세요. 감상은 그 묘사의 결괏값 같은 겁니다.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글 또는 말로도 묘사할 수 있죠. 제가 권하는 건 손으로 묘사하기예요. 저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공간 일기를 썼어요. 공간을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스케치하는 모습이 멋져 보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손바닥만 한 검은색 프랑스제 캔손Canson 스케치북과 독일제 연필을 늘 들고 다녔죠.
그림을 잘 그릴 필요는 없습니다. 태블릿이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그 위에 그림을 덧그려도 돼요. 하지만 사진만 찍는 건 추천하지 않아요.
혹시 좋아하는 카페가 있으신가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이 있으시죠. 다시 물을게요. 그 카페 바닥은 무슨 색인가요?
말문이 막힌 분들 많으실 거예요. 보통 우리는 사진을 찍으면 그 대상을 소유했다고 생각해요. 이미 이해했고, 잘 기억할 거라고 믿죠. 착각이에요. 단골 카페의 사진을 몇 번이나 찍었어도 그 바닥 색깔도 기억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공간을 묘사할 땐, 꼭 손을 쓰길 권해요. 저는 이걸 ‘생각의 지연’ 기법이라고 불러요. 우리 손의 속도는 뇌의 속도보다 느립니다. 그래서 손으로 그리거나 글을 쓰는 동안에는 뇌도 손에 맞춰 천천히,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반면 사진을 찍을 땐 1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에, ‘좋네’, 혹은 ‘별로네’로 생각이 끝나 버리죠.
그래서 감상의 첫걸음은 언제나 ‘손으로 하는 묘사’입니다. 이제 다음 질문이 생기죠. 그래서 공간의 어디부터 보면 되죠?
Chapter 3.
4단계 공간 감상법 : 여기서부터 보면 된다
4단계로 보면 됩니다.
1단계 : 바닥·벽·천장, 큰 줄거리부터 훑기
우리가 첫 번째로 봐야 할 건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이에요. 보통은 장식장이나 화병 같은 오브제에 먼저 눈길이 가요. 천장엔 시선 한 번 안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간의 큰 줄거리부터 먼저 보는 게 좋습니다. 바닥, 벽, 천장이 실내 공간의 기본 3요소예요.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죠. 건축가가 가장 먼저 기획하는 부분이기에, 공간의 의도도 많이 녹아있어요. 즉,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뼈대 역할을 해요.
저는 바닥→벽→천장 순서로 보는 걸 추천합니다. 사람의 시야는 대개 약간 아래쪽에 고정돼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바닥부터 관찰해 보세요. 바닥의 색은 뭔지, 나무인지, 카펫이 깔려있는지. 그다음 눈을 돌려 벽을 한번 보세요. 벽지는 뭔지, 페인트인지, 벽이 공간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면 됩니다.
2단계 : 디테일 보기 - 공간을 채운 큰 물체부터
줄거리를 봤다면 디테일을 봐야겠죠. 우선 큰 물건부터 보세요. 대개는 가구예요. 탁자가 목제인지 철제인지, 의자에 등받이는 있는지 없는지. 또 모양은 어떻고, 색은 어떤지.
꼭 정확한 용어를 쓰거나 모든 걸 그려 넣을 필요는 없어요. ‘주황빛이 돌지만 노르스름한 색’, ‘플라스틱 같은 느낌’처럼, 내가 보고 느끼는 대로 써도 충분하죠. 시간을 들여 찬찬히 살펴보고 묘사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요. 물론 공간 기획자나 주인에게 물어본다면 좀 더 깊은 감상을 할 수 있겠죠.
Chapter 4.
3단계 : 소리·빛과 어둠·향과 촉감
저는 공간 기획이란 곧 기억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개 어떤 공간이 좋았다고 하면 그곳에서의 기억이 좋은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그 기억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어떠한 건축 기법이 아니에요. 그 공간을 흐르는 소리, 빛과 어둠, 그리고 향과 촉감이죠.
① 소리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소리입니다. 공간에 음악이 나오는지, 어떤 장르의 음악이 나오는지, 음량은 어떤지를 보는 거예요. 아주 쉽죠. ‘이 카페 플레이리스트가 내 취향이네’라는 생각 한 번쯤 해보셨을 거예요.
저만의 팁은 ‘울림의 정도’를 살피는 겁니다. 건축가들은 새로운 공간에 가면 벽을 쓸어보곤 해요. 갑자기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죠. 모두 소리가 어떻게 울리고 반사되는지 보려고 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아늑함을 공간의 크기가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아닙니다. 소리의 울림이 결정해요. 멋진 공간인데 왠지 불편하다면, 소리가 많이 울리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요. 우리가 커다란 다리 밑에 서 있을 때 불안한 이유와 같죠. 반대로 공연장이 아무리 커도 아늑함을 느끼는 이유는 소리의 울림이 잘 컨트롤됐기 때문이에요.
② 빛과 어둠
큰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면 상쾌하죠. 촛불을 밝혀둔 바에 가면 유난히 로맨틱한 감정이 피어올라요. 빛과 어둠은 이렇듯 우리의 기분을 좌우해요.
왜일까요? 자연의 이치라고 저는 봅니다. 아침의 조명(태양)은 낮고 밝아요. 한낮의 조명은 머리 위에서 높고 강하게 내리쬐죠. 저녁의 조명은 오렌지빛으로 바뀌면서 발밑을 타고 들어와요. 오랜 세월 인간의 DNA에 입력된 ‘모드 스위치’ 같은 거예요. 그러니 그 공간이 의도한 분위기를 가장 명확히 파악하고 싶거든, 조명을 보세요.
③ 향과 촉감
혹시 교보문고를 무엇으로 기억하시나요? 입구의 회전문? 빽빽한 서고? 저는 특유의 향으로 기억해요. 교보문고는 ‘The Scent of PAGE’라는 시그니처 향을 개발했어요. 은은한 피톤치드 계열 향이에요. 울창한 숲을 거니는 인상을 주죠.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고요.
저처럼 한번 천천히 그 공간의 공기를 음미해 보세요. 카페라면 커피 향이 어디에서 얼마큼 퍼지는 지를 느껴보는 거예요. 이 공간에서 시트러스 향이 나서 기분이 상쾌해진 건지, 장미 향이 나서 설레는 건지 알아보는 거죠.
촉감도 마찬가지. 같은 나무 테이블이라도, 코팅을 해서 차갑고 매끈한 촉감을 주기도, 결을 살려 거친 원목의 느낌을 주기도 해요. 그런 것들까지 느껴보고 묘사하고, 기록해 보는 거예요.
Chapter 5.
4단계 : 공간을 완성하는 건 사람이다
바닥과 벽, 천장부터 가구와 소품, 그리고 빛과 소리, 음향, 향기, 촉감까지.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건 다 본 것 같으시죠. 하지만 꼭 살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가 결국 그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거든요.
몇 해 전,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그곳 공연장은 한가운데 무대가 있고 관객석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어요. 관현악단뿐 아니라 관객들까지 시야에 들어오죠.
제 눈에 들어온 건 나이 지긋한 관람객들이었어요. 당신들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객석을 채우고 있었죠. 백발의 할머니도 멋들어진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왔어요. 순간 공연을 향한 존중과 설렘이 배가 됐어요. 음악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베를린 필하모닉 홀이란 공간을 완성시키는 거예요.
묘사가 끝났다면, 내 변화를 관찰하기
공간을 샅샅이 묘사했다면, 이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 봅시다. 내 해석과 감정을 더하는 겁니다. ‘이 공간이 내 행동과 감정을 어떻게 바꾸느냐’를 관찰하는 거죠.
‘힙하다’, ‘모던하다’, ‘코지하다’, ‘미드센추리적이다’. 이런 추상적인 단어 대신, 내가 그 공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문장으로 적어보세요. ‘이 레스토랑에 올 때면 오랜만에 친구한테 연락하게 되네. 창가에 앉을 때마다 계절이 바뀐 걸 깨달아서구나.’ 처럼요.
Chapter 6.
서교 앤트러사이트 : 동네의 공간을 감상해 보기
공간 감상법을 배웠으니 이제 실전에 적용해 볼까요. 제가 주말마다 찾는 서교동의 카페 앤트러사이트를 함께 감상해 볼까 합니다. 맨 처음 봐야 할 것. 잊지 않으셨죠? 바닥과 벽, 천장이에요.
전체적인 인상은 갈색 바지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단정한 청년 같아요. 아래쪽은 목재, 위쪽은 콘크리트를 썼거든요. 먼저 바닥은 진한 갈색의 나무 합판, 벽은 회색빛의 세월감이 느껴지는 시멘트 벽돌입니다. 천장은 회색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꾸밈없는 느낌을 주죠. 가구들 역시 바닥처럼 나무 재질이 많아요.
이젠 오감으로 느낄 차례예요. 소리의 울림이 아주 많은 공간이에요. 그래서인지 음악을 틀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거나 거의 말을 안 해요. 덕분에 큰 창을 통해 야외 정원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와 새소리가 잘 들리죠.
이 차분함을 배가시키는 게, 진한 드립 커피 향이에요. 바닥과 가구의 나무에 커피 향이 밸 정도죠. 동쪽으로 창이 나 있어 아침에 햇살이 들어옵니다. 저녁이면 어두운 노란빛 조명이 차분하게 공간을 감싸죠. 커피 향이 더욱 짙어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손님들은 저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러 온 사람이 많아요.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일요일 오전에 특히 그렇죠. 마치 단체로 명상 수련하는 분위기가 납니다. 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매 주말 제 일상 루틴에 이 공간을 넣었답니다.
Chapter 7.
‘충분한 시간’이 나만의 관점을 만든다
궁금한 공간이 있으신가요? 부디 오랜 시간을 들여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한 번에 오래 보는 것도 좋고, 여러 번 방문하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카페라면 그 카페의 모든 자리에 한 번씩 다 앉아보세요.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대에 찾아가 보는 것도 좋고요. 시간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되거든요. 새벽의 한강변과 노을 지는 한강변은 완전히 다른 공간인 것처럼. 분위기도, 그곳을 찾는 사람도 다 다르죠.
그렇게 점점 나만의 공간 취향과 관점이 생길 겁니다. 그럼, 상황에 따라, 날씨에 따라,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공간을 찾아갈 줄 아는 근사한 사람이 될 거예요.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도 있고요. 내 삶을 풍족하게 해주고, 때론 영감을 주는 인생 공간들을 충분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롱블랙 프렌즈 K
조성익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조금 특이했어요. 건축사무소의 문손잡이가 삽이었거든요. 묵직한 금속 문에 달린 등산용 로프 끝에 한 뼘만 한 삽 모형이 있었죠.
“건축사무소 답지 않나요? 아침마다 첫 삽을 뜬다는 의미를 담아 문을 열고 있어요.”
그는 문손잡이를 건물이 건네는 첫인사라고 정의해요. 그 첫인사를 잘 받아주는 것부터가 공간감상의 시작일 겁니다.
“‘문손잡이는 건물이 건네는 악수다.’ 유하니 팔라스마Juhani Pallasmaa라는 건축가의 말이에요. 공간의 첫인상이니, 잘 만들라는 거죠.
공간을 감상하는 입장에선 이런 조언이 되지 않을까요. ‘건물이 전하는 첫인사를 정성스럽게 받고, 어떤 공간이 펼쳐질지 상상해 보라.’”
저는 오늘 초록색 32절 스케치북을 하나 샀어요. 부드럽기로 유명한 블랙윙 연필도 마련했죠. 이번 주말, 제가 좋아하는 동숭동 카페의 문손잡이부터 천천히 감상해 보려 합니다. 롱블랙 피플도, 공간 감상 일기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공간 감상 수업> 두 번째 시간엔, ‘인생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릴 거예요. 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