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스 여인택 : 자동차를 파고 들어, 새로운 스트리트 문화를 만들다


롱블랙 프렌즈 L 

그런 상상 해봤어? 스포츠카 타고 시속 200km로 아우토반Autobahn을 달리는 나.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풀리네. 현실은… 출퇴근길 꽉 막힌 도로를 기어 다니고 있어.

그래서 ‘피치스Peaches’의 영상이 신선했던 것 같아. 한밤중 판교의 8차선 도로 위를 포르쉐가 시원하게 달려. 그러다 액셀을 쭉 밟고 미끄러지듯 드리프트drift 하지. 도로에 찍힌 스키드 마크skid mark*를 보는데, 쾌감이 느껴지는 거 있지.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노면에 생기는 타이어의 미끄러진 흔적

기업들도 피치스를 찾아. 나이키Nike, 포르쉐Porsche, 아모레퍼시픽, LG전자, 힙합 레이블 AOMG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브랜드 홍보 영상을 부탁해. 

자동차를 파고들어, 스트리트 문화를 만드는 감각이 보통이 아냐. 사실 오늘이 딱 롱블랙이 1년 되는 날이거든. 피치스가 오늘의 노트로 딱이라고 생각했지. 롱블랙 <인터뷰 위크 : 감각의 설계자들 2> 세 번째 주인공으로, 피치스를 만든 여인택 대표를 만났어.


여인택 피치스 원 유니버스 대표

피치스는 ‘자동차 스타일링’에 뿌리를 둔 크리에이터 집단이야. 2019년 LA에서 출발했어. 자동차를 주제로 패션, 음악, 영상, 커뮤니티 사업을 전개하지. 자동차 즐기는 삶을 ‘재밌고 멋있게’ 느끼도록 만드는 게 목표래.

여 대표의 꿈은 명확해. 영화 「분노의 질주」의 한 장면이 한국에서도 실현되면 좋겠단 거야. 스포츠카 크루들끼리 도로 한복판에서 배틀을 벌이고, 가지각색 튜닝으로 차를 꾸미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싶지? 지금까지의 행보가 ‘대세감’을 증명해. 인스타그램에서 즉석으로 ‘야간 카 플래시몹*’을 모집하면 자동차 450대가 몰려들고, 매달 1500개만 생산하는 ‘Peaches’ 로고 스티커는 1분 만에 매진이야.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모두 더해 1억 뷰가 넘지. 2018년엔 나이키가 ‘주목해야 할 브랜드’로 선정하기도 했어.
*약속된 장소에 자동차가 모였다 흩어지는 모임을 벌였다.

여 대표는 주장해. “선망하는 대상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사람이, 브랜드를 넘어 문화를 만든다”고. 그래서 알아봤어. 여 대표가 자동차의 매력을 끌어올린 감각은 무엇인지 말이야.


Chapter 1.
사람은 문화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동차를 가만두지 않았다. 만지고, 뜯어보고, 분해하는 데에 맛 들였다.” 여인택 대표가 자동차 동호회원이었던 때를 떠올리며 한 말이야.

스물 넷부터 자동차에 빠졌거든, 여 대표는 3000만원 짜리 자동차 BMW 1 해치백을 타고 동호회 모임에 등장했어. 얼마 안 가 차를 바꿨는데, 그 이유가 “배기음이 더 큰 차를 갖고 싶어서”야.

못 말리는 애호가 같지? 여 대표도 이렇게 될 줄 몰랐대. 원래는 판사인 아버지를 따라 법조인이 되어야 했거든. 적성에도 안 맞는 로스쿨 진학을 준비했지. 반발심이 커서 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학원 대신 PC방과 노래방에 갔어.

“보다 못한 아버지가 저를 미국으로 보냈어요. 고등학교를 마치곤, 미시간 대학에서 문화심리학을 배우게 했죠. 로스쿨 진학에 도움 되는 전공이었거든요. 간섭도 심했어요. 집에서 학교까지 10km 쯤 돼서 끌고 다닐 차가 필요했는데, 아버지가 ‘택시만 타라’고 하시더라고요. 괜히 운전하다 사고 난다면서요.”

불행 중 다행이야. 여 대표는 심리학에 재미를 느꼈거든.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까지 공부했을 정도니까. 특히 문화 속에서 사람이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에 주목했대.

“군대에서 고충상담병을 맡았어요. 성격과 배경이 모두 다른 장병 수백 명과 얘기하며 깨달았죠. 군인 한 명은 불안하고 나약하지만, 잘 정비된 군대 조직문화 속에서 군인은 동질감을 얻고, 살아갈 힘을 얻는단 걸요.

‘문화’의 중요성을 체득한 거예요. 한 개인이 의견을 내면 ‘얜 뭐야?’하고 금방 묻혀요.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열 명, 백 명이라면? 그게 곧 여론이 되고, 문화가 돼요.”

이때의 깨달음 덕분일까. 여 대표에겐 큰돈을 만질 기회가 두 번 찾아왔어. 한번은 책 출간. 2013년 군 제대 후 『군대 심리학』이란 책을 써서 곧장 1만5000부를 팔았어. 인세로 많은 돈을 벌었지. 나머지 한번은 CNP푸드(현 CNP컴퍼니)* 공동창업. ‘외식 문화를 혁신하겠다’는 노승훈 대표의 비전을 듣고 고민없이 돈을 투자했대.
*F&B 스타트업. 나이스웨더, 아우어베이커리, 도산분식 등 외식업 브랜드를 기획, 런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