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씨와 최고의 보트 : 갠지스강의 화장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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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프렌즈 B 

올해 잘 마무리하고 있나요. 그동안 뿌듯한 일도, 후회스러운 일도 많았을 겁니다. 이것 하나는 확실해 보입니다. 롱블랙 피플은 누구보다 ‘더 나은 삶’을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것.

오늘은 다급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까요. 풀리는 일이 없어 방황하던 시절, 제가 큰 위로를 받았던 도시에 다시 한번 다녀왔습니다. 인도의 바라나시Varanasi로요.

신성한 도시로 여겨지는 이곳. 14억 인도 국민의 필수 순례지입니다. 산 사람은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으며 그동안 쌓은 업보를 흘려보냅니다. 죽은 사람은 화장한 뒤 재를 흘려보내죠.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떠나라는 의미에서요.

그런 이곳에, 한국인 여행자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인도인이 있습니다. ‘철수 씨’로 유명한 바블루 샤니, 30년차 투어 가이드입니다. 매년 수백 명의 한국인은 물론, 배우 고두심부터 김혜자, 가수 비, 무한도전 팀까지 철수의 투어를 찾으면서 입소문을 탔죠. 무엇이 특별한 걸까요.


바블루 샤니 

나마스테नमस्ते. 저는 바블루 샤니Bablu Shani, 한국 이름은 철수입니다. 아들 셋과 함께 보트 투어 회사 ‘철수씨와 최고의 보트’를 운영하고 있어요. 아침저녁으로 보트에 오릅니다. 갠지스강을 가로지르며 바라나시의 역사, 인도인의 삶과 문화 대해 설명하죠.

언제부턴가 “바라나시에 가면 철수를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한국인 사이에서 돌더군요. 인도에서 사기당하지 않으려면, 제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서요.

씁쓸한 현실이지만, 맞습니다.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이기도 해요. 여행자를 노리는 사기꾼도 많죠. 이들에게 휘둘리다 지친 한국인도 많아요.

한국인 여행자를 어떻게 만족시킬까. 제 오랜 고민입니다. 인도를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매력적인 곳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Chapter 1.
5000년 동안 불 꺼지지 않는 화장터

바라나시는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진 인도 북부의 도시입니다. 갠지스강*이 도시와 맞닿아 있어 힌두교의 성지로 불리죠. 매년 100만 명의 순례자, 특히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이곳을 찾습니다.
*힌두교인에게 성스러운 강으로 여겨진다. 전체 길이 2506km, 유역면적 84만km²로, 인도와 방글라데시, 티베트 자치구까지 이어져 있다.

힌두교인은 윤회를 믿거든요. 그들에 따르면 인생에서 저지른 모든 일은 카르마Karma, 즉 ‘업’입니다. 업을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다음 삶의 행복이 결정되죠. 윤회는‘고통스러운 삶의 반복’인 겁니다. 내가 다음 생에 들개로 태어날지,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날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바라나시를 찾아요. 갠지스강은 두 신이 함께 관할하는 곳이에요. 파괴의 신 시바와 갠지스강의 여신 강가. 이들이 내리는 축복 덕분에, 인간은 윤회를 멈추고 천국으로 간다고 믿어요.

규칙이 있습니다. 죽은 지 24시간 안에 바라나시에서 화장할 것. 유가족은 꽃가마 위에 흰색 천으로 두른 시신을 얹고 화장터로 내려와요. 시신 주변을 다섯 바퀴 돌죠. 세상을 이루는 다섯 개 요소인 흙, 물, 불, 바람, 하늘에 기도합니다. 영혼이 편안한 휴식처를 찾아가게 도와달라고.

시신은 나무 장작 위에 놓고 약 세 시간 반 동안 태웁니다. 매캐한 연기가 서서히 꺼져들 때쯤 항아리에 갠지스강물을 떠와 불씨를 끄죠.

힌두교인들이 윤회를 끊고 ‘단 한 번 뿐인 삶’을 기도하는 모습.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인생을 낭비한 건 아닌지, 남에게 선행을 베풀어보긴 했는지. 혹여 돈만 좇다 죽는 건 아닌지.

바라나시의 마니까르니까 가트Manikarnika Ghat에 위치한 화장터 전경. 1년 365일 시신을 태우는 불꽃이 피어올라, 버닝 가트Burning Ghat라고도 불린다. ⓒ롱블랙

Chapter 2.
계급의 장벽 앞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떠올리다

저도 한때 전생을 원망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막 살았길래, 이번 생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까 한탄했죠.

저는 1978년 바라나시의 가난한 바이샤*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4남 3녀 중 넷째 자식으로요. 녹슨 양철 지붕이 간신히 단칸방을 덮은 판자촌에, 식구들이 꾸역꾸역 살았죠.
*카스트 제도의 네 개 계급 중 세 번째. 주로 상인과 농민이 해당 계급 출신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어부였습니다.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았어요. 하지만 생선잡이론 일곱 자식을 먹여 살리기 힘들었죠. 결혼하는 누나들에게 지참금이니 예물이니 챙겨줄 때마다, 재산이 반토막 났거든요.

아버지를 돕고 싶어 열두 살 무렵부터 보트에 올랐습니다. 운전을 도왔어요. 저를 기특해했던 부모님이, 재산을 긁어모아서 절 학교에 보냈어요. 형제 중 유일했죠. 

이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언어 배우는 능력이 타고났단 걸요.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찾아 배웠어요. 이름 있는 여행사의 투어 가이드나, 유명인의 통역사를 꿈꿨죠.

하지만 선생님이 알려주더군요. “네 계급으론 절대 번듯한 회사의 직원이 될 수 없다”고. 운이 좋아 면접을 본다 한들, 면접관들은 내 성과 이름만으로 어느 계층 출신인지 알아볼 거라면서요.

낙담한 제게 아버지는 당신이 타던 보트를 남겼습니다. 전 좌절감을 빨리 씻어냈습니다. 보트로 먹고살 궁리를 하기 시작했죠. 내가 하고 싶었던 투어 가이드와 보트 운전을 합친다면? 여행자에게 바라나시를 소개하는 ‘보트 투어 가이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지인에게 밥 한 끼 가격인 1루피(160원) 정도를 받고 투어 했습니다*. 약 한 시간 동안 강가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불타는 화장터, 요가와 명상하는 수행자를 보여줬어요.
*지금은 인당 500루피(약 7600원)에 운행한다. 

롱블랙과 인터뷰하는 철수 씨. 그는 인도가 아직 신분제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계에 갇히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았어요. 그것이 보트 투어였죠.” ⓒ롱블랙

여행객의 환한 미소, 일의 보람을 찾다

1990년대 무렵 많은 일본인 여행자들이 바라나시를 찾았습니다. 내 첫 외국인 손님도 일본인 둘이었죠.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손과 발을 동원해 그들을 안내했어요. 그런 제 모습을 귀여워하더군요.

신이 난 나머지, 보트 투어가 끝나고 불교 사원부터 맛있는 현지 식당, 숙소, 요가원까지 안내했습니다. 한 달을 매일 같이 그들과 함께했어요. 최선을 다해 여행을 도운 거예요.

투어 마지막 날, 공항에서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말을 잊을 수 없어요. “넌 분명 여행자들의 좋은 친구가 될 거야.” 그때 깨달았어요. 손님에게 진심을 다했을 때, 내게 돌아오는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이지.

한국인과 인연이 닿은 건, 2005년 한비야* 씨를 만난 게 계기입니다. 우연히 제 보트 투어에 함께한 한비야 씨가 제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당신은 꼭 한국어를 배웠으면 해요. 많은 한국인이 당신의 친절함을 좋아할 게 틀림없거든요. 당신의 이름을 철수로 지어줄게요.”
*작가이자 국제구호활동가. 7년간의 오지 여행을 기록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그건 사랑이었네』 등이 히트하며 한국에 배낭 여행, 오지 여행 열풍을 일으켰다.

2주 정도 지났을까요. 한국인 여행자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한비야 씨가 저서와 칼럼, 여행 커뮤니티에 제 투어 후기를 썼다는 거예요. 아침저녁 두 번의 투어에 스무 명에서 서른 명이 오는데, 모두 한국인일 때도 있었죠. 

이때부터 ‘한국어 설명’을 곁들인 투어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어는 독학으로 공부했어요. 여행자에게 단어를 알음알음 물어가며 그들의 일상 용어와 문화, 음식을 공부했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한국인들이 나를 돕더군요. 내 보트 이름을 ‘철수씨와 최고의 보트’라 지어주고, 페인트를 사 들고 와선 로고까지 칠해줬어요. 구명조끼와 튜브, 엔진도 다 한국인이 사준 겁니다.

철수 씨가 소유한 보트. 처음엔 나룻배를 운전하다, 한국인들의 지원으로 모터 달린 새 보트를 살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보트에 달 모터와 구명튜브, 조끼, 페인트를 지원했다. ⓒ롱블랙

Chapter 3.
호기심과 감각을 채우는 보트 투어

한국인에게 보트 투어를 안내할 때, 딱 한 가지만 생각했습니다. “왜 이곳을 찾았을까.” 아마도 바라나시, 갠지스란 곳이 궁금해서겠죠. 그 호기심을 풀어주려면 제가 더 공부해야 했어요. 

대부분의 한국인은 인도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낯설어합니다. 이해하려 해도, 끝내 경악하거나 혀를 차죠. “왜 거리에 가득한 소똥을 안 치우나요” “오토바이는 왜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나요” “갠지스강물 더러운데 왜 들어가나요” 하고 묻지요.

그들에겐 인도의 모든 일이 불합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인은 합리성을 매우 중요하게 따져요. 모든 현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하죠. 그런데 정보를 조리있게 설명하는 사람이 없으니, 실망한 채 돌아갈 수밖에요.

저는 매일 같이 도서관을 드나들었어요. 인도의 역사부터 바라나시의 문화, 유물에 대한 자료까지 탐독했죠. 한 달에 한 번씩 투어 대본을 새로 만들곤, 한국말을 또박또박 읽으며 설명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제 투어는 말이 좀 많아요. 엔진 소리를 뚫을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설명하죠. 힌두교인이 바라나시를 찾는 이유, 카스트 제도의 불합리함, 목욕터의 개수, 화장을 위한 나무 장작의 종류까지요.

(화장터 앞에 보트를 세운 뒤)나무가 활활 타죠? 사람들은 화장을 위해 세 가지 나무 중 하나를 써요. 갓 자른 생나무가 제일 저렴하고, 말린 자작나무, 백단 향나무 순으로 비싸요. 부유한 자는 불에 잘 타는 향나무를 쓰고, 가난한 자는 생나무를 쓰는데 시신을 끝까지 못 태워요. 빈부격차가 끝까지 고통을 주는 거예요.

인도는 계급에 따른 차별이 아직까지 남아있어요. 계층 이동이 어려우니까,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져요. 그러니 대부분 사람에게 인생은 고통이에요. 최선을 다해 살되, 다음 생을 원하지 않는 이유죠. 그래서 바라나시를 찾아 고리를 끊는 거예요.”

철수 씨가 바라나시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김진영 에디터. 철수 씨는 여행자들의 질문을 좋아한다. “질문이 없으면 아쉬워요. 여행하러 왔으면 여긴 어딘지, 어떤 점이 매력인지 알아야 하잖아요. 대답하려고 공부 많이 했어요.” ⓒ롱블랙

붉은 태양과 함께 바라나시를 다시 보도록

투어는 지식 자랑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좋은 여행은 두 가지 욕구를 채워줍니다. 지식의 충족, 공간과 사람을 감각하는 일이죠.

그런 면에서, 바라나시는 ‘감각이 살아나는 여행지’라고 볼 수 있어요. 누구든 이곳에선 한껏 예민해지기 때문이죠. 귀가 찢어질 듯한 오토릭샤*의 클락션, 20분째 따라다니는 장사꾼, 골목에 가득한 소똥, 매캐한 화장터 연기, 오묘한 향냄새까지. 마음이 닫혔을 때, 감각하는 모든 것들은 ‘혼란을 일으키는 장애물’일 뿐입니다.
*삼륜 택시. 한국인에겐 툭툭(태국, 라오스식 이름)으로 유명하다. 개발도상국이나 열대 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전 여행자가 ‘제대로 감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보트 위에서 인도 역사를 설명하다가도,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여섯 시면 잠시 항해를 멈추고 20~30분 동안 강 위에 둥둥 떠 있죠. 나지막이 말 꺼냅니다. “해가 참 선명하죠? 드물게 안개가 걷힌 날이에요. 여러분, 운이 좋으세요.”

그리고 강가로 시선을 돌려요.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갠지스강에서 목욕하고 있어요. 신성한 물을 몸에 적셔서,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겠다는 의식이자 마음가짐이죠.”

태양과 강가를 번갈아보던 여행자는, 바라나시를 다시 보게 됩니다. “전 아침 알람 소리에 눈 찌푸리면서 일어나는데, 이곳 사람들은 아주 부지런하네요. 정신이 맑아지겠어요”라고 말해요. 어느새 우리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죠.

감각을 한번 열면, 낯선 주변이 ‘새로운 배움’으로 다가옵니다. 길거리에 놓인 소똥은, 힌두교인이 소와 공생하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부산물. 클락션 소리는 “내가 지나간다, 조심하라”고 알리는 예의. 짙은 향냄새는 시신 탈 때의 역한 냄새를 가리려는 노력으로 읽히는 거예요.

아침 여섯 시 보트에서 바라본 일출. 철수 씨는 잠시 보트를 세우고,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바라보며 기도한다.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롱블랙

Chapter 4.
열과 성을 다해, 여행객의 불안을 잠재우겠다

아무리 재밌는 보트 투어도, 여행자의 ‘안전’이 지켜지지 않으면 꽝이에요. 탈 없는 여행을 돕는 것도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여행자의 컨디션부터 살핍니다. 아침 공기가 너무 추워 으슬으슬 떠는 손님이 있으면, 따뜻한 짜이चाय*를 대접해 속을 데워요. 더위에 목마른 손님이 있으면, 근처 슈퍼로 달려가 생수를 사오죠.
*계피, 생강, 후추, 팔각, 정향 등의 향신료가 가미된 인도식 밀크티. 

가이드를 넘어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겨줄 때도 있습니다. 새벽 세 시였을까요. 처음 보는 한국인 여자가 우리집 문을 쾅쾅 두드렸습니다. 기차 여행 중에 그만 카드를 잃어버려, 수백만 원이 사용됐다는 거예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더군요.

전 여행자를 빈방에 재우고, 아침이 되자마자 경찰서에 찾아갔습니다. 신고를 접수하고, 경찰에게 자세한 상황을 설명했죠. 최대한 빨리 해결해달라고 사정했어요. 결국 돈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여행자는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가 됐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묻습니다. “귀찮지 않냐”고. 하나도 안 귀찮아요. 여행자를 환대하는 일이, 곧 ‘스스로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친절을 베풀 때 나오는 맑은 기운이, 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할 거라 믿죠.

보트 투어 예약 손님을 기다리는 철수 씨. 지금은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아침 5시 30분, 저녁 4시 30분에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선착장 앞에서 만나 친분을 쌓는다. ⓒ롱블랙

김치찜이 먹고 싶다면, 만들어줘야지요

때론 완벽하지 않아도, 타인의 마음을 울릴 수 있습니다. 한국인 여행자에게 한식을 대접할 때가 그렇죠. 2012년 한식당 ‘철수 카페’를 연 덕분이에요. 개업 당시 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이듬해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난 때였어요. 일이 손에 안 잡혔죠.

그때 제 부모님 같은 분들을 만났어요. 바라나시 도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던 노부부였죠. 틈날 때마다 요리를 가져다줬어요. 후라이드 치킨을 먹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2년 동안 한국 가정식을 배웠습니다. 김밥, 된장찌개, 닭도리탕 같은 음식을 따라 할 줄 알게 됐죠. 손주를 돌보러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노부부는, 제게 식당의 기자재를 물려주고 떠났습니다.

상상해봤습니다. 보트 투어가 끝나고, 한국인 여행자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장면을요. 꼭 해야겠다 싶어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한식당을 열자고요. 아내가 흔쾌히 허락했죠. 집 일 층을 개조해, 식당으로 만들었어요. 

처음엔 후라이드와 양념 치킨만 요리해 팔았습니다. 노부부가 “어설픈 한식은 아무도 안 찾는다”며 신신당부했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부부는 약속을 어겼어요. 한국인 여행자들이 “김치찜이 너무 그립다” “혹시 잡채는 없느냐”며 메뉴판에 없는 요리를 부탁했거든요. 

그렇게 메뉴를 하나씩 늘렸어요. 지금은 열일곱 가지나 팔아요. 짜장면부터 냉면, 비빔국수, 김치 지짐이, 옛날 팥빙수까지 있죠. 운영을 해보니, 한국인들은 제 요리 기술보단 마음을 들여다봐 주더군요.

철수카페에서 제공하는 한식. 치킨부터 된장찌개, 김치부침개 등 다양한 한식을 판매한다. ⓒ철수카페 인스타그램

Chapter 5.
손님을 만족시키면, 손님도 날 만족시킨다

보트 투어도 코로나를 피할 순 없었습니다. 선착장에 손님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죠. 인도는 유례없이 많은 확진자*가 나왔거든요. 모아둔 돈을 까먹어야 했습니다.
*인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022년 12월 21일 기준 4467만 명, 사망자 수는 53만 명이다. 사망률 1위인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어려운 상황을 발빠르게 눈치챈 건 한국인들이었어요. 인도 여행 커뮤니티에서 “철수가 많이 힘들다”는 소식이 알려졌나봅니다. 

전화와 편지가 쏟아졌습니다. “철수 괜찮아요?” “철수 필요한 거 없어요?” 그들은 통장 계좌를 물어보고, 생활비를 송금해줬어요. 물이나 과자, 식재료를 보내오기도 했죠. 나를 도와준 사람 중 90%가 한국인일 정도였어요.

그러니 제가 더 잘할 수밖에 없어요. 돈 때문에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돈보다 사람을 쫓아가게 됩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만족시켰을 때, 그들도 내게 똑같이 보답하기 때문입니다.

힌두교에선 은혜를 ‘열매’에 비유해요. 욕심이 지나쳐 과실을 다 먹어 치우면, 새로운 나무가 싹 틀 수 없죠. 열매의 일부를 땅에 심어야, 오랫동안 열매를 먹으며 살 수 있어요.

열매는 ‘신뢰’라는 양분을 먹고 자라요. 한국인의 신뢰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죠. 정확한 설명과 시간 약속을 지키는 태도. 시간을 항상 잘 지키는 편은 아니에요. 인도인은 시간도 사람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늦으면 늦는 거죠.

하지만 늘 기억합니다. 손님에게 나를 맞춰야지, 손님이 내게 맞출 순 없단 걸요.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르다 보니, 한국인은 내 최고의 친구이자 은인이 되더군요.

철수 씨는 “한국인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한국인들이 생필품부터 식재료, 생활비까지 보내줘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롱블랙

마치며 : 바라나시 화장터엔 우는 이가 없다

바라나시의 화장터엔 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영혼이 좋은 곳으로 떠나는 길을, 울음이 방해한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요. 우린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살아있을 때 삶에 충실하자, 영혼은 후회와 미련을 들고가지 않는단 걸요. 

한국인들이 남은 생을 걱정만 하다 떠나지 않길 바랍니다. 어느 한국인은 혼자 디아* 100개를 사서 갠지스강에 띄웁니다. 이루고 싶은 소원, 해결하고 싶은 문제 등 온갖 염원을 담아 기도하죠. 걱정이 많은 탓입니다.
*힌디어로 꽃불이라는 뜻. 작은 종이접시 한가운데 촛불을 놓고, 주변을 형형색색의 꽃잎으로 감싼다. 사람들은 갠지스강 위에 디아를 띄운 뒤 소원을 빈다.

내 마음이 오직 나를 향할 때, 삶은 불행해져요. 내가 먹는 음식, 만나는 친구, 몸담은 직장, 심지어 죽기 전에도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느라 머리가 아프죠. 

내가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고 상상해봅시다. 수백, 수천 번의 인생을 내 걱정만 하다 떠나는 삶에선, 채워지지 않는 후회와 미련이 남기 마련입니다.

제가 계급의 한계를 넘어 ‘최선의 삶’을 찾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자기 삶의 최대치를 찍어보길 바랍니다. 저도 조만간 아들들과 크고 전문적인 투어 회사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언젠가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행자들이 디아에 불붙이고 있다. 갠지스강에 디아를 띄운 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B

철수 씨와 사흘 동안 함께 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보트에 오르고, 그의 카페에서 한식을 즐겼죠. 공항으로 떠나던 날, 그는 “싼 가격에 택시 운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불러주겠다”며 끝까지 저를 배웅했습니다.

투어 가이드보단 ‘편한 친구’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보트에 오른 사람을 모두 ‘언젠가 다시 만날 인연’으로 생각한다”는 그의 말이,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의 노트, 마음에 새기고 싶은 철수 씨의 이야길 되짚어봅니다.

1. 좋은 여행은 두 가지 욕구를 채워준다. 지식의 충족, 공간과 사람을 감각하는 일.
2. 여행자가 제대로 감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인도의 역사를 설명하는 시간, 일출 일몰을 감상하는 시간이 각각 따로 있다.
3.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만 있다면 타인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 철수카페를 열고 한식을 대접하는 이유다.  
4. 내 마음이 오직 나를 향할 때 삶은 불행해진다. 

롱블랙 피플, 일상이 답답할 땐 여행을 떠나보길 바랍니다. 뜻밖의 만남과 배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바라나시는 인도 북부에 위치한 도시다. 갠지스강을 따라 화장터가 있어, ‘죽음을 기다리는 도시’라고도 불린다. 힌두교인은 죽은 뒤 갠지스강에서 화장하면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unsplash
바라나시는 인도의 인기 관광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은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곤 한다. ⓒ롱블랙
보트는 바라나시 시민들의 이동 수단이기도 하다. 아침 해가 뜰 때면, 비교적 수심이 얕은 건너편 해안가로 이동해 목욕을 즐긴다. ⓒ롱블랙
바라나시엔 힌두교 수행자들이 많다. 강변에 머물며 요가와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한다. ⓒ롱블랙
바라나시엔 힌두교 수행자들이 많다. 강변에 머물며 요가와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한다. ⓒ롱블랙
아침 여섯 시, 철수씨의 보트 위에서 바라 본 일출. ⓒ롱블랙
바라나시의 마니까르니까 가트Manikarnika Ghat에 위치한 화장터 전경. 1년 365일 시신을 태우는 불꽃이 피어올라, 버닝 가트Burning Ghat라고도 불린다. ⓒ롱블랙
철수씨가 화장터를 바라보며, 힌두교인이 믿는 업Karma과 윤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들은 살면서 지은 죄를 씻고,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길 원해요.” ⓒ롱블랙
바라나시 강변엔 왕궁이 많다. 예로부터 인도 각 지방의 왕들이 죽음을 앞두고 바라나시에 머물다 화장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업가들이 게스트하우스, 고급 호텔로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 ⓒ롱블랙
바라나시의 화장터는 밤낮으로 화장이 이뤄진다. 나무 타는 연기와 재가 매일 휘날린다. ⓒBjpictures
롱블랙과 인터뷰하는 철수씨. ⓒ롱블랙
철수씨가 소유한 보트. 사업 초기 나룻배를 운전하다, 한국인들의 지원으로 새 보트를 살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보트에 달 모터와 구명튜브, 조끼, 페인트를 지원했다. ⓒ롱블랙
보트에 오른 한국인 여행자가, 철수씨와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롱블랙
디아. 작은 종이접시 한가운데 촛불을 놓고, 주변을 형형색색의 꽃잎으로 감싼다. 사람들은 갠지스 강 위에 디아를 띄운 뒤 소원을 빈다. ⓒ롱블랙
디아. 작은 종이접시 한가운데 촛불을 놓고, 주변을 형형색색의 꽃잎으로 감싼다. 사람들은 갠지스 강 위에 디아를 띄운 뒤 소원을 빈다. ⓒ롱블랙
흰 천으로 둘둘 말린 시신을 어깨에 메고 화장터로 내려가는 유가족. “라마신은 알고 계신다”라는 뜻의 “람람 사떼헤”를 주문처럼 외친다. 바라나시의 골목길에선 수많은 장례 행렬을 만날 수 있다. ⓒ롱블랙

바라나시는 인도 북부에 위치한 도시다. 갠지스강을 따라 화장터가 있어, ‘죽음을 기다리는 도시’라고도 불린다. 힌두교인은 죽은 뒤 갠지스강에서 화장하면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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