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록 : 제주에 일군 100만평 녹차밭, 티 메이커의 브랜딩이 시작됐다

이 노트는 오설록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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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다녀온 K가 선물을 건넸어요. 말차 파베 샌드Matcha Pave Sand. 한입 베어 무니 말차 비스킷과 초콜릿이 달콤 씁쓸합니다. 최근 리뉴얼한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에서 샀다고 해요.

알아보니 오설록의 역사는 44년이나 됩니다. 1979년 제주 돌밭을 일궈 녹차 씨를 뿌린 게 시작이었어요. 놀라운 건 오설록이 안정적으로 흑자를 내기 시작한 게 2020년 이후, 최근 몇 년의 일이란 겁니다. 40년 넘게 적자를 보면서 녹차 사업을 키워온 거예요.

이 브랜드의 뚝심이 궁금해졌습니다. 서울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에서 서혁제 대표와 유정주 크리에이티브 팀장을 만났어요.


오설록 서혁제 대표, 유정주 크리에이티브 팀장

오설록은 최근 작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2022년 매출 813억원, 영업이익 87억원(영업이익률 10.7%). 모두 역대 최고치입니다. 최근 3년 사이, 연평균 31%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죠.

더 큰 의미는 3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는 겁니다. 장수 브랜드지만 3년 전만 해도 적자를 벗어난 해가 거의 없었습니다. 44년 전 뿌린 씨앗이 비로소 꽃을 피운 셈입니다.

최근 오설록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오설록 팀은 “차를 마시는 경험에 집중한 시간이 쌓여, 브랜드가 됐다”고 말합니다.

Chapter 1.
시작 : 원료 향한 집착, 티메이커Tea Maker가 되다 

오설록의 씨앗은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선대회장*이 뿌렸습니다.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세워 국내 최대 화장품 회사로 키워냈죠.
*1924~2003년. 황해도 평산 출생으로 화장품 가업을 1945년 사업화했다. ‘메로디크림’, ‘ABC포마드’ 등을 만들며 국내 1위 화장품 기업을 키웠다.

서 선대회장은 ‘원료’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동백기름을 직접 짜서 팔던 어머니*에게 배운 자세였죠. 그가 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960년대. 해외 출장에서 각국의 차 문화를 접하며 생각했대요. ‘우리나라 차는 왜 없을까.’
*서 선대회장의 어머니 고 윤독정 여사는 황해도 개성에서 수공업으로 미용 기름을 만들어 팔았다.

1979년, 제주 서귀포시 도순동에 돌밭을 사들이면서 아모레의 녹차 사업이 시작됩니다. 돌이 얼마나 무성했는지, 지금도 ‘돌송이차밭’이라 불리는 곳이에요. 서성환 회장은 무수한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 차 사업이냐. 그게 돈이 되겠느냐. 기록을 뒤져보니, 이 질문에 그가 1985년 남긴 답변이 있더군요.

“우리 국민이 꼭 커피만 마셔야 하나요. 우리 차가 커피인가요? 우리는 1200년 전인 신라 시대부터 차를 마셔왔어요. 전통을 찾아야 해요.”

당장 돈이 되지 않을 거란 것, 서 회장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투자예요. 우리는 몇십억을 투자해 작년에 5000만원어치를 팔았어요.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밑진 걸 복구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그때 가서는 녹차 사업이 복이 될 거예요.”

제주 녹차밭을 돌보는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선대회장. 그는 장기적으로 녹차 사업이 복이 될 거라고 내다봤다. ⓒ오설록

좋은 땅은 누구나 개발할 수 있다, 황무지에 들어간 이유

왜 제주도였을까요. 녹차 재배는 까다롭습니다. 연평균 14℃ 이상의, 다습한 기후가 필요하죠. 마침 제주 중산간 지역이 그랬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는 온화한 땅. 일본의 유명 차 산지와도 비슷한 환경이었죠. 

그럼 왜 하필 돌무더기 땅을 산 걸까요. 함께 제주도 땅을 개간했던 한 임원은 이렇게 전했어요. 

“제주말로 ‘멀왓’이라고 해요. 자갈도 아니고 암반이 쫙 깔린 밭이요. 회장님께 ‘좋은 땅 다 두고 왜 이런 땅입니까’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말씀하세요. ‘좋은 땅은 누구나 개발할 수 있잖아요. 이 땅은 우리가 아니면 황무지가 됩니다.’”

도로도, 수도도, 전기도 없던 땅. 서 전 회장은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제주를 들러 밭을 직접 돌봤다고 합니다. 점심을 빵으로, 저녁을 막걸리로 때우면서요. 그렇게 20년간 일군 차밭이 100만 평(330만5785㎡)*에 달합니다.
*서 선대회장은 제주의 서광과 돌송이, 한남을 포함한 100만 평 규모 땅을 개간해 오설록 유기농 차밭을 만들었다.  

1960년대 유럽 시찰을 떠나는 서성환 선대 회장(사진 오른쪽). 해외 차 문화 시찰뿐 아니라, 녹차밭 개간을 하는 동안 그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제주에 내려가 농장을 살폈다. ⓒ오설록

Chapter 2.
한국 최초의 녹차 브랜드, 시장에 씨앗을 뿌리다

돌밭을 개간한 이듬해인 1980년, ‘설록차’란 브랜드가 출발했어요. ‘눈 덮인 한라산에서 생산된 깨끗한 녹차’라는 뜻입니다. 시작은 티백이었습니다. 건강에 좋다는 메시지를 담아 천수天數, 만수萬壽와 같은 이름의 제품을 출시했어요. 

하지만 녹차가 단숨에 대중화되지 못했어요. 커피믹스가 유행하던 때였습니다. 달콤하고 고소한 커피믹스에 비하면 녹차는 씁쓸하고 떫었죠. 웰빙 붐을 타고 매출은 천천히 성장합니다. 1996년 연 매출 300억원을 넘기지만 이내 정체기가 찾아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오설록*이 아모레에서 분사하던 2019년까지. 녹차 사업의 연 매출은 400억~700억원대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1999년 스타벅스가 진출한 이후, 한국의 커피 시장이 무섭게 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죠.
*아모레퍼시픽은 녹차사업부 산하 설록차 브랜드를 2015년 오설록으로 통일하고, 2019년 사업부를 분사시키며 법인명을 오설록으로 정한다.

오설록의 대표 녹차 ‘세작’. ⓒ오설록

‘티 메이커’로 포지셔닝positioning하다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오설록만의 가치를 발굴해야 했어요. 오설록은 직접 찻잎을 길러 차를 만드는 ‘티 메이커’ 브랜드로서의 위상에 주목했습니다.

의외로 세계적 차 브랜드 중에서도 찻잎까지 직접 생산하는 메이커는 거의 없습니다. 싱가포르 브랜드 TWG나 영국 브랜드 포트넘앤메이슨Fortnum & Mason도 마찬가지예요. 이들은 찻잎을 사들여 다양한 맛을 만드는 딜러Dealer죠.

오설록은 티 메이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갓 수확한 햇차, 직접 손으로 딴 찻잎… 2001년 제주 녹차 산지에 세운 오설록 티 뮤지엄은 이런 스토리텔링에 힘을 실어줬어요. 

프리미엄의 길을 택했지만, 좀처럼 브랜드의 위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래 팔아 온 ‘현미 녹차’ 티백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2014년, 아모레는 중대 결단을 내립니다. 설록차 브랜드의 티백 사업을 아예 접기로 한 거예요.

“설록차 티백의 매출 비중이 80%일 때였어요 굉장히 과감한 결정이었죠. 서경배 회장님은 브랜드에 가치를 더 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당시 마트에서 녹차 티백이 1+1 할인 경쟁을 하던 때였거든요. 이대로는 프리미엄 차 브랜드를 만들기 어렵다고 봤던 거예요.”
_서혁제 오설록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2015년, 아모레는 모든 녹차 제품을 오설록이란 브랜드로 통일합니다. 찻잎을 기르고 팔던 장원*이라는 농장 이름까지 오설록 농장으로 바꾸죠.
*장원은 서성환 선대회장의 호다.

그리고 2019년, 오설록은 모기업에서 독립해요. 아모레 설록사업부에 입사해 24년간 마케팅과 상품기획을 맡은 서혁제 대표가 대표를 맡습니다. 화장품 중심 기업의 유일한 F&B 브랜드잖아요. 타 브랜드와 시너지가 크지 않다면, 독립해 경쟁력을 키우라는 게 이유였죠.

“위기감을 느꼈어요. 이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분사라는 건 회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거잖아요. 바깥에선 ‘그래도 모기업이 도와주지 않겠냐’고도 했지만,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아요. 철저히 홀로 생존해야 했죠.”
_서혁제 오설록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서울 가회동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에서 만난 서혁제 대표. 그는 “오설록 생존을 고민하며, 티 메이커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롱블랙

Chapter 3.
공간 : 사람들은 프랜차이즈에서 추억을 남기지 않는다

오설록의 지난 5년 행보. 가장 눈에 띄는 건 매장의 변화입니다. 오설록은 ‘티하우스’라 불리던 매장을 한때 전국 20곳 이상으로 늘렸습니다. 이 티하우스가 지금은 단 5곳에 불과합니다. 제주의 티뮤지엄을 합쳐도, 오설록을 경험할 수 있는 매장은 전국 6곳에 불과한 거예요.

“다른 카페 브랜드들처럼 비슷한 매장을 늘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접점을 늘리면 고객도 늘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매장이 늘어도 고객이 따라 늘지 않더군요. 결국 차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지 않았던 거죠. 매장 수는 적더라도, 한번 오면 차를 제대로 즐기게 해야 한다는 게 새로운 방향성이었습니다.”
_서혁제 오설록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숫자는 줄었지만, 경험은 증폭됐어요. 개별 매장은 모두 독립된 디자인과 콘텐츠를 품고 있습니다.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의 가회다실. 1960년대에 지어진 3층 양옥집을 리뉴얼해 만들었다. 오설록은 티하우스 매장 개수를 줄이는 대신, 공간의 특색을 살린 콘텐츠를 품게 했다. ⓒ오설록

층마다 깊이를 달리할 때, 다시 오고 싶어진다

2021년 서울 가회동에 들어선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을 볼까요. 이곳은 1960년대 세워진 양옥을 고쳐 만들었어요. 층마다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인테리어와 콘텐츠를 채웠습니다. 

1층 숍에선 ‘동백 플라워 가든’, ‘구운 녹차’처럼 매장에서 갓 볶은 차를 팔고 있어요. 2층 카페에선 기와 모양을 닮은 찰깨 와플 ‘북촌의 기와’ 같은 티푸드를 먹을 수 있죠. 3층 바설록에선 ‘볼케닉 한라티니Volcanic Hallatini’, ‘탠저린 북촌 슬링Tangerine Bukchon Sling’ 같은 무알콜 티 칵테일이 마련돼 있어요. 모두 이 매장에서만 파는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티하우스 북촌은 매달 2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어요.

“공간마다 깊이를 달리했어요. 여러 번 오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했거든요. 꼭 그 매장에 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려면, 좀 번거로워도 매장마다 인테리어와 콘텐츠가 달라야 했죠.”
_유정주 오설록 크리에이티브 팀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3층 바설록에 마련된 티 칵테일과 디저트. 오설록은 ‘탠저린 북촌 슬링’처럼 이 매장에서만 접할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를 운영하고 있다. ⓒ오설록

위스키와 차, 말차와 에스프레소 잔으로 조화를 만들다

한강진역 인근 페이스갤러리에 있는 오설록 티하우스 한남점은 어떤가요. 이곳은 다양한 스피릿을 섞은 티 칵테일을 팝니다. 이태원 인근의 힙스터들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녹차를 제안하고 싶었던 거예요. ‘로키 포트레이트Rocky Portrait’란 칵테일은 제주화산암차에 싱글몰트 위스키 탈리스커Talisker를 섞은 음료예요. 

2023년 3월에 리뉴얼한 오설록 티하우스 현대미술관점은 ‘프레시 말차 샷Fresh Matcha Shot’이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말차를 에스프레소 잔에 담아 말차 초콜릿과 함께 마실 수 있게 했어요. 에스프레소 바의 유행을 녹차에 접목한 거죠. 

하나하나의 매장에 특별한 콘텐츠를 부여한 전략. 방향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5곳 매장의 매출이 과거 더 많은 매장을 운영하던 때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2년 오설록의 매출(813억원)은, 20곳 훨씬 넘는 매장을 운영하던 2015년(556억원)의 매출보다 1.5배가량 높습니다. 온라인 판매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소수의 매력적인 공간도 성장에 한몫했죠.

더 큰 수확은 브랜딩입니다. 압도적인 매장 경험은 브랜드 가치를 단숨에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이죠. 최근 오설록 매출이 급증한 건 온라인 선물하기의 영향이 큽니다. 이 역시, 오프라인에서 다진 단단한 브랜드 덕분이라고 회사는 분석합니다.

“팬데믹 때 온라인으로 오설록 티 세트를 선물하는 이들이 늘었어요. 최근 매해 실적을 갱신한 배경입니다. 오설록이 ‘선물하고 싶은 브랜드’가 된 건, 고객 경험을 강화한 브랜딩 노력이었다고 생각해요. 문화를 만드는 브랜드로 인식된 거죠.”
_유정주 크리에이티브 팀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유정주 크리에이티브 팀장(오른쪽)과 서혁제 대표. 유 팀장은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디자인을 해오다 분사 시점에 오설록에 합류했다. ⓒ롱블랙


Chapter 4.
제품 : 진입장벽을 없애야, 본질을 알릴 수 있다

티하우스의 메뉴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차가운 녹차 라떼에 생크림을 올린 ‘제주 숲 말차슈페너’, 프라푸치노 같은 녹차 셰이크 ‘오프레도’, 그리고 티푸드 매출 1위인 녹차 아이스크림… 전통적인 차 문화와 너무 거리가 멀지 않나요? 이런 걸 차 문화라 할 수 있을까요?

24년 동안 오설록 사업을 키워 온 서혁제 대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차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라고요.

“녹차를 둘러싼 선입견을 깨지 못하면 절대 시장을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란 다례茶禮를 배운 사람이 즐기는 것, 나이 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일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선입견 말이에요.”
_서혁제 오설록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생각해 보니, 커피 문화가 확산한 과정도 똑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부터 에스프레소를 즐기기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믹스 커피에서 아메리카노를 거쳐 에스프레소로. 점점 사람들의 취향은 커피의 본질로 다가갔죠. 

오설록의 녹차 라떼와 그린티 롤케이크. 서혁제 대표는 “녹차를 둘러싼 선입견을 깨기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노력을 계속해왔다”고 강조했다. ⓒ오설록

대중의 취향을 다채롭게 저격해야 한다

오설록이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일단 부담 없이 녹차를 즐기는 경험을 많이 전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차 소비량은 평균 170g입니다. 반면 영국은 2kg, 일본은 1kg에 육박하죠.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차의 맛을 긍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거예요. 차를 잘 우리면 쓰지 않고 맛있어요. 그걸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해요.”
_서혁제 오설록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실제로 오설록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다양한 향과 맛을 첨가한 ‘블렌디드티Blended Tea’예요. 종류만 14가지죠. 그중 배향이 나는 ‘달빛 걷기’는 단일 제품으로 연매출 60억원을 넘깁니다. 후발효*한 녹차와 돌배의 달큰한 향을 어우러지게 한 차죠.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에 의해 발효시켜 만드는 차. 

제주 삼나무와 영귤의 향이 섞인 ‘삼다연 제주영귤’, 제주 동백꽃과 파인애플 향이 홍차와 어우러진 ‘동백이 피는 곶자왈’ 모두 베스트셀러입니다. 

차를 마실 때 곁들이는 티푸드Tea food도 차 문화를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2012년에 브랜딩 전문가 김아린 비마이게스트 대표와 함께 개발한 녹차 밀크 스프레드는 지금도 오설록의 주요 제품이죠.

“처음엔 달콤한 디저트나 블렌디드티로 차에 눈을 뜬 사람도 점점 순수 녹차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녹차를 꼭 어떻게 마셔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새로운 세대에 다가갈 수 없어요.”
_서혁제 오설록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차를 잘 모르는 사람도 가볍게 시도할 수 있는 블렌디드티를 내놓은 노력이 차 선물의 증가로 이어졌다. ⓒ오설록


Chapter 5.
티뮤지엄 : 딜러가 만들 수 없는 가치를 전해야 한다 

최근 오설록이 제주 티뮤지엄을 리뉴얼한 건 브랜딩 작업의 일환입니다. 2001년 처음 문을 연 티뮤지엄은 오설록의 상징 같은 공간이에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서광차밭 한편에 자리 잡았죠. 21만 평에 달하는 차밭을 내려다보며 녹차 제품을 즐길 수 있어요. 연간 약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습니다. 

제주 티뮤지엄을 찾는 관광객은 드넓은 녹차밭을 바라보며, 그리고 덖음솥에서 피어오르는 구수한 향을 맡으며 자연히 알게 되죠. ‘오설록은 찻잎을 직접 기르고 덖어 차를 만드는구나.’ 티 메이커만이 줄 수 있는 체험이죠.

티뮤지엄은 2023년 5월 새로 문을 열면서 ‘메이커가 전할 수 있는 가치’에 더 집중했습니다. 내부 어디서도 쉽게 녹차밭을 바라볼 수 있도록 창문을 최대한 많이 냈어요. 시야를 가리는 천정과 벽의 구조물은 최대한 걷어냈죠. 

작은 코너였던 로스터리 존은 리뉴얼을 하며 핵심 경험으로 확대했습니다. 갓 덖은 산지 차가 따뜻하게 우러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어요. 먼저 덖음솥을 가운데에 두고, 포장된 제품이 레일을 타고 카운터로 넘어와요. 이어 즉석에서 우린 차를 맛보고 사는 방식입니다. 

공간 초입에는 제주 녹차밭 개간 역사부터, 현재까지 브랜드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를 담았어요. 메이커로서의 브랜드 본질을 보게 했습니다.

“차 문화의 본연이 뭘까 고민했어요. 공간을 고치면서 가장 핵심만 남기려 했죠. 따뜻하면서도 구수한 차의 향이 올라오고, 그걸 편안히 마시며 푸른 풍경을 보는 것. 우리 브랜드에서만 즐길 수 있는 차와 차경借景*을 만들었습니다.”
_유정주 오설록 크리에이티브 팀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주위 풍경을 그대로 경관에 담기게 하는 것

2023년 5월 리뉴얼 된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로스터리 존’. 덖음솥뿐 아니라 로스팅 기계, 차를 옮기는 레일 등을 설치해 방문객이 차가 생산되는 과정을 온전히 볼 수 있게 했다. ⓒ오설록

Chapter 6.
마치며 : 글로벌 시장의 럭셔리 브랜드, 될 수 있을까

오설록의 다음 목표는 세계 시장입니다. 이미 아마존에서 오설록 제품이 팔리고 있어요. 월평균 265%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뉴욕을 중심으로 한국 차를 알리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인플루언서influencer들에게 제품을 전달하고 브랜드를 설명하는 일, 그야말로 씨뿌리기seeding라고 불리는 작업이에요. 

차밭을 가진 브랜드만 만들 수 있는 프리미엄 제품을 차별화 포인트로 선보인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1년에 1000개만 생산하는 ‘일로향’이 있어요. 손으로 골라 딴 어린 찻잎을 장인이 직접 비벼 만든 수제 차입니다. 옅고 깔끔한 풍미를 품어 60g에 17만원 정도 하죠. 

“와이너리도 마찬가지예요. 포도 생산량의 10% 정도는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데 쓰거든요. 차의 풍미도 와인처럼 무궁무진합니다. 40년 넘게 찻잎을 생산한 집념과 헤리티지heritage를 담으면, 럭셔리 브랜드로 포지셔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_서혁제 오설록 대표, 롱블랙 인터뷰에서 

세계에서 한국의 차 브랜드가 명품으로 인정받는 일. 하루아침에 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겁니다. 100만 평 가까운 제주 돌밭이 결국 녹차로 뒤덮인 것처럼요. 

“일본의 차 문화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인데, 그들은 그걸 다듬고 가꿔서 세계에 자랑하고 있어. 산업적으로도 성공하고 있고. 이제 우리나라도 나서서 차 문화를 보급하고 전파해야겠어.

사실 이런 문화 사업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대기업들이 앞장서야 하건만, 그들은 타산이 맞지 않으니까 손을 대지 않아요. 그러니 나라도 녹차를 우리 고유의 차로 다시 키워내고 싶어.”
_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선대회장, 책 『아름다운 집념』에서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 그는 화장품 사업을 성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차 문화 확장을 위해 20여 년간 제주 돌밭을 녹차밭으로 가꿨다. ⓒ오설록


롱블랙 프렌즈 B

44년 전 제주의 돌밭에서 출발한 오설록, 앞으로 어디까지 뻗어 나갈까요. 다음 행보도 궁금해집니다. 

오늘의 노트, 인상 깊은 내용을 정리해 볼게요. 

1. 오설록은 1979년, 아모레퍼시픽 서성환 선대회장이 제주에 녹차밭을 만들며 출발했습니다. 그는 지금은 약해진 한국의 차 문화를 복원하고 싶어 했어요.
2. 설록차로 녹차를 대중화한 오설록은 2000년대 들어 ‘티 메이커’의 정체성을 강화해요. 손으로 직접 딴 잎차, 차밭이라는 공간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을 구현했죠.
3. 제주와 북촌, 한남과 용산처럼 각 지역마다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달리했어요. 갓 볶은 차를 마시는 건 물론, 각 매장에만 있는 티 칵테일이나 티푸드로 대중을 끌어들였죠.
4. ‘녹차는 쓰고 떫다’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노력도 지속했어요. 배향이 나는 ‘달빛 걷기’와 같은 블렌디드티를 만들어 젊은 세대가 차의 세계에 입문하도록 이끌었죠.
5. 오설록의 브랜딩은 ‘딜러가 아닌 메이커’로 일관되게 확장하고 있어요. 44년 전 제주 돌밭에 씨를 뿌린 것처럼, 뉴욕을 중심으로 세계에 차 문화를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롱블랙 피플, 혹시 커피가 아닌 낯선 차 한 잔을 마시며 새로운 발견을 한 적이 있나요? 여러분이 만난 차의 경험 중 인상 깊었던 게 있었다면, 슬랙 커뮤니티에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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