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켄야 : 사상가가 된 디자이너, ‘유동의 시대’를 말하다


롱블랙 프렌즈 B 

무인양품無印良品이란 브랜드를 좋아합니다. 간결한 디자인도 좋지만 브랜드의 정신이 마음에 들어요. ‘이것이 갖고 싶다’는 욕망이 아닌,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깨달음을 불러일으키는 브랜드라고 할까요. 무인양품의 이 정신을 만든 이는, 디자이너 하라 켄야原研哉입니다. 

하라 켄야 같은 디자이너는 드뭅니다. 마치 한 명의 사상가 같아요. 그는 2003년 책 『디자인의 디자인』을 펴내며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공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2008년 『백』에서는 창조성을 위한 비움을 강조했어요. 최근 펴낸 책은 『저공비행』. 지금을 ‘유동遊動의 시대’라고 정의하며 ‘로컬리티’의 힘을 말해요.  

동시대를 읽어내고, 새로운 아젠다를 제안하는 감각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하라 켄야와 14년간 교류해 온 유영규 산업디자이너와 함께, 도쿄에 있는 그를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유영규 클라우드앤코 대표(산업 디자이너)

하라 켄야를 처음 만난 건 2009년. 일본 도쿄 미드타운에 있는 토라야 카페에서였습니다. 그날도, 그 이후 몇 차례 만남에서도 그는 늘 바빠 보였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전히 대화에 집중하죠.

그럴 때면 머릿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파동치곤 합니다. 그와의 대화는 아이리버, 마이크로소프트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제 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무엇보다 하라 켄야는 변화하는 세상을 아우르는 통찰력을 보여주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출발했지만, 산업 디자인, 환경, 기술과 건축의 경계를 넘나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