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 타잔을 꿈꾸던 생명학 박사, “알면 사랑한다”


롱블랙 프렌즈 C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절 한 영상으로 이끌었어요. 제목이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 이렇게 대담한 말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 영국 동물학자 제인 구달Jane Goodall과 만든 생명다양성재단의 대표이기도 해요. 

최 교수는 “동물들이 지금처럼 불안정한 대한민국 사회에 산다면, 아무도 새끼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요. 생물학이라는 본인만의 무기로, 목소리를 내는 그가 궁금해요.

<사유, 한 주> 그 세 번째 주인공은 최재천 교수예요! 이화여대에 있는 생명다양성재단 사무실에서 함께 이야기 나눴어요.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 교수

생명. 많이 들어보셨지만, 깊이 생각해 보진 않으셨을 겁니다. 국어사전에는 ‘동물과 식물의, 생물로서 살아 있게 하는 힘’이라고 나와있네요.

저는 생명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한계성과 영속성을 동시에 지닌 것.’ 개체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DNA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생명을 사유한다는 건, 시공간을 아우르는 사고를 하는 겁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사유하는 일이죠.


Chapter 1.
운명처럼 동물이 다가오다

제 인생은 진화 그 자체 같습니다. 뭔가를 기획한 적 없는 인생을 살았죠. 다만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네요.

저의 고향은 강릉입니다. 8살 때 서울로 올라왔지만, 방학마다 강릉을 찾았어요. 삼촌들과 논병아리 둥지를 털고, 바다로 나가 성게와 대합조개를 날로 먹었어요. 쇠똥구리를 잡아 14시간 동안 손에서 놔주지 않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동물 친구들에게 참 미안해요. 하지만 그땐, 정말 신나게 자연과 부대꼈습니다. 중학생 때 장래희망에 ‘타잔’이라고 적어낼 정도였어요. 이런 짓을 고3 때 빼고 매년 했습니다.

고3 때는 의대 진학을 준비했어요. 열심히 공부했지만 2년 연속 떨어졌죠. 그 시절엔 2지망 제도란 게 있었어요. 자존심은 있어서, 1지망에 의대만 쓰고 2지망은 빈칸으로 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빈칸에 ‘동물학과’를 써놓으셨어요. 그렇게 억지로, 서울대 동물학과에 갔습니다.

다니기 싫어서 공부를 안 했습니다. 태도도 불량해서 선배들한테 많이 맞았고요. 그대로 4학년이 되자 조급해졌어요. 그 때 운명처럼, 미국 유타대학 곤충학과의 조지 에드먼즈 교수를 만납니다. 당시 그는 하루살이를 채집하러 한국에 왔었죠. 저를 조수 삼아, 일주일 동안 산과 들로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 양반은 내가 시골에서 하던 걸, 업으로 삼고 있네? 나도 이 양반처럼 되고 싶다!’

에드먼즈 교수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호프집에서 맥주를 기울이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무릎까지 꿇고요. “I… Like You!”. 당신처럼 되고 싶단 의미였지만, 영어가 부족해서 흡사 고백처럼 되어버린 거예요. 그는 웃으며, 미국으로 올 것을 제안합니다. 추천서까지 써주었죠.

덕분에 학점이 3.0도 안 되던 전, 미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에서 석사를,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를 마쳤어요. 열심히 공부한 덕에 미시건대학교에서 교수로 임용도 됐습니다.

리허설까지 하며 수업을 준비해 갔어요. 한국인 교수라고 얕잡아 보이기 싫었습니다. 직접 동물 소리나 행동을 흉내 냈고, 책상 사이를 뛰어다니는 쇼맨십도 곁들였죠. 학생들이 기립박수를 칠 정도였습니다.

최재천 교수가 'I... Like You!'라고 말했던 때를 재연하고 있다. ⓒ롱블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