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순재 : 아흔의 현역, 바닥부터 쌓은 기본을 말하다



롱블랙 프렌즈 B 

2023년 6월 중순, 연극 「리어왕」을 봤습니다. 이 연극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건 리어왕 역을 맡은 이순재 배우 때문입니다. 한국 나이로 올해 아흔. 연기 경력 67년의 이 배우가 어떻게 리어왕을 표현할지 궁금했어요. 

세 번의 우렁찬 북소리. 백발의 리어왕이 등장했습니다. 왕좌에 한쪽 팔을 걸치고 비스듬히 앉았지만, 무대 위 누구보다 강인해 보였죠. “지도를 가져오라. 짐은 이 왕국을 셋으로 나누었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극장을 채우는 순간, 순식간에 극에 빠져들었습니다.

200분이 넘는 공연. 이순재 배우는 강인한 군주에서 초라한 맨발의 부랑자로, 또 딸을 잃은 아버지로 변했어요. 가장 고귀한 자부터 가장 낮은 자의 모습까지 오롯이 표현해냈습니다. 죽은 코딜리아를 붙들고 울먹일 땐,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죠. 

종연이 한 달 남짓 지난 7월 27일. 서울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순재 배우를 만났습니다. 「리어왕」 무대에 함께 올랐던 배우 지주연 씨가 롱블랙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지주연 배우

이순재 선배님과 「리어왕」 무대에 선 건 이번이 두 번째였습니다. 2021년 10월의 무대에서 저는 맏딸 고너릴 역을, 이번 무대에선 막내딸 코딜리아 역을 맡았지요.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울컥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백발의 리어왕이 고개를 숙이자, 관객들이 일어나 박수를 쳤거든요. 아주 오래, 끝나지 않을 것처럼요. 그 박수엔 선배님의 투혼에 대한 경외심이 섞여 있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