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마켓 : 브런치와 와인을 제안하는 ‘생활 밀착형 동네 마켓’의 탄생


롱블랙 프렌즈 K

스타치 푸드 기억하세요? 얼마 전 B가 소개한 암스테르담의 동네 슈퍼마켓이요. 전 마치 그 가게를 가본 듯한 느낌이었어요. 횡단보도 앞 모퉁이의 슈퍼마켓, 들어가면 셰프가 따뜻한 수프를 내어주는 곳을 말이에요. 

그 노트 말미에 소개된 한국 가게가 있었잖아요. 보마켓BOMARKET. 스타치 푸드가 떠오르는 이색 슈퍼마켓이라고요. 순전히 그 노트를 보고 보마켓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서울숲 근처에 4호점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고요. 누구와 함께 가면 보마켓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때 이원제 교수님이 떠올랐어요. 새로운 공간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공간경험 전문가. 글쎄, 이 교수님과 함께 간 덕분에 보마켓의 유보라 대표님과 대화도 나눌 수 있었어요. 두 시간도 넘게 이어진 대화가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이원제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

저는 1990년대 중반에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지금도 뉴욕 소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간이 있어요. 딘앤델루카DEAN&DELUCA. 한국의 딘앤델루카가 카페 같은 컨셉이라면 원조 딘앤델루카는 델리카트슨delicatessen*, 즉 델리에 가까워요.
*조리된 육류나 치즈를 파는 가게. 델리라고 하면 보통 빵과 햄·소시지, 수프 등으로 요기할 수 있는 동네 식료품점을 가리킨다.

전 딘앤델루카에서 앉아있는 걸 좋아했습니다. 부담없이 식사를 해결하기 좋았죠. 막 구운 빵과 직접 내린 커피보다 좋았던 건 사람들을 관찰하는 거였어요. 그곳엔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이 없었어요. 편안한 옷에 스니커즈를 신은 뉴요커들이 한가롭게 신문을 읽는 곳이었죠. 뭔가 친밀한 사람들끼리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분위기가 있었죠. 

2020년 여름, 그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을 만났습니다. 경리단길에 당시 막 문을 연 보마켓 2호점이었죠. 누가, 어떻게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냈는지 너무 궁금했죠. 보마켓의 창업자 유보라 대표를 직접 만났습니다.


Chapter 1.
정의 : 식료품점, 카페, 편집샵 또는 그게 무엇이든

보마켓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네 개의 지점을 냈는데, 지점마다 성격이 다르거든요.

그래도 공통점을 꼽아볼게요. 일단 가게는 크지 않아요. 우리가 늘 만나는 동네 슈퍼마켓 정도? 네 곳 모두에 직접 만든 음식이 있습니다. 배고플 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너무 차려내지 않은 음식이요. 수입 생활용품도 팔고, 견과류부터 햄까지 다양한 식료품도 있어요. 이 독특한 가게를 뭐라고 부를까, 고민하다보면 결국 동네 슈퍼마켓이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이런 질문을 한두번 들은 게 아닐 거예요. 유 대표는 보마켓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생활 밀착형 동네 플랫폼, 이라고 저희를 소개하고 있어요. 보마켓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모아놓은 마켓이거든요. 치약·칫솔 같은 일상용품도 팔지만 친구·가족과 브런치를 먹고 와인을 마시는 '동네 라이프 스타일'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 설명을 들으면서 좋은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그냥 들르고 싶은 동네 슈퍼마켓.’ 보통 슈퍼마켓은 목적이 있어 가잖아요. 라면이나 우유를 사러 말이에요. 그런데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가볍게 저녁 먹으러 왔는데 동네 친구를 만나 와인도 한잔 하고, 새로 들어온 생활용품을 구경하다 슥 하나 사기도 하고. 그런 곳이 보마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