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중 : 인생도 어란도, 소금에 절고 바람을 버티며 녹진해지다

2023.02.10

트렌드&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업계에서 압도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한 오피니언 리더.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해, 미디어 분야에서 에디터, 편집장, 발행인, CEO 등을 거쳤다. 코스모폴리탄 창간 편집장으로, 엘르, 하퍼스바자, 에스콰이어, 쎄씨 등을 만들거나 경영했다. 30년 미디어 경력으로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브랜드 컨설팅 회사 눈이부시게를 만들어 경영하고 있다.

일상에서 발견한 감각적 사례를 콘텐츠로 전파하고 싶은 시니어 에디터.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과 음식, 대화를 좋아한다. 말수는 적지만 롱블랙 스터디 모임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가장 많이 공유하는 멤버.


롱블랙 프렌즈 B 

지인의 집에 초대받았습니다. 좋은 걸 맛 보이겠다며, 정갈하게 썰린 홍시 빛깔의 슬라이스를 내옵니다. 숭어알을 건조한 어란이라고 하더군요. 화이트 와인에 곁들이니 맛이 좋습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치즈 맛이 나요.

이 어란, 대기업 회장들과 미쉐린 셰프들이 찾는다는군요. 만든 이를 궁금해했더니, 양재중 셰프라고 해요. 놀라운 건 그 역시 유명 일식당의 셰프였고, 지금은 지리산에 있다는 겁니다. 셰프는 왜 지리산에서 어란을 만들고 있을까요.


윤경혜 눈이부시게 대표

양재중 셰프의 어란은 저도 즐겨 먹어요. B가 지리산으로 양 셰프를 만나러 간다길래, 따라나섰습니다.

서울에서 남원까지 고속버스로 네 시간. 남원 터미널에서 다시 차로 20분간 굽이굽이 길을 올랐어요. 산내면 중기마을에 있는 바람골. 산바람이 한데 들이닥치는 이곳에, 양 셰프의 집이자 실험실이 있습니다. 겨우내 미처 다 녹지 못한 눈을 두른 지리산이, 코앞에 펼쳐져 장관입니다.

그의 집에 다다르면 서른 여개의 장독대가 가장 먼저 보입니다. 뚜껑을 여니 간장에 살얼음이 얼어 있어요. 겨울이라 비료를 품은 채 잠시 쉬고 있는 텃밭, 포클레인과 나무 널빤지가 널브러진 목공실, 감과 어란을 숙성시키는 서늘한 저장고까지. 한 시간 남짓 그의 터전을 구경하니, 배가 출출해졌어요.

마침 양 셰프가 어란과 와인을 꺼내옵니다. 그는 우리 두 사람을 반기면서도 아쉬워했어요. 봄이나 가을에 왔으면 어란을, 초겨울에 왔으면 감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며 말이죠. 붉게 수놓인 마당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그와 대화하며 사라졌어요. 강한 기운이 마당을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에 놓여도 살 길을 찾아내고야 마는 양재중의 기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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