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브랜드 네이밍만 신경 쓰시나요? 농산물 브랜드 성공 사례 3가지

2004년, 첫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20년이 지난 2024년. 농식품 교역액은 20년 전과 대비해 3배 이상 늘었지만* 정작 급격한 시장 개방과 고령화로 농촌 경제는 점차 쪼그라들고 있어요.
*농촌경제연구원 자료

수많은 저렴한 수입 농산물들 사이, 우리의 농산물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차별화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네이밍만 신경쓰는 브랜딩을 넘어서 농산물에 이야기를 입히는 브랜드들이 최근 눈에 띄어요.  


곡물집 : 스스로 알리기보다 발견하게 돕는 농산물 브랜드


2020년 8월, 공주시 봉황동에서 곡물집은 출발했어요. 네이버 라인프렌즈의 브랜드 MD였던 김현정과, 쌈지농부의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천재박 부부가 열었습니다. 

두 사람은 곡물을 작게 포장해서 팔기 시작했어요. 목표는 하나. 이런 곡물도 있다는 것을 알리는 거였죠. 

원칙을 정했어요. ‘효능을 강조하지 않는다’. 농산물 마케팅은 “먹으면 감기가 떨어진다”거나 “눈이 밝아진다”는 식으로 효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요. 도시인들이 원하는 정보가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토종 곡물의 이름과 맛을 제대로만 알려줘도 이야깃거리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 도시인들에겐 모두 새로운 발견일 테니까요.”
_천재박 곡물집 디렉터

곡물 테이스팅 노트를 만들었어요. 향미, 질감, 식감, 목 넘김을 써넣었습니다. 요리법도 함께 기록했죠. 몇몇 노트를 정리해 볼게요.

등틔기콩. 연두색 콩 껍질이 등 쪽만 터져있어요. 촉촉하고, 밥에 넣으면 고소한 향이 나요. 앙금 디저트나 아기들이 먹을 콩밥에 넣기 딱입니다.

선비잡이콩. 맛이 좋아 과거 보러가는 선비의 발을 붙잡을 정도였대요. 연두 바탕에 먹을 떨어뜨린 듯 검은 점이 찍혀있어요. ‘밤’ 맛이 나서 쿠키와 미숫가루 만들기가 좋습니다.

베틀콩. 충청도 사투리 ‘베틀하다(고소하다)’에서 딴 이름이에요. 윤기 나는 고동색 타원형이에요. 첫맛은 달큰하고 끝맛은 쌉싸래합니다. 목넘김은 약간 거칠고요. 

토종 곡물의 세계, 알수록 다양했습니다. 실험실도 만들었어요. 곡물로 이것저것 탐구했죠. 자연스레 음료를 만들게 됐고, 어느새 카페가 됐습니다.

이곳에서 파는 ‘곡물 블렌드 커피’는 시그니처 메뉴예요. 커피와 어울리는 콩을 찾기 위해 수십 가지 토종 곡물을 볶고 갈아 커피와 내려봤대요. 실험 끝에 궁합 좋은 짝꿍들을 찾았어요. 등틔기콩엔 페루산 디카페인 원두, 재팥엔 콜롬비아 원두, 앉은키밀엔 르완다 원두를 짝지었죠.

디저트도 토종 곡물로 만들었습니다. 앉은키밀과 공주밤을 섞어 만든 와플, 돼지찹쌀 떡을 눌러 만든 떡와플처럼요.

카페에서 디저트와 음료를 먹은 손님들은 꼭 물어봅니다. “이건 무슨 곡물로 만든 건가요?” 그리고 이런 관심은 입맛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곡물집이 진짜 바라는 변화예요.

토종 농산물을 개성 있는 브랜딩으로 알리고 있는 곡물집의 이야기를 링크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세요!


어글리어스 : 못난이 농산물을 재정의한 매력적인 농산물 브랜드

ⓒ어글리어스


어글리어스는 2020년 7월 시작한 농산물 구독 서비스입니다. ‘못난이 농산물’을 보내준다는 점이 독특하죠. 

어글리어스는 ‘못난이 농산물’을 팔지만, 절대로 못생긴 호박, 가지라고 소개하지 않아요. 오히려 매력적인 네이밍을 붙이죠. 활자로 굽은 오이를 소개할 때는 ‘스마일 오이’라고 말해요. 크기가 커서 B급이 된 브로콜리는 ‘씩씩한 브로콜리’라고 소개하죠. 알이 작은 감자는 ‘아담하고 소박한 감자’라고 불러요.

“생명력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란 점을 전달하고 싶어서입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이 아니잖아요?하나하나 모두 다 다른 나무에서, 다 다른 빛을 쐬고 자랐어요. 앞가지에 있었냐, 뒷가지에 있었냐에 따라 빛깔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비도 어느 해는 더 많이 오고, 어느 해는 더 더울 거잖아요? 농산물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모두 다른 존재인 것처럼요.”

어글리어스는 농산물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 SNS 콘텐츠를 만들어요. 예를 들어 오이와 가지는 원래 곡과 식물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휘어서 자라요. 텃밭 가꿔본 분이라면 아마 아실 거예요.

고추도 마찬가지예요. 반듯한 고추가 좋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때 휘어진 고추는 솎아낸다고요. 그동안 새벽배송 오는 고추들이 반듯했던 이유를 아시겠죠?

애호박은 원래 완벽한 원통형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그냥 두면 조금 더 퉁퉁하게도 자라고, 휘어지기도 하죠. 우리가 아는 그 애호박은 과육이 크기 전부터 인큐베이터라고 불리는 비닐 포장*을 씌워서 키운 겁니다. 심지어 재배 과정에서 비닐이 벗겨져 모양이 예쁘지 않으면, 낮은 등급 판정을 받아요. 맛과 영양은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요.*통계청에 따르면 한해 약 6억 개의 애호박 인큐베이터 비닐이 쓰인다. 애호박은 유통과정에서 흠집이 많이 생겨서, 인큐베이터를 씌워야 제값을 받는다.

파프리카도 억울합니다. 처음부터 노란색, 빨간색이 아니거든요. 초록색이었다가 노란색, 빨간색으로 물드는 거예요. 가끔은 초록색이 군데군데 남아 있기도 하죠. 그런데 마트에서 그런 파프리카를 본다면? ‘이건 좀 덜 자란 걸 잘못 가져왔나 보다’ 생각해 외면할 거예요.

친환경 파프리카라면 할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흉터 이야기예요. 파프리카가 자라는 중에 총체벌레가 지나가면 상처가 납니다. 그 상처는 아물지만 흔적이 남아요. 마치 사람 살이 다쳤다가 흉터가 남는 것처럼요. 상한 파프리카라고 오해할 수 있지요. 최 대표는 “독한 살충제 없이 해충 피해를 견뎌냈다는 핵심 증거”라고 말해요.

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얼룩덜룩한 귤을 보면 상했다고 생각하죠. 아닙니다. 귤꽃이 피는 시기에 유행하는 병해를 견뎌낸 흔적이고, 장마철 병해를 농약 없이 견뎌낸 흔적입니다.

“변화무쌍한 자연을 견디다 보면 채소와 과일도 상처가 나고, 아뭅니다. 생명이니까요. 그 흔적이 표피에 얼룩덜룩 보기 싫게 생기는 것이죠. 저는 그 친구들이 더 건강한 농산물이라고 믿습니다. ‘너 참 대자연에서 힘차게 살아냈구나’ ‘고생하며 버텨줬구나’는 생각에 뭉클하고요.”

농산물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브랜드, 어글리어스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에서 더 자세히 읽어보세요!


댄싱사이더 : 유쾌한 이야기를 담아낸 농산물 브랜드

ⓒ댄싱사이더


댄싱사이더는 2018년 충주에서 출발한 크래프트 애플사이더 브랜드예요. 댄싱사이더는 충주에서 나는 사과로 사이더를 만듭니다. 주로 부사를 쓰고 홍로*나 양광으로도 만들죠.
*평균 당도가 15.5 이상으로 국내 품종 중 가장 높다. 1년 중 늦가을 한 달만 판매된다

브랜드 이름부터 ‘댄싱사이더’ 잖아요. 딱딱한 한국 주류 문화의 틀을 깨겠다는 포부가 담겼어요. 

“사이더를 알리기 위해선, 이름엔 무조건 ‘사이더’가 들어가야했습니다. 댄싱이란 단어는, 우선 단어만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바이브를 지녔죠. 그리고 춤에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잖아요. 누구나 출 수 있고, 틀에 갇히지 않았죠. 저희에게 잘 맞는 단어라 생각했습니다.”
_이대로 대표

유쾌한 브랜드 메시지는 라벨 디자인으로도 이어집니다. 한국 전통 민화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특징이죠. 국내산 사과로 만든 사이더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에요.

‘스윗마마’ 라벨엔 금빛 하이힐을 신은 오골계가 그려졌어요. 설명을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져요. 퇴근길에 유기농 귀리를 한가득 물어와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엄마 오골계라니, 워킹맘이라면 절로 손이 가지 않겠어요?

‘댄싱파파’ 라벨에는 호랑이가 등장해요. 퇴근 후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고 있죠. 오늘날 한국의 젊은 부모를 담아낸 거예요.

한편 딸기로 빚은 ‘루드베리’의 주인공은 관능적인 도마뱀 베리랍니다. 꼬리 끝에 달린 새빨간 딸기와 당찬 눈빛이 매력적이죠.

“올드한 주류 문화를 탈피하자는 생각으로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제품명을 만들 때는 되도록 동철이의어homonym*를 사용하려고 했고요. 파면 팔수록 계속 무언가가 나오는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었습니다.”
_구성모 이사
*철자나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영어 단어

특이한 건 최근 제품으로 갈수록 제품명도, 디자인도 쉬워지고 있다는 거예요. ‘애플 상그리아’라는 제품이 대표적. 패키지 디자인 역시 별다른 그림 없이, 자줏빛 커버를 둘렀어요. 여기에는 댄싱사이더의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소비자층이 넓어질수록 기존 브랜딩이 너무 복잡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품이 예쁘니까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돌아가더라고요. 사서 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요소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더 직관적으로, 먹음직스러운 방향으로 리브랜딩 중입니다.”
_이대로 대표

기존에 쌓아온 브랜딩이 아깝진 않을까요. 두 청년은 고개를 젓습니다.

“상당히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해요. 또 변화해야만 하고요. 변하지 않으면 유지는 할 수 있겠지만 성장은 할 수 없죠. 처음부터 댄싱사이더의 목표는 사이더의 대중화였잖아요. 그러니 사람들을 보며 브랜드가 변화해야겠죠. 전혀 아깝지 않아요.”
_구성모 이사

한국적이며 독창적인 브랜딩의 댄싱사이더, 그들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에서 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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