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사리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누군가는 행복의 가치를 물질적인 것에 두는 반면, 정신적인 것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행복해지고자 돈을 열심히 벌어봐도, 사람을 많이 만나봐도 도무지 행복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행복의 기원』, 『지적 행복론』,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 과 같은 책을 쓰고 행복에 대해 연구해온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는 생각부터 버려라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행복을 향한 강박이 역설적으로 행복을 망치는 시대에, 심리학 베스트셀러 『행복의 기원』에서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은국 교수는 행복이 거창한 ‘생각/관념’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강조합니다. 생각을 고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쾌(快, pleasure)가 묻어 있는 경험을 할 때 행복해진다고 말이죠.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라고 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우린 너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이건 비과학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요. 흡사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천동설’처럼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동물일 뿐이며,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존재합니다. 행복 역시 마찬가지예요.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게끔 설계돼 있습니다.”
그는 또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은 인생을 ‘한방’, 그러니까 강도라고 생각해요. ‘죽어라 고생해서 강남에 아파트를 사면, 좋은 대학 간판을 달면, 고시를 패스하면 행복할 거야!’ 행복하긴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일주일 혹은 몇 달. 아무리 큰 기쁨도 우리 뇌는 금방 ‘적응’해 버리거든요. 그래서 빈도가 중요해요. 모든 쾌락은 곧 소멸하기 때문에 극적인 경험 한 번보다, 잔잔한 즐거움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행복엔 유리합니다. 반대로 불행한 감정에도 평생 갇혀 있지 않을 수 있고요. 행복의 스위치를 켜 주는 습관들을 삶 속에 꽂아두는 게 필요한 이유죠.”
행복이 빈도라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정신 건강에 이로울까요?
“필요하죠. 다만 '소확행'도 장기적인 즐거움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모적인 즐거움만 좇다 보면, 자칫 더 큰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놓칠 수 있으니까요. 나를 열정적으로 이끌 방향으로 시간을 모으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정말 갖고 싶은 것에 집중하자
행복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오해가 한 가지 더 있죠.
“많은 이들이 행복을 성공과 혼동하고 있어요.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잘 들어보면 성공을 위한 것들이죠. ‘나는 부자가 됐는데, 그럴듯한 직업도 있는데, 왜 행복하지 않지?’ 왜 그러냐. ‘행복=성공’이 아니니까요.” _서은국, 롱블랙 인터뷰에서
『지적 행복론』의 저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행복의 정도는 언제나 ‘나한테 이미 있는 것’과 ‘내가 바라는 것’ 사이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해요. 이스털린은 이를 ‘가지고 있는 것’(실제 상황)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준거 기준)의 차이로 설명하죠.
대체로 당신이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리고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적을수록, 행복 수준이 높아집니다. 당신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변하지 않으면, 당신이 가진 것이 더 많아질수록 행복 수준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가진 것이 변하지 않았는데, 가지고 싶어 하는 것만 많아지면 행복 수준은 낮아집니다._93~94p
자주 잊어서 그렇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불행은 절제 없는 욕망에서 나온다”라고 했어요. 『철학으로 휴식하라』에서 디오게네스가 보여주었듯, 욕망은 더 얻어서 해소하는 게 아니라, 줄여서 처리하는 게 더 좋아요. 가진 것보다 더 적게 바라면 언제나 행복하니까요.
따라서 나하고, 또 남하고 비교하기를 그치면 무조건 행복해집니다. ‘충분하다/모자라다’의 기준은 상대적입니다. 언제나 남하고 비교(사회적 비교)하거나 과거의 나와 비교(개인 내 비교)해서 결정해요. 건강과 가정생활은 옛날의 자신과 비교하지만, 연봉이나 부동산 같은 경제 상황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요. 그래서 이스털린은 말해요.
주변 사람을 따라가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정말 갖고 싶은 것에 집중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_97p
쉬운 일은 아니에요. 어느 날 친구가 BMW를 몰고 눈앞에 나타나거나 특별 보너스를 받았다면서 자랑질을 일삼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 건 할 수 있어요. 행복의 첫 번째 비결은 로마의 시인 네크라소프의 한마디를 가슴에 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내 갈 길을 간다, 남이야 뭐라든.”
그럼에도 불행하다고 느껴진다면
위에서 얘기했던 걸 다 인지했음에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어요.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의 저자, 하노 벡과 알로이스 프린츠는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먼저,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은 인간이 시련을 극복하는 힘을 뜻하죠.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사고로 불행이 닥치기도 합니다. 만일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라는 비극을 겪는다 해도,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충격을 더 잘 이겨냅니다. 고난을 ‘내가 더 성장할 기회’로 받아들이면, 행복이 더 쉬워질 겁니다.
그 후엔 행복이 우연임을 받아들이세요. “독일어로 행복Glück의 어원이 ‘우연’”_166p인 것도 결국 행복이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겠죠. 많은 부분 우연으로 굴러가는 게 우리의 삶입니다. 매사 전전긍긍하기보다 내 힘으로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세요. 사고방식만으로도 행복에 보다 가까워집니다.
‘믿음’을 갖는 것도 행복에 이르는 좋은 방법입니다. 인간은 협력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친구가 많을수록 사람은 행복하죠. 협력의 밑바탕엔 신뢰가 있어요. 신뢰는 사회적인 행복에도 영향을 끼쳐요. 모두가 법을 지킬 것이라 믿기 때문에 우리는 법을 지키니까요. “신뢰는 주관적인 노동 만족도와 건강 만족도에 긍정적 역할”_149p을 미칩니다.
아주 간단하고도 마법 같은 마지막 방법은 ‘바꿀 수 없다면 잊는 것’입니다. 괴로운 기억은 최대한 잊고, 행복했던 일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 그 노력만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즉, 기억이 행복을 좌우합니다. 모든 일을 정확히 기억하면, 오히려 우울과 가까워집니다. 행복에는 어느 정도 기억 왜곡도 필요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과거의 행복 경험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과거의 추억을 방해할 수 있는 불편한 기억을 삭제한다. 불편한 기억을 잊는 사람이 행복하다. 불행한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과거의 일을 고민하고 숙고하고 좋은 일뿐 아니라 나쁜 일까지 모두 기억한다._189p
사실 행복은 거창한 과업이 아니에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행복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죠. 이제 사소한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더 많은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 그 안에서 얻는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면 이전 글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