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나라의 근간을 만드는 건 기록이었죠. 사실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국내 1호 기록학자이자 한국 '기록 시스템'의 기틀을 다진 김익한 교수는 나라든 개인이든, 하루하루 쌓아 올린 기록이 모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있다고 말했어요.
기록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또 우리는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까요?
기록학자 김익한 : 기록이 좋은 세 가지 이유

김 교수가 말하는 기록의 가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누적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직장인은 흔히 ‘소모적인 삶을 산다’고 하소연하죠. 열심히 살지만 돈도 몸도 닳는 느낌이니까요. 김 교수는 기록을 통해 ‘누적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하루가 너무 소모된 것 같다고 느끼는 직장인들이 많죠. 만약 하루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면, 내가 뭘 했는지 모두 기억난다면, 과연 소모된 느낌이 들까요?”
내가 오늘 도전한 과제나 이룬 업적을, 아무리 사소한 것도 기록한다면? 내가 어제보단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일상을 뭉뚱그려 ‘매일이 똑같아’라고 착각하는 습관도 버릴 수 있고요.
“기록을 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오늘 동료와 말다툼한 일만 생각이 나요. 사람은 원래 부정적인 일에 쉽게 동요되거든요. 그 일이 하루를 잡아먹기 전에, 기록을 통해 ‘찰나의 기쁜 순간’을 붙잡는 거예요. 아무리 힘든 날도 분명 미소 지은 순간이 있었을 테니까요.”
김 교수는 덧붙입니다. 기록을 단순히 ‘쓰는 일’이라 생각하는 대신 ‘나와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 보자고요.
② 뚜렷한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
바쁘게 일하다 보면 ‘중요한 결정’을 못 내릴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며 퇴사하겠다 마음먹는 직장인도, 막상 집에 오면 숏폼 콘텐츠를 보거나 술을 마시며 잊어버립니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으니까요.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만 살도록 몰아가는 것. 현대사회의 핵심적 특징이죠.”
김 교수는 제안합니다. 고민을 외면하는 대신, 제대로 기록한다면? 힘든 와중에도 해결책을 만들어볼 수 있죠. 난 왜 퇴사 생각을 하는지, 어떤 점이 불만인지 차분히 적으며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③ 나를 왜곡하지 않는다
기록이 쌓일수록 ‘성급한 실수’도 줄어듭니다. 나를 한 권의 역사책처럼 바라볼 수 있는 관점, 즉 ‘메시아적 시간관*’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주장한 개념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긴 시간을 신과 같이 압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간관을 말한다.
쉽게 말해 내 안에 데이터가 쌓인다는 거예요.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어떤 일에 도전했다 실패했는지’를 간직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볼 수 있죠.
“내가 걸어온 길을 저장하면, 나를 왜곡되게 규정하지 않는 힘이 생깁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하고 나다운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돼요.”
김익한 교수가 말하는 '진짜 나'로서 살기 위한 기록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불렛저널 : 진짜 자아를 발견하는 기록법

김익한 교수의 말대로 기록을 통해 진짜 자신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불렛저널이라는 기록법을 만든 라이더 캐롤Ryder Carroll이에요.
“불렛저널은 다이어리가 아니라, 역량이에요. 연습하면 할수록 불렛저널을 잘 쓰게 됩니다.”
캐롤은 불렛저널이 ‘상품’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거듭 강조했어요. 심지어 꼭 불렛저널 다이어리를 사지 않아도 된다고 했죠. 아무 노트 한 권과 펜 한 자루만 있으면 된다고요. 내지도 상관없어요. 무지이든, 줄 노트든, 모눈종이든.
빈 노트를 펼치고 이 순서로 채워 넣으면 돼요.
① 색인index
쉽게 말해 노트의 목차예요. 몇 월의 기록이 몇 페이지에 있는지 적는 거예요. 먼저 노트 모퉁이에 페이지 수를 적는 게 좋아요.

② 불렛 (기호)
불렛은 글머리 기호입니다. 뭘 달든 상관없지만 일관성 있게 사용해야 헷갈리지 않아요. 이 외에도 여러 기호가 있어요. 우선순위(*), 영감(!)… 내 마음대로 기호를 정할 수도 있죠.

③ 컬렉션
다음으로는 시간을 큰 순서대로 쪼갤 거예요. 먼저 ‘퓨처 로그future log’ 챕터를 만들어요. 향후 몇 달간 일어날 일의 목록을 쓰는 거예요.
그다음엔 ‘먼슬리 로그monthly log’를 쓸 차례. 그 달의 모든 날짜와 요일을 왼쪽에 세로로 쭉 적어요. 그런 다음 스케줄을 적으세요. 한 달간의 조감도a birds-eye view를 완성하는 거죠.
그다음 차례는 ‘데일리 로그daily log’. 매일 그날그날 할 일을 기록하는 페이지예요.

④ 마이그레이션 (이동)
데일리 로그를 정신없이 쓰다 보면 한 달이 지날 거예요. 그럼 앞에서부터 다시 한번 쭉 훑습니다. 처음 쓴다면 대여섯 장 정도 나오겠죠.
새로운 달이 오면 새 먼슬리 로그를 그려야 해요. 예를 들어 6월의 마지막 날엔 7월의 먼슬리 로그를 새로 그리는 거죠. 그리고 6월에 마치지 못한 일들을 옮겨 적으면 돼요. 다음 먼슬리 로그로 이동한 작업에는 ‘>’ 표시를 해요.
이렇게 월간 이동을 하다 보면, 전구에 불이 탁 켜지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대요. 그래서 최소한 2~3개월을 해보길 권한다고 캐롤은 말해요.
“이때 할 일을 모두 완성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이다. 할 일이 여전히 완료되지 않은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일말의 가책을 호기심으로 바꿔라. 정말로 중요한 일인가? 꼭 필요한가?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의미가 없다면 과감히 지워라.”_『불렛저널』 150p
이게 불렛저널의 기본 틀이에요. 너무 간단한가요. 간단해서 효율적입니다. 처음 작성한다면 한 달간의 기록은 10페이지 내외, 회고에는 30초밖에 걸리지 않을 거예요.
캐롤이 처음부터 타고난 정리왕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죠. 그가 어떻게 불렛저널을 통해 인생을 바꿨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PARA : 어디에 저장할지 보다, 어떻게 쓸 지

기록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떻게 보관, 정리하느냐 입니다. 『세컨드 브레인Building a Second Brain』의 저자 티아고 포르테Tiago Forte는 기록할 때 “어디에 저장할지 보다, 쓰임을 고민하라”고 강조했죠.
그러면서 그는 PARA라는 기준을 제안했어요. 프로젝트Projects와 영역Areas, 자원Resources, 보관소Archives의 앞글자를 딴 말이에요. 네 가지 유형에 따라 메모를 저장하는 방법이죠. 기준은 이렇다고 해요.
1. 프로젝트 : 일이나 생활에서 현재 진행 중이며 단기간 노력이 필요한 일
2. 영역 : 오랫동안 관리하고 싶고 장기적으로 책임지는 일
3. 자원 : 향후 도움이 될 수 있는 주제 혹은 관심사
4. 보관소 : 전에는 위의 세 가지 유형에 속했지만, 지금은 비활성화된 항목
프로젝트와 보관소는 알겠는데, 영역과 자원이 애매해 보여요. 영역은 ‘재무 관리’처럼 종료 날짜가 없는 일입니다. 늘어난 지출을 줄이는 법이나, 저축에 대한 정보가 영역에 들어갈 수 있죠. 자원은 ‘흥미·취미’에 가깝습니다. 가고 싶은 공간이나 요즘 커피 트렌드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넣는 거죠. 언제 꺼내도 괜찮은 정보들입니다.
“보관소는 냉동고와 같다. 식사 재료는 필요할 때까지 냉동 보관된다. 자원은 식료품 저장고와 같다. 어떤 요리에든 사용할 수 있지만, 그전에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깔끔하게 치워져 있다. 영역은 냉장고와 비슷하다.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사용할 계획이고 더 자주 확인하는 항목들을 보관한다. 프로젝트는 불 위에서 끓고 있는 냄비나 팬과 같다. 바로 지금 활기차게 준비하고 있는 항목들이다.”_156p
그가 직접 전하는 정보와 지식을 관리하는 방법론, 세컨드 브레인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 그 안에서 얻는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면 이전 글도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