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스타를 거머쥔 한식당 세 곳, 그들의 특별한 킥

이제는 밈meme처럼 쓰이고 있지만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요시한다는 안성재 셰프의 말, 그의 심사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그 의중을 파악해보면 미쉐린 스타를 거머쥔 한식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수 안성재 : 셰프의 진정성이 담긴 미쉐린 한식당


‘정상에 오른 사람’이 있느냐. 한 사회에서 특정 직업에 대한 동경이 생기는 계기가 됩니다. 김연아 선수나 박태환 선수를 보세요. 이들의 활약으로 이 분야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이 늘었습니다.

안성재 셰프는 그런 의미에서 셰프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꿨습니다. 셰프들에게 목표와 희망을 심어줬죠. 미쉐린 3스타뿐만 아닙니다.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Asia's 50 Best Restaurants*에서 ‘셰프들이 뽑은 최고의 셰프상’을 받기도 했어요.
*세계적인 셰프와 미식 전문가가 모이는 미식 행사. 2013년부터 싱가포르, 방콕, 마카오 등에서 개최되어 왔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좋은 요리사란 어떤 요리사일까요?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어요. “열정이 있다고 좋은 요리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열정은 없어도 돼요. 있다가도 없는 게 열정이라 생각해요. 진정성이 없고, 마음이 앞설 때 쓰기 쉬운 말이 열정이죠. 경력도 기술도 중요하지 않아요. 뭐가 됐든 진정성 있게 요리에 임하는 사람이 좋은 요리사라고 생각해요.”

그가 말하는 진정성은 ‘가장 소홀하기 쉬운 것조차 소홀히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제가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디시dish에서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고기가 맛있고 소스가 맛있으면, 맛있는 요리겠죠. 하지만 그건 가장 기본이에요. 대충 해서 넣을 수 있는 채소의 간과 익힘까지 하나하나 다 맛보고 최선을 다할 때, 요리에 진정성이 있는 거죠.”

ⓒ모수 서울 인스타그램


20여 년을 주방에 있는 안 셰프는 여전히 매 순간 긴장을 늦추지 않습니다. 쌀을 씻을 때도 손의 감각과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는 게 안 셰프의 생각이에요. 엄청난 집중이 이어지는 탓에 눈이 늘 피로합니다. 그래서 눈을 계속 깜빡이는 버릇까지 생겼어요.

“요리에 관해선 긴장도가 굉장히 높아요. 제가 정말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드는 음식이니 냉정하고 진지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긴장과 피로 속에서 행복이 온다고, 안성재 셰프는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웃으면서 일하는 게 행복인 줄 아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내 모든 걸 집중해서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좋은 결과를 얻을 때, 그 행복이 훨씬 크고 보람차요.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근데 전 그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거든요.”

한 분야에서 최고라 평가받는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요? '흑백요리사'로 주목받은 안성재 셰프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에서 직접 읽어보세요!


아토믹스 박정은 : 따뜻한 환대로 만들어낸 미쉐린 한식당의 분위기


아토믹스는 뉴욕 맨해튼의 조용한 주택가에 있습니다. 1920년대 지어진, 베이지색 4층짜리 석조 건물 지하에 자리해 있어요. 

아토믹스의 요리는 충분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문 연 지 6개월 만에 미쉐린 1스타를 받았어요. 이듬해 10월에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렸고요.

하지만 아토믹스가 단지 음식 맛만 훌륭했다면, 지금처럼 뉴욕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으로 꼽히지 못했을 겁니다.  

놀라운 건, 이 곳이 ‘2022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즈’에서 33위 레스토랑에 오르고 ‘환대 특별상Art of hospitality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토믹스는 다른 고급 레스토랑과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박정은 대표는 진정한 호스피탈리티란 ‘따뜻한 공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요. 완벽한 서비스보다 더 중요하다고요.

“아토믹스의 서비스는 백조 또는 발레와 닮았다고 생각해요. 조용하지만, 절도 있고, 우아하죠. 1초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이 쇼의 리듬을 잃기에 집중이 필요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야 해요.”


손님이 예약을 한 순간부터 아토믹스는 환대를 준비합니다. 예약할 때 손님이 남긴 이메일 주소나 국가·지역번호 같은 정보로 공부해 두는 거예요. 환대의 공기를 예열하는 거죠.

“손님이 만약 LA에서 오는 푸디foodie라면, 요즘 LA에서는 어떤 셰프나 레스토랑이 유명한지 봐둬요. 메일 주소가 티파니Tiffany & Co로 끝난다면, 티파니가 최근 론칭한 제품을 봐두고요.”

이렇게 손님을 미리 읽어두면 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수월합니다. “LA에서 오셨나요? 여행 중이군요. 며칠이나 있으세요? 여기 아토믹스가 추천하는 카페와 레스토랑 리스트가 있습니다” 하면서요. 

손님에 따라서는 조용히 식사를 하고 싶어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게 현장 정보를 읽는 거예요. 홀을 돌아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듣고, 느끼면 손님에 대해 알게 되고, 어떤 역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요. 

“1초라도 한 눈 팔지마라Don’t sleep even one second가 아토믹스의 서비스 모토예요. 한눈 파는 것 같은 서버 친구가 있으면 가서 물어봐요. ‘너 1번 테이블에 대해 아니? 저 손님 이름 알아? 어디서 왔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몰라? 지금까지 두 시간을 같이 있었는데 왜 몰라?’ 손님에 대해 읽지 않으면, 서버는 그냥 음식 나르는 사람 밖에 안 돼요. 눈 한번 더 뜨고, 귀 한번 더 열라고 말해요. 그럼 손님이 옷을 여밀 때 따뜻한 물을, 냅킨 떨어뜨릴 때 새 냅킨을 가져다 줄 수 있어요. 그러면서 한마디 더 붙일 수 있고요.”

실제로 아토믹스를 방문했던 한 손님은 ‘내가 마스크를 떨어뜨리자마자 3초만에 직원이 새 마스크를 가져다 줬다’며 ‘직원들은 각 모퉁이에서 매의 눈으로 손님을 관찰한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어요. ‘승진을 축하하러 아토믹스에 갔고, 직원들은 세 시간 동안 다섯 번 이상 나를 축하해줬다’는 후기도 있습니다. 

직원들은 대화 속에서, 또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를 손님에 관한 기록으로 남겨요. ‘이 분은 왼손잡이다’ ‘누구와 함께 왔다’ ‘오늘 마신 와인은 어떤 품종, 어떤 지방의 와인이었다’. 이런 정보는 다음 번 손님이 한번 더 아토믹스를 찾았을 때, 관계를 이어나가는 유용한 자산이 되죠.

적당한 온도의 관심으로 고객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아토믹스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를 통해 직접 읽어보세요!


오이지 미 김세홍 : 계산된 브랜딩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 미쉐린 한식당


오이지 미OIJI MI는 뉴욕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중 하나입니다. 문을 연 지 5개월 만에 미쉐린 원스타를 받았어요. 2022년 5월 뉴욕 맨해튼 플랫아이언Flatiron에서 오픈했는데, 2022년 10월 미쉐린에 선정됐죠.

오이지에 맛 미아름다울 미를 더해, 오이지 미라 이름 지었습니다.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고자 이번엔, 모든 글자를 대문자로 썼어요. OIJI MI. 쭉 뻗은 알파벳 I가 정갈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오이지 미의 식사 메뉴는 딱 하나예요. 145달러(약 18만원)의 다섯 코스 프리픽스Prix-Fixe메뉴죠. 가격은 캐주얼 식당보다는 비싸지만, 파인다이닝치고는 합리적입니다. 김세홍 오너 셰프는 오이지 미를 고급스럽되 권위적이지 않고, 우아하되 편안한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해요.
*프리픽스란 가격은 정해져 있지만, 그 메뉴 구성은 고객이 직접할 수 있는 메뉴다.

“누군가는 애매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저는 그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메뉴 가격대부터, 코스 구성, 인테리어 모두를 ‘고급스럽되 권위적이지 않은’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두고 정했어요.”

오이지 미에서 제 눈을 사로잡은 건 아름다움은 음식 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직원들의 차림새였어요. 

오이지 미의 직원은 맞춤 유니폼을 입고 손님을 맞습니다. 흰 셔츠에, 오이지 미의 시그니처 컬러인 미 다크 그린Mi Dark Green* 색 앞치마를 입고 있죠. 김 셰프가 직접 레이디 앤드 버틀러Lady and Butler*에 맞춤 주문한 디자인이에요.
*오이지 미 내부적으로 컬러의 이름을 지었다. 팬톤 3305 U 색상이다.**2015년 시작한 유니폼 브랜드로 스타일리시하고 고급스러운 유니폼 디자인을 지향한다. 고객사로 포시즌 호텔, 이쿼녹스 호텔 등이 있다.

오이지 미 유니폼의 하이라이트는 나이키 에어포스1에 있다고 생각해요. 딱 떨어지는 빳빳한 셔츠에 새하얀 나이키 에어포스1을 신을 때, 비로소 오이지 미의 스태프 룩이 완성돼요.

“우아하되, 지나치게 포멀한 느낌이 나는 건 경계했어요. 셔츠에 반질거리는 구두를 신으면 긴장한 느낌이 들죠. 격식을 차려야 할 것만 같아 어깨에 힘이 들어가요. 각 잡힌 셔츠에 나이키 에어포스 1을 매칭하면 달라요. 차려입었지만, 댄디하고 편한 느낌을 줍니다.”

김 셰프는 직원이 입사하면 흰 셔츠부터 에어포스1까지 직접 사서 제공합니다. 그는 “계산된 브랜딩”이라고 말합니다.


“그냥 ‘흰색 신발을 신으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하얀색도 저마다 색과 느낌이 다 다르거든요. 유니폼의 통일성이 신발에서 깨질 수 있어요. 신발 값으로 할 수 있는 효율적인 브랜딩이라고 생각했어요.”

인테리어에도 디테일이 숨어있습니다. 포물선을 그리듯 아치로 떨어지는 조명은 한국의 비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메인 바bar자리 위쪽엔 색색의 조각보를 짧게 늘어뜨려 뒀습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을 뿐인데, 꼭 아주 멀리 여행 온 것 같아요.  

김세홍 셰프는 음식과 공간의 긴밀한 조율alignment을 가장 중시합니다. 테이블 위의 식기 하나, 메뉴 구성, 직원 유니폼, 조명과 배경 음악 모두, 오이지 미라는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하도록 설계했어요. 

“‘맛 말고 어떤 가치가 얼마나 더해지느냐’가 밥집과 파인다이닝을 구별 짓는다고 생각해요. 음식 맛은 어딜가도 맛있습니다. 백반집이나 국밥집 가서 한 끼를 먹어도 든든하니 좋지요. 그런데 그게 미적으로 아름다운 경험은 아닐 거예요. 파인다이닝에선 모든 미적 감각이 충족돼야 해요.”

 오이지 미 김세홍 셰프와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서비스적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면 아래 링크에서 직접 읽어보세요!


더 많은 셰프, F&B 브랜드 기획자와의 인터뷰가 궁금하다면 이전 글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