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기준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18.4%*로 우리나라는 곧 초고령 사회로 진입을 앞두고 있어요.
*23년도 통계청 자료
이렇게 노인 인구가 점차 많아지면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도 같이 떠오르고 있죠.
그 중에서도 기존 시니어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타파하고 재정의하는 브랜드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루메쿠 : 시니어 비즈니스의 편견을 버리다

하루메쿠ハルメク는 1996년 ‘이키이키いきいき’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시니어 여성 잡지예요. 2016년 ‘봄다워지다’라는 뜻의 ‘하루메쿠’로 이름을 바꾼 후 명맥을 이어갔죠. 주로 60~70대 중장년의 패션이나 건강, 요리법을 다룹니다. 2006년 판매 부수 43만 부를 기록할 정도로 잘나갔어요. 하지만 잡지 시장이 휘청이면서 2017년엔 역대 최저치인 14만5000부를 찍고 맙니다.
이때 편집장으로 부임한 인물이 야마오카 아사코.
아사코는 ‘타깃 독자’를 새로 정의했습니다. 그러려면 하루메쿠의 편집진이 가진 편견을 버려야 했죠. ‘시니어를 다 안다’는 생각을요.
아사코가 파악한 편집자들의 편견,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① 시니어는 패션에 관심이 없다
② 시니어는 시간적 여유가 넘친다
③ 시니어는 유행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사코가 그동안 만난 시니어는 달랐어요. 시니어는 패션과 미용에 관심이 많고, 손주를 돌보거나 지역 행사에 참여하느라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았어요. 유행에 대한 관심도 컸죠.
상상과 현실이 다르니, 하루메쿠는 ‘사 읽을 것까진 없는 잡지’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아사코는 ‘가설’을 모두 버리고 ‘진짜 독자’의 목소리를 듣기로 합니다.

고객 데이터를 쌓은 하루메쿠, 2018년 오랜만에 히트 콘텐츠를 터뜨립니다. 바로 스마트폰 특집. 스마트폰의 기본 사용법을 모르는 독자에게, 간단한 방법과 용어를 정리해 소개했죠. 이 특집을 계기로 신규 구독자를 끌어모으며, U자 커브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성공한 건 아니에요. 앞선 2017년 7월 소개한 스마트폰 특집은,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죠. 주로 ‘시니어를 위한 앱 추천’ 같은 콘텐츠였어요. 만족도 조사에선 ‘매우 낮음’이 많았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어요. 편집진은 간과한 겁니다. 독자들이 스마트폰의 기본 사용법을 모를 거라는 사실을요. 이는 원인 조사에서도 드러났어요. 스마트폰 초보 독자 20명에게 일주일간 ‘스마트폰 사용 일기’를 써달라 부탁했더니,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죠.
‘보는 동안 화면이 어두워진다.’ ‘가로세로로 전환하면 화면이 빙글빙글 돈다.’ ‘앱이 뭔지 모르겠다.’ ‘터치해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이를 본 아사코는, 콘텐츠 방향성을 180도 뒤집습니다. 스마트폰 조작법부터 알려주기로 하죠. 반응은 뜨거웠어요. 특히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손가락의 힘’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콘텐츠가 인기였죠.
“탭에 필요한 미묘한 힘의 강약을 어떻게 지면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한 결과, ‘손가락으로 참깨 한 알을 줍는 정도의 힘’이라는 표현으로 결론을 내렸죠. 실제로 참깨를 줍는 사진과 함께 실었더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소개 방법이 대단하다’며 화제가 됐어요.”
_야마오카 아사코 하루메쿠 편집장, 2023년 Jiji 인터뷰에서
이런 콘텐츠가 무척 특별하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독자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면, 기획조차 어려웠을 테죠.
“우리는 기발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독자의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다가갈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_야마오카 아사코 하루메쿠 편집장, 2023년 Jiji 인터뷰에서

더뉴그레이 : 시니어 비즈니스에서 '힙'을 찾다

더뉴그레이는 2018년 출발한 시니어 인플루언서 에이전시이자 패션 콘텐츠 브랜드입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팔로워만 각각 34만명이 넘어요. 더뉴그레이와 협업해 ‘시니어 패션 콘텐츠’를 만든 브랜드만 40곳입니다. 인스타그램의 CEO 애덤 모세리Adam Mosseri도 이들을 팔로우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사업은 ‘아저씨즈’를 계기로 빠르게 성장했어요. 아저씨즈는 권 대표가 만든 인플루언서 크루예요. 평균 연령 60대,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 출신의 남성들이죠.
시작한 계기는 시니어 모델들의 ‘고민’ 때문이었어요. 아저씨 메이크오버 프로젝트를 본 모델 스무 명이 권 대표를 찾아와 말했죠. “오디션만 나가면 떨어진다. 옷을 못 입어서 그런 것 같다. 스타일링을 부탁한다”고요.
정작 권 대표는 다른 문제점을 발견했어요. 시니어 모델을 양성하는 아카데미의 불합리한 운영 방식이었죠.
“많은 아카데미가 중장년 어른들의 꿈을 착취한다고 생각해요. 모델 지망생이 시니어 패션쇼에 한 번 나가려면,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2000만원까지 써야 해요. 한 벌에 수백만원 하는 무명 디자이너의 의상을 사라고 강요하죠. 최근엔 시니어 모델 오디션도 생겼어요. 모델들은 주변 지인에게 거액의 돈을 나눠주곤 문자 투표를 독려해요. 10등 안에 못 들면 어딘가 소외당하고, 자존심 깎이는 기분이니까요.”
이게 다가 아니에요. 모델 지망생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는, 홈쇼핑 모델이나 광고 엑스트라입니다. 그마저도 돌봄이 필요한 노약자 이미지 말곤 다른 레퍼런스가 없어요. 광고주 수요가 그쪽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시니어 산업과 정책은 웰 다잉well dying에 머물러 있어요. 기저귀, 간병인, 요양원, 낙상 방지, 상조회사, 장례식 등... 아프지 않게 여생을 마무리하도록, 신체적인 노화에만 집중하죠. 더뉴그레이는 ‘정신적 노화’를 늦추는 데 관심 가져요. 젊음을 추구하면 에이지리스ageless한 세상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권 대표는 변화의 시작으로 ‘취향의 감도 올리기’를 꼽았어요. 시니어 모델들에게 가장 먼저 “젊은 사람의 라이프스타일부터 배워야 한다”고 설득했죠.
“미세한 감도의 차이부터 배워야 해요.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앱을 꾹 눌러봐야 ‘이게 움직이기도 하는구나’란 걸 알잖아요? 그 다음은 얼마나 눌러야 하는지, 어떻게 레이아웃을 배치하는지를 배우는 거죠. 지금까진 중년의 취미가 등산 혹은 <미스터트롯>이었다면, 스마트폰을 ‘잘’ 배우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취미를 발견할 여지가 늘어나요.”
권 대표는 틈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기도 했어요. 모델들을 데리고 성수동의 힙한 카페부터 요가 클래스, 무신사가 주최한 패션 페스티벌까지 구경했죠.

그렇게 아저씨즈가 출발했어요. 여덟 명의 시니어 모델이 함께했죠. 권 대표가 직접 디렉터가 돼, 틱톡에서 유행하는 숏폼 콘텐츠를 하루에 하나씩 찍어나갔어요.
5초에서 10초 사이의 영상은, 10대~20대 인플루언서의 콘텐츠와 비교해도 촌스럽지 않아요. 시니어 모델들은 드레이크Drake의 노래를 배경음으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활보하거나, 햇볕이 내리쬐는 공원에서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를 따라부르죠. 펑키한 비트에 따라붙는 간단한 율동은 덤이고요.
첫 콘텐츠부터 조회수가 터졌어요. 붉은색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가 손에 든 로퍼를 던지자 멋진 신사로 변신하는 영상은 16만 회를, 아저씨즈 멤버들이 에스컬레이터에서 포즈를 취하는 ‘팬 사인회 가는 길’은 970만 회를 돌파했죠. “나도 늙으면 저렇게 살고 싶다” “우리 회사엔 저런 사람이 없지” 같은 반응이 많았어요. 지금은 틱톡 팔로워만 33만 명이 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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