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K
봄은 연녹색 이파리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감도는 교정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직 쌀쌀한 바람에 측백나무가 가느다란 초록 손가락을 흔듭니다. 산수유의 노란 꽃이 환한 봄빛을 더합니다. 희고 보송보송한 목련 봉오리 너머에서 새가 지저귑니다.
이곳은 서울 공릉동의 화랑초등학교. 유한킴벌리가 1999년 만든 최초의 학교숲입니다. 25년 전, 이 학교는 두 개의 운동장 중 한 곳과 교정을 빙 둘러싼 공터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 키보다 작던 이 나무들, 어느새 숲이 되었습니다.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이 40주년을 맞았습니다. 1984년부터 숲의 가치를 알려 온, 국내 최장수 숲·환경 공익 캠페인입니다. 지금까지 이 회사가 심고 가꾼 나무는 모두 5700만여 그루. 국내외 1277곳에 크고 작은 숲을 만들고, 가꾸고, 알렸습니다.
유한킴벌리, 원래 생활용품을 만드는 회사예요. 미용티슈 크리넥스와 기저귀 하기스로 유명하죠. 시민단체도 아닌데, 왜 40년 넘게 이런 캠페인을 이어온 걸까요?
유한킴벌리의 손승우 부문장, 최찬순 수석부장, 전양숙 본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모두 유한킴벌리에서 20년 이상 일하며 ESG 전문가로 성장한 이들입니다. 손승우 지속가능경영부문장은 농림부장관 표창과 대통령 표창을 받았어요. 숲가꾸기 운동을 주도한 공로입니다. 최찬순 수석부장은 ESG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전양숙 ESG&커뮤니케이션 본부장은 ‘포용과 다양성’ 최고 책임자를 겸하고 있어요.
Chapter 1.
숲이 삶의 수준을 바꾼다는 믿음
유한킴벌리의 뿌리는 유한양행입니다. 유한양행은 독립운동가 고故 유일한 박사가 1927년 설립한 제약회사예요. 유 박사는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깊었습니다. 1971년 세상을 떠나며 자신이 가진 유한양행의 주식을 모두(전체 지분의 40%) 사회에 기부했어요. 지금 가치론 2조4000억원어치입니다.
유한킴벌리가 설립된 건 1970년. 유한양행과 미국 생활용품 회사 킴벌리클라크*가 손잡고 만들었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늘 한국의 건강·위생 환경을 안타까워했다고 해요. 마침 킴벌리클라크는 한국 진출 파트너를 찾고 있었고요.
*지분율은 유한양행 30%, 킴벌리클라크 70%이다.
유한킴벌리는 많은 생활용품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했습니다. 미용티슈 ‘크리넥스’와 여성 생리대 ‘코텍스’(각 1971년), 화장지 ‘뽀삐’(1974년), 팬티형 기저귀 ‘하기스’(1983년)까지. 모두 그 전엔 한국에 없던 제품들이었어요. 지금도 여성용품과 물티슈 등 많은 제품군에서 유한킴벌리는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지요.
이 모든 제품들보다 더 유명한 것이 바로 유한킴벌리의 사회 공헌 캠페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입니다. 전 국민 넷 중 셋(77%)이 이 캠페인을 알고 있다고 해요. 80% 안팎인 새우깡의 인지도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지난 40년 유한킴벌리가 심고 가꾼 숲은 국내외 1만6000여 헥타르ha. 여의도의 56배 수준입니다. 불에 타서 사라진 몽골의 숲을 복원하고, 중국과 북한의 황무지에도 나무를 심었어요.
국민적 캠페인을 시작하다
캠페인을 처음 시작한 이는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예요. 1974년 유한킴벌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죠.
그는 1982년 떠난 호주 연수에서 숲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호주는 곳곳에 숲이 울창했고, 숲을 지키려는 사회의 노력이 대단했대요. 한국에 돌아온 그는, “숲이 훌륭해야 국민 삶의 질도 높아진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어딜 가든 잘 가꿔진 숲을 볼 수 있었죠. 경제뿐 아니라 환경에서도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_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2000년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문득 궁금해집니다. 숲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과, 민간 회사가 돈과 시간을 들여 나무를 심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요? 유일한 박사의 사명에 끌려 유한양행의 계열사에 입사한, 문국현 전 대표의 생각은 달랐나 봐요.
“환경 문제를 고민하다가, 한국의 물 문제뿐 아니라 산림 복구도 나라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 시민과 기업이 같이 바꾸면, 성과가 빠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_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유한킴벌리 숲·환경 캠페인 40주년 백서에서
유한킴벌리는 숲을 만들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2년 동안 크리넥스 미용티슈 매출의 1%를 떼어 모았어요. 캠페인 시작 1년 전부터 정부를 설득했죠. 기업이 나라의 땅에 나무를 심는 일, 당시엔 낯설었기 때문이에요.
1년의 설득 끝에야 “국·공유지에 숲을 만들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집니다. 1984년 11월, 산림청과 유한킴벌리의 첫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듬해 4월, 충북 제천 백운면 화당리의 야트막한 민둥산에 잣나무 1만2000 그루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유한킴벌리가 만든 첫 번째 숲이에요.
첫 숲을 만든 뒤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유한킴벌리는 나무심기 기부금을 전달할 때마다 세금을 추가로 내야 했어요. 민간이 정부에 기금을 내는 일이 흔치 않아, 비용 처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래요.
그럼에도 계속 나무를 심고 가꿨습니다. 매년 약 150만 그루씩, 세금을 내가며 9년을요.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야 유한킴벌리는 비로소 기금에 대해 면세 처리를 받습니다. 캠페인이 공익 활동으로 인정받은 거예요. 그때까지 심고 가꾼 나무는 약 1350만 그루였습니다.
Chapter 2.
마음에 숲을 품은 직원들
2007년, 문국현 전 대표는 유한킴벌리를 떠났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유한킴벌리의 대표이사는 세 번 바뀌었어요.*
*김중곤, 최규복 전 대표를 거쳐 2021년 진재승 현 대표이사가 취임했다.
하지만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신임 대표이사들은 취임식마다 같은 메시지를 던졌대요. “이 캠페인을 물려받은 유산으로 여기고, 잘 지켜나가겠다”는 내용이었죠.
시작보다 어려운 게 지속이에요. 어떻게 이어져 온 걸까요. 직원들의 마음속에도 이미 숲이 자랐기 때문입니다.
입사한 뒤 줄곧 이 캠페인의 성장과 함께해 온 손승우 부문장. 그는 유한킴벌리 공장이 있는 경북 김천에서 자랐습니다. 공장 앞에 크게 붙은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옥외 간판을 매일 보다가 입사했어요.
숲을 알리고자 마음먹은 건, 대전 엑스포에서 지원 근무를 하면서예요. 유한킴벌리의 인공숲 부스를 운영하며, 사람들이 숲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지켜봤죠.
“나무를 보니 좋다며 어르신들이 부스를 떠나지 않으시더라고요. 도시락을 싸 와서 드실 정도로요. 관람객들에게 ‘왜 숲이 중요한지, 왜 환경을 지켜야 하는지’ 설명하다 보니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졌습니다.”
_손승우 유한킴벌리 지속가능경영부문장
자진해 홍보팀으로 갔고, 숲 캠페인 업무를 이끌어왔습니다. 많은 주말을 숲에서 보냈어요. 시민들에게 전하던 설명을 그는 아직도 외우고 있습니다.
“숲은 보존도 중요하지만, 가꾸기도 필요합니다. 굵게 자란 나무들 사이 가늘고 작은 나무는 베어줘야 해요. 그런 걸 간벌이라고 합니다. 간벌을 해야 숲에 햇볕이 들고, 작은 풀이 자라요. 그래야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요.”
_손승우 유한킴벌리 지속가능경영부문장
설명 뒤엔 시범입니다. 그는 목이 긴 고지톱을 들고 직접 가지를 쳐내곤 했습니다.
“죽은 가지는 잘라줘야 해요. 그래야 숲에 햇볕도 들고, 나무도 예쁘게 자랍니다. 죽은 가지를 감싸면서 나무껍질이 자라거든요. 그러면 그 자리에 옹이가 생기죠. 옹이가 많으면 고급 목재가 되지 못해요. 땔감으로 쓸 수밖에 없죠.”
_손승우 유한킴벌리 지속가능경영부문장
때로 ‘회사 직원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대요.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죠.
“제가 열심히 설명할수록, 톱을 들고 더 열심히 다닐수록 시민들의 자세가 달라지더라고요. 더 열심히 들으시고, 숲 가꾸기 기금도 적극적으로 내시고요. 그런 변화를 느끼는 게 보람찼어요. 우리 회사가 시작한 일에 시민단체, 정부까지 나서는 것도 신기했고요.”
_손승우 유한킴벌리 지속가능경영부문장
사회책임 담당자를 거쳐 지금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최찬순 수석부장. 1992년 홍보팀에 입사했어요. 그 역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때문에 다른 대기업을 마다하고 유한킴벌리를 선택했대요.
2002년 입사한 전양숙 본부장. 시민단체 활동가가 꿈이었어요. 유한킴벌리에선 2년 정도만 일하고 유학을 가겠다는 계획이었죠. 사내 커뮤니케이션과 지속가능성보고서 발간, 마케팅 업무를 거치며 어느새 23년이 흘렀어요. 유한킴벌리의 ESG 경영을 공부하다 보니 ‘유학도, NGO 입사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공부할수록 충격적이었어요. 어떤 시민단체도 못 하는 일을 우리 회사가 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뿐만이 아니에요. 회사에 들어온 많은 분들의 성향이 비슷합니다. ‘이왕이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죠.”
_전양숙 유한킴벌리 본부장
숲을 키우는 회사가 자랑스러워 들어온 직원들이, 40년 동안 숲 캠페인을 지켜온 셈입니다. 지난해 유한킴벌리는 신입 사원들에게 물었다고 해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이 입사 지원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느냐”고요.
90%의 신입사원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Chapter 3.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숲이다
숲을 만들고 가꾼다는 일. 시대가 변하면서 유연하게 모습을 바꾸었어요.
캠페인 초기엔 나무심기가 중요했어요. 국토 곳곳이 민둥산이었으니까요. 유한킴벌리는 1985년부터 신혼부부 나무심기 캠페인을 해 왔어요. 1988년엔 청소년들이 숲 체험을 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는 ‘그린캠프’를 운영했죠.
2000년 전후론 멀리 있는 숲만 찾아가지는 않았어요. 많은 산이 이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거든요. 유한킴벌리는 대신 숲을 도시로 데려옵니다.
1999년 시작된 ‘학교숲’ 캠페인을 볼까요. 한국의 교정은 일제 시대의 연병장을 닮았어요. 네모반듯한 운동장 귀퉁이에 작은 정원이 전부죠. 유한킴벌리는 학교 담장을 허물고 숲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산의 능선처럼 제각기 높이 다른 나무들이 편안하게 학교를 감쌌습니다. 지금까지 738곳의 학교에 숲이 들어섰어요.
2007년 시작된 ‘마을숲’ 캠페인은 어떤가요. 동네에 버려진 자투리땅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어요. 서울 성북구 석관동 주차장 자리에 들어선 ‘우리동네 숲 1호’를 볼까요. 가을에 열매를 맺는 스트로브잣나무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우리 동네의 학교와 자투리땅에 숲이 들어서는 일. 숲과 사람의 공존을 추구하는 노력입니다.
“멀리 있는 숲은 낯설고 때로는 무서운 존재예요. 동화책 속 숲은 밤이면 도깨비가 나오는 곳으로 묘사되니까요. 우리는 숲이 더 가까이 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무는 늘 가까이에서 사람을 지켜주고, 사람은 그 나무를 지켜줘야 한다고요.”
_최찬순 유한킴벌리 수석부장
2014년, 캠페인 30주년을 맞아 만든 광고의 카피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숲이 작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적인 캠페인의 내부는 시끄럽다
40년을 지속해 온 캠페인. 비결은 의외로 시의성을 고민하는 노력이었습니다.
“일관성 있다는 것이 바뀌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예요. 오히려 역동적인 변화가 필요해요. 그래야 지루해지지 않고, 꾸준히 관심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_전양숙 유한킴벌리 본부장
2022년부터는 ‘자생식물 꿀벌숲’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시민단체 ‘평화의숲’과 함께요. 기후 변화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이 사업을 고민하게 된 이유입니다. 우리가 먹는 식량 작물의 약 60%는 꿀벌 덕에 열매를 맺어요. 꿀벌이 사라지면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거죠.
꿀벌숲에는 꿀벌이 좋아하는 나무들을 심고 있어요. 쉬나무와 헛개나무, 상수리나무와 낙엽송처럼요. 주변의 풀을 없애고, 칡넝쿨을 제때 뽑아줘야 하는 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숲은 모든 환경 문제와 연결돼 있어요. 우리는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이야기를, 숲을 통해 하는 거예요. 나무심기, 생물 다양성, 학교 폭력과 기후변화까지... 시대가 요구하는 이야기를 숲을 통해 전하는 것이 40년 동안 계속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비결이에요.”
_손승우 유한킴벌리 지속가능경영부문장
Chapter 4.
홀씨가 소비자 마음에 내려앉다
비즈니스 세계는 브랜드 액티비즘*으로 뜨거워요. 자기 브랜드와 관련된 메시지를 외치는 기업은 많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매출과 연결되지도 않는 캠페인을, 40년이나 이어온 기업은 찾기 어렵습니다.
*Brand Activism. 기업이 환경·정치·경제 등의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일으키려는 움직임.
공익 캠페인과 공익 연계 캠페인은 달라요. 브랜드가 핵심 소비자를 위해 목소리 내는 캠페인은 많아요. 예를 들면 하기스의 이른둥이 캠페인* 같은 거죠. 그런 건 공익 연계 캠페인이에요. 공익을 위한 일이긴 하지만, 결국은 마케팅의 확장된 버전이에요.
*하기스가 이른둥이를 위해 소형 사이즈 기저귀를 제공하는 캠페인. 이른둥이란 임신 37주 미만에 태어나거나, 2.5kg 이하로 태어난 신생아를 뜻한다.
“공익 캠페인은 국민들의 관점을 바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에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는 세계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순수한 공익 캠페인이죠.”
_전양숙 유한킴벌리 본부장
공익 캠페인은 세대를 이어주기도 합니다. 최근 신혼부부 나무심기의 한 신청자는 이런 사연을 보냈어요.
“91년 ‘신혼부부 나무심기’에 참여했던 부부입니다. 이제 제 딸이 결혼을 합니다. 나무를 심으며 제가 경험했던 시간을 딸아이도 가져보라고, 대신 신청합니다.”
2020년엔 1991년 ‘신혼부부 나무심기’의 참가자가 메일을 보냈습니다. 남편이 먼저 떠나고, 문득 그때 함께 심은 나무가 생각난 거예요. “그 나무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다”는 부인의 말에, 최찬순 부장은 경기 포천시의 산을 헤맸다고 해요. 깊은 숲을 헤매기를 반나절, 다행히 부부의 이름표가 남은 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해요. 신청자는 딸, 아들과 함께 나무를 찾아가 눈물을 흘렸대요.
진심은 오래 가는 잔향을 남긴다
유례없는 공익 캠페인. 하지만 유한킴벌리는 제품에 캠페인 슬로건을 크게 쓰지 않습니다. 제품 뒷면의 ‘사용 시 주의사항’ 밑에 작은 글씨로 써넣을 뿐이죠. 문국현 전 대표 때부터 이어졌던 철학이에요.
“항상 이야기하셨어요. ‘숲을 가꾸면서 회사를 내세우면 안 됩니다. 캠페인이 잘 되고, 그래서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 회사도 같이 잘 되는 겁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성과예요. 어떻게 하면 캠페인이 잘 될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지에만 주안점을 두시면 됩니다’ 하고요.”
_손승우 유한킴벌리 지속가능경영부문장
하지만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런 공익 캠페인이 과연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될까요?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캠페인 자체가 기업의 이미지가 됐다는 거예요.
제품 선호도 조사를 하면 기업 이미지의 힘이 느껴진다고 해요. A라는 제품이 유한킴벌리 제품인 걸 몰랐을 때와 유한킴벌리 제품인 걸 알았을 때, 선호도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아세요? 무려 27%p가 달라진다고 해요. 선호도가 50%였다면 77%로 뛰어오르는 거죠.
회사는 소비자들에게 물었어요. “유한킴벌리라는 기업 이미지가 제품을 살 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나요?”
81.8%의 소비자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Chapter 5.
반성 뒤 그린 다음 40년, “고맙숲니다”
2023년 4월. 서울 도심의 대형 전광판에 커다란 반성문이 걸렸습니다.
선명한 녹색 바탕에 굵은 검정 글씨. 제목은 단순했어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39주년 반성문’.
그 아래 반성문을 읽어볼까요.
“우리는 끔찍한 산불의 후유증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잘 알리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좀 더 소리내어 알리겠습니다.”
“대전 대덕구 추동리의 잣나무숲에 이제야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1987년 심은 우리의 3호숲. 우리가 심었지만, 제대로 가꾸지 못해 잃어버린 잣나무숲에게 사과합니다.”
반성문엔 ‘앞으로 더 잘 해내겠다’는 마음을 담으려 노력했대요. 40주년을 한해 앞두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더 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은 겁니다.
“내부에서 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영업은 오늘의 양식이다. 마케팅은 내일의 양식이다. PR은 미래의 양식을 구하는 일이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를 낮은 자세로 솔직하게 알리는 것이 가장 좋은 PR이라고 생각합니다.”
_최찬순 유한킴벌리 수석부장
유한킴벌리의 40주년 기념 캠페인 제목은 “고맙숲니다”예요. 한번 보고 말 사이면 감사 인사를 하지도 않겠죠. 유한킴벌리의 이 인사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해요.
“결코 우리 회사가 잘해서 40년을 이어온 게 아니거든요. 함께 해 준 시민과 시민단체, 정부 덕분에 캠페인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지난해의 반성문이 과거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감사는 현재의 마음이죠.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고민하기에 가장 좋은 키워드라고 생각했습니다.”
_전양숙 유한킴벌리 본부장
롱블랙 프렌즈 K
유한킴벌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 지오노의 동화 『나무를 심은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1913년, 한 청년이 알프스 고산지대 황무지에서 농부를 만납니다. 쉰다섯의 농부는 3년 동안 홀로 도토리 씨앗을 심고 있었어요.
30년이 흘러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간 청년은 놀라운 풍경을 목격합니다. 황무지는 물소리가 끊이지 않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을이 되어 있었어요. 유한킴벌리는 그 동화를 현실로 만들었어요.
봄입니다. 오늘은 동네 골목을 걷다가 나무를 유심히 살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숲을 만드는 마음을 생각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