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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도쿄 커피챗 : 일본으로 떠나는 감각 여행, 4인의 기획자를 만나다


롱블랙 프렌즈 B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가지각색입니다. 누군가는 현지에만 파는 음식을 먹기도, 또 다른 이는 지역의 랜드마크를 탐방하기도 하죠. 쇼핑 삼매경에 빠질 수도 있고요.

롱블랙은 조금 색다른 여행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한 구경이 아닌 ‘신선한 영감’을 주는 여행을요. 2024년 9월 5일, 108명의 롱블랙 피플과 함께 일본 도쿄로 떠났습니다. 

비행기에서의 <하늘 위 커피챗>부터 츠타야 서점에서의 <도쿄 인사이트 커피챗>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라이프스타일 기획자 4인도 함께 했습니다. 이들과 보낸 이틀간의 여정을 노트로 전하려 합니다.


Chapter 1.
김명수 : 하늘 위에서 준비하는 여행의 감각

인천에서 도쿄 나리타 공항까지 약 두 시간 반. 108명을 태운 에어로케이 비행기가 이륙하고 40분이 지난 뒤, <하늘 위 커피챗>이 시작됐습니다. 

비행기가 순항 고도에 오르자, 김명수 매거진 <B> 대표가 맨 앞 좌석에서 일어났습니다. 먼저 승객들에게 인사했어요. 한 손엔 기내 방송용 마이크를 쥐고 있었죠. 도쿄와 인연*이 깊은 그는, 그 자리에서 도쿄를 새롭게 바라볼 방법에 대해 들려줬습니다.
*김명수 대표는 매거진 <B>의 모기업인 JOH에서 진행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도쿄에 수십 차례 다녀왔다. 사운즈 한남과 스틸북스, 광화문 디타워 같은 프로젝트를 위한 단서를 모았다.

김 대표는 말합니다. 도쿄는 동네마다 라이프스타일이 모두 다르다고요. 그래서 프로젝트 성격에 맞는 지역을 찾아가 영감을 얻었죠. 예컨대 ‘광화문 디타워’를 기획할 땐, 도쿄역 주변 마루노우치丸の内 일대를 둘러봤어요. 오피스 빌딩이 가득한 일대에 패션 편집샵 빔즈BEAMS, 이솝Aesop처럼 감도 높은 브랜드가 입점한 상업 시설이 많았거든요.

“광화문 디타워의 특징은 ‘오피스 상가가 백화점 같다’는 겁니다. 과거 광화문의 회사 빌딩엔 상업 시설이 지하에 있어 매력이 없었죠. 1층은 로비로 사용됐고요. 저는 건물주와 가게 주인, 방문객 모두에게 좋은 공간을 드리고 싶었어요. 마루노우치 지역의 오피스 상가를 보며 단서를 얻었죠.”
_(이하) 김명수 매거진 <B> 대표

꼭 동네 전체를 들여다봐야 하는 건 아닙니다. 김 대표는 제안해요. 시선을 살짝 비틀면, 우연히 들른 선물가게나 식당에서도 ‘발견’을 할 수 있다고요. 세 가지 방법을 제안했어요.

에어로케이 비행기가 순항 고도에 접어들자, 김명수 매거진 <B> 대표가 일어나 롱블랙 피플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공간 기획 및 개발을 위해 도쿄에 방문한 적이 있는 그는, 도쿄를 색다르게 여행할 세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에어로케이

① 경계면을 살피자

여행 중 만난 장소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다면?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김 대표는 ‘좋은 이유’를 찾아보자고 말합니다. 여기에 보통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경계면’이 숨어있다고 하죠. 

“몰딩molding이라는 인테리어 용어 들어보셨나요? 면과 면이 만나는 경계를 처리하는 방식을 말하죠. 어떤 공간이 좋아 보일 땐 이런 경계면을 세심히 만든 경우가 많아요.”

그는 제안합니다. “여행지에서도 면과 면이 만나는 순간을 유심히 바라보자”고.

“도쿄 메구로의 톤키とんき라는 돈카츠집에 간 적이 있어요. 주방의 직원이 요리하는 과정을 극장처럼 보여주는 곳이죠. 주방을 막거나 반만 열어둘 수 있었을 텐데, 이걸 열었습니다. 주방과 고객이 만나는 경계면인 테이블과 주방을 마치 관람석과 무대처럼 해석했다고 봤어요.”

도쿄 메구로에 위치한 돈카츠 가게 톤키. 손님과 직원 사이의 거리를 좁혀, 주방에서의 모든 요리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톤키

② 한 사람의 일본인을 찾아보자 

도쿄에서 만나는 브랜드나 장소에서, ‘한 사람의 일본인’을 찾고 이야길 들어보기. 김 대표가 제안하는 두 번째 방법입니다. 김 대표는 니시하라의 패들러스 커피Paddlers Coffee를 예로 들었습니다. 벽과 바닥을 따뜻한 채도의 원목으로 가득 채운 공간이에요. 

김 대표는 궁금했어요. ‘누가 카페를 만들었을까?’ 웹사이트를 통해 창업자의 이야기를 알게 됐죠. 미국 포틀랜드에서 경험한 커피 문화를, 고향에 전하고 싶은 청년이 세운 카페였어요. 곳곳에 포틀랜드에서의 기억을 심어뒀죠. 50년 넘은 벚나무*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것도 그래서예요.
*미국 포틀랜드엔 나무가 유독 많아, 나무 가공이 활발한 도시였다. 잘려나간 통나무가 수두룩해 그루터기 마을Stump Town이라 불리기도 했다. 

“창업자 마츠시마 다이스케松島大介さ는 어릴 적 미국 포틀랜드에서 유학하던 청년이었어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난 뒤 일본에 돌아와 사람들을 도왔죠. 그러다 카페를 차렸어요. 자신이 포틀랜드에서 경험했던 커피 문화를 도쿄에 옮겨왔죠.”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패들러스 커피. 벽과 바닥이 원목으로 가득한 공간은, 나무가 많은 포틀랜드에서 영감을 받아 꾸몄다. ⓒ패들러스커피

③ 웹사이트에 접속해 보자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일본어 웹사이트에 접속하자”고 제안합니다. 조금 싱겁다고요? 김 대표는 말해요.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면 막연했던 일본 브랜드가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요.

“영어 사이트가 아닌 브랜드의 공식 일본어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저널과 칼럼을 두고 꼼꼼히 기록한 곳이 많아요. 누가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했는지, 어떤 고민을 해왔는지를요. 언어의 장벽으로 막혀있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더 구체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김명수 대표는 일본어로 된 웹사이트를 한국어로 자동 번역해 살펴볼 것을 제안했다. 일본은 저널이나 블로그 등에 브랜드나 인물에 대한 이야길 꼼꼼히 기록한 곳이 많다고 덧붙였다. 사진은 도쿄 오모테산도의 채식카페 브라운라이스 홈페이지. 채식의 가치부터 브라운라이스의 역사, 채식 즐기는 방법 등을 자세히 써뒀다. ⓒ김명수

Chapter 2.
호소다 다카히로 : 관점을 뒤흔드는 질문법

도쿄에 도착한 롱블랙 피플. 낮에는 각자만의 여행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저녁 일곱 시, 롯폰기의 츠타야 쉐어라운지에 다시 모였죠. <도쿄 인사이트 커피챗>의 첫 연사, 호소다 다카히로細田高広와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광고회사 TBWA 하쿠호도에서 CCO*로 일하는 19년 차 광고인입니다.
*Chief Creative Officer・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롱블랙은 지난 3월 ‘컨셉수업’ 노트로 호소다를 만났습니다. 도쿄에서 그를 다시 만난 이유가 있어요. 일상을 환기하려고 나선 롱블랙 피플에게, ‘생각의 환기’까지 제안하고 싶었거든요. 

호소다는 고정관념을 비틀어 ‘전혀 다른 아이디어’를 내기로 유명한 광고인이에요. 그가 제안하는 ‘관점을 뒤흔드는 질문법’이 궁금했습니다. 

연단에 오른 호소다, 그는 청중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에서의 양초 판매량은 늘었을까요, 줄었을까요?”

대부분 ‘줄었다’는 쪽에 손을 들었어요. 답은 반대였습니다. 해마다 꾸준히 느는 중이었죠. 이유가 뭘까요? 불을 밝히려면 양초 대신 전등을 켜는 게 당연한 시대인데 말이에요.

“지금의 양초는 빛을 밝히는 용도가 아닌, ‘어둠을 즐기게 돕는’ 역할로 바뀌었어요. 보통 ‘혁신’이라 하면, 항상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시장이 커지는 계기는 대부분 ‘대상의 의미가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_(이하) 호소다 다카히로 TBWA 하쿠호도 CCO

다른 제품과 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의미부여하는가’에 따라 운명이 바뀌죠. 그래서 호소다는 말해요. “뛰어난 질문이 세상을 바꿀 단초가 된다”고. 그는 MP3를 예로 들었습니다.

“‘5GB MP3 플레이어’를 만들겠단 사람과, ‘1000곡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기계’를 만들겠단 사람의 차이가 뭘까요? 바로 ‘질문’이 다르단 겁니다. ‘이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엔 전자가, ‘이게 고객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라는 질문엔 후자가 나올 테죠.”

1000곡을 주머니에 넣는 기계는, 다름 아닌 스티브 잡스가 제안한 아이팟iPod의 최초 컨셉이었어요. 이처럼 ‘제품을 쓸 사람의 관점’에서 출발하는 질문이 ‘선택받는 제품’을 만든다고 호소다는 말합니다.

도쿄 인사이트 커피챗의 첫 세션에 참여한 호소다 다카히로 TBWA 하쿠호도 CCO. 그는 좋은 컨셉을 도출하기 위한 ‘좋은 질문’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어로케이

리프레이밍 : 질문 하나에 오래 갇혀있지 마라

그럼 어떻게 하면 ‘관점을 뒤흔드는 질문’을 꺼낼 수 있을까요? 호소다는 “질문을 수시로 바꾸라”고 말합니다. 틀을 부지런히 갈아끼워야 신선한 답이 나올 테니까요. 이를 ‘리프레이밍reframing’이라 부르죠.

“우린 질문에 자주 갇히는 존재입니다. 질문도 하나의 ‘프레임frame’이니까요. 프레임을 한 번 씌우면 같은 범위 안에서 답할 수밖에 없어요. 질문을 바꿔야 시점이 바뀝니다. 긍정적인 걸 부정적으로, 물리적인 걸 심리적으로, 명사를 동사로, 부분을 전체로 바꿔보는 거예요.”

호소다는 일본 신칸센의 청소대행사 ‘텟세이TESSEI’를 예로 들었습니다. 직원 10명이 단 7분 만에 전철 한 대를 모두 청소해야 하는 극한 직업이죠. 

하지만 ‘청소원’이라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은 차별적인 시선을 보냈어요. “공부 안 하면 저런 일 한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죠. 때문에 이직률이 점점 높아졌고요.

그러던 2005년, 텟세이의 창조부장에 취임한 야베 데루오가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우리가 뭐 하는 회사인가?” 대신 “우린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줄까?”라는 질문을 통해, 기업의 역할을 재정의했거든요. ‘청소 회사’에서 ‘환대하는 회사’로요.

“질문 하나로 텟세이는 180도 바뀌었어요.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 유니폼에서 한눈에 보이는 붉은색 유니폼으로, ‘고객과 대화 금지’라는 조항을 ‘고객과 대화가 1순위’로 바꿨죠. 그러자 직원들의 근무 시간에 활기가 돌았고, 사람들은 텟세이를 ‘쾌적한 철도 경험을 위해 꼭 필요한 회사’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호소다 다카히로는 ‘질문’을 바꿔 부활에 성공한 사례로 동일본 신칸센 청소회사 텟세이를 언급했다. ⓒ텟세이

Chapter 3.
스기우라 케이타 : ‘좋은 기분’을 위한 41년 실험

호소다 다카히로처럼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변화한 기업도 있습니다.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그룹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이하 CCC)’이에요. 일본의 생활 제안형 서점 츠타야부터, 1억5400만 명이 쓰는 포인트 서비스인 V포인트를 운영하고 있죠.

“우린 항상 시대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려 합니다. 지금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늘 찾으려 하죠.”
_(이하) 스기우라 케이타 CCC그룹 CSO・CCO

커피챗의 두 번째 연사, 스기우라 케이타杉浦 敬太가 말했습니다. 그는 CCC그룹의 세일즈와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고 있어요. 1997년 CCC에 입사해, 27년간 츠타야 서점과 V포인트의 사업 확장을 주도했죠. 

도쿄 인사이트 커피챗 두 번째 세션의 연사로 참여한 스기우라 케이타 CCC CSO・CCO(오른쪽은 이승민 통역가). 41년 동안 시대 변화에 발맞춰 온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어로케이

CCC는 41년간 시대 요구에 따라 변해왔어요. 1983년 CD・DVD 렌탈 사업으로 시작해 서점, 가전 매장, 공유 라운지까지 열었죠. 당대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한 환경’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츠타야의 변화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들은 미래 서점의 가치를 늘 스스로 물었습니다. 그러다 찾은 답이 ‘좋은 생활을 제안하는 곳’입니다. ‘물건 중심의 유통업’에서 바뀌어야 한다고 봤죠. 

계기는 2007년, 스기우라가 CCC 창업자 마스다 무네아키增田 宗昭와 함께 뉴욕과 LA를 찾았을 때입니다. 대형 서점 체인은 전부 쇠락하는데, 동네 작은 서점엔 사람들이 모여있었죠.

“인터넷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시대에, 그걸로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오프라인에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모이는 곳,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책과 시간을 보낼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만들었죠.”

그렇게 완성한 게 2011년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사이트입니다. 서점뿐 아니라 레스토랑과 카페, 반려동물용품 가게 같은 ‘아늑한 공간’으로 가득한 이유죠.

“츠타야는 서점이면서 카페이기도, 사무실이기도, 집이기도 합니다. 온라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아늑함’에 특히 신경 쓰죠. 조명부터 빛, 음악, 소리, 향기 등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2019년 CCC가 시작한 ‘쉐어라운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 약 30곳을 둔 쉐어라운지는, 현대인이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포착해 만들었어요.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Daniel Pink의 책 『프리 에이전트free agent』*에서 영향을 받았죠.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대중화한 개념. 2001년 그의 저서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를 통해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간, 원하는 조건으로 일하는 새로운 노동자상을 제안했다.

“어떤 비즈니스든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서비스를 제안할 수 없다면, 아무리 잘해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쉐어라운지도 마찬가지예요. 프리랜서, 원격근무 등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진행되는 수도권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요. 반면 지방 도시의 쉐어라운지는 ‘카페’로 쓰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죠.”

물론 “렌탈은 사양산업”, “서점은 돈이 안 된다”는 와중에도 CCC는 41년간 살아남았어요. 

중요한 건 새로운 비즈니스를 끊임없이 찾는 집념이겠죠. CCC가 사람들에게 ‘좋은 기분’을 주기 위해 부지런히 도전하는 것처럼요.

CCC는 최근 쉐어라운지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자유로운 근무를 추구하는 사람이 늘면서, 이들이 오랫동안 일할 공간을 제공하려 한다. ⓒCCC

Chapter 4.
조 나가사카 : 이대로도 충분한 건축

둘째 날 저녁, 도쿄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쉐어라운지에서 마지막 커피챗이 열렸습니다. 조 나가사카Jo Nagasaka 스키마타 아키텍츠Schemata Architects 대표와 함께 했어요. 

그는 ‘뺄셈으로 디자인하는 건축가’로 유명합니다. 폐가로부터 나온 자재를 활용해 보수한 이솝 아오야마점, 전통가옥을 그대로 활용한 르라보 교토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계했어요. 한국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블루보틀 성수점과 삼청점,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죠.

도시의 모든 것이 ‘포화 상태’인 지금, 조 나가사카는 도쿄와 서울에 ‘개축改築 개발’이라는 건축 해법을 제안합니다. 지역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싶은 브랜드들이 앞다퉈 그를 찾는 이유예요.

“1999년대엔 ‘낡은 건물은 필요 없으니 부수고 새로 짓자’는 게 표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이것만으로도 좋지 않은가,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은가’라고 줄곧 생각했죠.”
_(이하)조 나가사카 스키마타 아키텍츠 대표

그가 덜어냄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건 2008년, 10년 차 건축가가 됐을 때의 일입니다. 신주쿠 도심에서 50분가량 떨어진 지역의 낡은 맨션을 개보수하는 프로젝트였죠.

“방 한 채에 100만 엔(약 1000만원)이라는 저렴한 설계비 덕에, 큰돈을 들이지 않고 개보수를 할 수 있었어요. 우선 해체 도구로 벽과 바닥을 허물었죠. 그러자 탁 트인 공간이 나왔습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이거 나쁘지 않은데?’”

불필요한 벽을 허물자 개방감이 생겼고, 이웃주민들은 그 공간에 모여 이벤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로 조 나가사카는 자신만의 건축 스타일을 찾았고, 스스로 자부하는 ‘출세작’이 됐죠.

도쿄 인사이트 커피챗 2일차, 츠타야 다이칸야마 티사이트의 쉐어라운지에서 열린 조 나가사카 세션. (왼쪽부터)사회를 맡은 김명수 매거진 <B> 대표, 조 나가사카, 이승민 통역가가 무대에 올랐다. ⓒ롱블랙

‘건축가의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는다

동시에 조 나가사카는 강조했습니다. 공간을 개발할 때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는다고요. 

그는 건축을 할 때 건물과 지역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연결할지, 건물 주변에 사는 사람을 어떻게 보호할지까지 고민합니다.

“건물을 통해 ‘이렇게 보여주면 멋있겠지’하는 얼굴 표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공간 안팎에 머물며, 쓰임을 서서히 알게 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그는 2019년 ‘블루보틀 성수점’을 설계할 때를 떠올렸습니다. 블루보틀의 첫 한국 매장이자, 오픈 첫날 1000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릴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곳이죠. 건물은 ‘성수동답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1970년 성수동이 공업지대로 활약한 시기,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공업 시설을 연상케 했거든요.

“의뢰인이 ‘붉은 벽돌’을 써보자고 제안하더군요. 성동구에선 붉은 벽돌로 건물을 지으면 지원금이 나오는 제도가 있다면서요. 사실 썩 마음에 드는 재료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왕 벽돌을 쓰는 김에 ‘사랑에 빠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실내·외 모두 붉은 벽돌을 썼죠.”

블루보틀 성수점은 공업 지대였던 성수의 느낌을 온전히 품었습니다.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이어지는 실내 공간은 시멘트와 쇠 파이프를 그대로 노출했죠. 크게 힘들이지 않으면서,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거예요.

“많은 건축가가 재료나 형태로 자기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말하는데, 전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반대로 공간을 쓸 사람과 이야기 나누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죠. 들어야만 알게 되는 정보가 있고, 거기서 ‘필요한 건축물’의 힌트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조 나가사카는 ‘나’를 파고드는 대신 ‘바깥과 소통하라’고 제안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만든 기획은 세상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가급적 바깥에 나가 눈앞에 보이는 ‘새로운 정보’를 진지하게 마주하라고요. 굳이 세상에 없던 뭔가를 창조하지 않아도 됩니다. 창작의 힌트는 항상 내 주변에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조 나가사카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블루보틀 성수, 삼청점부터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 등을 작업했다. 사진은 성수동의 분위기에 맞는 건물을 지었다고 평가받는 블루보틀 성수점. ⓒ스키마타아키텍츠

Chapter 5.
마치며 : 변화와 멈춤 사이, 재충전의 기회를 얻다

도쿄 커피챗에서 만난 네 명의 기획자는 입을 모아 이야기했습니다. “무언가 배우려는 롱블랙 피플의 의지가 이토록 강한 줄 몰랐다”고. 모든 세션의 Q&A 때마다 수십 개의 질문이 쏟아졌거든요. 

배움의 원천은 ‘변화하려는 의지’가 아닐까, 롱블랙은 생각했습니다. 더 잘하고 싶고, 더 새로워지고 싶은 롱블랙 피플의 열정을 연사들도 읽은 듯했죠. 

조 나가사카는 ‘변화’를 좋아하는 한국에 늘 배운다며, 최근 인상 깊게 본 건축물을 떠올렸습니다. 서울 성수동의 탬버린즈 플래그십 스토어였어요. 콘크리트 기둥만 남겨둔 3층짜리 골조 건물로 화제였죠.

“한창 공사 중이던 탬버린즈 건물을 본 적이 있어요. 콘크리트 기둥만 선 모습이 멋있더군요. 일본이었다면 빈 공간을 벽으로 채웠을 텐데, 전 내심 ‘그대로 비워두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결과물이) 실제로 비워져 있어 놀랐습니다. 질투심도 생겼고요.”
_조 나가사카 스키마타 아키텍츠 대표

반대로, 쏟아지는 변화에 묻혀 사라지는 것들도 많습니다. 스기우라 케이타 총괄은 서울의 책방을 여행하던 기억을 떠올렸어요.

“멋진 독립서점이 한국에도 정말 많은데요. 관광 가이드북을 보고 찾아가면, 대부분 없어져 있더라고요. 가게의 회전이 굉장히 빠른 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_스기우라 케이타 CCC그룹 CSO・CCO

스기우라는 덧붙였어요. 변화를 좇는 일도 좋지만, 잠시 멈춰서 빛바랜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있다고요. 질문을 바꿔보는 겁니다. “책방을 없애는 대신, 재밌는 것으로 채우면 어떨까?”

“일본 역시 독립서점은 꾸준히 줄고 있어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저희는 책방을 없애기보다 가전 매장이나 공유 공간을 녹이며 ‘책방의 모습’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_스기우라 케이타 CCC그룹 CSO・CCO

숨 가쁘게 달리던 나를 잠시 멈춰 세우고, ‘다른 사람은 삶을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라며 질문을 바꿔보는 일. 어쩌면 롱블랙 피플이 도쿄로 떠나온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도쿄 인사이트 커피챗 현장에서 틈틈이 메모 중인 롱블랙 피플. 마케터부터 디자이너, 서점 대표, 건설회사 직원, 공간 기획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도쿄에 날아왔다. ⓒ에어로케이


롱블랙 프렌즈 B

도쿄 커피챗의 열기는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세션이 끝난 뒤에도 밤 10시까지 롱블랙 피플은 자리를 지켰어요. “어떻게 오게됐냐”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조용히 츠타야의 서가대를 둘러보는 사람들,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라운지를 채웠습니다. 

밝은 표정의 롱블랙 피플을 보며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자리를 더 많이, 더 자주 만들어야겠다고요.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이들이 에너지를 나누는 것만큼, 뜻깊은 경험은 없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의 여운을 아래 영상에 담았습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롱블랙 노트로 잠시 여행을 떠나는 경험을 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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