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콘텐츠가 궁금하신가요?
전체 노트

iF 디자인 어워드 : 1만1000개 출품작을 전부 피드백하는 시상식이 일하는 법

이 노트는 iF 디자인 어워드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브랜디드 콘텐츠, 위드롱블랙을 더 알아보세요.

자세히 보기


롱블랙 프렌즈 B 

우린 시상식 보는 걸 좋아합니다. 오스카와 그래미, 백상예술대상, 골든디스크까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이들의 소감에 울고 웃죠. 

이유가 뭘까요? 저는 시상식이 누군가의 노력을 ‘인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필요하다고도 생각해요. 더 노력해야겠다는 동기를 주니까요.

디자인 분야에도 그런 시상식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iF 디자인 어워드예요. 레드닷Red dot, 아이디어IDEA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라 불립니다. 올해는 131명의 심사위원이 66개국 1만1000여 개의 출품작을 심사했습니다. 그중에서 2211팀의 수상작을 가렸죠. 

인상적인 건, 이 시상식이 1953년부터 72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디자인을 심사할 자격을 지켜온 걸까요. 사람들은 왜 이들의 결정을 신뢰하는 걸까요.



iF 디자인 어워드 우베 크레머링 회장·프랭크 지렌버그 총괄 디렉터

호기심을 파고들 기회를, iF 디자인 어워드가 앞서 제안했습니다. 2025년 4월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시상식에 롱블랙을 초대했죠.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 어워드를 책임지는 두 사람을 각각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먼저 우베 크레머링Uwe Cremering 회장. 독일 음향기기 회사 젠하이저Sennheiser에서 20년간 마케팅 전문가로 일하다 2021년 iF에 합류했습니다. 심사 구조를 설계하는 프랭크 지렌버그Frank Zierenberg 총괄도 만났어요. 2003년부터 무려 24년째 iF에 몸담은 인물이었죠.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걸 iF가 왜, 어떻게 판단하는가. 단순하고 삐딱한 질문에, 둘은 iF가 수십 년간 쌓은 배움으로 답했습니다. 


Chapter 1.
시작 : 디자인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iF 디자인 어워드는 독일의 도시 하노버Hannover*의 경제인들이 던진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독일의 북부 지방 니더작센에 위치한 도시. 제조업의 중심지로 불려 자동차, 기계, 사무용품을 생산해왔다.

“디자인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그 질문이 실험으로 이어진 건 1953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8년밖에 되지 않은 때입니다. 하노버도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무너진 공장과 경제를 복원할 방법을 찾고 있었죠.

이때 하노버 무역 박람회Messe Hannover를 준비하던 지역 경제인들이 한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경제를 복원하는 건 의미가 없다, 더 차별화한 디자인으로, 무너진 독일 제품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마음을 모아 시작한 게 비영리 재단인 iF입니다. iF라는 이름은 산업industry과 포럼forum의 약자예요. 디자인으로 산업을 바꾼 사람에게 상을 주고, 독려하는 자리를 만들자는 거죠.

iF 디자인 어워드는 1953년 처음 시작한 뒤 72년째 연례 시상식을 이어오고 있다. 2025년 올해엔 베를린의 3층 높이 규모 대극장인 프리드리히슈타트 팔라스트에서 열렸다. ⒸiF

시대를 읽는 시상식

첫 시상식은 다음 해인 1954년, 당시 세계 최대 산업 기술 박람회였던 하노버 박람회의 행사장에서 열렸습니다. ‘실용적이면서 아름다운 제품을 찾는다’는 아젠다를 내걸었죠. 

1회의 대표 수상작은 키친웨어 브랜드 WMF의 후추·소금통. 모래시계를 닮은 허리 잘록한 통이, 보기 좋으면서 손에 쥐기에도 편하다는 이유였어요.

그 뒤에도 iF는 시대마다 좋은 디자인의 기준을 계속해서 바꿔나갔어요. 1970년대엔 디터 람스Dieter Rams나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에게 상*을 주며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을, 1980년대엔 애플Apple이나 소니Sony를 조명하며 ‘브랜드 정체성 디자인’에 주목했어요.
*두 디자이너 모두 기능주의적인 디자인 철학을 표방했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실용과 목적에 집중한다는 것.

2000년대 들어선 누구에게나 열린 ‘보편적인 디자인’을 당대 주제로 삼았죠. 2020년대인 지금은 ‘지속가능성’을 기준이자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한 디자인인가.’ iF는 해마다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생각해요.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니, 참가자에게도 iF의 붉은 로고가 조금씩 각인되기 시작했죠. 소비자와 업계 모두에게 ‘좋은 디자인을 가리는 마크’로요.”
_우베 크레머링 iF 디자인 어워드 회장

하지만 이것만으로 시상식이 살아남았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심사 과정이겠죠. 납득할 만한 사람이, 누구나 인정할 만한 기준을 갖고 수상작을 골라야 하니까요. 

iF 디자인 어워드 첫 회의 수상자 빌헬름 바겐펠트. 바우하우스로부터 디자인을 배운 뒤 식기부터 식탁등 같은 일상 도구에 쓰기 좋으면서 아름다운 디자인을 입혔다. ⒸiF

Chapter 2.
원칙 : 시상식의 권위를 지키는 두 가지

시상식의 권위는 오직 ‘공정성’에서 나옵니다. 당연한 걸 지키지 못할 때, 시상식은 단번에 ‘트로피 장사한다’, ‘권위 비즈니스’라는 의심과 비아냥에 얼룩져 버리죠. 

“iF는 두 가지 가치를 무조건 가져갑니다. 바로 중립성과 객관성이죠. 쉽게 말해, 오로지 디자인의 ‘품질quality’만 보는 걸 말해요. 심사위원 각자의 이해관계나 취향을 떠나서요.”
_프랭크 지렌버그 iF 디자인 어워드 총괄 디렉터

원칙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심사위원의 부정을 어떻게 감시할까요? 프랭크 지렌버그 디렉터는 이를 원천 차단하는 두 가지 방법을 말합니다.


① 팔로워 심사위원은 뽑지 않는다

우선 심사위원을 선정할 때 iF만의 기준이 있습니다. 심사 분야에 오랜 경력과 전문성이 있는가는 기본입니다. 

더 중요한 건 ‘심사위원이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인가’예요. 한 사람의 의견을 순순히 따라가거나, 자기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은 뽑지 않죠.

“모든 제품이 좋거나 싫다는 사람은 심사위원으로 모실 수 없어요. 제품마다 뚜렷한 장점과 한계를 말할 수 있어야 하죠. 필요하면 의견을 부딪쳐가면서요. 이들이 진심을 다할 때 당선작도 의미가 있죠.”
_우베 크레머링 iF 디자인 어워드 회장

독일 뮌헨에 위치한 iF 디자인 어워드 응모작 심사 현장. 100여 명이 넘는 심사위원이 약 80개 분야에 투입해 작품을 심사한다. ⒸiF

② 고인물 심사위원은 두지 않는다 

심사위원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1차 온라인 예선을 거쳐 최종심에 오른 제품은, 단 세 명의 심사위원이 평가해요. 이때 중요한 건 세 명의 출신 국가와 심사 이력이 각각 달라야 한단 거죠. 

가령 올해 어워드의 ‘패키징Packaging’ 부문 심사를 맡은 디자인 스튜디오 CFC의 전채리 대표는, 영국 출신 디자인 디렉터 데이브 브라운Dave Brown, 대만 출신 엔비디아 디자이너 트레이시 린Tracy Lin과 팀을 맺었죠. 

“가능한 다양한 시각으로 평가하는 게 중요합니다. 제품 하나를 두고 유럽과 미주, 아시아 출신 심사위원이 모이는 식으로요. 독일 사람만 심사하면 독일식 문화에 익숙한 결과물만 나올 테니까요.”
_프랭크 지렌버그 iF 디자인 어워드 총괄 디렉터

셋을 구성하는 ‘황금 비율’도 있습니다. 새로 합류한 심사위원, 최근 참여한 심사위원, 휴식 후 복귀한 심사위원으로 구성하죠. 

“매년 심사위원단의 25~30%를 새 얼굴로 교체합니다. 심사 팀 셋 중 한 명은 새 멤버를 넣죠. 항상 같은 심사위원이 참여하면, 의견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으니까요. 한 명이 단독으로 위원단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없도록 구성하는 게 중요하죠.”
_우베 크레머링 iF 디자인 어워드 회장

결론을 모으기 위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iF 심사위원단. ⒸiF

Chapter 3.
판단 : 세상에 굳이 필요한 제품인가? 

그럼 심사위원은 어떤 제품을 당선작으로 낙점할까요? iF는 핵심 평가 항목으로 크게 5가지를 둡니다. 아이디어, 형태, 기능, 차별화, 지속가능성.  

쉽게 말해 목적에 맞고, 모양의 완성도가 높고, 쓰기 좋고, 새롭고, 환경과 사회에 책임도 질 줄 아는 디자인을 고른다는 거예요. 각각 20%의 비율로 점수를 반영하죠.

프랭크 디렉터는 이 기준을 더 쉽게 풀어 설명합니다. 결국 “쓰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느냐, 아니냐가 당락을 가른다”는 거죠.

“모바일 폰을 심사해야 한다면, 질문을 시작합니다. 왜 이걸 필요로 하는가. 왜 사야 하는가.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다른 제품과 뭐가 다른가. 왜 갖고 있던 모바일 폰을 포기해야 하는가.

질문을 쏟아붓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저 새롭기만 한 것은 재료의 낭비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모든 디자인엔 이유가 있어야 하죠.”
_프랭크 지렌버그 iF 디자인 어워드 총괄 디렉터

심사 기준에 맞는 응모작, 낫싱 2a 플러스 커뮤니티 에디션Nothing 2a+ Community Edition*이 대표적입니다. 이번 2025년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금상을 탄 스마트폰이죠. 투명한 몸체에 형광빛을 내는 연초록 띠가 전기 회로를 감싸듯 흐릅니다.
*창업자 칼 페이Carl Pei가 런던에서 시작한 디지털 기기 스타트업 낫싱이 출시했다.

딱 1000대만 내놓은 한정판 모델은, 모든 요소에 ‘팬의 의견*’만 반영한 게 특징입니다. 야광 뒷면, 배경화면, 포장지, 심지어 홍보 카피까지요. 스마트폰은 회사가 만드는 것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는 전에 없던 가능성을 보여준 거죠.
*분야별 공모전을 열고, 당선된 사람과 함께 제작에 참여했다. 

롱블랙과 인터뷰 중인 프랭크 지렌버그 총괄. 그는 심사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쓰는 사람의 이익에 부합하는가’라고 말한다. Ⓒ롱블랙

1만1000개 응모작을 위한 1만1000개의 PDF 피드백

까다로운 심사 때문일까요. iF 디자인 어워드 응모작의 70%가 심사 과정에서 탈락합니다. 이때 iF 측이 가장 중요히 여기는 건 ‘탈락 이유를 설득하는 것’이에요. 제품을 뽑지 않은 이유를, 최대한 자세히 알려주는 겁니다.

iF는 1만1000개의 응모작에, 1만1000여 개의 개별 피드백을 일일이 PDF로 보냅니다. 탈락한 이유와 선정한 이유, 심사 과정까지요. 더 자세히 듣고 싶다는 응모자에겐, iF가 해당 심사위원에게 구체적인 이유를 듣고 전달해 주죠.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우베 회장은 “디자인은 남이 아닌 나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심사위원은 단순히 순위를 매기려 심사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참가자에게 ‘노력하면 좋을 부분’을 이야기해 주죠. 지금보다 내년의 스스로가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요. 

자세히 설명할수록 디자이너는 힘을 얻습니다. 만약 한 응모자가 차별화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30점을 받았다면, 본인의 개성을 더 키우려 하겠죠. 반면 지속가능성이 70점이라면? 여기에 들인 노력만큼은 가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고요.”
_우베 크레머링 iF 디자인 어워드 회장

iF 디자인 어워드는 모든 참가자가 응모를 통해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얻고, 끝내 상을 따내 독일에 초대받길 바란다. 실제로 많은 참가자들이 작품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iF에 응모하곤 한다. ⒸiF

Chapter 4.
용기 : 탁월한 디자이너는 믿음으로 두 걸음 나아간다

“iF가 발견한 탁월한 디자이너는 무엇이 다르던가요?”

우베 크레머링 회장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습니다. “탁월한 이들은 모두 용기를 가졌습니다.”

“디자이너에게 용기는 매우 중요하다 못해, 없어선 안 될 자질입니다. 자기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걸 넘어,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을 믿으려 하죠. 그런 사람들은 결국 성공합니다. 

탁월한 사람들은 실패하면 너그러이 한 걸음 물러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나아갈 땐 두 걸음씩 전진하죠.”
_우베 크레머링 iF 디자인 어워드 회장

그가 용기를 강조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우베 회장은 “대부분의 조직이 여전히 디자인을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했어요. 그러니 자기 일만 하는 디자이너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단 거예요.

“디자이너의 업무 성과를 숫자로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판매량과 수익은 숫자로 증명되지만, 디자인은 그게 안 되죠. 그래서 조직에서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디자인의 가치를 누가 믿어야 할까요? 디자이너 자신입니다. 디자인이 가치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회사에서 매일 같이 설득하고 때론 싸워야 하죠. 이때 용기가 필요하고요.”
_우베 크레머링 iF 디자인 어워드 회장

롱블랙과 인터뷰 중인 우베 크레머링 회장. 그가 시상식에서 만난 디자이너는, 모두 자신의 일터에서 ‘용기’를 낸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부당한 처우나 시선, 남들이 정한 기준에 만족하지 않고 나아갔다는 것. Ⓒ롱블랙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대변인’으로 일한다 

프랭크 디렉터는 한발 더 나아갑니다. 탁월한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대변인’을 자처한다고 했어요. 즉, 사용자 편에 서서 그들의 문제를 풀어주려 한다는 거죠. 

“나쁜 경영인은 그저 팔기 위해 제품을 만듭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정확히 이와 반대돼야 해요. 내 제품을 쓰는 사람이 어떤 이로움을 얻을까 고민해야 하죠. 필요하면 내부 조직을 설득하고, 격려하고, 이끌면서요.”
_프랭크 지렌버그 iF 디자인 어워드 총괄 디렉터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겠다’는 디자인은, iF의 수상작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번 시상식에서 눈 여겨 본 건 우주 쓰레기 신호Space Trash Signs 프로젝트*였어요.
*우주·지상 정보 플랫폼 스타트업 프라이버티어 스페이스Privateer Space가 1년간 개발해 2024년 공개한 공식 사이트. 이 회사는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공동창업하기도 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우주 쓰레기 1억6000만 개를 ‘별자리’로 시각화한 웹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공개 일년 만에 누적 조회수 4억 회를 넘겼죠. 사이트에서 반짝이는 별의 수를 헤아리다보면, ‘쓰레기가 이렇게 많아?’ 하며 놀라게 됩니다. 

이 디자인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나 궁금하실 겁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바꿨어요. 사이트 공개 이후, 유럽우주국의 ‘우주 쓰레기 제로 선언Zero Debris Charter’에 동참한 기관이 20배 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를, 디자인이 풀어낸 거죠.

우주・지상 정보 플랫폼 프라이버티어 스페이스가 만든 스페이스 트래쉬 사인. 웹페이지, 모바일 기기로 우주 쓰레기를 구경할 수 있다. ⒸPrivateer Space

Chapter 5.
전망 : AI 시대는 디자이너를 더 찾을 것이다

iF가 72년째 시대의 디자인 흐름을 읽어왔다면, 2025년엔 무엇이 중요할까요.

마침 iF 디자인 어워드는 2024년부터 ‘디자인 트렌드 컨퍼런스*’를 열고 있었습니다. 시상뿐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읽을 자리를 해마다 마련하겠단 겁니다.
*iF 디자인 어워드 본 시상식 다음 날 개최한다. 

올해로 두 번째인 컨퍼런스 현장*엔, 이른 아침부터 500명의 디자이너와 테크 전문가, 사업가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무대에 나선 연사는 모두 네 명*이었죠.
*아이폰과 나이키의 3D 비주얼 광고를 연출한 셰인 그리핀, 챗지피티와 인스타그램의 모션을 디자인한 리자 에네바이스, 건축설계사무소 포스터앤파트너스의 마사 치카리 응용 연구 총괄, 컨설팅사 맥킨지앤컴퍼니의 유럽 디자인 총괄 파트너 테이 배너먼이 참여했다.

네 연사는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AI 시대에 디자이너는 사라지지 않는다, 되려 시대를 이끌 것이다.” 다시 말해, 디자이너에겐 지금이 ‘더 치고 나갈 기회’라는 겁니다. 

한 연사는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걸 자주 쓰게 할 디자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챗GPT 음성 입력의 모션을 디자인한 리자 에네바이스Liza Enebeis예요.

“우린 모션으로 브랜드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이건 갈수록 늘어나는 AI 서비스에도 필요한 작업이에요. (챗GPT의 음성 검색 화면을 보여주며) 사용자가 말할 때마다 물결처럼 움직이는 오브젝트는, 내가 챗GPT와 ‘대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AI를 도구 이상의 존재로 느끼게 해요.”
_리자 에네바이스 스튜디오 덤바 대표, 2025 iF 디자인 트렌드 컨퍼런스에서

맥킨지의 유럽 총괄 파트너 테이 배너먼Tey Bannerman은 디자이너의 역할을 가장 현실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말해요. 기술의 발전이 아무리 빨라도, 그걸 ‘사람이 믿고 쓰게’ 만드는 건 결국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AI는 혼자 성공하지 못합니다. 기술이 조직 안에 들어오려면, 기술을 굳이 써야 할 맥락과 신뢰가 필요해요. 이때 디자이너가 필요합니다. 디자이너는 복잡한 정보를 시각적, 물리적으로 해석하고 정리하니까요. 사람들에게 AI를 ‘공감 가능한 언어’로 번역해주죠.”
_테이 배너먼 맥킨지 유럽 디자인 총괄 파트너, 2025 iF 디자인 트렌드 컨퍼런스에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아직까진 AI보다 사람이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를 내놓기 유리하단 겁니다. 프랭크 디렉터는 헨리 포드Henry Ford를 예로 들었죠.

“만약 헨리 포드가 소비자에게 뭘 원하냐고 물었다면, 아마 ‘더 빠른 말이 끄는 마차’였을 겁니다. 하지만 포드는 과감히 자동차를 내놓았죠. 획기적인 발상은 데이터에 없는 곳에서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지금의 AI는 방대한 과거 데이터로 ‘가장 그럴듯한 답’을 내놓잖아요.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인 이유죠.”
_프랭크 지렌버그 iF 디자인 어워드 총괄 디렉터

iF 디자인 어워드 시상식 다음날, AXICA 빌딩에서 열린 디자인 트렌드 컨퍼런스. 2025년 올해로 2회를 맞이했다. ⓒiF

Chapter 6.
자부심 : 시상식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 

베를린에서의 여정을 마칠 무렵, 질문 하나가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iF 디자인 어워드는 세상에 왜 필요한가.

우베 크레머링 회장은 세 가지 존재 이유를 꼽습니다. 

첫째, 디자이너에게 자부심을 준다.
둘째, 덕분에 디자인의 힘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셋째, 그럼 우린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 디자인으로.

“디자인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작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의 힘을 인정한다면, 세계는 조금 더 나은 곳이 되겠죠. 모두가 문제를 해결할 도구를 가진 셈이니까요.”
_우베 크레머링 iF 디자인 어워드 회장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보다 “디자이너의 자부심”이라고 우베 회장은 말합니다. iF가 시상식 기념 축제인 디자인 어워드 나잇Design Award Night*을 화려하게 여는 것도 이런 이유예요. 어워드 수상자에게, 스스로를 마음껏 축하하고 자부심을 가질 계기를 주는 거죠.
*본 시상식 직후 같은 장소에서 연회가 열린다.

저도 축제 현장에 있었습니다. 웃음과 춤, 수다가 끊이질 않았죠. 3층 높이 대극장에 수상자 중 2000여 명이 모여 칵테일과 타파스, DJ 파티를 즐겼어요. 미국의 보행 보조기 스타트업 대표와 일본의 300년 공예 상점 대표가 서로 어깨동무하고 춤추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 웃고 즐길 수 있는 디자이너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에 매몰되거나, 비즈니스만 생각하는 디자이너는 웃을 수 없어요. 모든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성과가 있으면 마음껏 기뻐하고, 실패해도 웃어넘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일하는 모든 이에게 드리는 말이에요. 자신을 긍정하는 이들이 모여 살 만한 세상을 만든다는 믿음. 저는 그 믿음으로 매년 어워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_우베 크레머링 iF 디자인 어워드 회장

iF 디자인 어워드 시상식이 끝난 직후, 어워드 나잇을 즐기고 있는 수상자들. 마음껏 축하하고, 웃고, 떠드는 게 자신의 노고에 대한 직업인의 예의라고 우베 회장은 말한다. ⒸiF


롱블랙 프렌즈 B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내가 하는 이 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결과가 잘 안 나올 때, 아무도 안 알아줄 때 계속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시상식은 그럴 때 필요한 자리 같아요. 누군가 묵묵히 해온 일을, ‘사람들이 분명히 알아준다’는 걸 보여주니까요. 무대에 올라선 찰나의 순간이, 우릴 계속해서 걷게 할 테죠.

무엇보다 깊이 깨달은 건, 시상식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단 겁니다. 내 동료에게, 가족에게, 연인에게 “참 잘하고 있다”는 그 한마디가 서로를 살게 하잖아요. 격려하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지금 연락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다른 콘텐츠를 보러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