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C
저 요즘 늦덕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이번엔 또 무슨 아이돌이냐고요? 라이즈RIIZE 들어보셨어요? 모른다고요? 아니, 좀 자존심 상하지만 이러면 다들 알던데! “윤상 아들이 데뷔한 그 그룹.” 아니, 윤상은 알고 라이즈는 모르면 안 돼! 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라이즈가 얼마나 대단한 그룹인지 아세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무려 7년*만에 내놓은 보이그룹이에요! 얼마나 귀해!
*이전 보이그룹은 2016년 데뷔한 NCT.
저만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5월에 나온 정규 1집 <오디세이Odyssey>는 일주일 만에 200만 장 가까이 팔렸어요. 데뷔 싱글 <겟 어 기타Get A Guitar>, 미니 1집 <라이징RIIZING>에 이어 이번 앨범까지 무려 3연속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웠죠!
*100만 장 이상 판매.
이게 다가 아니에요. 데뷔곡 ‘겟 어 기타Get A Guitar’는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작년 말 스트리밍 수 1억 회를 돌파했어요. 같은 해(2023년)에 데뷔한 보이그룹 중 처음으로 세운 기록이죠.
라이즈의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요? 뭐랄까, 한없이 비현실적인데 한없이 현실적이에요. 한 명 한 명 이 세상에 없는 비주얼이거든요? 노래도 춤도 너무 완벽하고요. 그런데 또 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요. SNS에서는 어찌나 수줍고 소탈한지!
이렇게 라이즈에 빠져 사는 제게 L이 말했어요. “라이즈를 키운 팀을 직접 만나 취재할 수 있다면 갈래?”라고요. 엉엉, 당연하죠!
그래서 제가 서울숲 SM 사옥을 다녀왔다는 거 아니에요! 라이즈를 키운 SM ‘위저드 프로덕션WIZARD PRODUCTION’을 샅샅이 인터뷰하고 왔어요.
Chapter 1.
7년 만의 보이그룹, 콘셉트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선배’
떨리는 맘으로 만난 이상민 위저드 프로덕션 총괄 디렉터. 남색 볼캡에 하늘색 셔츠를 입은, 트렌디한 모습이었죠.
그는 ‘라이즈의 아버지’예요. 2023년 위저드 프로덕션의 총괄 디렉터가 됐고, 데뷔 멤버가 정해진 순간부터 라이즈를 맡았어요.
처음부터 아이돌 디렉터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매거진 에디터와 온라인 커머스 MD를 거치며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배웠대요. SM에 입사한 건 2014년. 커머스 신사업을 벌이다 2018년부터 아이돌 디렉팅에 발을 들였죠.
궁금해요. 아이돌 총괄 디렉터라니, 어떤 일을 할까요? 사실 정말 다양한 일을 하지만, 이 총괄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건 ‘콘셉트를 잡는 것’이래요.
어떤 세계관에 어떤 이미지를 갖춘 그룹이 탄생할지를 결정하는 거죠. 라이즈는 특별한 세계관도, 용어도 없어요. 청춘물에 나올 것 같은 잘생긴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노는 느낌이랄까요?
실제로 이 총괄이 기획한 라이즈의 콘셉트는 ‘현실 속 인플루언서’에 가까웠대요. 학창 시절, 학교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소문난 선배 같은 느낌이요. 이렇게 현실적인 콘셉트를 잡은 이유는 두 가지래요.
“다른 모든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아이돌 콘셉트 기획도 시대 흐름을 읽는 게 필수예요. ‘이 시대엔 어떤 콘셉트가 새롭게 보이지?’ 과거에 본 것 같은 콘셉트를 내밀면 안 되는 거죠. 대중에게 각인이 안 되거든요.
SM의 최근 그룹들이 강하게 설정된 콘셉트를 밀다 보니, 이번엔 철저히 반대로 가는 게 새로울 거라 생각했어요. 과하다 싶게 자연스러운 그룹을 만들기로 한 거죠.”
_이상민 위저드 프로덕션 총괄 디렉터
이런 설정이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 멤버 각자의 매력 덕분이기도 해요.
“멤버들이 가진 서사와 느낌이 흘러넘칠 정도로 매력적이었어요. 원빈은 ‘인간이야?’ 싶게 잘생겼는데 기타도 잘 쳐요. 앤톤은 뉴저지 1등 수영 선수 출신에 영어도 잘하는 귀공자 느낌이었죠.
쇼타로는 이미 일본에서 유명한 댄서였고, 소희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맑고 신비로운 소년미와 그에 걸맞은 목소리를 지녔어요. 성찬은 모델 같은 외모에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지녔고, 은석은 말 그대로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러니 생각했죠. ‘뭘 고민해? 이대로 가자.’”
_이상민 위저드 프로덕션 총괄 디렉터

Chapter 2.
A&R : 브레인스토밍부터 멤버 인터뷰까지, 앨범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그룹의 컨셉이 결정되면, 다음으로 중요한 건 뭘까요? 당연히 음악이에요!
“아이돌 그룹의 본질은 가수잖아요. 싱글이든 정규든, 앨범 자체의 경쟁력이 중요한 거죠.”
_정규재 위저드 프로덕션 A&R 책임
A&R팀은 바로 이 음악의 기획과 제작을 담당해요. 아티스트와 레퍼토리Artist and Repertoire. 그야말로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선보일 곡을 찾아다니고, 골라내고, 다듬어서 멋지게 완성하는 일을 하죠.
궁금해요. 아이돌 그룹의 정규 앨범, 얼마나 오래 준비할까요?
이번 <오디세이>는 지난해 7월부터 본격 준비에 들어갔대요. 이미 5000곡 가까운 노래를 들은 A&R 팀원 세 명이 한자리에 모였죠.
하지만 냅다 곡부터 고르는 게 아니에요. 앨범의 콘셉트를 잡는 게 먼저죠. 이들은 먼저 화이트보드를 꺼냈어요. 브레인스토밍을 했대요. 라이즈라는 그룹을 가장 잘 나타낼 키워드가 필요했대요.
“화이트보드 한가운데 ‘라이즈’를 적고, 생각나는 단어들을 그 주변에 적었죠. 멤버들을 한 명씩 만나서 각 1시간 넘게 인터뷰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하나의 키워드가 도출되지 않더라고요. 다들 하고 싶은 것도, 보여주고 싶은 것도 달랐거든요.
답은 멤버들이 공통으로 한 말에서 나왔습니다.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답은 하나구나. 원래 라이즈RIIZE의 뜻이 그거거든요. 라이즈 앤 리얼라이즈Rise and Realize. ‘성장하고 실현한다.’ 팀이 성장하고 실현하는 과정을 앨범에 그대로 담기로 했죠.”
_정규재 위저드 프로덕션 A&R 책임

<오디세이Odyssey>라는 앨범 제목도 그렇게 나왔어요. 라이즈는 데뷔 초부터 자신들의 콘셉트를 ‘리얼타임 오디세이Realtime Odyssey’라고 불렀거든요. 성장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겠다는 포부였죠.
앨범 컨셉이 정해지면 다음은 곡을 선정할 차례! 5000곡 중에서 도대체 어떻게 열 곡을 추려낼까요? 제가 취재한 과정은 이래요.
① 우선 A&R 팀원 각자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을 공유한다.
② 각 곡이 그룹의 매력을 어떤 각도에서 부각할 수 있을지 분석한다.
③ 최대한 다양한 각도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곡들을 뽑아 편성한다.
정규 앨범에선 3번이 특히 중요해요. 스트리밍 시대니 곡 하나 히트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노노! 케이팝K-POP 팬덤 시장에선 여전히 물리적 앨범 판매 비중이 절반*이 넘어요. 곡 하나가 아닌 전체 앨범의 완성도가 중요하죠. 또 하나의 앨범이 세계관을 단단히 잡아줘야 장기 팬덤이 형성되기도 하고요.
*2025년 1분기 기준 SM의 전체 음악 수익(67억여원) 중 60.4%가 물리 음반에서 나왔다.
“이번 앨범은 전체의 곡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되길 바랐어요. 전체 앨범을 관통하는 서사를 짜고, 그에 맞는 장르의 곡을 고르고 가사를 붙였죠.”
_정규재 위저드 프로덕션 A&R 책임
실제 앨범을 볼까요? 열 곡 전체가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연결돼 있어요. 긴장에 가득 찬 모험을 떠나는 마음과, 사랑과 성찰을 통해 완전한 자신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담겼죠. 앨범 전체를 들어 보니, 정말 흐름이 느껴지더라고요?
잔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첫 번째 트랙인 ‘오디세이Odyssey’를 지나, 두 번째 트랙인 ‘백 배드 백Bag Bad Back’부터는 분위기가 점점 고조돼요. 꿈을 위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마음을 강한 힙합으로 표현했죠.
하이라이트는 타이틀곡인 ‘플라이 업Fly Up’. 음악과 춤을 매개체로, 넓은 세상 속 여러 사람들과 편견이나 경계 없이 가까워지고 함께 즐기는 내용의 경쾌한 로큰롤이에요. 미국 드라마 「하이 스쿨 뮤지컬High School Musical」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분명 좋아할걸요?
트랙 중반을 넘어서면 분위기는 조금씩 잔잔해져요. 팬들에 대한 감사와 위로의 감정을 담은 발라드 ‘모든 하루의 끝The End of the Day’, 그리고 마지막 트랙이자 아웃트로인 웅장한 느낌의 ‘어나더 라이프Another Life’로 마무리되죠.

Chapter 3.
퍼포먼스 디렉팅 : 손짓 하나로 팬덤을 움직이는 법
음악이 완성되면 이제 퍼포먼스를 완성할 차례예요. 예전엔 안무팀이라고도 불렀어요. 하지만 지금은 댄스만 기획하지 않아요.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어떤 표정과 제스처, 에너지를 보여줄지를 전체적으로 제안하죠.
그래서일까요? 퍼포먼스 디렉터인 사지웅 선임은 연기 전공자예요. 연극과 뮤지컬부터 영화 연출까지 경험했죠.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Next Level’에선 퍼포먼스 뿐 아니라 카메라 워크까지 제안한 전문가예요.
퍼포먼스 디렉팅이 중요한 이유, 케이팝이 탄생 순간부터 글로벌 시장에 나가기 때문이래요.
“전 음악보다 춤이 더 직관적인 언어라고 생각해요. 가사나 장르는 처음에 낯설 수 있지만, 춤은 모두가 바로 즐기고 따라 할 수 있으니까요.”
_사지웅 퍼포먼스 디렉팅 LAB 선임
퍼포먼스 디렉터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뭘까요? 춤만 잘 추면 되는 게 아니래요. 곡을 해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죠. 그래서 음악 취향이 넓은 사람이 유리하다고요.
곡을 해석한다니, 어떤 걸까요? 타이틀곡 ‘플라이 업’을 놓고 설명을 부탁했어요.
“‘플라이 업’은 제목 그대로 상승, 비상, 확장의 이미지를 담고 있잖아요. 그래서 퍼포먼스도 점점 에너지가 올라가는 구조로 해석했어요.
초반엔 비교적 간단한 동선으로 정제된 리듬감을 살리고, 후반엔 무대를 큼지막하게 써서 확장감을 표현했어요. 쇼타로가 멤버들과 한 명씩 페어 안무를 추며 뮤지컬 같은 스토리를 상상하게 만들고, 이후에는 다 같이 달리고 점프하고 눕는 큰 동작으로 스케일을 느껴지게 했죠. 이처럼 해석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수많은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어요.
이렇게 전체 퍼포먼스의 구조, 그러니까 ‘뼈대’를 잡는 게 가장 핵심적인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퍼포먼스의 뼈대가 음악의 구조와 어우러져야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거든요.”
_사지웅 퍼포먼스 디렉팅 LAB 선임

다음으로 중요한 것, 눈을 사로잡는 디테일을 심어야 해요. 사실 안무의 모든 동작이 깜짝 놀랄 정도로 새롭긴 어려워요. 하지만 중간중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킬링 포인트’가 반드시 나와야 하죠.
아, 알겠어요! 케이팝에서 짧고 강렬하게 반복되는 멜로디를 훅hook이라고 부르잖아요. 퍼포먼스에도 이런 짧고 강렬한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거군요?
유심히 살펴보니 사지웅 선임이 숨겨놓은 킬링 포인트들이 보여요. 수록곡 중 하나인 ‘백 배드 백’을 볼까요? 먼저 도입부에서 원빈이 댄서 어깨에 팔을 올리면서 시작하는 부분. 최종 시안엔 없었는데, 유튜브 촬영 직전에 추가했어요. 초반에 눈을 사로잡고 싶어서였죠.
다른 킬링 포인트도 있어요. 바로 앤톤의 ‘핸드 사인Hand Sign’! 노래 중간 ‘RIIZE’라는 그룹명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맞춰 알파벳을 손으로 표현했거든요. 이 장면이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많이 본 부분’이 됐어요. SNS에선 이 동작을 따라 하는 챌린지도 유행했고요!
사지웅 선임이 일하며 뿌듯한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래요.
“저는 늘 아티스트의 컴백 첫 음악방송 현장에 함께 갑니다. 무대를 처음 마주한 팬의 가장 뜨거운 리액션을 확인하러 간다는 마음으로요. 어떤 부분에서 함성이 터지는지,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늘 가까이서 느끼고 연구한다는 느낌입니다.
몇십 번씩 수정해 만든 ‘킬링 포인트’를 팬들이 좋아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멤버들이 그 반응을 보며 자신감을 갖고 안무를 즐길 때 가장 뿌듯합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하죠. ‘내가 무엇을 잘해서라기보다는, 멤버들의 실력과 진심이 이 무대를 완성하는구나.’”
_사지웅 퍼포먼스 디렉팅 LAB 선임

Chapter 4.
뮤직비디오 : ‘멋진 모습’만 보여주지 않을 때, MV는 영화가 된다
퍼포먼스가 완성되면 뮤직비디오가 탄생해요. SM엔터테인먼트, 이번 라이즈 정규 앨범에 역대급 투자를 단행했어요. 전체 앨범 10개의 곡에 모두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거든요! 그만큼 이번 앨범에 기대가 컸던 거죠.
라이즈의 뮤직비디오를 담당하는 김기현 책임. 엑소, NCT, 에스파와 작업한 베테랑이에요. 그런데도 이번 앨범은 새로운 도전이었대요.
“처음부터 10개의 곡을 모두 뮤직비디오로 만들고, 그 뮤직비디오를 엮어 스토리라인이 있는 하나의 영화처럼 만들기로 기획했어요. 뮤직비디오 10개를 무작정 붙이는 게 아니라, 각 영상 사이에 스킷skit*을 넣었어요. 멤버들의 일상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넣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영화를 완성한 거예요.”
_김기현 위저드 프로덕션 뮤직비디오 책임
*앨범에서 곡과 곡 사이를 이어 주는 징검다리 같은 음악. 여기에서는 뮤직비디오 사이를 이어주는 영상이란 뜻으로 쓰였다.

이렇게 완성된 전체 뮤직비디오는 진짜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보였어요. SM은 한술 더 떠, 이 영상을 실제 영화관*에서 개봉했어요! 추첨을 통해 팬클럽 ‘브리즈BRIIZE’ 회원 약 1100명이 모였고, 라이즈 멤버들이 상영관에서 무대 인사를 했죠.
*한국, 중국, 일본, 태국 총 4개국의 27개 극장에서 순차적으로 개봉했다.
한 앨범의 뮤직비디오로 영화를 만들다니, 왜 이렇게까지 투자했을까요? 이 총괄은 이번 앨범의 특수성을 강조했어요.
“앨범 전체를 한 편의 소설처럼 구성했잖아요. 이 서사를 뮤직비디오에서 살리고 싶은 욕심이 컸어요. SM도 이번 앨범에 대한 기대가 커서, 큰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요.”
_이상민 위저드 프로덕션 총괄 디렉터
성장 서사를 살리기 위해,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모습도 많이 담았어요. 마냥 ‘완벽한 아이돌’이 아닌, 활발하고 고민 많은 청년의 모습 말이에요. 멤버들은 비행기에서 서로를 촬영하며 웃고, 땀을 흘리며 연습해요. 녹음이 잘 안될 땐 눈물을 터뜨리기도 하고요.
멤버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진 않았을까요?
“물론 보여주기 싫어했던 멤버들도 있죠. 하지만 결국에는 다 이해하더라고요. 이렇게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순간도, 결국 우리가 성장하는 모습이라는 걸.”
_윤애솔 컨텐츠&프로모션 시너지 TF 선임
전곡 뮤직비디오 촬영의 또 다른 이유. 뮤직비디오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이에요. 원래 팝 시장에선 음원 스트리밍 횟수가 뮤직비디오 조회수보다 다섯 배 이상 높은 게 보통이거든요? 그런데 케이팝 시장에선 달라요. 음원 스트리밍 횟수와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거의 비슷하게 나오죠! 음악만큼이나 뮤직비디오가 중요한 거예요.
“팬덤이 성장하려면 팬들이 만드는 2차 창작물이 얼마나 많이 퍼지느냐가 관건이에요. 뮤직비디오는 팬들이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게 아니라, 숏폼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거예요.”
_이상민 위저드 프로덕션 총괄 디렉터

Chapter 5.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 420만 팔로워를 놓고, 0에서 시작한 이유
뮤직비디오 제작과 함께 출발하는 또 다른 작업. 바로 크리에이티브 비주얼Creative Visual 작업이에요. 앨범에 들어가는 사진부터 포토카드나 굿즈 같은 구성품을 모두 기획, 디자인, 제작해요. 프로모션 활동의 기획과 디자인도 맡고 있죠.
좋은 크리에이티브 비주얼이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라혜수 선임은 두 가지를 꼽았어요.
“우선 쉬워야 해요.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대중이 한 번에 캐치해야 하죠. 하지만 동시에 낯선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힙하다고 느끼거든요.”
_라혜수 위저드 프로덕션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선임
이번 앨범에서 집중한 ‘낯선 요소’는 새로운 인스타그램 계정이에요. 라이즈의 원래 공식 계정(@riize_official)은 팔로워가 무려 420만명이나 있었어요. 이 계정을 놓고, ‘라이즈 오디세이(@riize_odyssey)’란 이름의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어요. 이번 컴백만을 위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따로 만든 거예요.
“이번 앨범은 완결된 서사를 가진 프로젝트잖아요. 이 컴백을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계정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모든 곡의 비주얼 콘텐츠를 준비해 ‘아카이브’란 이름을 붙여 진행하게 됐어요.”
_라혜수 위저드 프로덕션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선임

새 인스타그램은 공식 계정과 무드가 완전히 달랐어요. 공식 계정은 여러 콘텐츠가 섞여 있었거든요.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부터 멤버들의 셀카, 다른 아이돌 멤버와 챌린지하는 영상 등이요.
새 계정은? 마치 감각적인 갤러리나 핀터레스트를 보는 것 같아요. 아무렇게나 놓인 여섯 켤레의 스니커즈, 연습실에 놓인 기타, 커다란 여행 가방 등이 레트로한 무드로 담겼죠. 이번 앨범에 담긴 열 곡이 어떤 느낌인지, 잘 나타낼 수 있는 사진들이에요.
게다가 라이즈 팬이라면 알 만한 디테일한 요소도 사진에 담았어요.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는 냉장고에 덕지덕지 붙은 자석. 그런데 이 자석들, 실은 멤버들을 상징하는 거래요.
“실제로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옷이나 노출된 소품, 곡과 연관된 디테일한 요소들을 변태적이라 느낄 정도로 이미지에 녹여 만들었어요. 냉장고에 붙은 자석도 마찬가지였죠.
돌고래 자석은 소희를, 기타는 원빈을 상징해요. 건담 자석은 실제로 프라모델 조립이 취미인 멤버 앤톤의 성격을 참고해 만들었고요.”
_라혜수 위저드 프로덕션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선임
공식 계정 대신 새 아카이브 계정을 만든 파격적 시도, 제대로 먹혔어요. 새 계정의 팔로워 수는 아직 20만명에 불과하지만, 좋아요와 댓글은 공식 계정과 큰 차이 없이 달리고 있어요. ‘감다살’*, ‘미감합격’ 같은 MZ의 최대 찬사가 댓글로 주렁주렁 달렸죠.
*‘감 다 살았다’는 뜻의 신조어.

Chapter 6.
소셜 : CCTV 뺨치는 관찰이, 좋은 콘텐츠를 부른다
앨범을 잘 만들었으니 알릴 차례예요. ‘소셜팀’은 각종 SNS에 라이즈를 알리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올려요. 주로 유튜브용 롱폼 콘텐츠를 만드는 윤애솔 선임, SNS의 숏폼 콘텐츠를 만드는 최우림 선임을 만났어요.
좋은 소셜 콘텐츠는 어떻게 탄생할까요? ‘관찰’이 핵심이에요. 일하다가도 ‘멤버들끼리 뭔가 재밌는 걸 하는 것 같다’ 싶으면 달려가고, 라이즈의 음악을 속속들이 이해해야 공감을 끌어낼 수 있죠. 숏폼과 롱폼 모두 마찬가지예요.

① 숏폼 : 10초에 매력을 압축해, 알고리즘으로 침투한다
숏폼팀의 역할, 한마디로 침투조예요. SNS 알고리즘을 타고 라이즈를 모르는 이들을 파고들죠. 라이즈에 관심 없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면? 10초 만에 매력을 보여줘야 해요. 곡과 멤버의 매력을 꿰뚫어야 가능하죠.
곡의 매력은 어떻게 어필하는 걸까요? 최우림 선임은 이번 앨범 수록곡 ‘모든 하루의 끝’을 예로 들었어요.
“‘모든 하루의 끝’은 2000년대 느낌의 정통 발라드인데, ‘드라마 OST 같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래서 실제 이걸 활용해 원빈과 소희에게 드라마 ‘상속자들’의 명장면을 연기하게끔 했어요. 그리고 배경 음악으로 이 곡을 깔았죠.”
_최우림 컨텐츠&프로모션 시너지 TF 선임
그럼 멤버의 매력은요? 인간적 모습을 부각하는 게 유리해요. 잘 알려지지 않은 매력을 찾아내서 소개하는 거예요.
한번 볼까요? 멤버 중 은석은 유난히 조용하고 차분해요. 그런데 몇 번 이야기하다 보면 은은하게 웃긴 매력이 있대요. 이 엉뚱한 모습을 숏폼 영상에 담았대요. 윤도현의 발라드 ‘사랑했나봐’에 맞춰 춤을 췄는데, 역시 604만명이 볼 정도로 인기를 끌었어요.
② 롱폼 : 단점 보완 대신 장점 강화, 내향인 그룹의 콘텐츠 제작기
숏폼팀이 침투조라면, 롱폼팀은 입덕조예요. 멤버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줘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게 역할이에요. 녹음이나 안무 연습 비하인드, 예능 콘텐츠를 만들죠. 멤버들은 팀을 나눠 요리 대결을 펼치거나, 런닝맨처럼 이름표 떼기 추격전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초반엔 난관이 있었어요. 라이즈 멤버들이 대부분 내향적이라는 것! 목소리가 작고 낯을 가리는 멤버가 많았죠.
롱폼팀은 일부러 텐션을 올리려 하지 않았대요. 대신 ‘멤버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죠. 수영선수였던 앤톤이 ‘수영 교실’을, 스노보드를 잘 타는 은석이 ‘보드 교실’을 진행하는 식이에요.
“내향적인 멤버들에게 무리하게 자극적인 요소를 주문하면 억지스러울 거라 생각했어요. 오히려 멤버들이 잘할 수 있는 걸 살리는 방향이 더 효과적이겠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앤톤의 수영 교실’의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진지하게 수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요.”
_윤애솔 컨텐츠&프로모션 시너지 TF 선임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2025년 6월 기준 171만 회로, 라이즈의 자체 콘텐츠 ‘WE RIIZE’ 중 조회수 3위를 기록했다.
이번 컴백에서도 이런 관찰력이 빛을 발했어요. 40분짜리 <오디세이> 프리미어 영상의 예고편을 롱폼팀이 제작했거든요. 이때 멤버 원빈과 앤톤이 직접 나레이션을 한 게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어요. 영상에서 원빈은 이렇게 말하죠.
“우린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린 지금 완벽하진 않지만, 그게 우리를 더 진짜로 만든다고 믿는다.”
“이 또한 실제 멤버들과 대화하고 관찰하면서 만들어진 결과예요. 실제로 멤버들이 평소에 많이 하는 말을 그대로 나레이션으로 녹여냈거든요. 그래서 어색하거나 오글거린다는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_윤애솔 컨텐츠&프로모션 시너지 TF 선임

Chapter 7.
30년 롱런의 비결은, 모두가 즐거운 것
앨범 하나에 이렇게 많은 공이 들어간다니! 예상했지만 정말 놀라웠어요.
두 차례의 인터뷰에서 나온 녹취록만 무려 10만 자. 정리하다 보니 공통된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바로 ‘일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
“SM의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새롭고,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여기서 말하는 ‘모두’는 세 집단이 있다고 봐요. 스태프, 팬, 그리고 아티스트. 회사 관계자 몇 명만 좋아하면 안 돼요. 이 작품을 시연하는 사람, 즉 아티스트가 이 일을 좋아해야 오래 가더라고요.”
_이상민 위저드 프로덕션 총괄 디렉터
“아이돌이 된 친구들은 인생의 많은 시간을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쓰고, 좋은 결과를 위해 연습하며 수많은 스케줄을 소화해 냅니다.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이들이 진심으로 재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연습실에서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결국 아티스트가 진심으로 즐기며 춤출 때, 그 에너지가 무대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고 믿으니까요. 그래서 멤버들이 잘할 수 있고,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퍼포먼스를 만들기 위해 늘 노력합니다.”
_사지웅 퍼포먼스 디렉팅 LAB 선임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었어요. 그동안 케이팝 산업은 베일에 싸여있었잖아요. 왜 위저드 프로덕션은 라이즈를 만든 사람들을 이렇게 일일이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걸까요? 이상민 총괄 디렉터는 답했죠. “아티스트 뒤 수많은 스태프의 이름이 지워지는 게 싫었거든요.”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다른 제품들처럼, 케이팝 콘텐츠 역시 한두 명의 창의성으로 탄생하지 않아요. 기획사 창업가의 철학도 중요하지만, 모든 과정에서 수십 명의 스태프가 치열하게 자신의 감각을 갈아 넣으며 노력하고 있어요.
이 사실이 좀 더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모두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고, 무엇보다 청춘을 바쳐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_이상민 위저드 프로덕션 총괄 디렉터


롱블랙 프렌즈 C
돌아오는 길에 이상민 디렉터의 말을 곱씹어 봤어요. 출퇴근길 허전함을 달래며 보던 아이돌의 영상이, 이제는 좀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몇천 곡을 들으며 음악을 고른 A&R팀과 이 안무를 제안했을 퍼포먼스 디렉팅 팀, 그리고 고심하며 앨범 자켓을 디자인했을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팀이 떠오를 테니까요.
롱블랙 피플, 이쯤 되니 라이즈의 <오디세이>가 궁금하지 않나요? 이젠 영화관이 아니라 유튜브로도 볼 수 있어요. 시간이 된다면, 집에서 한번 관람해 보세요. 저에겐 묘한 위로가 되었거든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몇십 번이고 다시 춤을 추고, 울면서도 끝까지 녹음을 마치는 모습.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 겪었던 ‘오디세이’의 과정이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