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톡 : 발효의 시간과 이야기, 김치의 가능성을 말하다

20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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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프렌즈 K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마. 그들은 네 모공에서 늘 김치 냄새를 맡을 거야.”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미셸 자우너가 2016년 쓴 에세이*엔 이런 구절이 나와요.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남긴 이 말을 떠올리며, 미셸은 김치를 담가요. 양배추로도, 오이로도, 무로도. 김치는 그에게 어머니와의 기억이자, 한국 핏줄을 상징하는 정체성이자, 상실을 극복하는 도구예요.
*글래머 매거진에 실린 에세이로 제목은 「진짜 삶 : 사랑과 상실, 그리고 김치」다.

김치는 늘 우리에게 ‘음식을 넘어선 무엇’이었죠. 그런데 김치에 대한 마음, 한국인에게만 이다지도 깊은 건 아닌 것 같아요. 미국 쇼핑몰에서 단체 김장을 하고, 런던의 뮤직 페스티벌에도 김치가 등장하고 있어요. 할리우드 스타들이 김치 담그는 법을 유튜브로 보여주고요. 10년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에요.

이런 관심은 숫자로도 확인되고 있어요. 포장김치 1위 브랜드 종가의 김치 수출액은 2016년 2900만달러(약 403억 원)에서 2024년 9390만 달러(약 1300억원)로 223% 치솟았어요. 올해는 수출액 1억 달러를 처음으로 돌파할 걸로 보이죠.

프랑스의 와인, 이탈리아의 피자가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듯이 김치도 국제적 음식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난 8월 28일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서울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롱블랙과 종가가 함께 토크 콘서트를 열었어요.

「레드톡(RED TALK): 김치를 말하다」에는 네 명의 스피커가 등장했습니다. ‘한식의 거장’으로 불리는 조희숙 셰프, 몽탄·산청숯불가든 등으로 유명한 외식 기획자 정동우 대표, 요리 애호가로 알려진 류수영 배우가 참석했고 스타 유튜버 조승연 작가가 진행을 맡았죠.

8월 28일 성수 코사이어티에서 진행한 「레드톡(RED TALK): 김치를 말하다」 현장. 조희숙 셰프·정동우 대표·류수영 배우·조승연 작가가 스피커로 등장했다. ⓒ롱블랙

Chapter 1.
김치는 왜 우리에게 이다지도 특별할까

우리는 왜 이렇게 김치를 사랑할까요. 김치의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 걸까요.

김치만의 강렬한 맛과 냄새를 우선 짚어야겠죠. 사실 전 세계 식탁엔 ‘톡 쏘는 새콤한 맛’을 내는 음식이 늘 하나씩 올라간대요. 기름지거나 비린 음식, 밍밍한 맛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가령 프랑스엔 와인이, 독일엔 사우어크라우트(발효 양배추)가, 일본엔 쓰케모노(절임 채소)가, 그리고 터키엔 요거트가 있죠.

김치도 이런 역할을 하는 거예요. 고기구이 식당을 많이 기획해 본 정동우 대표는 이렇게 말했어요.

“고깃집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고기를 많이 먹게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고기 먹는 사람의 관점에선 김치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느끼한 것들을 씻어줄 수 있고, 맛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어떻게 보면 공기 같은 음식이에요.”
_정동우 대표, (이하) 레드톡에서

류수영 배우 역시 “김치는 내 모든 입맛과 결부된 음식”이라고 소개했어요. 숟갈마다 입맛을 개운하게 잡아줘서 새롭게 다른 요리를 맛보게 하잖아요. 그는 “파인다이닝에서 셔벗 같은 역할도 할 수 있는 게 김치”라고도 표현하더라고요.

흥미로운 건, 이런 ‘입가심 음식’ 사이에서도 김치의 존재감은 남다르다는 거예요. 젓갈이 발효되면서 나는 ‘깊은 감칠맛’ 때문이죠. 조희숙 셰프는 “일본이 감칠맛을 뜻하는 ‘우마미うま味’를 세계에 소개했지만, 한국의 발효 감칠맛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고 했죠.

그러면서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어요. “전남 신안군 섬에서 할머니가 담근 감태 김치의 향을 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자 다른 이들도 김치와 관련한 추억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자란 조승연 작가는 김장 날이 동네잔치처럼 시끌벅적했대요. 5남매 맏아들이던 아버지는 2.5톤 트럭으로 배와 총각무를 싣고 오셨고, 동네 어른들이 다 모여 땅을 파고 장독을 묻었죠.

류수영 배우는 김치라는 말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렸어요. 외할머니는 염교라고도 불리는 돼지파로 깍두기를 담그셨다죠. 달지 않은 시원한 깍두기, 사람들은 모르는 할머니만의 레시피. 누구나 이런 ‘인생 김치’를 품고 사는 거겠죠?

정동우 대표는 갱시기를 떠올렸어요. 대구 출신의 아버지가 술 마신 다음 날 드시던, 김치와 나물이 들어간 시원한 해장국이죠.

이들의 추억에 함께 빠지면서, 우리는 발견했어요. 김치는 우리의 정서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고요. 김치를 떠올리면 누구나 순식간에 유년 시절의 한 순간으로 돌아가게 돼요. 저마다의 추억에 빠진 연사들을 보며 조희숙 셰프는 이렇게 말했어요.

“단일 음식 하나로 삼국 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맥이 끊기지 않으면서, 이렇게 꾸준히 회자할 수 있는 음식이 김치 말고 또 뭐가 있을까요. 단순한 음식이기 전에 한국인의 역사와 뿌리가 담겨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_조희숙 셰프

김치는 우리의 정서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기 전에 한국인의 역사와 뿌리가 담겨있는 음식”이라고 조희숙 셰프는 말했다. ⓒ롱블랙

Chapter 2.
정성껏 담근 김치가 당연히 ‘무한리필’인 나라

이렇게 우리와 강하게 연결된 김치. 그런데 우리는 자주 그 소중함을 잊고 있어요. 때로 김치는 ‘천덕꾸러기’ 같은 취급을 받곤 해요. 식당에선 김치가 당연히 공짜라고 여기고, 무한리필해주지 않으면 언짢아지죠.

정동우 대표는 “김치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씁쓸해했어요.

“한 지방의 순대국밥집에 간 적이 있어요. 국밥은 정말 맛있는데 깍두기가 너무 맛이 없는 거예요. 함께 간 셰프님께서 웃으며 ‘전략’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깍두기가 맛있으면 리필을 다섯 번쯤 하니까, 비용을 아끼려고 이렇게 만든 거란 얘기예요.

한국인에게 김치는 공기나 어머니 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 늘 있으니까 소중한 줄을 모르고,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거죠. 사실은 정성껏, 힘들게 만든 음식인데 공짜로 계속 더 달라고 하는 것처럼요.”
_정동우 대표

오랜 기간 한식당을 운영한 조희숙 셰프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 문제가 해결돼야 식당에서 중국산 김치가 사라진다”면서요. 그는 한국의 식당들이 컨테이너째 중국산 김치를 사들이는 현실을 언급했어요.

“식당에서 김칫값을 내는 날이 올까요? 저는 그래야 중국산 김치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산 고춧가루와 배추를 써서 만든 김치, 사실은 정말 어마어마한 음식이거든요. 이 가치를 일깨울 수 있을 때 세계 시장에서 김치의 위상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_조희숙 셰프

김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방법은 없을까요? 정동우 대표와 조희숙 셰프는 서로 다른 대안을 제시했어요.

정동우 대표는 “김치는 조연일 때 더 빛나는 음식”이라며 다른 메뉴와 결합해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죠.

보쌈을 먹다가 보쌈김치가 떨어지면?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김치를 추가 주문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참치, 대방어 등 기름진 생선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은 ‘묵은지 추가’에 기꺼이 돈을 씁니다. 김치가 음식에서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을 하면, 김치에도 지갑이 열린다는 거예요.

“우리는 김치에 돈을 쓰지 않죠. 하지만 김치가 다른 음식과 만났을 때는 낼 수 있어요. 저는 김치가 다른 음식과 만났을 때 그 가치가 더 빛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_정동우 대표

반면 조희숙 셰프는 김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대요. 김치를 반찬이 아닌 매력적인 식재료로 삼아 그 가치를 높이는 거죠. 김치를 고기·채소와 섞어 쪄낸 김치떡, 고구마와 묵은지를 돌돌 만 고구마 김치롤 같은 요리예요.

“저는 김치를 단품이 아닌 코스 요리로 구성하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김치가 주연이 되는 근사한 요리를 만들고, 김치가 돋보이게 하고 싶었거든요.”
_조희숙 셰프

한국인의 정서와 연결된 김치는 식당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곤 한다. 무한리필 되는 ‘공짜 반찬’으로 여기곤 하는 것. 정동우 대표는 “김치를 ‘조연’으로서 빛나게 만들어준다면, 그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롱블랙

Chapter 3.
“혹시 김치 있나요?” 부끄러움의 대상에서 ‘대세’ 사이드 메뉴로

재밌는 점은 오히려 해외에서 이런 김치를 달리 보고 있다는 거예요. 국내보다 해외에서 반응이 더 좋았던 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요. 한국의 양식 레스토랑에선 “김치 있나요?”라고 물어보지 못하지만, 오히려 뉴욕의 스테이크 가게에선 정식 사이드 메뉴로 김치를 주문할 수 있는 상황이죠.

류수영 배우는 애틀랜타의 한 바비큐 가게를 예로 들며, “해외에선 김치가 어엿한 사이드 메뉴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어요.

“애틀랜타에 바비큐와 김치를 같이 내놓는 집이 있어요. 가수 이지연 씨가 오픈한 미국 남부식 바비큐 식당인데요. 애틀랜타주 최고의 식당으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거든요. 김치와 바비큐 조합이 현지에서 실제로 통하고 있다는 얘기죠.”
_류수영 배우

이 가게의 이름은 에어룸 마켓 바비큐Heirlroom Market Barbeque. 2024년 뉴욕타임스NYT가 ‘애틀랜타 최고의 레스토랑 25곳’중 하나로 선택한 식당이에요. 이 곳의 인기 사이드 메뉴는 김치 슬로Kimchi Slaw, 김치로 만든 코울슬로예요. 바비큐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별미로 사랑받고 있어요.

조희숙 셰프는 비행기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덧붙였어요. 한국 항공사에서도 기내식 메뉴로 넣지 않는 김치가 해외 항공사의 기내식에 등장했다는 거예요.

“제가 한국 기내식을 컨설팅한 적이 있거든요. 당시 김치를 절대 기내식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었어요. 냄새가 나니까요. 그런데 당시 제가 핀란드 항공기를 탔는데 거기서 기내식으로 김치가 나오는 거예요. 충격적으로 맛있더라고요. 우리가 김치를 대하는 것보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김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호의적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_조희숙 셰프

그럼 해외에서 김치가 인기인 이유는 뭘까요?

정동우 대표는 “한국인이 김치를 먹는 독특한 방식이 김치의 매력을 더해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어요. 고깃집을 떠올려보세요. 고기 굽는 판에서 김치도 함께 굽고, 눈앞에서 김치를 잘게 잘라 찌개도 끓이고 밥도 볶아주죠. 김치를 둘러싼 식문화 전체가 외국인에겐 새롭게 다가온다는 거예요.

또 먹을 때마다 다른 맛이 나오니까, 김치를 응용한 메뉴들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대요.

“외국인들이 가지는 한국에 대한 판타지는 반전(Contrast)인 것 같아요. 일본의 문화는 일관되게 쭉 이어지는 편이잖아요. 정제된 모더니즘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한국은 길만 걸어도 건물 하나하나의 양식이 다 다르잖아요. 또 웰니스를 추구하면서 사찰 음식을 먹다가도 금세 자극적인 음식을 찾기도 하고요. 이런 다양성이 한국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 다양성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김치고요.”
_정동우 대표

해외에서 김치는 ‘대세 사이드 메뉴’로 거듭나고 있다. 류수영 배우는 에어룸 마켓 바비큐의 ‘김치 슬로’를 예시로 들며, “해외에선 김치가 어엿한 사이드 메뉴로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롱블랙

Chapter 4.
외국인이 담근 김치는 한국 김치가 맞을까?

김치가 해외로 나가면서 우리에겐 한 가지 고민이 생겼어요. 외국인이 자기 입맛대로 변형해 담근 김치는 여전히 한국의 전통 음식인 김치가 맞을까요? 미국과 유럽에서 누구나 김치를 만들고 팔게 되면, 한국이 ‘김치의 나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조승연 작가는 패널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김치를 담그기 시작하면, 앞으로는 우리가 김치의 원조라는 걸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요?”
_조승연 작가

스피커들에게 질문하고 있는 조승연 작가. ⓒ롱블랙

의견은 갈렸어요. 

류수영 배우는 피자를 예로 들며 “정통성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죠. ‘김치는 이렇게 만들고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단 그 나라 사람들의 방식으로 즐기게 둬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그러면서 페루에 자리 잡은 중국 음식 문화 치파chifa를 소개했죠. 19세기 후반 건너간 중국 이민자들로부터 중국 남부 음식이 퍼져 페루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면서요.

“전 음식은 해외에 던져졌을 때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원래 가치를 유지하려고 옷을 겹겹이 입고 해외에 나가면 그냥 사멸되는 것 같아요. (…) 굳이 원조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음식이 사람들에게 퍼지고, 입맛에 익숙해지면 그게 우리 문화의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_류수영 배우

정동우 대표는 동의하면서도 “여기에 전략적 접근이 조금 더해지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어요. 일본에서 대표 음식으로 꼽히는 라멘을 예시로 들면서요.

라멘이 1900년대 전후에야 일본에 등장했다는 걸 아세요? 라멘 전엔, 뼈와 고기를 진하게 고아 낸 육수 자체가 일본에선 낯설었다고 해요. 이미 소바와 우동이 일본의 전통 음식으로 깊숙이 자리 잡기도 했고요.

‘근본 없는 음식’이던 라멘이 일본의 상징이 된 건, 전략적 접근 때문이었대요. 도제 방식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지역 분파를 만들며 다양성을 설계했죠. 삿포로의 미소라멘, 도쿄의 소유라멘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심은 거예요.

“역사가 가장 짧은 라멘이 오히려 역사적인 맥락을 가장 잘 활용하며 전통성을 획득한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평양냉면, 함흥냉면 같은 지역적 맥락을 냉면집들이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각 지역의 전통 냉면집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잖아요. 김치 역시 다른 요리와 경쟁하려면 이런 전략이 필요할 겁니다.”
_정동우 대표

조승연 작가도 전략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어요. “프랑스가 와인의 종주국으로 인정받는 것도 전략의 결과”라고 짚으면서요.

세계에 와인 문화가 퍼져나가기 시작한 건 19세기 중반. 프랑스 이민자들이 뉴질랜드와 미국에 포도밭을 만들고 와인을 담갔죠. 프랑스 정부는 미식가들을 모아 와인의 등급을 매기고 5대 샤토(와이너리)를 선정하는 식으로 차별화를 시작했어요. “땅마다 풍미가 다르다”라는 주장에 따라 테루아Terroir란 개념을 만든 것도, 프랑스 와인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죠.

조희숙 셰프는 와인 시장에 대한 프랑스의 전략에 크게 공감했어요. “우리가 와인을 공부하듯 김치를 공부해 봤는가”를 되물으면서요.

“김치는 와인보다 더 다양한 재료가 발효를 통해 완성되는 과학적인 음식이에요. 프랑스 사람들은 재료뿐 아니라 발효의 정도에 따라 가치와 등급을 매기면서 와인에 접근하죠.

우리도 김치에 그렇게 접근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와인도 한 병에 5만원짜리가 있고 20만원짜리가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저는 김치를 몇 년산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고 주문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_조희숙 셰프

김치의 발효 시간과 방식을 따져서 가치를 달리 매기는 시대가 정말 올까요? 그렇다면 김치의 전통성과 차별점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요?

김치가 해외에 던져진다면, ‘반찬’에서 벗어나 다양한 옷을 입게 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건 김치만의 깊은 발효 과정을 ‘전략적으로 스토리텔링’하는 것이다. 사진은 김치로 만든 카나페의 모습. ⓒ종가

Chapter 5.
김치에겐 ‘스토리’와 ‘체험’이 필요하다

이날 토크콘서트의 마지막 세션에선 김치의 미래를 함께 그려봤어요. 특히 “김치의 맛뿐 아니라 ‘스토리’를 체험하게끔 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죠.

정동우 대표는 최근 지인들과 경기 남양주에서 위스키를 담그는 체험을 하고 왔다고 소개했어요. 각자가 만든 위스키가 숙성되려면 2~3년이 걸린대요. 함께 간 이들은 “매년 오크통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만나 숙성도를 체크하자”고 약속했죠. 정 대표는 “왜 김치는 이런 체험이 없는지 아쉽다”고 말했어요. 

“일본 교토에 가면 서양 관광객이 많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일본이란 나라의 ‘그림’이 교토에 있어서예요. 료칸에서 온천을 하고 가이세키かいせき*를 먹는 풍성한 그림 말이에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일본의 고급 가정식.

김치도 충분히 이런 그림으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골 고택에서 하루 묵으면서 김장도 하고, 맛있는 식사로 즐기는 그런 그림이요.”
_정동우 대표

특히 김치의 특별한 발효 과정을 ‘스토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어떤 용기에서 얼마나 오래 발효했는지가 위스키와 와인의 마케팅 포인트이듯, 김치도 그 발효 과정을 조명할 수 있다는 거죠.

“유명 위스키 양조장에선 위스키를 보관하는 오크통을 강조하잖아요. 우리도 그런 스토리텔링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장독대의 항아리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겨울에 항아리를 땅에 묻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김치 발효’의 스토리텔링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_조승연 작가

실제로 종가에서도 김치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도쿄 시부야구 캣스트리트에 개최한 ‘김치 블라스트 도쿄’ 종가 브랜드 팝업이 대표적이에요. 종가는 이번 팝업을 통해 각기 다른 재료들의 풍미를 발효의 과정을 통해 조화로운 맛으로 완성하는 한국 김치의 특징을 눈으로 확인하고 다양한 콘텐츠로 경험하게 했죠.

이 팝업에는 7일간 무려 1만2000명의 현지인이 다녀갔대요. “지금 김치에 필요한 건 체험과 이야기”라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숫자입니다.

2025년 5월 도쿄 시부야구 캣스트리트에서 종가가 연 ‘김치 블라스트 도쿄’ 현장. 7일간 1만2000명의 현지인이 다녀갔다. ⓒ종가

동시에 고민해 볼 부분은 세계인의 눈높이에 맞게 김치를 소개할 방법이에요. 당장 김치의 재료인 젓갈과 풀만 해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죠.

조희숙 셰프는 규격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을 더했어요. 김치를 익히기 좋은 온도를 알 수 없는 외국인을 위해서, 적정한 온도로 김치 용기를 감싸는 ‘발효 보자기’를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하면서요.

“우리의 색을 유지해야 제대로 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시점이 왔지만, 외국인들에게 이 방법을 소개하는 건 어려움이 있어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계량화, 규격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요.”
_조희숙 셰프

가장 중요한 건, 한국의 젊은이들이 직접 김치를 담가보는 것 아닐까요. 류수영 배우는 “딱 한 번만 체험해 보라”며 섞박지 만들기를 권했어요. 찬 바람이 불면 마침 무가 단맛이 돌아 딱이겠네요.

“한 번만 담가보시면 김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거예요. 훨씬 애정이 생기실 거예요. 여러분이 김치의 대를 이으셔야 해요.”
_류수영 배우

토크콘서트의 마지막 세션에선 김치의 미래에 관한 이야길 나눴다. 스피커들은 “김치의 맛뿐 아니라 ‘스토리’를 체험하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김치만의 ‘특별한 발효 과정’이 그 힌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K 

전 세계적으로 웰니스 트렌드가 번지고 있는 요즘, 유산균을 머금고 있는 김치는 건강한 음식으로도 주목받고 있어요. 

김치를 웰니스 트렌드에 맞춰 브랜딩할 방법은 없을까요. 이 질문에 정동우 대표는 “김치 ABC 주스라도 만들까요?”라고 장난스레 발언하면서도 “우리의 편견을 거둬야 한다”고 말했죠. 김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요. 

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오늘 노트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 노트가 롱블랙 피플에게도 김치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길 바라면서요!

“우리는 이미 김치로 주스를 만든다고 생각했을 때 이상할 거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잖아요. 그런데 글로벌을 타깃으로 삼을 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마라가 치킨, 떡볶이 등 다양한 메뉴로 침투한 것처럼요.

저는 김치가 시즈닝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건강식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포지셔닝 하느냐에 따라 김치의 가치는 무궁무진할 거라고 생각해요.”
_정동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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