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에너지플러스 : 1.9점→4.6점, 떠나간 고객을 부른 주유 앱 혁신기

2025.10.20

GS칼텍스 사내 혁신조직 데브옵스 팀의 제품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2011년 GS칼텍스에 입사해 시장분석팀, 영업기획팀을 거쳐 2019년 플랫폼전략팀에 합류해 에너지플러스 앱 개발에 참여했다. 2024년 에너지플러스의 리뉴얼을 위한 '데브옵스 팀'을 직접 신설하고, 권한과 책임을 위임 받아 앱의 사용성과 브랜딩을 개선해나갔다.

일상에서 발견한 감각적 사례를 콘텐츠로 전파하고 싶은 시니어 에디터.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과 음식, 대화를 좋아한다. 말수는 적지만 롱블랙 스터디 모임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가장 많이 공유하는 멤버.

이 노트는 GS칼텍스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브랜디드 콘텐츠, 위드롱블랙을 더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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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프렌즈 B 

“대기업은 어쩔 수 없어”라는 한탄, 종종 들으시나요.

새로운 실험이 막히고, 과감한 시도가 꺾일 때 나오는 한탄이죠.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안정에 최적화된 조직은 혁신 감각을 잃는다”고도 지적했습니다. 그게 바로 ‘혁신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라면서요.

이 딜레마를 정면으로 부순 사례를 최근에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안정적이기로 유명한, 그래서 ‘신의 직장’이라고도 불리는 정유사에서요.

바로 GS칼텍스. 이 회사가 2021년 내놓은 주유결제앱 ‘에너지플러스Energy Plus’가 최근 디자인 상을 휩쓸고 있더군요. 레드닷Red Dot, 아이디에이IDEA, 굿디자인Good Design까지, 무려 6관왕입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정유사가 디지털 앱을 내놓은 것도 새로운데, 디자인 상까지 받다니. 신기하더군요.

들여다보니 신기한 점은 더 많았습니다. 이 앱, 처음엔 반응이 영 별로였다고 합니다. 애플 앱스토어 평점은 겨우 1.9*점. “일부러 쓰지 말라고 만든 앱”, “1점도 아까운 앱”이라는 후기가 달렸다고 해요.
*구글 플레이 스토어는 같은 시기 3.9점이었다.

그러던 앱이 2024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앱 평점은 1년 사이 4.6점으로 올랐고, 런칭 첫해 15만명이던 가입자가 4년 만에 196만명으로 늘었어요.

대기업에서 어떻게 이런 속도의 혁신이 일어났을까요?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데브옵스DevOps 팀을 이끄는 정재호 PO를 만나봤습니다.

Chapter 1.
누군가는 불꽃을 일으켜야 한다

“혁신은 구조에서 나온다.” 

크리스텐슨은 대기업이 혁신하려면 ‘양손잡이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기존의 조직과 단절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즉 혁신의 불이 지속적으로 타오르려면 구조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단 겁니다.

하지만 구조를 만들기 전, 중요한 게 있어요. 어떤 불이든 처음엔 불씨 하나에서 시작되잖아요. 변화를 만들겠다고 마음 먹은 개인 없이는 혁신이 시작되지 않아요.

2024년 3월 데브옵스 팀을 맡은 정재호 PO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꿈의 직장’에 입사한 그. 본사 시장분석팀과 영업기획팀 등의 요직을 거쳤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꾸 손을 듭니다. ‘딴짓’을 벌이기 시작한 거예요.

“현장을 느끼고 싶다”며 부산의 영남소매사업부*에서 3년을 근무하고, 2017년엔 사내 혁신 공모전에 지원해 대상을 탔습니다. 이때 그의 팀은 세차 특화 주유소 모델을 제안했어요. 주유 공간보다 세차 공간이 훨씬 큰, 팝업스토어 같은 공간을요.
*현 GS칼텍스 남부 Mobility & Marketing 부문 부산지사.

“튀면 죽는다”는 대기업에서, 왜 이렇게 자꾸 손을 든 걸까요. 정재호 PO는 “조직에서 나를 잃지 않고 싶었다”고 말해요.

“요즘처럼 변화가 큰 시대엔 누구나 불안해요. 그 불안은 정면 돌파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안정된 쪽에 머물지 않고 불안에 몸을 던져야 한다고요. 직접 도전해보니 그 쪽이 훨씬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불안한 환경에선 배우는 것도 많고, 그 과정에서 내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느낌도 받으니까요.”

2017년 공모전에서 우승할 때 그걸 확신했습니다. 함께 프로젝트에 매달린 팀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휴일을 반납하고 야근을 했다는군요.

“대상을 탄 뒤로 동료들 눈빛이 달라졌어요. 대기업에서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예요. 자율적으로 일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해요. 기회가 보이면 또 도전하는 거죠.”

롱블랙과 인터뷰 중인 정재호 PO. 14년차 직장인인 그는, 틈날 때마다 사내 혁신 공모전에 참여해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롱블랙

Chapter 2.
평점 1.9점에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열정만으로 혁신이 일어나진 않죠.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결과도 바뀌지 않습니다. 이후 계속 신사업팀에 몸 담은 정재호 PO는 쓰디쓴 실패를 목격하며 이를 깨달았습니다.

정 PO는 2019년 신설된 플랫폼전략팀에 합류했어요. GS칼텍스가 “미래형 주유소와 모바일 앱을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꾸린 팀이었죠. 2021년엔 에너지플러스 앱을 내놨습니다. 12단계의 주유 과정을 4단계*로 줄인, 지금의 핵심 서비스 ‘바로주유’를 품은 기획이었죠.
*앱에 기름 종류와 주유량, 결제 수단을 저장해두면 주유소에서 바코드 태깅으로 할인, 적립, 결제가 한 번에 된다.

기획은 좋았어요. 사용성이 문제였죠. 앱은 켜는 데 오래 걸렸고, 사용할 때마다 꼭 한 번씩 로그인도 풀렸어요. “편하자고 만든 앱이 일을 키운다”는 후기가 들끓었죠.

더 큰 문제는 ‘대응 구조’였어요. 고객 불만은 산더미 같이 쌓이는데 회사는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거예요. 데이터의 수기 작업 후 분석까지 몇 주씩 걸렸다고 합니다.

평점이 1점대인데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였습니다. 외주 개발팀은 앱을 만드는 게 끝이고, 외주 운영팀은 운영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데, 새 기능 개발까지 쳐낼 여유가 없었죠. 정 PO는 그때 알았대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구조가 없다’는 걸 말이에요.

“팀원들은 모두 유능한 분들이었어요. 문제는 개발과 운영 시스템이 서로 단절됐다는 거죠. 권한이 없으니 책임을 질 사람도 없는 거고요.”

정재호 PO는 자신이 한번 바꿔보기로 마음 먹었대요. 2024년 3월, 에너지플러스의 리뉴얼 과제를 맡은 ‘프로덕트 오너Product Owner’로 임명됩니다.

팀 이름은 데브옵스DevOps. 개발Development과 운영Operation을 합친 단어죠. “개발과 운영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 한 팀이 되어 제품을 책임지자”는 의미였어요. 

GS칼텍스는 2021년 에너지플러스 앱을 런칭, ‘바로주유’ 기능을 통해 주유 단계를 4단계로 줄였다. 단순 정유 사업에서 벗어나, 고객의 경험 혁신을 시도한 GS칼텍스의 첫 도전이었다. Ⓒ롱블랙

Chapter 3.
빠른 조직의 핵심은 조감력

“워터폴Waterfall 대신 애자일Agile로 갑시다.”

데브옵스팀이 가장 먼저 바꾼 건 ‘일하는 방식’입니다. 스타트업계에 퍼져있는 ‘애자일 프로세스Agile Process’를 도입했어요.

애자일 프로세스. 말 그대로 ‘민첩하게 일하는 방식’입니다. 프로젝트를 잘게 쪼개고, 짧은 시간 동안 실행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겁니다. 큰 프로젝트를 통째 기획하고 개발하는 워터폴 방식보다 빠르고 피봇팅이 쉽죠.

얻는 게 있으면 잃을 것도 있겠죠. 팀은 속도를 얻고 완성도를 버리기로 합니다.

“대기업에서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예 원칙을 정했죠. ‘우리 제품은 영원한 베타Permanent Beta다’라고요. 기능 하나를 내놔도 완성이라 보지 않아요. 사용 데이터를 보고 또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면 되니까요.”

일하는 방식을 배우려고 정재호 PO는 스타트업 PO들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토스와 쿠팡, 배달의민족을 찾아가서 “어떻게 일하느냐”고 물었다고 해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말이 있죠. 전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을 훔쳐서 우리 것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를 GS칼텍스 바깥에 계속 내던졌어요. 컨퍼런스와 세미나를 찾아다니고, 실무자들을 만나서 커피를 마셨죠.”
*1988년 스티브 잡스가 한 인터뷰에서 인용한 말. 시인 T.S 엘리엇의 글 속 문장을 떠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찾아낸 스타트업의 핵심 차이점. 팀 리더의 권한이었습니다. 특히 토스는 PO들을 ‘미니 CEO’라 부르며 힘을 실어주고 있죠. 웬만한 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리니 일에 속도감이 붙었죠.

빠르게 일하려면 또 필요한 것이 있었대요. 바로 업무 도구. 데브옵스팀은 회사를 설득해 슬랙Slack, 노션Notion, 지라Jira, 피그마Figma* 같은 최신 협업 툴을 도입했습니다. 보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기업에선 파격적인 결정이었대요.
*4개의 협업 툴은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에서 주로 채택되어 쓰인다.

“빠르게 일하는 조직의 핵심은 ‘조감력’이에요. 팀원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당장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이 결정이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팀 전체가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어디서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일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덕분에 일의 리듬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몇 개월마다 한 번씩 바뀌던 앱이 2~3주마다 업데이트됐거든요. 데브옵스팀은 한발 더 나가기로 했습니다.

정재호 PO는 2024년 데브옵스 팀을 신설한 뒤 에너지플러스의 경험 설계를 재구성했다. 이를 위해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을 배워 빠르게 적용해 나갔다. Ⓒ롱블랙

Chapter 4.
불만을 데이터로, 데이터를 액션으로

속도 만큼 중요한 게 방향성이죠. 데브옵스팀의 목표는 하나였어요. “진짜 편한 앱을 만든다.” 그러려면 무엇이 불편한지 알아야 하잖아요. 팀은 고객의 목소리를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생성형 AI를 도입했죠. 

에너지플러스 앱에는 하루에 700~800개의 고객 의견이 접수됐대요. 콜센터와 일대일 문의, 앱스토어 리뷰와 주유소 후기를 합쳐서요. 팀은 이 의견들을 모아 AI로 분류했어요. 6가지 의도*와 64개의 기능 카테고리로 나눴죠.
*문의, 칭찬, 불만, 오류, 요구, 기타.

예를 들어 “바코드가 안 찍힌다”는 불만이 접수됐다고 쳐볼까요. AI는 이 의견을 ‘결제 오류’로 묶어요. 최근에 이 오류가 몇 건이나 발생했고, 얼마나 늘고 있는지도 보여주죠. 심지어 문제점을 스스로 요약하고 개선 방향까지 제안한대요.

“예전엔 수만 건의 데이터에서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망망대해에서 헤엄치는 기분. AI가 분석을 맡아주니, 그제서야 데이터가 아닌 고객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데브옵스 팀은 먼저 고객의 목소리를 한곳에서 파악할 대시보드를 마련하고, AI를 활용해 분류, 요약, 인사이트 도출 기능을 더했다. Ⓒ롱블랙

그래서 앱이 어떻게 개선됐는지 궁금하신가요. 크게 세 가지가 변했습니다.

① 해결책은 늘 단순한 곳에 있다

AI가 수집한 불만 중 가장 눈에 띈 건 “바코드 찍기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대요. 주유기에 달린 바코드 리더기를 찾고, 앱 화면을 갖다 대는 일이 어려웠던 거죠.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했대요. 혹시 모를 오류를 대비해 앱 화면 구석에 표시해 둔 6자리 ‘주유 번호’를 바코드와 같은 크기로 키운 겁니다. 바코드를 못 찾는 이들은 주유 번호를 간편하게 입력했죠. 자연히 고객 불만도 크게 줄었습니다. 

AI가 불만을 수집, 요약하자 개선 방향이 명확해졌다. 바코드와 주유 번호를 같은 크기로 만들어, 고객의 불편을 해결한 일이 대표적이다. 사진은 GS칼텍스 주유소 속 주유기 화면. Ⓒ롱블랙

② 경험을 ‘4차원’으로 상상하라

편해지면 더 편해지고 싶은 게 사람 심리죠. “앱이 편리하지만, 핸드폰을 거치대에서 꺼내는 것도 사실 귀찮다”는 피드백이 많았대요. 팀은 고민합니다. ‘핸드폰을 만지지 않고도 주유할 순 없을까?’

해결책은 ‘자동차 디스플레이’에서 나왔습니다. 앱을 차량용 소프트웨어 시스템*과 연동해 자동차 디스플레이에 주유 번호를 띄운 겁니다. 운전자는 그 번호를 바로 주유기에 입력하면 됐죠.
*Carplay・Android Auto 같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스마트폰을 자동차 화면과 연동해 준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흔들면 곧장 주유 바코드가 나타나는 ‘셰이크앤페이Shake & Pay’ 기능도 선보였습니다. 고객의 시간을 단 몇 초라도 줄여주려는 고민에서 탄생한 기능이에요.

데브옵스 팀은 앱을 차량용 소프트웨어와 연동해, 핸드폰을 만지지 않고도 주유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앱 바깥의 고객 동선을 상상한 결과다. ⒸGS칼텍스

③ 끊긴 경험을 찾아 매듭지어라

주유라는 게 결국은 앱 너머 오프라인 주유소까지 경험하는 거잖아요. 각 운영자들에겐 고객과 소통할 창구가 필요했어요. 데브옵스 팀은 앱을 ‘메신저’처럼 만듭니다. 주유소 운영인이 고객 후기에 직접 댓글을 남길 수 있도록요.

물론 바쁜 운영인들을 위해 AI 솔루션도 함께 제시했어요. 운영인이 몇 개의 모범 답변을 남기면, 이후 AI가 상황별 답변을 분위기에 맞게 제안합니다. 운영인은 버튼만 눌러도 답변을 전송할 수 있고요.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우리 스스로 기존의 방식에 얽매여 있었다면 절대 만들 수 없는 변화예요. 팀원들에게 늘 과장을 보태 말했어요. ‘대담하게 꿈꾸고 집요하게 실행해, 단순한 결과물을 제안하지 않으면 우린 전부 망한다’고.”

데브옵스 팀은 AI를 활용해 운영인 답변을 제안하고, 주유소마다 페르소나를 만들고 있다. 주유소 현장에서의 만족도까지 높이려는 것. ⒸGS칼텍스

Chapter 5.
기능보다 감각을 파는 시대 

대기업의 신사업 리더는 고객만 설득하는 게 아닙니다. 회사를 설득해야 하죠. 정재호 PO는 해마다 경영진들에게 ‘설득의 키워드’를 하나씩 던지고 있대요. 2024년엔 ‘AI 혁신’을 약속했고, 2025년엔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를 내걸었습니다. 정유사 앱이 왜 디자인 상을 받아야 할까요?

“기능 경쟁을 넘어 ‘감각적인 브랜드’로 인식되어야 팬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우리 브랜드가 세계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걸 증명받고 싶었죠.”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출품. 소비재 회사가 아닌 정유사에선 낯선 일이었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일. 처음 출품한 iF 디자인 어워드에선 고배를 마셨습니다. 팀이 분석한 탈락 원인은 설득력 부족.

“심사위원을 가르치려 한 게 실책이었어요. 앱 리뉴얼 과정 전체를 꾹꾹 눌러담았죠. 페이지 간의 스토리텔링도 없이요. 마치 회사에 사업 보고하듯 출품 자료를 준비한 거예요.”

다음 출품부터 전략이 바뀌었습니다. 앱의 핵심을 한 가지 메시지로 압축했죠. ‘간결해진 주유 경험Streamlined Fueling Experience’로요. 고객이 앱을 쓰는 여정을 한눈에 이해하도록 설계했고요.

단순화 전략은 통했어요. 2025년 8월 레드닷을 시작으로 9월 IDEA, 10월 굿디자인까지 연이어 상을 거머쥔 거죠. 

“에너지플러스가 고객에게 다른 감각을 선물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게 기뻤어요. 사실 기름이 정유사마다 크게 다르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에너지플러스 앱은 늘 같은 걸 지향하고 있었어요. ‘다른 걸 팔 수 없다면 같은 걸 다르게 팔자.’

결국 고객이 브랜드를 새롭게 느끼도록 만드는 게 중요했죠. 디자인은 꾸밈이 아니라, 고객에게 ‘사고 싶은 기분’을 만들어주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데브옵스 팀의 팀복. 야구 점퍼에 팀의 애칭인 ‘Epeak High’를 새겨넣은 뒤, 정 PO가 늘 팀원들과 되새기고 싶은 문장을 수놓았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B

정재호 PO에게 물었습니다. 개인이 ‘조직을 설득하는 감각’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느냐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동기부여할 때 가능하다”고 답하더군요.

“일본의 경영 구루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는 일하는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눴어요. 스스로 타오르는 자연성 인간, 옆 사람의 영향으로 타오르는 가연성 인간, 불에 닿아도 타지 않는 불연성 인간으로요.
*제조회사 교세라, 이동통신사 KDDI를 창업하고 이끌었다. 도산 직전의 일본항공을 맡아 흑자 전환을 시켜 ‘경영의 신’으로도 불렸다.

저는 스스로 타오르려 노력한 것 같아요. 회사가 주는 보상이나 평가도 중요하지만, 내가 느끼는 불만을 찾고 그걸 해결하려 했죠. 동기부여는 절대 외주를 줄 수 없으니까요.”

정 PO는 대기업에도 ‘가연성 인간’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하더군요. 최근 그는 팀 유니폼을 만들었어요. 가슴팍에 다음 문장을 수놓았죠.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가 남긴 말이에요.

‘Nothing is a mistake. There’s no win and no fail, there’s only make(실수란 없다. 실패도 성공도 없다. 오직 창조만 있을 뿐이다).’

제대로 일해보기로 했다면, 오직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자는 의미입니다. 실패를 겁내지 말고요. 그것만이 이 시대에 ‘대체되지 않는 사람’으로 자리 잡을 길이라는 겁니다.

“요즘 직장인의 가장 큰 고민은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잖아요. 저는 불안을 잠재우는 건 불만이고, 불만을 극대화하는 건 불편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머뭇거리지 말고, 불편하더라도 하고 싶은 도전은 미련없이 시작하면 좋겠어요. 도전 의식이 없다면 이미 대체된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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