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워커 : 54년 거장의 즐거운 집착 “나에게 위스키는 일이 아닙니다”

2026.04.28

54년간 위스키 업계에 몸담아 온 거장. 스코틀랜드의 무명 증류소였던 벤리악, 글렌드로낙, 글렌글라사를 차례로 인수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웠다. 2017년 글렌알라키를 인수해 현재 마스터 디스틸러로 재직 중이다. 셰리 캐스크를 활용한 위스키 제조의 권위자로, 업계에서 ‘셰리의 왕’으로 불린다.

일상에서 발견한 감각적 사례를 콘텐츠로 전파하고 싶은 시니어 에디터.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과 음식, 대화를 좋아한다. 말수는 적지만 롱블랙 스터디 모임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가장 많이 공유하는 멤버.

이 노트는 글렌알라키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브랜디드 콘텐츠, 위드롱블랙을 더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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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프렌즈 B 

싱글 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에 관심을 가진 지 4년 정도 됐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 브랜드의 위스키를 유독 자주 사게 되더군요.
*한 증류소에서 보리만을 원료로 만든 위스키. 여러 곡물이나 다양한 증류소 원액을 섞지 않아 개성이 뚜렷하다.

글렌알라키The GlenAllachie. 위스키 업계에서는 혜성 같은 존재입니다. 2018년에 첫 제품을 내놨으니 신생 브랜드죠. 

그런데도 단숨에 위스키 애호가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런칭 3년 만인 2021년, 그리고 불과 4년 뒤인 2025년에 월드 위스키 어워드World Whiskies Awards에서 ‘세계 최고의 싱글 몰트World’s Best Single Malt’ 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을 두 번 받은 스코틀랜드 증류소는 글렌알라키가 유일합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위스키 품평회 WWA가 수여하는 연중 최고의 상. 2021년엔 글렌알라키 10년 캐스크 스트렝스 배치 4가, 2025년엔 글렌알라키 12년이 수상했다.

업계만 인정한 게 아닙니다. 시장 반응은 더 뜨거워요. 2022년과 2024년, 더현대 서울 팝업이 열릴 때마다 한정판 위스키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밤을 새웠습니다. ‘국내 최초의 오픈런 위스키’라고 불렸죠.

다소 유난스럽다 싶은 팬덤은 사실 브랜드 뒤 한 거장을 향한 것입니다. 빌리 워커Billy Walker. 54년 경력의 위스키 장인. 화학 전공자. 네 개의 무명 증류소를 회생시킨 미다스의 손.

글렌알라키의 마스터 디스틸러Master Distiller* 빌리 워커를 롱블랙이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위스키 제조 전 과정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 원액의 스타일, 캐스크 선택, 숙성 시점까지 모든 핵심 결정을 내린다.



빌리 워커 글렌알라키 마스터 디스틸러

이 글을 쓰는 지금, 제 책상 위엔 글렌알라키 10년 CS* 한 잔이 놓여 있습니다. 따라놓은 지 두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어요. 잔에서 향이 계속 피어오르고 있거든요. 견과류와 체리, 오렌지 껍질, 건포도. 방 전체가 마치 디퓨저를 새로 열어놓은 것 같습니다.
*Cast Strength캐스크 스트렝스 : 물을 타지 않고 오크통에서 숙성된 원액 그대로 병에 담은 위스키. 보통 55~65도의 높은 도수다.

이 강렬한 위스키를 만든 사람이 빌리 워커입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업계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에요.

빌리 워커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위스키의 고향에서 태어났지만,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전통을 답습하지 않았어요. 글렌알라키의 모토는 한 문장. “우리는 일관성이 아니라 완벽을 추구한다.” 롱블랙 인터뷰에서 그가 강조한 단어도 같았습니다. 완벽Perfection.


Chapter 1.
망해가는 증류소를 거듭해 살린 사람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은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심장입니다. 맥캘란Macallan과 글렌피딕Glenfiddich, 글렌리벳Glenlivet과 발베니Balvenie가 이곳 출신입니다. 지역을 휘감아 흐르는 스페이 강Spey River은 물살이 빠르고, 그래서 맑기로 유명합니다. 케언곰스Cairngorms 산맥의 화강암을 타고 내려와 유난히 물맛이 순하다고 합니다.

스페이사이드의 한복판, 벤 린네스Ben Rinnes 산의 자락에 증류소 글렌알라키가 있습니다. 처음 증류소가 들어선 건 1967년. 하지만 50년 동안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블렌딩 위스키에 들어갈 원액만 묵묵히 만들어왔거든요.

그 증류소가 불과 8년 만에 ‘세계 최고의 싱글몰트’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빌리 워커가 2017년 이 증류소를 인수한 덕분입니다.

더 놀라운 건, 빌리 워커가 되살린 증류소가 이게 처음이 아니란 겁니다. 2004년에 그는 이미 가동을 멈춘 증류소 벤리악Benriach을 사들였고, 2008년엔 6년 간 문을 닫았던 글렌드로낙Glendronach을 매입했습니다. 2013년엔 해안가의 잊혀진 증류소 글렌글라사Glenglassaugh를 인수했죠. 이들 세 증류소는 업계의 찬사 속에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브라운 포맨Brown-Forman*에 2억8500만 파운드(약 5400억원)에 매각되었죠.
*미국의 주류 대기업. 세계적인 위스키 브랜드 잭 다니엘스로 유명하다.

모두가 거장의 은퇴를 예상했지만, 그는 이듬해 글렌알라키 증류소를 매입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일흔둘이었어요. 

Q. 당신이 2017년 또 증류소를 사들였을 때, 모두가 놀랐습니다.

“솔직히 말할까요. 저는 2016년에 그 세 증류소를 팔고 싶지 않았습니다. 공동 창업자들의 사정으로 증류소를 팔게 됐지요. 저는 알려지지 않은 증류소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무언가를 만드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할 수만 있다면 매각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Q. 무명의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만드는 게 유독 즐겁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저는 시장에 한 번도 제대로 선보인 적이 없는 증류소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물려받을 재고는 있으면서, 또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권free hand을 가졌다는 뜻이니까요.”

Q. 글렌알라키를 사들인 건 그래서였나요.

“맞아요. 글렌알라키 증류소는 이미 품질 좋은 원액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원액에 개성을 입히고 싶었어요. 셰리* 중심Sherry forward의 위스키를 만들고 싶었죠. 여러 오크통에서 오는 복합적인 풍미를 담아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위스키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스페인 헤레즈Jerez 지역에서 만드는 주정 강화 와인. 이 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에 위스키를 숙성하면, 위스키에 다양한 풍미가 밴다.

1967년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벤 린네스 산자락에 세워진 증류소 ‘글렌알라키’. 위스키 원액만 생산해오던 이곳을 2017년 빌리 워커가 인수하며 ‘세계 최고의 싱글몰트’를 선보이는 위스키 브랜드로 만들었다. ⓒ글렌알라키

Chapter 2.
‘셰리의 왕’은 어떻게 탄생했나

셰리 중심의 완벽한 위스키. 글렌알라키를 인수할 당시 품었던 빌리 워커의 야심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위스키 업계에서 ‘셰리의 왕King of Sherry’이라고 불립니다. 셰리 캐스크를 활용해 위스키에 깊고 풍성한 향을 입히는 일은 그의 주특기입니다. 

빌리 워커는 언제나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어떤 나무통에서 숙성되느냐가 위스키 풍미의 7할을 차지한다.” 나무 성분이 스며들어 위스키의 향이 완성된다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셰리 캐스크는 특별합니다. 건포도와 무화과, 초콜릿, 견과류 같은 향을 위스키에 전하거든요. 빌리 워커가 ‘셰리의 왕’이라 불리는 건, 셰리 캐스크의 향을 위스키에 가장 풍성하게 담아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Q. 당신은 위스키의 고장 덤바턴Dumbarton에서 태어났죠. 위스키를 처음 마셔본 건 언제였나요. 

“15살 때입니다. 아버지 술장의 위스키를 몰래 마셨죠. 하하” 

Q. 그때 운명처럼 위스키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하신 걸까요.

“아니에요. 저는 어렸을 땐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슬프게도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고요. 저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습니다. 첫 직장은 제약회사였으니, 위스키를 처음부터 운명으로 여긴 건 아니었어요. 그러다 발렌타인Ballantine’s으로 유명한 위스키 회사로 이직한 겁니다.”

Q. 발렌타인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발렌타인에 입사한 건 행운이었습니다. 위스키 만드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게 됐거든요. 이곳에서 운명을 느꼈습니다. 제가 쌓은 화학적 지식이 위스키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지켜보는 게 즐거웠어요.”

Q. 화학적 지식을 사용해 위스키를 블렌딩한 건가요.

“반대예요. 블렌딩은 무조건 본능과 경험에 의존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블렌딩을 하고 나면 왜 그런 향과 맛이 나는지를 과학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액과 오크통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분석할 수 있으면, 다음 실험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게 되죠.”

Q. 예를 들면요. 

“떡갈나무는 셀룰로스Cellulose, 리그닌Lignin, 지질Lipid과 탄닌Tannin의 조합으로 만들어져요. 오크통을 만들 때는 최소 48개월 동안 나무를 자연 건조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효소가 나무에 들어가 이들 성분을 분해합니다. 셀룰로스는 당분으로, 리그닌은 유제놀Eugenol이란 향신료 성분으로 변하죠. 이 성분들이 위스키에 매혹적인 향을 입히는 거예요.”

빌리 워커는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위스키 산업이 전통과 경험에 의존하는 도제식으로 돌아가던 시기, 데이터의 시대를 연 인물이다. 위스키 숙성을 ‘감’이 아닌 화학 반응의 원리로 접근하는 공학자의 역할을 했다. ⓒ글렌알라키

Chapter 3.
탁월한 창조는 자유에서 나온다

하지만 과학으로 예술이 완성될 수는 없는 법이죠. 제가 생각하는 글렌알라키의 탁월성은 정교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예요. 과감함. 글렌알라키는 마치 위스키의 문법을 잘 알지 못한다는 듯이 과감한 실험을 하곤 합니다.

최근 화제가 된 글렌알라키 17년 미즈나라 & 올로로소를 볼까요. 

이 위스키는 2026년 3월, 월드 위스키 어워드WWA 스코틀랜드 카테고리에서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일본산 떡갈나무인 미즈나라水楢 오크 캐스크, 향긋하기로 유명한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로 위스키를 숙성하고 조합했습니다. 깊은 침향과 검붉은 과실 향이 어우러져, ‘동서양이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올로로소Oloroso: 셰리 와인의 한 종류. 산화 숙성을 거쳐 진한 건포도와 견과류 향이 특징이다.

이 제품은 전문가들이 보기엔 놀랄 정도로 과감한 실험입니다. 우선 미즈나라 오크 캐스크는 전 세계 캐스크 중에서 가장 비쌉니다. 평범한 오크 캐스크 가격의 열 배 정도죠. 이런 비싼 캐스크에 고숙성 와인을 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에요. 고급 와인일수록 검증된 방식으로 숙성하는 게 안전하니까요.

업계를 놀라게 만드는 창의성. 빌리 워커는 “창의성을 펼치려면 자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Q. 창의적인 실험을 거듭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위스키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입니다. 그리고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휘하려면 자유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걸 인버하우스Inver House Distillers*에서 배웠습니다. 발렌타인 다음으로 이직한 위스키 제조사였죠.”
*스코틀랜드의 중견 주류 회사. 대표 브랜드로 아녹·올드풀트니·스페이스번이 있다. 지금은 ‘인터내셔널 베버리지’로 불린다.

Q. 당시 발렌타인은 압도적 위상이었는데요, 더 작은 회사로 옮겨간 건가요.

“크고 자리가 잡힌 회사들은 창의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국제적인 명성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죠. 하지만 저는 호기심이 많았어요.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었죠. 제가 이후 일했던 증류소들은 모두 작은 위스키 하우스였어요. 제게 엄청난 자유를 줬고, 저는 해보고 싶은 모든 실험을 해볼 수 있었어요.”

Q. 그 덕분에 무엇을 얻었나요.

“엄청난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좋은 블렌더가 되려면 다양한 오크통을 경험해야 합니다. 각 오크통이 위스키를 어떻게 바꿀지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맵싸한 향을 원한다면 스코틀랜드산 버진Virgin 오크나 프랑스 리무쟁Limousin 오크를, 허브향을 찾는다면 마르살라Marsala나 몽골리안Mongolian 오크를 선택할 겁니다. 이런 오크의 성질을 이해하며 원액을 숙성하고, 조합해 보는 것이 너무 즐거웠어요.”

Q. 당장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일하기보다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 낫다는 말로 들립니다.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더 창의적인 일을 해야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결국 당신이 탁월해지는 길이죠.”

캐스크의 종류가 위스키 풍미의 70%를 결정한다. 빌리 워커는 수십 년간 다양한 오크통을 창의적으로 실험하며, 캐스크가 만드는 향의 데이터를 쌓아왔다. 그는 “과감한 실험을 거듭할 수 있었던 건 작은 회사에서 누린 자유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글렌알라키

Chapter 4.
일관성보다 완벽함을 추구한다

글렌알라키는 위스키의 향만 과감하게 실험하는 게 아닙니다. 위스키를 숙성하는 방식과 담는 방식, 파는 방식이 모두 독특합니다. 위스키 업계의 공식과 완전히 달라요. 

대표적인 사례가 배치 생산batch production입니다. 10년 CS 같은 글렌알라키의 시그니처 제품엔 배치 1, 배치 2, 배치 3… 하는 꼬리표가 붙어 나옵니다. 배치는 ‘묶음’이란 뜻입니다. 캐스크의 원액을 한 번에 병에 담아내는 단위죠.

모든 위스키 업계에 배치의 개념이 있습니다. 다른 점은, 보통의 위스키는 모든 배치가 같은 맛을 내도록 애쓴다는 겁니다. 동일한 레시피로 원액들을 조합하죠. 일관성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글렌알라키는 다릅니다. 의도적으로 매번 다른 조합을 골라요. 그해 숙성고에서 가장 훌륭한 캐스크를 모아 그 순간 최고의 배치를 만들죠. 각 배치의 향이 다 다르니 꼬리표를 따로 붙이는 겁니다. 글렌알라키가 업계 관행을 거스르는 또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색소를 쓰지 않는 것. 대부분의 위스키에 캐러멜색소가 들어간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더 예쁜 색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모든 제품을 같은 색깔로 보이게 하려는 겁니다.

Q. 왜 글렌알라키는 색소를 쓰지 않나요.

“위스키의 색은 오크통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는 매번 숙성 방식을 바꾸면서 더 나은 위스키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당연히 위스키 색깔이 늘 달라집니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색소로 감출 필요가 없어요.”

Q. 많은 브랜드가 색소를 첨가해서라도 늘 같은 빛을 내려고 노력하는데요.

“저는 위스키 업계가 역사의 무게를 너무 의식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십 년 사랑받은 향과 맛, 색깔을 계속 지켜야 한다고 여겨요. 그런데 일관성consistency에 매달리다 보면 결국 과거에 갇히게 됩니다. 우리는 일관성보다 완벽perfection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배치를 나눠 판매하는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그렇습니다. 달라질 수 있어야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계속 실험합니다. 모든 배치에서 이전 배치보다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Q. 위스키의 향이란 그저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완벽’이라 말할 땐 더 나은 단계가 있다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향의 조화와 강렬함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라고 말할만한 상태가 있습니다. 다만 100%의 완벽함이란 영원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건 100%야’라고 당신이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더 깊이 있고 더 매력적인 무언가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래서 끝이 없는 거죠.”

Q. 지금까지 만든 위스키 중에서 가장 완벽에 가깝다고 느꼈던 제품이 있나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모든 위스키엔 저마다의 특별한 순간이 있거든요. 글렌알라키 코어 컬렉션Core Collection의 모든 위스키가 훌륭하지만, 제 마음의 중심엔 늘 ‘글렌알라키 15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선 이런 위스키를 두고 ‘진국belter’이라고 불러요.”

빌리 워커는 위스키 업계의 관행과 공식을 거스르며 자기만의 완벽을 추구해왔다. 그는 “100% 완벽함이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위스키로 ‘글렌알라키 15년’을 꼽았다. ⓒ글렌알라키

Chapter 5.
목적을 품고 깨어나는 아침에 대하여

“글렌알라키의 역사는 빌리워커 이전Before Walker과 빌리워커After Walker 이후로 나뉜다.” 영국의 한 위스키 매체는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빌리 워커가 미친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거죠. 증류소를 인수한 직후, 빌리 워커는 묵직한 결정을 잇달아 내립니다.

우선 연간 생산량을 420만 리터에서 100만 리터로 줄였어요. 왜일까요. 원료 발효 시간을 세 배 이상으로 늘렸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생산 공정이 느려졌죠. 하지만 더 오래 발효하면 과일 향이 더 풍성해집니다. 빌리 워커가 원한 글렌알라키의 정체성이 거기 있었던 거예요. 

또 하나. 글렌알라키의 모든 위스키 도수를 46도 이상으로 유지했습니다. 위스키 업계의 표준 도수는 40~43도. 도수를 높이면 그만큼 원액에 물을 적게 섞어야 합니다. 생산량이 줄어들 각오를 해야 도수를 높일 수 있는 거죠. 그런데도 높은 도수를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요. 냉각 여과chill filtering를 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46도 이하의 술은 기온이 내려가면 뿌옇게 변합니다. 지방산이 뭉쳐서예요. 많은 업체는 이 현상을 막으려고 냉각 여과를 합니다. 위스키를 얼려 지방산을 거르는 거죠. 그 과정에서 풍미가 떨어질까 봐, 글렌알라키는 도수를 내리지 않는 겁니다.

발효 시간은 늘리고 위스키 도수를 높이는 것. 회계사가 본다면 둘 다 현명하지 못한 결정일 겁니다.

Q. 사업적으로는 최고의 결정이 아닐 텐데요. 

“들어보세요. 증류소를 인수한다는 건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 증류소의 역사와 유산을 존중하고, 당신 개인이 아니라 증류소를 위한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글렌알라키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나를 믿었어요. 내가 증류소를 발전시키고 더 나은 위스키를 내놓을 거라 생각한 거죠. 나는 그게 고마웠고, 지금껏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해 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Q. 당신은 증류소를 소유하고 있지만, 증류소를 마음대로 운영하지는 않는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제게는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저는 증류소를 사들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증류소를 영원히 가질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떠나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니 증류소의 역사에서 보자면 저는 관리자custodian에 불과합니다. 증류소를 잘 관리하고, 진정성integrity을 지키고, 평판이 깎이지 않게 하는 것이 저의 책임이죠.”

Q. 은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저는 매일 아침 목표를 품고 일어납니다. 일어나자마자 ‘실험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매주 400개 위스키 샘플의 향을 맡습니다. 이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엇을 실험해 볼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요. 저는 이 일이 너무 즐거워요.”

Q. 당신에게 이건 일job이 아닌 것 같은데요. 

“맞아요. 이건 집착obsession이에요. 매우 즐겁고 보람찬 집착입니다.”

빌리 워커(왼쪽)과 그의 후계자 로난 커리(오른쪽). 빌리 워커는 글렌알라키를 인수한 이후 위스키 발효 시간을 세 배 이상 늘렸고, 업계 표준보다 더 높은 도수를 유지한다. 경제적이지 않은 결정이지만, 풍성한 과일 향과 풍미를 위한 그의 고집이다. ⓒ글렌알라키


롱블랙 프렌즈 B 

각 나라 오크통의 특징과 거기에서 나오는 화학 성분을 열거할 때, 거장의 눈은 어린아이처럼 빛났습니다. 오크통에서 나오는 넛맥과 시나몬, 코코넛과 바닐라 풍미에 대해 얘기하다가 문득 웃더군요.

“나는 이런 얘기를 몇 시간 동안 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빌리 워커는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도 들려줬습니다. 과거 한국에서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의 초기 블렌딩을 담당한 적이 있다는 겁니다. 그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 시장에만 단독으로 선보일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귀띔했습니다.
*2025년 11월, 글렌알라키는 한국 전통 문양인 ‘단청’에서 영감을 받은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였다.

54년 간 하나의 일에 몰두해 온 사람. 그러나 여전히 지치지 않고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 그의 생애를 엿본 것이 제게는 행운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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