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할 자유를 선물하는 상 : LG가 세상에 ‘인류애’를 퍼뜨리는 법

2026.06.29

이 노트는 ㈜LG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브랜디드 콘텐츠, 위드롱블랙을 더 알아보세요.


롱블랙 프렌즈 B 

얼마 전 광화문을 지나다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거대한 전광판에 낯선 풍경이 흘러가고 있었거든요. 도시 같기도, 지도 같기도 한데, 어딘가 비틀려 있어요. 사람의 눈이 아니라 기계의 눈으로 본 세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화면 한쪽에 이름이 떴어요.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 그리고 또 한 줄. LG 구겐하임 어워드.

구겐하임. 뉴욕 맨해튼의 대표적 현대 미술관이죠. 달팽이처럼 생긴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LG와 구겐하임이라니. 두 브랜드가 어쩌다 함께 어워드를 만들게 됐을까요.

찾아보니 LG와 구겐하임의 협업은 이미 2022년 시작됐더군요. 페글렌은 이 상을 받은 네 번째 작가고요. 제가 광화문에서 본 그 작품은, 같은 날 뉴욕 타임스퀘어와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의 전광판에도 내걸렸죠.

이 어워드를 처음부터 설계하고 이끌어 온 사람을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에서 만났습니다. 박설희 ㈜LG 브랜드 담당 수석전문위원이었죠.

처음엔 그냥 이 상이 궁금했어요. 하지만 다섯 시간에 걸친 이야기는 브랜딩과 시대정신, 예술과 기술에 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갔습니다.

Chapter 1.
브랜딩·기술·예술을 모두 경험한 사람

LG 구겐하임 아트&테크 파트너십.

LG와 구겐하임은 2022년 이 타이틀로 처음 손을 잡았습니다. 두 브랜드와 예술과 기술이 뒤섞인 이름. 낯선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박설희 수석의 이력에 이 모든 키워드가 들어가 있더군요. 이 세 가지 세계가 그에겐 매우 친숙한 것이었어요.


역가의 눈으로 예술과 기술을 배우다

그는 스스로를 번역가translator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세계를 쉬운 말로 바꿔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사람이라고요.

처음엔 브랜드 컨설턴트였습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2004년 글로벌 컨설팅사 랜도Landor의 한국 지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죠.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브랜딩이 본격화되던 시점이었습니다. 랜도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재계의 굵직한 브랜딩 작업을 맡았죠. LG·GS·아시아나·국민은행... 1년여 브랜드 컨설턴트로 일한 그는 가슴이 뛰었다고 해요. 더 치열한 현장을 보고 싶어, 손을 들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 근무를 지원했죠.

“서울을 돌아다니면 랜도가 만든 로고로 도시가 뒤덮여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정도로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많았죠. 기업의 존재 의미를 정의하고 그걸 시각적으로 풀어 해석하는 일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대로 경험하고 싶어 ‘본사에 가고 싶다’고 지원했어요.”

이곳에서 그는 기술technology의 세계를 만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7 브랜딩 작업이에요. 한때 모두의 컴퓨터 첫 화면이던, 휘어진 격자무늬 창문의 이미지*가 박설희 수석의 프로젝트로 나왔습니다.
*디지털 아티스트 척 앤더슨Chuck Anderson과 협업해 만든 이미지로 정식 명칭은 ‘하모니harmony’다.

“기술이 얼마나 창의적인 세계인지 그때 깨달았어요. 기술의 발전 과정을 생각해 보세요. 정말 무수한 실패 끝에 인류의 삶을 바꾸는 혁신이 나오죠. 기술자technologist들은 아주 선명한 상상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혁신을 탄생시킬 때까지 버티는 거라 생각해요. 그게 참 멋지더라고요.” 

랜도에서 7년을 일한 그, 돌연 사표를 냅니다. 어려서부터 품었던 예술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때문이에요. 그는 뉴욕으로 날아가 세계적 경매 회사 소더비Sotheby’s의 석사 과정에 들어갑니다. 학생의 신분으로 경매장과 갤러리, 미술관과 아트페어가 돌아가는 방식을 배웠어요.

그는 “브랜딩을 공부한 덕에 예술을 더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브랜딩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 것이 출발이잖아요. 예술 역시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작가는 무슨 질문에 답하려고 이 작품을 내놓았을까, 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이 통한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롱블랙과 인터뷰 중인 ㈜LG 박설희 브랜드 담당 수석전문위원. 랜도에서 브랜딩을, 소더비에서 미술을 배운 그는 “브랜딩의 본질은 기업의 존재 이유를 세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롱블랙

Chapter 2.
식별을 넘어 의미로

박설희 수석이 LG에 합류한 건 2020년. 당시 그는 뉴욕에서 본인의 브랜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블루문 맥주 같은 소비재부터 인텔 같은 큰 기업의 프로젝트까지 맡고 있었죠. 그러던 중, LG와 함께할 기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대요. 

“미소 띤 사람 얼굴 모양의 지금의 LG 마크를 1995년에 랜도가 만들었어요. 랜도의 한국 진출작이었죠. 제가 입사하기 전이었지만, 워낙 중요한 역사라 저도 LG 마크를 볼 때마다 한 번 더 마음이 가곤 했죠.”

그는 LG의 기업 스토리가 아름답다고 늘 생각했대요. LG라는 이름의 뿌리가 락희樂喜인 것이, 깊은 의미가 있다고요.

“LG는 처음부터 사람을 중심에 두고 고민을 해 온 회사예요. 창립 당시의 이름만 봐도, ‘즐거울 락, 기쁠 희’. 사람들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오르면 좋을까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니까요.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LG의 철학은, 제가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내내 가졌던 근본적인 고민에 대한 해답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정은 빨랐습니다. 랜도의 미국 본사에 지원하고, 소더비의 석사 과정에 등록하던 때처럼 과감했죠. 3주 만에 뉴욕의 짐을 싸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어요. 20년 가까운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한국 기업에 취직한 셈이었죠.

박설희 수석의 역할은 LG라는 이름과 마크, 브랜드의 자산을 지키고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그는 LG라는 브랜드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고민했습니다. 답은 선명했어요. 가진 것은 인지도, 채워야 할 것은 의미였죠.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지도가 어마어마하더군요. 마크만 보여주면 세계 시민들 모두가 그것이 LG 마크라는 걸 알죠. 선배님들이 해놓으신 일이 정말 엄청난 거예요. 그런데 다소 비어있는 건 의미였어요. 이 마크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그것이 없었죠.” 

그 마크를 보고 냉장고나 세탁기만 떠올라선 안 된다고, 박 수석은 생각했어요. 

“제조 기술력만 높다고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어떤 철학에 의해서 이걸 만든다는 게 인지되는 브랜드, 그걸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불러요.”

식별을 넘어 의미로.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였어요. 그 의미의 자리에 무엇을 놓을 것인가.

LG라는 이름의 뿌리가 된 ‘락희(樂喜)’에는 ‘즐거울 락, 기쁠 희’라는 뜻이 담겨 있다.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고민해 온 LG의 철학이 반영돼있다. ©㈜LG

Chapter 3.
시대 정신을 읽는다는 것

의미의 자리에 무엇을 놓을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박설희 수석은 한 독일어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 한국어로 ‘시대정신’이란 뜻입니다. 

“예술가든 기업이든, 시대를 풍미한다는 것은 얼마나 시대정신에 충실했느냐로 판가름 난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읽고, 그걸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거죠.”

그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을 예로 들었어요. 

“앤디 워홀이 콜라병을 그린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그 전까지 예술적 재능은 주로 종교적 권위나 귀족의 여흥에 소비되곤 했어요. 그런데 전후 미국에서 대량 소비가 시작되면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예술적 재능이 대중을 향해 발휘됐어요. 콜라병과 수프 캔의 패키지와 광고가 심미적 재능과 언어적 재치의 집약체가 된 거죠. 워홀은 그 변화를 읽은 거예요. 그래서 슈퍼마켓에서 파는 콜라병을 캔버스 위에 올리지 않았을까요.”

브랜딩도 다르지 않다고 그는 말합니다. 한 기업이 시대를 읽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정의하는 일. 그런 면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과 예술가는 비슷한 일을 하는 셈이에요.

박설희 수석은 기술 기업인 LG의 존재 이유와 첨예하게 맞닿은 지금의 시대정신이 뭘지 고민했어요. 

“먼 미래, 500년쯤 뒤에 인류 문화사를 정리한다면 2020년대는 어떻게 기록될까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기술 변화가 가팔랐던 시기, 그래서 기술 기업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컸던 시기였다고 돌아보지 않을까요?”

기술이 인간의 삶을 가장 깊이 바꾸는 시대. 그래서 더 절박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 기술이 과연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 박설희 수석은 이 질문을 LG의 한가운데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술과 기술을 잇기로 한 건 그래서입니다. 앞서 말했듯, 예술가들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잖아요. 

LG는 특히 ‘기술을 주제로 다루는 예술가’들에 주목했어요. 가장 앞선 기술을 재료로 삼고, 기술에 대한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던지는 작가들 말이에요. 

“그들이 던지는 질문이 LG가 던지는 질문과 정확히 똑같아요. ‘기술이 과연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죠. LG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기술이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 물으며 제품을 만들어왔죠. 예술가들과 손을 잡고 이 질문을 더 멀리 퍼뜨린다면, LG의 철학이 더 멀리 퍼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예술과 손잡고, 기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함께 던진다. 그 장치로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만든 겁니다.

“어워드는 우리의 가치관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신호예요. 노벨상을 떠올리면 쉽죠. 어떤 분야에 상을 준다는 건, 우리가 그 가치를 중요하게 본다는 선언이니까요.”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통해 LG는 “‘기술이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지자”고 세상에 선언한 셈입니다.

박설희 수석은 “어워드란 곧 시대정신의 선언”이라고 밝혔다. 마치 노벨상처럼, 어떤 분야에 상을 준다는 것은 그 시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세상에 퍼뜨리는 장치라는 것이다. 트로피 디자인은 디지털 기술의 상징인 ‘0’과 ‘1’ 두 숫자의 형태가 다이나믹하게 교차하는 순간을 조형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LG

Chapter 4.
후원사가 아닌 파트너가 된다는 것

시대를 읽는 예술과 손잡고,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 이를 위해 어워드를 만든다. 남은 고민은 ‘누구와, 어떻게’예요. 

LG가 구겐하임과 손잡은 데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959년 맨해튼에서 문을 연 이 미술관은 현대성으로 유명합니다. 백과사전식으로 모든 시대의 작품을 망라하지 않아요. 지금 가장 도전적인 질문을 내거는 작품을 수집하죠. 칸딘스키를 가장 먼저 알아본 미술관, 인터넷을 재료로 한 넷 아트Net Art*를 처음 영구 소장한 미술관이에요. 세계 미술관 중 최초로 비디오 아트 복원 랩을 만들기도 했고요.
*인터넷 환경을 재료이자 무대로 삼는 현대 미술. 

“구겐하임은 옛 거장의 작품을 모셔두는 미술관이 아니에요. 이 시대를 가장 빨리 읽는 작가들을 알아보는 곳이에요. LG 역시 늘 삶의 접점에서 사람들을 만나왔죠. 세계적 미술관 중 드물게 글로벌 확장*을 한다는 점도 LG의 정신과 닿아 있다고 여겼습니다.”
*구겐하임은 뉴욕 본관 외에 이탈리아 베네치아, 스페인 빌바오에 분관이 있으며 곧 중동 아부다비에도 분관을 열 계획이다. 

LG와 구겐하임은 여러모로 기존 ‘미술관 후원’과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우선 브랜드명 병기. 보통 기업이 후원하는 어워드는 후원사 이름을 내거는 경우가 많거든요. LG는 구겐하임과 나란히 이름을 걸고 ‘파트너십’을 강조했어요. 

두 번째는 수상자 선정. 매년 글로벌 아트&테크 전문가 수십 명이 수상 후보를 추천하고, 다섯 명의 최종 심사 위원이 만장일치로 수상자를 냅니다. LG는 수상자 선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아요. 심사 위원단이 ‘글로벌’ 예술상의 취지에 걸맞게 구성되는지만 살피고 피드백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금.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매해 수상자에게 10만 달러(약 1억5300만원)의 상금을 전합니다. 수상자가 작품을 제출하거나 전시를 열어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상금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제한이 없는 거예요. 이런 방식이 독특한 일이냐고요? 최근 상을 받은 트레버 페글렌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이 어워드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아이디어까지도 탐구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지적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죠.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실패할 자유,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탐색할 자유를 주니까요.”

박설희 수석은 이 소감을 듣고 눈물이 났대요. “대본을 써서 건넨 것도 아닌데, 작가가 LG의 의도를 그대로 느끼고 자신의 언어로 들려줬다”는 거였죠. 

그럼 자유를 건네받은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구겐하임 미술관은 시대상을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작가들과 함께해 왔다. 매년 어워드가 열리는 날이면, 구겐하임 외관엔 LG와의 파트너십을 알리는 문구가 투사된다. ©㈜LG

Chapter 5.
이토록 다른 네 사람을 묶는 것

이 상을 받은 작가는 지금까지 넷입니다. 스테파니 딘킨스Stephanie Dinkins, 슈 리 칭Shu Lea Cheang, 김아영, 그리고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 세대도 국적도, 다루는 매체도 제각각이에요. 공통점을 찾으려 하면 오히려 길을 잃습니다. 박설희 수석도 그랬대요. 

그런데 직접 만나 보니, 이들을 묶는 단 한 가지 특징이 보였다고 합니다.

“작가님들의 사진만 보면 모두 에너지가 남달라 보여요. 워낙 실험적인 예술을 하시는 분들이라 에고ego가 강하실 거란 선입견도 생기죠. 그런데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한 분 한 분이 다 너무 따뜻하고 다정하세요. 무엇보다 ‘인류애’가 강한 분들이에요. 인간에 대한 고민을 누구보다 깊이 하고 계셨죠.”

그 인류애가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한 사람씩 보겠습니다.

스테파니 딘킨스 : 데이터는 누구를 지우는가

첫 수상자 스테파니 딘킨스는 미국 스토니브룩 대학의 교수예요. 까탈스러운 예술가를 떠올렸다면 빗나갑니다. 수수한 연구자에 가까운 사람이죠. 그는 관객과 대화하는 AI 봇을 조각으로 만듭니다. 어떤 데이터를 넣느냐에 따라 그 봇이 갖는 세계관이 달라진다는 걸, 관객이 직접 말을 걸어보며 깨닫게 하죠. ‘기술이 누구의 데이터로 배우는가, 그래서 누구를 비추고 누구를 지우는가.’ 결국 사람을 향한 질문을 던진 거예요.

슈 리 칭 : 정보는 모두에게 닿아야 한다

두 번째 수상자 슈 리 칭은 넷 아트의 선구자예요. 인터넷 창이라는 형식 안에 예술을 구현한 그의 작품은, 구겐하임이 영구 소장한 최초의 넷 아트가 됐죠. 2002년엔 행위 예술의 일환으로 맨해튼 거리에 마늘 냄새를 퍼뜨렸어요. 냄새가 공기를 채우듯, 데이터도 그렇게 누구에게나 닿아야 한다는 의미였죠. 공공 와이파이wifi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의 상상이었어요.

“상을 받으실 때 이미 일흔에 가까운 나이였어요. 그런데 지금도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다 만져보고 혼자 실험해 보세요. 눈을 빛내면서 ‘이번에 나온 AI로 이런 걸 해봤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호기심이 정말 멋졌죠.”


김아영 : 한 사람의 삶이 궁금해서

세 번째 수상자는 한국 작가 김아영이에요. 대표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코로나 시기에 시작됐죠. 음식 배달이 폭증하던 그때, 배달앱 뒤 노동자의 삶이 궁금해진 거예요. 

“김아영 작가는 오토바이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그 움직임이 춤 같다고 생각했대요.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캐릭터를 상상했어요. 작품을 만들려고 직접 배달 오토바이 뒤에 타고 도시를 쫓아다녔다고 해요.”

결국 사람에 대한 궁금증으로 사회를 바라본 작품이죠. 상을 받은 시점을 기점으로, 김아영 작가의 국제적 존재감은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트레버 페글렌 : 기술이 누군가를 함부로 분류할 때

그리고 올해 수상자 트레버 페글렌. 광화문 전광판에서 제 발걸음을 멈춰 세운 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사진 속 인상은 단단하고 엄격해 보이지만, 그의 작업은 가장 인간적인 질문을 향해 있어요.

그는 한 인공지능 이미지 분류 체계*가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을 파헤친 작가입니다. 예를 들면 유색 인종의 이미지에 인종차별적 분류가 따라붙어 있었죠. 해당 분류 체계는 닷새 만에 문제의 이미지 60만여 장을 삭제했습니다. 그에게 기술은 작품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어요. 파고들어야 할 주제 그 자체였습니다.
*2019년 작업 「이미지넷 룰렛」. 이미지넷은 머신러닝 학습에 널리 쓰이는 이미지 데이터셋이다.

네 사람의 배경엔 공통점이 없어요. 그런데 작품 아래에는 똑같은 마음이 흐릅니다. 

데이터가 누구를 지우는지, 정보가 모두에게 닿는지, 노동자의 삶은 어떤지, 기술이 누군가를 함부로 분류하지 않는지. 다른 매체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기술이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 그것이 박설희 수석이 포착한 ‘인류애’일 겁니다. 

제4회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 트레버 페글렌. 그는 인공지능 이미지 분류 체계의 편견과 왜곡을 파헤치며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LG

Chapter 6.
AI 시대, 기업이 정말로 던져야 할 질문

브랜딩은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박설희 수석이 인터뷰 내내 거듭 강조한 말이에요. 마크 하나에 의미를 입히는 일은, 광고 한 편으로 되지 않는다고요.

“브랜드의 의미는 광고만으로 생기지 않아요. 회사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무엇에 투자하고 어떤 문화를 갖는지가 오래 쌓여야 비로소 만들어지죠. 그래서 긴 호흡으로 밀고 가야 합니다. 사실은 예술적 성취나 기술적 혁신도 똑같고요.

이 어워드도 이제 막 다섯 해를 채워가는 참이에요. 아직 가는 길이지만, 방향은 분명해요. 왜 우리가 이 상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는지를 두고, 산업계와 문화계에서 많은 대화가 오가고 있어요. 그래서 맞게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 긴 일을 시작해야 했을까요. 박설희 수석은 조금 커다란 답을 내놨습니다.

“AI가 점점 더 많은 걸 대신해 줄수록,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건 의도성intentionality이에요. AI는 프롬프트를 넣지 않으면 스스로 궁금해하지 않잖아요. 무엇을 물을지 정하는 것, 질문을 품는 것, 그게 의도성이죠. 그리고 그 의도성은 결국 인류애에서 나온다고 저는 생각해요. 사람을 향하는 마음이 있어야, AI에게도 더 좋은 일을 시킬 수 있으니까요.”

기술이 답을 척척 내놓는 이 시대, ‘기술이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LG 한 회사의 질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질문이죠.

박설희 수석은 “예술가와 기술 기업은 같은 시대정신을 읽고, 각각 ‘작품’과 ‘제품’이라는 다른 답을 내놓을 뿐”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선 예술과 기업이 닮았다는 것이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B

글을 닫으며, 광화문의 그 전광판을 다시 떠올립니다. 기계의 눈으로 본 비틀린 세상이 흐르던 화면. 처음엔 그저 낯설고 궁금했죠. 

지금 다시 그 화면을 보면 다르게 보일 것 같습니다. “기술이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함께 떠오르지 않을까요. 

만약 LG 마크를 볼 때마다 이 질문이 떠오른다면,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제 할 일을 분명히 한 거겠죠. 유례없이 독특한 이 브랜딩 실험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집니다.

2026년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인 트레버 페글렌이 수상 소감을 전하고 있다. (우측부터 트레버 페글렌, ㈜LG 브랜드담당 박설희 수석전문위원,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및 재단의 관장 겸 CEO 마리엣 웨스터만) ©㈜LG
제2회 수상자 슈 리 칭(오른쪽)이 구겐하임 미술관의 LG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 노암 시걸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1세대 넷 아트를 선보인 그는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새로운 기술과 작품을 적극적으로 융합하고 있다. ©㈜LG
박설희 수석은 “예술가와 기술 기업은 같은 시대정신을 읽고, 각각 ‘작품’과 ‘제품’이라는 다른 답을 내놓을 뿐”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선 예술과 기업이 닮았다는 것이다. ©롱블랙
LG전자 미국법인이 후원하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영 컬렉터스 카운슬(YCC)’ 파티 행사장. 매년 5월 뉴욕 현대미술 주간에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리는 젊은 컬렉터들의 커뮤니티다. ©㈜LG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2026년 어워드 세리머니 현장. LG와 구겐하임은 상금 10만 달러의 사용처를 제한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예술적 실험을 돕기 위해서다. ©㈜LG
제1회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 스테파니 딘킨스. 그는 관객과 대화하는 AI 봇 조각을 통해 ‘기술이 누구의 데이터로 배우고 있으며, 누구를 지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LG
지난 4월, LG 구겐하임 어워드 제4회 수상자 트레버 페글렌의 작품이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전광판에 소개되고 있다. LG는 수상자 선정 직후, 매년 세계 주요 도시의 전광판을 통해 특별 축하 영상을 상영하며 글로벌 전역에 LG 구겐하임 어워드의 수상을 축하해오고 있다. ©㈜LG
제3회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인 한국의 김아영 작가(왼쪽)의 퍼블릭 프로그램 현장.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수상자들이 작품 세계를 대중에게 직접 설명하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LG
트레버 페글렌의 대표작 「이미지넷 룰렛」(2019).  관객이 카메라 앞에 서면 AI가 얼굴을 스캔한 뒤, 알고리즘이 분류한 태그를 띄워주는 방식이다. AI가 인간을 왜곡되고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걸 폭로한 작업이다. ©트레버 페글렌

2026년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인 트레버 페글렌이 수상 소감을 전하고 있다. (우측부터 트레버 페글렌, ㈜LG 브랜드담당 박설희 수석전문위원,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및 재단의 관장 겸 CEO 마리엣 웨스터만)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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