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여성용’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나요. 흔히 더 작은 크기, 더 부드러운 색, 더 화려한 장식을 떠올립니다. 옷이나 신발, 향수처럼 성별이 뚜렷이 나뉘는 제품일수록 더 그렇죠.
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성에겐 초정밀 기술을 담은 기계식 시계를, 여성에겐 작고 우아한 주얼리 시계를 권하죠. 여성은 기술보다 디자인, 또는 보석의 크기에 더 관심 있을 거라 단정하면서요.
이런 이미지에 맞서 온 브랜드가 있습니다.
리차드 밀Richard Mille. 평균 가격이 4억원대인 스위스의 초럭셔리 시계 브랜드죠. 이들은 창립 4년 만인 2005년, 시장성조차 불분명한 ‘여성 기계식 시계’를 내놓았어요.
그로부터 20년, 리차드 밀의 여성 컬렉션은 이제 브랜드 매출의 40%를 차지합니다. 미국 시계 전문지 호딩키Hodinkee는 리차드 밀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여성 시계 제조사”로, 글로벌 시계 미디어 레볼루션Revolution은 “남성적인 소재를 여성의 우아함으로 바꾼 브랜드”로 평가하죠.
럭셔리 시장에서 새 고객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랜 취향과 관습이 곧 ‘브랜드의 가치’로 통하니까요. 검증되지 않은 도전은 정체성을 흔들 수도 있죠. 그렇다면 리차드 밀은 왜 수요조차 보이지 않던 여성 시장에 뛰어든 걸까요?
그 이유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아만다 밀Amanda Mille을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창업자 리차드 밀의 딸이자, 브랜드・파트너십 디렉터를 맡고 있죠. 그는 럭셔리 브랜드야말로 “업계의 기준을 바꿀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인지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Chapter 1.
바닥에 던져도 되는 럭셔리
아만다 밀이 기억하는 아버지 리차드는 ‘무모할 만큼 대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이 쉰에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내 성에 차는 시계를 만들겠다”며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세웠으니까요.
*시계 회사 수출 담당 매니저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이후 프랑스 보석상 모부생Mauboussin의 시계 부문 대표를 지냈다.
“아버지가 보여준 가장 큰 용기는,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한 일이에요. 쉰 살에 자신의 꿈을 좇는 데는 엄청난 위험이 따르니까요. 전 그 선택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 기억은 지금도 저와 남동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죠.”
_(이하) 아만다 밀 리차드 밀 브랜드・파트너십 디렉터, 롱블랙 인터뷰에서
리차드는 막대한 자본을 가진 창업자가 아니었습니다. 생활비와 개발비를 마련하려 다른 시계 브랜드의 컨설팅을 병행하곤 했죠. 첫 제품을 준비할 땐 가족에게 “이게 실패하면 두 번째 시계는 없다”고 말했어요.
그의 대담함은 첫 프로토타입이 완성된 날에도 드러났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인 바비큐 파티에, 리차드가 시계를 차고 나타났을 때였어요.
사람들은 혹여 흠집이라도 낼까, 시계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아 들었습니다. 그러자 리차드는 시계를 돌려받아 그대로 바닥에 던졌어요. “너희는 이 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서요.
“우린 놀라서 ‘세상에, 미쳤어요?’라며 소리쳤어요. 하지만 그 장면이야말로 아버지의 목표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그가 만들려던 시계는 진열장 속 귀중품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시계’였던 거예요.”

Chapter 2.
미친 사람들이 진지하게 일하는 곳
리차드 밀의 집착은, 2001년 처음 내놓은 시계 ‘RM 001’에 녹아들었습니다. 당시 고급 시계의 가치는 오랜 역사, 다이아몬드 같은 값비싼 소재로 증명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브랜드엔 내세울 역사도, 정체성도 없었죠.
대신 리차드는 남들이 하지 않는 ‘극한의 도전’에 뛰어들었습니다. RM 001의 무브먼트를 받드는 판에, 우주선과 레이싱카에 쓰이던 티타늄을 적용*한 겁니다. 가볍고 단단하지만 가공하기 까다로운 소재로, 럭셔리의 가치를 무게가 아닌 ‘성능’으로 증명하려 했죠.
*RM 001의 무게는 손목 밴드 포함 40g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주 작은 디테일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는 흥미로운 소재를 발견하면 늘 묻죠. ‘보기엔 좋은데, 이걸 시계에도 녹일 수 있을까?’라고요. 곧바로 수백 번의 테스트가 시작되고, 때론 소재 하나를 위해 시계를 만드는 방식을 전부 바꾸기도 합니다.”
리차드 밀의 제품은 생김새도 남달랐습니다. 원형이 주류였던 시계 시장에서, 와인의 오크통처럼 길쭉한 ‘토노Tonneau 케이스’를 내세웠어요. 케이스 전체를 손목의 곡선에 맞게 휘어, 크기가 커도 손목을 감싸도록 설계했죠.
RM 001의 가격은 13만5000달러. 한화로 약 2억원에 달했습니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신생 브랜드의 첫 시계로는 파격적이었죠. 단 17점만 만든 이 시계에 수백 건의 주문이 몰렸어요.
그뒤 리차드 밀은 테니스 코트와 F1 트랙으로 향했습니다. 선수들이 경기에서 시계를 착용하며, ‘한계를 견디는 럭셔리’라는 새 영역을 열었죠. 아만다는 그 출발점에 “새로운 발상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라는 아버지의 질문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늘 말했어요. ‘나 자신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지만, 내가 하는 일만큼은 진지하게 대한다’고요. 재밌는 아이디어를 내면서도, 이를 완성하는 데엔 장난치지 않는 거예요. 리차드 밀은 ‘미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아주 진지하게 일하는 브랜드’인 셈이죠.”

Chapter 3.
여성은 두 번째 고객이 아니다
규칙을 깨는 사고방식은 여성 시계로 이어졌습니다. 2005년, 리차드 밀은 브랜드를 시작한 지 불과 4년 만에 첫 여성 시계 RM 007을 내놓았죠. 출발점은 단순했습니다. ‘여성이라고 우리의 기술에 관심이 없을까?’
RM 007은 당시 여성 시계의 문법을 다시 썼습니다. 세로 길이가 약 45mm에 이르는 큼직한 케이스를 택했어요. 내부의 기계 장치도 감추지 않았죠. 톱니바퀴와 무브먼트의 움직임이 그대로 보이도록요.
귀금속마저 ‘성능을 위한 부품’으로 활용했습니다. 자동 무브먼트의 로터rotor*에 지름 0.8mm의 작은 18K 금구슬 100여 개를 넣었어요. 손목이 움직일 때 금구슬이 모래처럼 흐르며 시계의 균형을 부드럽게 잡았죠.
*손목의 움직임을 동력으로 바꿔, 시계 태엽을 자동으로 감는 회전 부품
“‘시계에 다이아몬드만 얹으면 여성들이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에, 우린 반대했습니다. 기술의 경이로움을 누리는 데에 남성 여성이 어디 있나요. 대부분의 시계 브랜드가 크고 무거움을 자랑하는 ‘남성적인 발상’으로 세계관을 만들었기에, 여성이 접근하기 어려웠을 뿐이죠.”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습니다, “이미 아름다운 여성 시계가 넘쳐나는데, 굳이 기계식 시계가 필요하냐”는 질문이 뒤따랐죠. 리차드 밀은 논쟁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주어지지 않았던 선택지를 내놓으면, 언젠가 고객이 그 가치를 알아볼 거라 믿었어요.
그 뚝심은 2014년 출시한 RM 037에서 한 번 더 증명됩니다. 보통 기계식 시계는 작은 크라운을 손끝으로 잡아당긴 뒤 돌려 날짜와 시간을 조정합니다. RM 037은 날짜 변경과 기능 선택을 두 개의 버튼으로 나눴어요. 긴 손톱으로 작은 크라운을 반복해 잡아당겨야 하는 불편을, 기술로 해결한 겁니다.
“리차드 밀의 여성 시계는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장신구가 아니에요. 매일 착용하는 일상용품이죠. 온종일 손목에 차고 여러 일을 해내려면, 착용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편해야 해요. 그래서 리차드 밀은 여성이 겪는 작은 불편을 관찰하고, 그 배려를 기술로 구현하려 합니다.”

Chapter 4.
시계를 파는 대신 ‘관계’를 쌓은 이유
여성 시계를 만들었다고 고객이 곧바로 찾아온 건 아닙니다. 초창기 리차드 밀의 부티크는 어두웠고, 모터스포츠 중심의 이미지로 가득했어요. 여성 고객이 ‘나를 위한 공간은 아니다’라고 느끼기 쉬웠죠.
“여성 시계는 분명 존재했지만, 정작 여성들은 부티크에 편하게 들어오지 못했어요. 제품만 내놓으면 고객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여성에겐 시계를 이해하고, 직접 경험하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2014년 아만다 밀이 브랜드에 합류한 것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영진은 그에게 “중동으로 건너가 여성 고객과 브랜드 사이의 거리를 좁혀달라”고 요청했죠.
“저는 회사에 합류하기 전에 오랫동안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산업에서 일했어요. 파리에서 액세서리를 팔고, 런던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사람을 맞이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법을 익혔죠. 전 사람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두바이에 자리 잡은 아만다, 여성 고객들과 차와 커피를 마시며 매일 오후를 보냈습니다. 그들이 어떤 옷을 입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관찰했어요. 또 시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물었죠. 판매보다 대화가 먼저였던 거예요.
“초기엔 직원들도 여성용 시계 권하는 일을 어려워했어요. 남성 고객에게 기술과 성능을 설명하는 방식에 익숙했기 때문이죠. 전 여성 고객이 시계의 정보뿐 아니라, 그것을 찬 자신의 모습까지 보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만다는 매장에 전신 거울을 들였습니다. 여성 고객은 손목 위 시계만 보지 않으니까요. 옷과 가방까지 어우러진 모습을 함께 살피며, 시계가 자신에게 맞는지 판단했죠.
아만다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원칙은 ‘솔직함’이었습니다. 그는 한 왕족 고객과의 일화를 들려줬어요. 여성이 값비싼 시계를 골랐지만, 아만다는 그 제품이 고객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구매를 말렸죠.
“그분께 ‘죄송하지만 이 시계는 당신을 돋보이게 하지 않아요’라고 말씀드렸어요. 판매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지만, 전 어울리지 않는 제품을 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객은 우리의 마음을 금세 알아보거든요. 전 고객에게 선호하는 옷차림과 생활 방식을 다시 물었고, 더 어울리는 시계를 제안했죠.”
그가 고객에게 보여준 환대는 숫자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여성 고객 비중은, 4년 뒤 약 30%까지 늘었죠. 제품은 있었지만 들어올 문이 없던 고객에게, 먼저 말을 건넨 결과였어요.

Chapter 5.
홍보 모델 대신 ‘함께 답을 찾는 동료’
많은 럭셔리 브랜드는 유명 배우나 가수, 선수를 앰배서더Ambassador로 세웁니다. 이들의 명성과 이미지를 빌려 브랜드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거예요. SNS나 행사에 제품과 함께 등장하곤 하죠.
효과적인 마케팅이지만, 관계의 중심엔 대개 ‘철저한 계약’이 있습니다. 활동 기간과 노출 횟수, 독점 조항이 정해지죠. 스타의 인기나 이미지가 달라지면 관계도 끝날 수 있고요.
반면 리차드 밀은 ‘앰배서더’를 데려오지 않습니다. 광고를 위한 얼굴 대신, 브랜드와 오랫동안 함께 할 ‘파트너’를 찾는다고 말하죠.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란에도 ‘친구와 파트너Friends & Partners’라는 이름을 쓰죠.
그 면면도 다양합니다.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F1 드라이버 샤를 르클레르Charles Leclerc, 배우 양자경Michelle Yeoh, 뮤지션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아요.
이들과의 관계는 무엇이 다를까요. 아만다는 파트너의 유명세나 성적 대신 다른 것을 묻습니다. ‘시계를 주제로 오랫동안 이야기 나눌 준비가 되었는가’, ‘인간 대 인간으로 오래 함께하고 싶은가.’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인간적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함께 할 수 없어요. 파트너십은 사진 몇 장을 찍고 끝나는 일이 아니니까요. 좋은 순간과 힘든 순간을 모두 나눌 사람이어야 합니다.”
양자경과의 관계가 대표적입니다. 두 사람은 2011년부터 15년 넘게 함께하고 있어요. 양자경은 광고에 시계를 차고 등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 주얼리 시계 두 점의 디자인에 직접 참여했죠.
첫 작품 RM 051엔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봉황을 무브먼트 위에 펼쳤습니다. 2014년 내놓은 RM 51-01에는 투르비용을 움켜쥔 용과 호랑이를 담았죠. 양자경의 아시아적 미감과 리차드 밀의 기계 기술을 하나의 시계로 엮은 겁니다.
아만다가 말하는 파트너십은 ‘가족’에 가깝습니다. 고객부터 직원, 언론인, 유명인까지.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활동을 멈추거나 은퇴해도 브랜드의 일원으로 남아요.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고 믿어요.
“한 번 브랜드에 들어온 사람은 ‘가족의 일원’이 됩니다. 활동을 멈추거나 은퇴해도 변함없죠. 업계에선 저를 미쳤다고 말하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브랜드란 결국 관계를 쌓는 게 전부예요. 친밀한 파트너와는 계약서조차 쓰지 않는 이유죠.”

솔직한 목소리로 완성한 시계
오래 쌓은 신뢰는 솔직한 피드백으로 돌아옵니다. 특히 스포츠 선수들은 완성된 시계를 받아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았어요. 실제 경기에서 시제품을 시험하고, 작은 불편까지 숨김없이 전하죠.
그 관계에서 태어난 제품이 2023년 출시된 여성 스포츠 시계 ‘RM 07-04 오토매틱 스포츠’입니다. 골프 선수 넬리 코다Nelly Korda, 7종 경기 선수 나피 티암Nafi Thiam, 스키 선수 에스터 레데츠카Ester Ledecka 등 여섯 명의 여성 파트너가 개발에 참여했어요.
종목마다 요구 사항이 달랐습니다. 골프 선수에겐 스윙을 방해하지 않는 가벼움이, 높이뛰기 선수에겐 바에 부딪혀도 견디는 내구성이 중요했죠. 그렇게 9년의 개발 끝에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시계가 나온 겁니다.
“실험실에선 충격과 진동을 숫자로 측정할 순 있어요. 하지만 기계는 ‘여기가 아프다’거나 ‘이 동작에서 거슬린다’고 말해주지 못하죠. 그러니 선수들의 솔직한 피드백은 어떤 장비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RM 07-04의 무게는 스트랩을 포함해 고작 36g. 격렬한 경기를 견디면서도, 선수가 손목에 착용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전에 없던 시계를 완성한 건, 계약서가 아닌, 불편까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관계’였던 겁니다.

Chapter 6.
강인함도 낭만도, 모두 여성의 얼굴
2005년 첫 여성 시계를 내놓은 지 20년, 이제 리차드 밀의 여성 컬렉션은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합니다. 흥미로운 건, 여성 시계의 컬렉션이 유난히 넓고 다채롭다는 점입니다.
2019년 내놓은 봉봉Bonbon 컬렉션이 그렇습니다. 사탕과 과일, 컵케이크를 다이얼 위에 펼쳤죠. 10가지 모델을 각각 30점씩. 총 300점만 만들었는데도, 출시 이틀 만에 모두 팔렸습니다.
때론 ‘낭만적인 순간’을 재현하기도 합니다. 2022년 선보인 ‘RM 07-01 인터걸랙틱Inter-galactic 컬렉션’이 그렇죠. 검은 카본 위에 181개의 다이아몬드를 흩뿌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표현했어요.
초경량 스포츠 시계부터 알록달록한 사탕, 우주의 별빛까지. 리차드 밀은 왜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시계를 여성 컬렉션에 나란히 놓는 걸까요. 아만다는 말합니다. 리차드 밀이 생각하는 여성이란, 하나의 취향과 모습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라고요.
“여성은 한 가지 모습으로만 살아가지 않아요. 저녁에는 드레스를 입은 공주가 될 수도 있고, 낮에는 모든 일을 해내는 슈퍼우먼이 될 수도 있죠. 강인함과 낭만, 기술과 아름다움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한 여성 안에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고객이 자유롭게 꿈꾸게 하는 것. 아만다는 이것이 럭셔리 브랜드의 책임이라 말합니다. 아만다는 실제로 달라진 여성들의 마음가짐을 가까이서 목격한다고 합니다. 한 고객은 리차드 밀을 찼을 때의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죠. “이 시계를 손목에 차면, 아무것도 입지 않고 밖에 나가도 당당할 것 같다”고요.
“전 세계 여성 고객에게서 공통적으로 듣는 말은, 리차드 밀을 착용하면 자신이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는 겁니다. 요즘은 많은 여성 고객이 매장에 직접 와서 자신의 돈으로 시계를 고릅니다. 누군가의 아내나 딸로서 선물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기 위해 고른다는 점에서 다르죠.”
그래서일까요? 리차드 밀을 가꾸며 아만다가 가장 경계하는 건, 브랜드가 고객을 이미 다 안다고 확신하는 태도입니다. 오늘의 방식을 정답으로 굳히는 순간, 고객과 브랜드의 가능성도 함께 좁아지기 때문이죠.
“오늘 만난 고객을 안다고 해서, 내일의 답까지 알고 있다고 믿어선 안 됩니다. 고객이 우리의 마음을 이해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가 무엇을 이해 못했는지 묻는 편이 훨씬 건설적이죠.”


롱블랙 프렌즈 B
솔직히 리차드 밀은 쉽게 가까워지기 어려운 브랜드입니다. 수억, 때로는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가격을 보면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라고 느끼는 게 자연스럽죠. 저 역시 그 거리감을 품고 이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가격표를 잠시 내려놓자, 리차드 밀이 맡은 역할이 보였습니다. 막대한 자원을 누구도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실험에 투입하고, 그 결과로 소재와 기술, 제품의 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이었어요.
그 고집스런 태도를 보며, 저 역시 익숙한 답에 안주하지 않고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롱블랙 피플이 넘고 싶은 한계는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