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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기 전에 : 아이스크림과 같은 인생, 녹기 전에 즐겨라


롱블랙 프렌즈 K 

‘녹기 전에’는 마포구 염리동에 자리한 아이스크림 가게입니다. 매일 메뉴가 달라지는 독특한 곳이죠. 바닐라, 초코부터 칡, 고추냉이(와사비), 게살까지. 지금까지 판매한 아이스크림이 종류로만 350여 가지라고요!

그런데 제가 ‘녹기 전에’의 팬이 된 이유는 따로 있어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할 철학적 이유를 만들어 주는 곳이라고 할까요? ‘녹기 전에’ 인스타그램 계정에 가면 덥수룩한 수염의 박정수 대표가 우리를 맞이하죠.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되는 유머를 곁들여서요. 

SNS를 볼수록 궁금해지더라고요. 대흥역에서 내려 골목 안쪽에 위치한 매장을 찾아갔어요. 박 대표를 만나서는 솔직하게 얘기했죠. 아이스크림은 핑계였고, 어떤 사람인가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고요.



박정수 녹기 전에 대표

‘녹기 전에’는 2017년 6월 종로구 익선동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의 자리인 염리동으로 온 건 2020년이죠. 

가게는 대로변이 아닌 골목에 있고, 크기도 5.5평으로 무척 좁아요. 하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이스크림을 가득 담은 트레이는 하루에 30개씩 비워낸다고 해요. 한 달에 쓰는 우유량은 2톤에 달합니다. 

비결을 묻자 박 대표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은 굿즈로 팔고 있다고요. 아이스크림은 그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적합한 도구라고요.

Chapter 1.
아이스크림과 같은 인생, 녹기 전에 즐겨라

염리동의 ‘녹기 전에’ 매장에는 간판이 없습니다. 대신 큼지막한 아날로그 시계가 걸려있죠. 문패 자리에는 달력이 붙어있어요.

공통점을 눈치채셨나요? 맞아요. 모두 흘러가는 시간을 나타내는 물건이죠. ‘녹기 전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보며,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박정수 대표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이유라고요.

“어릴 때부터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과학 영화나 우주에 관한 콘텐츠를 많이 읽었거든요. 우주를 생각하면 아득하잖아요. 저 우주의 광활함 속에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이기에 겸손해지고요. 

그런 저에게, 아이스크림은 마치 종교와도 같았습니다. 어떤 경외심을 가질 정도였죠. 시계가 아닌 것들 중 시간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매개체가 바로 아이스크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녹아버리니까요. 

녹은 아이스크림은 풍미도 질감도 전혀 다르게 변합니다. 녹기 전 딱 그 상태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죠.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에게도 생이 있다면, 아이스크림이 아이스크림으로 존재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거예요.”

아이스크림에게 경외심까지 느낀다니. 과하다고 생각하나요? 박 대표는 아이스크림을 다양한 감각으로 탐구했기에 그렇습니다.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긁으면 입자들이 보이거든요. 저는 그 입자들이 참 아름답더라고요. 입자를 만져보기도 하고, 관찰했죠. 

오래 들여다보니 알겠어요. 아이스크림은 사실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을요. 과학적으로 보면 고체도, 액체도 아니에요. 콜로이드* 상태라고 하죠. 이 상태를 유지해야 녹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아이스크림은 지금 열심히 버티고 있는 거예요. 마치 사람처럼요.”
*Colloid : 미립자가 기체 또는 액체 중에 분산된 상태.

아이스크림이 품은 철학적 메시지를 알리는 일. 박 대표는 소명의식을 느낄 정도였죠.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두산중공업에 입사했지만, 7개월 만에 퇴사했어요. 다음으로 들어간 현대자동차도 4개월 만에 사표를 냈죠. 아이스크림 가게가 하고 싶어서요.

“보통 살면서 ‘내가 언제 행복해야 되겠다.’ 인생에 점을 찍잖아요. 그 지점에 도달하려고 시간과 돈을 쓰고요. 10년 뒤 아파트를 사겠다고 한다면, 10년 뒤 그때 행복할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일을 하고 돈을 모아요. 

저는 죽을 때 행복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죽는 순간, 떠올릴 추억이 많아야겠더라고요. 직업을 다양하게 가지고, 여러 경험을 하며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박 대표는 2017년 2월 동대문의 한 젤라토 가게에 취업합니다. 도구의 사용법을 익히며 기본기를 다졌죠. 밤에는 아이스크림 만드는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4개월 뒤, 익선동에 첫 가게를 오픈하죠. 이름은 ‘녹기 전에’.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인생은 아이스크림과 같다, 그러니 녹기 전에 즐겨라Life is like an ice cream, enjoy it before it melts.’”

‘녹기 전에’는 2017년 3월 출발한 아이스크림 가게다. 첫 매장은 종로구 익선동에 자리했으며, 이후 2020년 마포구 염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녹기 전에’ 인스타그램

Chapter 2.
맛 : 사장이 재밌으려고 만든 350가지 아이스크림

‘녹기 전에’는 매일 메뉴가 바뀝니다. 지난주만 해도 수요일에는 공덕동막걸리⑲, 누텔라, 자색고구마, ‘정수,,,(정말로수요일)*’, 오렌지, 다크초코, 토마토, 그리고 백도(대옥계)를 팔았어요. 목요일에는 소금감자, 단호박, 쑥임자, 다크초코, 자두(후무사), 적용가, 수박, 참외, 흑토마토가 있었죠. 금요일에는 이천쌀, 참치, 누텔라, 딸기우유, 쑥절미, 제주말차, 뾲쓩8ㅑ**, 솔의눈, 바나나, 그리고 레몬 맛이 라인업으로 올라왔고요.
*수요일은 한 주의 가운데로 ‘벌써 수요일’이라고 느끼기도, ‘아직도 수요일’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그 모두를 포괄하는 네이밍으로 ‘정말로 수요일’을 택했다. 메뉴의 줄임말은 ‘정수’로 박정수 대표의 이름과 같다.
**기상 상황에 따라, 수확하는 과수원 나무의 상태에 따라 과일의 맛이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상태가 좋은 복숭아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을 때, 이를 강조하기 위해 각각의 자음과 모음을 두 번 적었다고 한다.

‘녹기 전에’의 단골손님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매일 달라지는 메뉴가 ‘녹기 전에’ 만의 콘텐츠 전략일 것이다”라고. 손님에게 매일의 새로운 재미를 주기 위해서 말이죠. 박정수 대표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해요. 사장인 본인의 재미를 위해서라고요. 

“매일 바뀌는 메뉴는, 사실 사장인 저를 위한 장치예요. 보통 아침 9시에 출근해 13시간 동안 가게에 있거든요. 1.5평의 작은 주방에서요. 가게가 지속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가게를 하는 사람이 재밌어야 합니다. 아이스크림은 변화구를 주기에 완벽한 도구죠. 그림으로 치면 팔레트고, 음악으로 치면 악기 같은 거예요.”

박 대표는 여기에 재미 요소를 하나 더 추가해요. 신메뉴를 개발할 때, 이야기를 더하죠.

대표 메뉴인 당근치즈케이크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손님이 무턱대고 매장에 당근을 보내온 게 시작이었거든요. “당근으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달라”고요.

박 대표는 인스타그램에 메뉴 개발 과정을 찍어 올립니다. “사실 나는 당근을 싫어한다”라는 글과 함께요. 신메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계기가 됐죠. 판매 공지를 했더니, 한 시간도 안 돼 동이 날 정도였다고요. 

“당근은 싫어하지만,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건 정말 즐겁거든요. 그게 사람들에게도 보였나 봐요. 맛도 맛이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러 온 분들이 많았어요. ‘녹기 전에’ 브랜딩은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돼 가고 있습니다.”

박 대표가 이야기를 찾아 나서기도 했죠. ‘녹전 마’ 메뉴가 딱 그래요. 손님들이 가게 이름을 줄여 ‘녹전’이라 불렀거든요. 그런데 마침 경북 안동시에 녹전면이 있는 거예요! 호기심에 차를 몰고 마을을 찾아갔죠. 거리 표지판과 간판에 온통 ‘녹전’이란 이름이 적혀있어, 신나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대요. ‘녹전 우체국’의 국장님도 만나 뵙고요. 돌아올 땐 마을의 특산품인 마를 한 박스 사 왔죠. 신 메뉴를 만들고, 추억을 기념하려고요.

일상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 냈어요. 예를 들면 요일 시리즈. ‘불타는 월요일’, ‘지루한 화요일’, ‘정말로 수요일’, 그리고 ‘아득한 목요일’. 이름만 들어선 맛을 가늠할 수 없어요. 하지만 설명을 들으면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지루한 화요일’은 무작정 단것들을 넣었어요. 다크 초콜릿, 밀크 초콜릿, 화이트 초콜릿을 한데 섞어 만들었죠. 화요일은 정말 어디로도 도망갈 수가 없는 날이잖아요. 월요일은 일요일의 기운으로 버텨낸다 쳐도요. ‘지루한 화요일’을 먹는 동안만큼이라도 기분이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눈에 띄는 건, 오히려 기념일은 챙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별한 날을 즐기기보단,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다고요.

“화이트 데이나 무슨 무슨 데이. 이런 날은 모든 가게들이 챙기고 있잖아요. 저는 아무렇지 않은 일반적인 날을 좋은 날로 만들고 싶었어요. 요일 메뉴도 그래서 만든 거고요.”

박정수 대표는 매일 다른 10가지의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초코와 바닐라와 같은 익숙한 메뉴부터, 칡과 고추냉이(와사비)와 같은 독특한 메뉴를 개발해냈다. ⓒ롱블랙

Chapter 3.
매장 운영 : 고객의 마음을 읽는 ‘육체적인 머리’

2020년, 박 대표는 익선동을 떠납니다. 그리고 찾은 곳이 지금의 마포구 염리동이에요. 익선동 보다 유동인구가 적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입니다. 가게라면 사람들 눈에 잘 띄어야 좋은 거 아닌가요? 

“익선동이 지나치게 관광지가 된 게 문제였어요. 소위 뜨내기손님들이 많아졌거든요. 무더운 날, 그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온 손님들이 대부분이었죠. 인스타그램으로 ‘녹기 전에’의 스토리텔링을 접한 분들도, 가게가 익선동에 있다는 것에 멈칫했고요. 깊이 있는 브랜드라기 보다, 인기에 편승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한 거죠.

반면 염리동은 ‘녹기 전에’에 딱 맞는 곳이었어요. ‘이게 여기 왜 있지?’가 되는 거예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였던 거죠.”

공간도 조금 더 넓혔어요. 3.5평에서 5.5평으로요. 익선동 매장은 쇼케이스 앞, 손님 한 명이 간신히 서있을 만한 공간밖에 없었거든요. 오래 얘기를 나눌 수가 없던 거예요. 염리동에는 여전히 작지만, 의자 네 개 정도를 둘 공간이 생겼죠. 

손님과 오래 소통하는 장치를 매장에 심어놓기도 했어요. 방명록도 그중 하나예요. 손님들이 남긴 방명록 글을 하나하나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거든요. 짧은 답변을 달아서요. 

나무위키 링크를 QR코드로 붙여두기도 했어요. 네, ‘녹기 전에’는 무려 나무위키가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입니다. 단골손님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팬 페이지 같은 개념이에요. 익선동 시절 ‘녹기 전에’ 역사부터, 지금까지 출시한 모든 메뉴가 빼곡히 적혀있죠. 박 대표의 인터뷰도 담겨 있고요. 매장에서 나무위키를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박 대표란 사람이 궁금해져, 먼저 눈 인사를 건네게 돼요.

“마케팅적으로 말하자면, 회전율이 좋아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전 손님들이 가게에 평생 머물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뒤에 오는 분들이 돌아갈지언정, 지금 제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손님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모든 손님에게 무작정 말을 건네는 건 아닙니다. 손님의 눈빛을 읽어내, 적절한 반응으로 대했죠.

“나무위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보고 오신 분들은 시선 위치부터 달라요. 아이스크림을 보는 대신, 제 눈을 보면서 들어오시거든요. 그런 분들에겐 바로 농담을 던지기도 하죠. 혼자 먹고 싶은 분처럼 보인다면, 메뉴 설명을 정확하게 해드리고요. 

머리를 쓴다기보단, ‘육체적인 머리’를 쓴다는 게 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온몸으로 지각하고, 느끼고,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구나를 파악하거든요. 데이터를 쌓아놓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결국 티가 나더라고요.”

박 대표는 매장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심어뒀다. 사진은 매장 한편에 쌓여있는 방명록 노트. ⓒ롱블랙

Chapter 4.
콘텐츠 : 아이스크림은 굿즈로 팝니다

‘녹기 전에’에 동네 손님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경기도, 부산에서도 가게를 찾는다고요.

사실 ‘녹기 전에’의 맛이 최고냐 하면… 잘은 모르겠어요. 다만 확실한 건, 여기만큼 재밌는 아이스크림 가게는 없다는 사실이죠. 저만 해도 그래요. 매일 바뀌는 아이스크림을 맛보러 오는 게 아니에요. 녹기 전에 사장님, 일명 ‘녹싸’로 불리는 박 대표와 대화하고 싶어서 이곳을 찾곤 하죠.

박 대표는 인스타그램에서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 같아요. 피드를 내리다 보면 피식하게 되는 게시글이 눈에 띄죠. 티셔츠 홍보를 위해서 스티브 잡스를 따라 하기도 하고요. 요즘 유행하는 강아지 훈련용 말하는 버튼 있잖아요. 그걸로 키오스크를 만들어 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하죠. 

특유의 어투도 따라 하고 싶게 만들어요. 박 대표는 ‘~습니다’ 대신 꼭 ‘~읍니다’로 말을 끝내요. 문장 끝에 쉼표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남겨두기도 하고요. 아재 같은 이 말투는 모든 연령의 손님에게 친근한 유머로 다가가기 위해 일부러 택한 말투입니다.

매년 근처 신촌의 세 개 대학교를 위한 이벤트를 열기도 해요. 서강대와 연세대, 이화여자대학교를 대상으로요. 각 대학의 개교 기념일에 대학 이름이 들어간 메뉴를 팝니다. ‘레이어드 연세’는 커피와 연세우유를, ‘레이어드 이화’는 배와 민트를 배합해 메뉴를 개발했어요. 서강대는 학교를 직접 방문해 아이디어를 얻었죠. 학교 설립자 중 한 명인 故 바실 프라이스Basil Price신부의 동상을 발견하곤, 바질을 넣은 메뉴를 만든 거예요. 

“이벤트를 할 때면, 오히려 제가 더 에너지를 받아요. 한 번은 손님들이 10년 이상 된 물건을 매장에 가져오면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했어요. 그런데 한 손님이 100년 된 첼로를 들고 왔어요. 그러고는 직접 매장에서 연주해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작은 매장에 첼로 소리가 퍼지는데, 어느새 제 눈에 눈물이 맺히더라고요.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든 손님들도, 스푼을 잠시 내려놓고 음악을 들었어요.

학교 기념일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날에도, 작정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 기뻤어요. 재학생부터, 76년도 졸업생까지. 제가 그 사이의 시간을 잇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감동적이었죠.

녹기 전에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사진은 2022년 3월, 매장에서 진행한 ‘제 2회 악필대회’. ⓒ녹기 전에 인스타그램

Chapter 5.
좋은 기획은 자극을 먹고 자란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궁금해지는 건, 박 대표의 하루 일과입니다. 350여 종의 아이스크림부터,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까지. 매번 독특한 기획으로 ‘녹기 전에’는 입소문을 탔어요. 

2019년에는 밤에만 여는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 밤’을 열기도 했죠. 오후 4시에 오픈해 12시까지 아이스크림을 팔았어요. 내부는 기존 매장과 다르게 빨간색 벽지를 발랐죠. 입구엔 네온사인을 달아두고요.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익선동의 핫플레이스가 되었죠.

기획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박 대표는 말해요. 결국 인풋을 많이 채우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매일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요.

“제 영감의 반은 책에서, 나머지 반은 거리에서 나와요. 그래서 걸을 때면 다양한 현상이나 사물을 보면서 영감을 얻으려고 해요. 때론 글을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 더 독특한 결과물이 나오더라고요. 

익선동 시절 밤에만 운영하는 가게 ‘녹기 전에 밤’을 운영한 적이 있어요. 이 아이디어도 거리를 걷다가 떠올랐어요. 사람들이 낮보다 밤에 더 아이스크림을 찾는 걸 봤거든요. 술 한 잔 먹고 난 다음이나, 강아지 산책 때나, 하루를 마감할 때 말이에요.”

타겟팅을 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죠. 특정 인물을 노리면, 새로운 기획이 나올 수 없다고요.

“타겟팅은 결국 누군가를 소외시킵니다. ‘녹기 전에’는 손님이 정말 다양해요. 매장을 너무 힙hip하게 해놓으면 학생들은 오겠지만, 어르신들은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으실 거예요. 그런데 ‘녹기 전에’ 아이스크림은 어르신들도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많거든요.”

늘어가는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더 참신한 기획을 내놓아야 하니까요. 박 대표는 안경 너머 또렷한 눈빛으로 말해요. 새로운 일을 고민하는 시간이,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는 때라고요.

“저는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면, 뇌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뉴런과 시냅스에서 전기가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나거든요. 전 자극을 먹을 때 가장 배부르더라고요.”

2019년 1월 문을 연 ‘녹기 전에 밤’의 외부 전경.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밤에만 판매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녹기 전에 인스타그램

Chapter 6.
마치며 : 첫 번째도 맛, 두 번째도 맛, 0번째는 재미

박 대표의 가게 운영 전략에 눈에 띄는 점이 있어요. ‘겨울 방학’이란 명목으로, 한두 달을 내리 쉬는 거예요. 이 기간에는 인스타그램도 비공개로 돌려놓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겁니다. 또 다른 재미난 기획을 만들기 위해서요.

“아이스크림 가게의 가장 큰 사명 중 하나가 ‘재미’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메뉴가 사람들에게 보는 재미, 맛보는 재미를 줄 수 있잖아요. 저는 이를 착실히 전달하는 사람이고요.”

인터뷰 동안 박 대표는 ‘재미’를 강조했습니다. 결국 아이스크림이라는, 문화적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싶다고요. 

“제 목표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거예요. 아이스크림의 메뉴를 바꾸는 건 저를 위해서죠. 다만 저와 만나고, 대화하고, 거래 관계를 맺는 사람들도 다 함께 즐거웠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시대가 즐거웠으면 좋겠고요.”

박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기준은 ‘생장’입니다. 식물이 크듯, 필요한 만큼만 확장해야 한다는 거예요. 무작정 몸집을 키워가는 성장과는 다르죠. 

“보통 브랜드가 커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여러 유혹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지잖아요. 매장을 넓혀야 한다거나, 분점을 내는 것처럼 말이에요. 거기서부터 제 고민이 시작된 거예요. 성장이란 어쩌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가 하고요. 

저는 성장보다는 ‘생장’을 하고 싶었어요. 확장을 하더라도, 필요한 만큼만 하자는 주의죠. 저는 가게의 크기보다, 사람들이 얼마큼 즐길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박 대표는 인터뷰 동안 ‘재미’를 강조했다. 아이스크림을 통해 동시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필요한 만큼만 확장하는 ‘생장’을 이뤄낼 것이라고, 박 대표는 말한다. ⓒ롱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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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기 전에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고, 어린 시절 자주 갔던 슬러시 가게가 생각났어요. 옆 동네 친구 집 앞, 빨간 벽돌의 상가 1층에 위치한 곳이었죠. 어릴 때는 그 친구가 제일 부러웠어요. 저희 동네에는 슬러시 가게가 없었거든요. 

지금은 녹기 전에 근처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부러워요. 동네 한편에 이야기가 넘치는 가게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거든요. 추억을 꾹꾹 눌러 담아 놓을 수 있으니까요. 

오늘의 노트를 요약해 봤어요.

1. 어릴 적 박정수 대표는 아이스크림의 매력에 흠뻑 빠져요. 항상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거든요. 아이스크림은 시계를 제외하고, 시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매개체였고요.
2. 녹기 전에의 시그니처는 매일 바뀌는 메뉴예요. 중요한 건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것! 순전히 박 대표 본인의 재미를 위해 다양한 메뉴를 만들어 팔고 있어요.
3. 매장을 운영할 때, 박 대표는 ‘육체적인 머리’를 강조합니다. 데이터로는 보이지 않는, 고객의 반응을 알아차릴 수 있거든요.
4. 박 대표는 ‘아이스크림은 굿즈로 팔고 있다’라고 말해요. 그만큼 아이스크림을 활용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죠.
5. 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재미’를 강조했어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나 자신,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시대 사람들이 함께 즐거웠으면 좋겠다고요.

롱블랙 피플의 동네에도 녹기 전에 같은 곳이 있나요? 사장님이 재밌어서, 한 번이라도 더 가고 싶은 가게 말이에요! 슬랙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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