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의 선두에 선 전통문화, MZ를 사로잡은 문화 브랜딩 성공사례

'궁케팅'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궁궐과 티켓팅을 합친 신조어인데요.

이처럼 전통 문화색다른 리브랜딩을 통해 다시금 MZ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국가유산진흥원 : '궁케팅'을 부르는 세심한 문화 브랜딩

ⓒ궁능유적본부


아이돌 콘서트 못잖게 티켓팅을 해야 하는 ‘궁궐 행사’가 있어요. 바로 2016년 9월에 시작된 ‘경복궁 별빛야행’. 어두운 밤, 청사초롱을 들고 한적한 경복궁을 거니는 행사예요.

관람객은 당시 왕과 왕비가 거닌 동선을 따라 걷고, 한복을 차려입은 나인에게 음식을 받습니다. 이 경험을 ‘진짜 궁궐’에서 하는 거예요. 매년 상⋅하반기마다 3000여 명이 신청할 수 있는 행사에, 무려 22만 명이 몰렸다고 합니다. 자리가 열리면 1분 만에 매진되곤 해요. 궁궐과 티켓팅을 합친 ‘궁케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죠. 

국가유산진흥원에서 17년째 일한 박준우 실장‘디테일’에 집착해 ‘경복궁 별빛야행’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먼저 박 실장은 코스 설계에서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수백 번 경복궁을 직접 걸으며 생각했죠. ‘내가 관람객이라면 어디에서 감동할까.’ 

“경복궁을 여러 코스로 걸은 다음, 지도를 펼쳐 놓고 코스 시뮬레이션을 반복했어요. 그러다 최적의 코스가 보였습니다.

경복궁 북측 권역을 돌고, 서쪽으로 돌아오는 구간이 있어요. 여기에는 높은 담벼락이 있어 주변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길 지나 코너 하나를 돌면, 담벼락이 없어지면서 물 위에 세워진 누각인 ‘경회루’가 딱 보여요.

벽에 가려져 있던 아름다운 건축물을 조용한 밤에 은은한 조명과 맞닥뜨린다면, ‘무조건 감동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관람객이 담벼락을 돌아 경회루를 보는 순간, 여기저기서 감탄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거든요. 

ⓒ국가유산진흥원


동선을 잡은 다음엔 운영의 디테일을 잡았어요. 경회루를 향하는 관람객이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게 목표였습니다. 마치 왕이 연회 가는 길을 돕는 것처럼 말이죠. 

대표적인 게 신발 정리였습니다. 경복궁 북쪽을 도는 초반 코스에서는 여러 건물을 거쳐요. 외국 공사를 접견하던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 왕실도서관 집옥재集玉齋처럼요*. 이때 관람객들은 신발을 벗고 직접 전각에 들어갑니다. 이들이 입구에 신발을 두고 떠나면, 박 실장과 직원들은 신발을 직접 출구까지 옮겼어요.
*현재는 집옥재 내부 관람만 진행하고 있다. 

“관람객의 시간은 제한돼 있잖아요? 1분이라도 낭비하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많이 경험하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창덕궁 달빛기행’에서는 관람객을 업어드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고령의 일본인 할머니 관람객이 왔을 때였죠. 오르막길 오르는 걸 힘들어하자, 직원들이 번갈아 가며 할머니를 업고 출구까지 모셔다드렸어요. 

한편으로 궁금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관람객의 여정에 집중한 걸까요? 박 실장에게 어떤 마음으로 할머니를 업어드렸냐고 물었습니다. 

“나라에서 하는 행사니까요. 국가 이름을 걸고 하는 행사는 관람객의 평가가 더 엄격해요. 하나라도 틈이 생기면 짚는 분들이 많죠. 3만원이라는 만만찮은 가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가’라는 이름이 붙으니 허투루 할 수 없습니다. 책임감 없이는 이 일을 할 수 없죠.”

‘진짜 궁궐’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문화 브랜딩을 이어나가는 국가유산진흥원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에서 더 읽어보세요!


마인드디자인 : 힙한 불교를 만든 신선한 문화 브랜딩

ⓒ서린


‘불교 또 나 빼고 재밌는 거 하네’, ‘힙한 불교’. 지난 4월 열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를 두고 나온 말들이에요. 13만 명이 찾으며 역대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죠. 더 놀라운 건 관람객의 80%가 20대~30대였다는 겁니다.  

엄숙할 것만 같은 불교 행사가 어쩌다 신나는 축제가 되었을까요?  2013년부터 불교박람회를 기획해 온 마인드디자인 김민지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잠시 팬데믹 시절을 떠올려 볼까요. 공연⋅전시 업계가 코로나의 충격을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불교박람회도 예외는 아니었죠. 2020년에는 온라인으로 개최해야만 했어요. 

2021년에 대면으로 열 수 있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1년 만에 부스를 채우던 소상공인들이 반 넘게 사라졌거든요. 앉아서 절망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전국으로 작가들을 찾아다녔어요. 공모전을 더욱 크게 열어 진입 장벽을 낮추고,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했죠. 

“작가들 상황에 맞게 대안을 제시했어요. 부스 임대료도 부담스러운 작가들이 있거든요. 그분들께는 작품을 걸 수 있는 벽면을 비교적 저렴한 값에 내드렸어요. 혼자서 작업하시는 분들께는 어떻게든 필드로 나오라고 독려했죠. ‘명함 만들어서 뿌리세요’, ‘이름 알리세요’ 하면서.”

업체도 다양화했어요. 불교박람회와 언뜻 그 결이 맞지 않아 보여도 컨셉을 적극 디렉팅했어요. 

“한번은 족욕기 업체가 찾아왔더라고요. 손을 좀 봤죠. 부스 이름을 ‘사찰로 가는 가벼운 발걸음’이라 지어줬어요. 부스명을 그냥 ‘00기업’, 이렇게 하면 아무도 안 오거든요.” 

그러자 박람회가 전보다 다채롭고 신선해졌죠. 2023년에 드디어 반응이 왔어요. 박람회가 발굴한 신예 작가들의 작품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초콜릿으로 만든 부처상 ‘초콜릿 붓다’, 스님이 만든 밀크티 ‘스밀스밀’, 불교 버전으로 디자인한 교통 표지판 ‘중생 보호 구역’까지. 20대들 사이에 불교박람회가 알려진 거예요.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인스타그램


마침 조계종도 더 많은 젊은 층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던 상황. 김 대표는 2024 불교박람회를 20대들의 축제로 만들기로 합니다. ‘재미있는 불교’를 주제로 정했어요. 

“사실 반야심경 같은 불교 경전이 아주 재미있는 건 아니거든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문득 놀이동산이 떠오르더라고요. 불교 자체는 어려워도, 이 공간을 놀이동산처럼 느낀다면 분명 재미있어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놀이동산 가면 입구에 꼭 있는 게 있거든요. 풍선이랑 솜사탕.”

풍선에 ‘성불’, ‘관세음보살’이란 글자를 프린팅하고, 목탁 모양의 솜사탕도 만들었어요. 예상대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반응이 왔어요. 

김 대표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해, ‘알잘딱깔센’ 같은 신조어를 독학한 결과입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20대들에게 직접 묻기도 했죠. 요즘 뭐가 인기 있고, 그걸 왜 좋아하는지. 20~30명의 20대에게 물은 끝에 인사이트를 얻었다고요. 

“오히려 너무 어렵게, 깊게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MZ들은 보기에 재밌고 사진 찍기에 좋으면 찾아오거든요. 그걸 알고 나니까, 크게 손댈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그동안 불교박람회에서 참신하고 재미있는 기획이 많이 나왔어요. 여기에 MZ스러운 몇 가지만 더하면 되겠다, 생각했죠.”

불교박람회를 시작으로 한국 전통문화 산업이 더욱 성장했으면 한다는 김민지 대표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에서 더 읽어보세요!


국립중앙박물관 : 굿즈 완판을 부르는 감각적인 문화 브랜딩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에 자리 잡았어요. 연면적 4만여평. 30만점 넘는 유물을 품은 보물창고입니다. 잔잔한 거울못과 청자정靑瓷亭의 비색翡色, 엷은 청색기와를 바라보고 있으면, 고려시대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해요. 

역사책 같은 국립중앙박물관이, 트렌디한 굿즈 열풍의 중심에 섰습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고려청자 무선 이어폰 케이스 등이 인기예요. 특히 MZ세대에게 반응이 좋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대표 굿즈를 꼽으라면 단연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입니다. BTS의 멤버 RM이 구매하기도 했어요. 2019년 12월 출시 이후 내놓는 족족 품절됩니다. 2021년 12월 출시한 파스텔톤 반가사유상 18종은 두달 만에 4000개가 팔려 나갔어요. 

반가사유상은 원래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유물입니다. 태자 싯다르타(석가모니 출가 전 이름)가 한쪽 다리만 가부좌를 튼 반가半跏의 자세로 사유하는 모습을 청동으로 빚은 조각상이에요. 자세히 보면 입꼬리 선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요. 명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얼굴 같습니다.

반가사유상은 전세계 70여점이 있지만 우리 국보 두 점(제78호·83호)이 특히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 두 점 모두를 국립중앙박물관이 1969년부터 소장해 왔어요.

대표 브랜드인 만큼 2010년부터 반가사유상 굿즈도 제작됐습니다. 문제는 본 유물을 그대로 축소해 만든 그냥 청동 불상이었다는 겁니다. 1년에 100여개. 문현상 부장은 당시 반가사유상 굿즈가 ‘계륵’같은 존재였다고 해요. 

“굿즈 판매 데이터를 보는데 반가사유상 굿즈가 대표적인 매출 하위 제품인 겁니다. 박물관 대표 브랜드인데 어떻게든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시장조사를 해보니 젊은 세대가 피규어는 참 좋아하더군요. 피규어와 반가사유상 굿즈의 차이는 뭘까? 아 색깔이구나, 불상에 알록달록한 색을 입혀 ‘유물 피규어’를 만들어 보자고 했어요”


걱정이 안 됐던 건 아닙니다. 문 부장과 팀원들은 사표 쓸 각오를 했다고 해요. 신성한 유물을 갖고 장난 친다고 하지 않을까. 박물관도, 소비자도, 불교계도 비난할까 두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포기할 수 없었대요.

시작은 점잖은 단청색이었습니다. 청, 적, 황, 백, 흑의 전통적인 오방색이죠. 하지만 느낌이 살지 않았대요. 좀 더 화사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주기 위해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색을 입혀보기로 합니다. 

도색은 서울 성수동, 인천 공장들을 발품 팔아 했어요. 시중에 나와 있는 컬러를 구입해 쓸수도 있었지만 국립중앙박물관 굿즈만의 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예를 들어 주황색을 하나 뽑을 때도, ‘오렌지Orange 톤을 더 올리자’, ‘마젠타Magenta·밝은 자주색를 더 내리자’ 반복하는 식입니다. 미색, 회색, 연갈색, 남색과 함께 주황색, 노란색, 분홍색 총 7종이 출시됐어요. 따로 색상 이름을 붙이진 않았는데 고객들이 ‘붓다 핑크Budha pink’ 등 애칭을 부르기도 합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지금 MZ 사이에 ‘힐링템’으로 통합니다. ‘일하다가 힘들 때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샛노란 색이라 인자한 표정도 더 잘 보이고 힙hip하다’,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을 때마다 한번씩 보면 좋다’ 같은 후기가 넘칩니다. 4만5000~4만9000원대 가격에도 총 6차 예약 주문 모두 한 달 정도 기다려야 받아볼 정도로 인기입니다.

2021년 11월, ‘사유의 방’이 개관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동안 반가사유상 국보 제78호와 83호를 각각 전시해왔습니다. 둘을 같은 공간에서 전시한 건 1986년, 2004년, 2015년 딱 세 번이었죠.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에 ‘사유의방’이란 이름의 상설 전시실을 만들어 두 반가사유상을 함께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사유의 방은 오픈 두 달 만에 방문객 1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문화상품 기획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어요. 원래 83호만 있던 반가사유상을, 78호까지 제작을 늘리면서 파스텔톤 18종으로 신상품을 내놓은 겁니다. 코랄, 라임펀치, 민트, 스카이블루, 아이보리 등 보다 피규어 느낌이 나는 색들이 나왔어요. 사유의 방 개관 전 온라인으로 사전 판매 했는데, 90개가 30분만에 매진됐습니다. 조금 더 둥근 캐릭터 같은 모습의 반가사유상 석고 방향제도 출시했습니다. 이 역시 2021년 11월 출시돼 2달 만에 4000개가 팔렸다고 해요. 

공공기관은 변화를 싫어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깨고 전통문화를 색다르게 브랜딩해나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를 통해 직접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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