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 파일로를 곧 한국에서,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해외 패션 브랜드

해외 유명 브랜드들도 서울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세우는 지금, 이제 웬만한 브랜드들은 한국에서도 구매가 가능하죠.

새삼 '한 사람의 이름만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하는 브랜드, 피비 파일로가 24년 11월 국내에 진출한다고 합니다.


피비 파일로 : 이름만으로 파워를 증명한 해외 패션 브랜드

ⓒT매거진 2014 봄호 표지/Karim Sadli


패션계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바로 CD(Creative Director). 보테가베네타Bottegaveneta를 살려낸 다니엘 리Danieel Lee가 버버리로 옮기자, 팬들이 따라서 브랜드를 갈아탔을 정도죠. 이제 브랜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한 이름처럼 보여요. 

그 시초가 바로 피비 파일로라고 할 수 있어요. 파일로는 특유의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스타일로 팬덤을 모았어요. 심플한 니트와 슬랙스, 로고는 없지만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재질의 블라우스, 장식은 적고 실루엣은 유려한 코트 등이 대표 아이템입니다. 

요즘 트렌드인 올드머니룩* 같다고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올드머니룩의 근본이라 불리는 게 바로 피비 파일로 시절의 셀린느거든요. 꾸민 듯 안 꾸민 듯 럭셔리한 게 매력이죠.
*올드머니룩: 말 그대로 오래된(old) 돈(money)이라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부를 축적한 가문의 사람들이 입을 법한 전통적이고 고급스러운 패션 스타일.

2023년 10월 자기 이름을 내건 브랜드와 함께 피비 파일로가 돌아왔습니다.  보그부터 엘르, 뉴욕타임스, 가디언까지 그녀의 컴백에 대한 기대를 쏟아냈죠. 

“가장 흥분되고, 가장 기대되고, 가장 가십이 많은 컬렉션”
_뉴욕타임스

ⓒ피비 파일로


화제가 된 건 이전의 성공 공식을 하나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웹사이트 룩북만으로 브랜드를 오픈했죠. 그가 거쳐온 럭셔리 브랜드들은 모두 패션쇼로 옷을 선보였는데 말이에요. 

계절별 컬렉션을 낸다는 기존 방식도 따르지 않아요. 한정된 수량만 판매하고 예고 없이 새 제품을 공개하는 ‘드롭Drop’형식을 택했습니다. 슈프림 같은 스트릿 브랜드들이 주로 쓰는 방식이죠. 

피비는 이러한 형태를 ‘에딧Edit이라고 불러요. 2023년 10월에 공개된 게 에딧 A1. “시즌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내고 싶은 옷을 내겠다”는 뜻이라고 해요. 

웹사이트 화보엔 흑인 동양인 등 다양한 인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백인만 쇼에 세운다’는 꾸준한 비판을 수용한 거예요. 그런 말을 들을 만 했어요. 2016년 셀린느 런웨이만 봐도, 유색 인종 모델을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거든요. 역시 동시대 여성들의 니즈는 정확히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옷은 어떠냐고요? 피비 파일로의 미니멀리즘과 우아함, 클래식한 멋이 그대로 살아있어요. 고급스러운 광택을 내는 하얀 실크 목폴라 티. 부드럽고 깔끔한 라인 발등까지 이어지는 검은 슬랙스. 손등을 덮는 버건디색 오버사이즈 재킷까지. 지적이고 시크한 도시 여성이 입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클래식하고 정제된 형태의 아이템에 매력적인 요소를 하나씩 더하기도 했어요. 허리부터 일자로 차분하게 떨어지는 바지에 발목부터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지퍼를 달았죠. 원하는 만큼 열어서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게요. 가죽 재킷 뒤엔 리본을 묶을 수 있도록 작은 디테일을 더해, 원피스 느낌을 내기도 했어요. 

그렇게 공개된 150종의 아이템은 하루 만에 대부분 완판됐어요. 그 어떤 마케팅도 없이 말이에요. 피비 파일로 그 자체가 브랜드이고 마케팅이었기 때문이죠.

11월부터 국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는 피비 파일로, 한국에서도 그 위상이 빛을 발할까요? 피비 파일로의 패션 세계가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세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 :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해외 패션 브랜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2006년 호주 시드니에서 출발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한때 명품제국 LVMH도 데우스를 탐냈다고 해요. 놀라운 건 창립자 데어 제닝스Dare Jennings가, 65세에 만든 브랜드라는 것이죠.

그들은 “우리가 파는 건 철학”이라고 말해요. 매장을 스토어가 아닌 템플temple, 즉 사원이라고 부르는 곳이죠. 시드니, 밀라노, 발리, 도쿄, 그리고 서울까지. 전 세계에 25개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뒀는데,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제각각이에요. 매장만 보고는 도저히 같은 브랜드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죠.

그래서 뭘 파냐고요? 커스텀 바이크와 서핑, 스노우보드에 바버샵, 그리고 패션까지… 너무 여러 가지예요. 뭘 판다고 꼭 집어 말할 수 없습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2015년 패션 브랜드 칼하트, 오베이를 유통하는 웍스아웃이 유통권을 따서 한국에 들어왔어요.

첫 매장은 홍대 서교동에 자리 잡았죠. 이름은 ‘우연의 주조 공장Foundry of Fortuity.’ 데우스의 디렉터 카비 턱웰이 지었어요. 전 세계 모든 플래그십 스토어의 이름은, 이렇게 카비가 직접 짓는다 해요.

그런데 왜 하필 홍대였을까요? 양양처럼 서핑의 성지도 아니고, 바이크 문화가 발달한 곳도 아닌데 말이에요.


“서핑, 바이크 시장에 포커스를 두기보다, 데우스라는 브랜드 자체를 대중화하고 싶었어요. 카페에 와서 디저트 먹고, 커피도 마시고, 옷도 보다가, 알고 보니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였네? 이렇게 전개되길 바랐죠.”
_이창훈 데우스 코리아 디렉터, 롱블랙 인터뷰에서

지금은 국내에서도 핫한 데우스의 패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호주 스타일의 핏이 국내 패션 트렌드와 맞지 않았거든요. 호주 패션은 핏이 좁고, 소매가 짧아요. 하지만 당시 한국에선 박시한 핏이 인기였죠.

이창훈 디렉터는 본사에 이 트렌드를 설명했어요. 그리고 한국 전용 핏의 의류를 제작해 팔았죠. 덕분에 2020년 이후, 매출은 매년 두 배씩 상승 중이에요. 이후엔 글로벌 본사도 어드레스 티셔츠를 한국 핏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데우스 코리아도 로컬 문화 행사를 기획해요. 올해 5월엔 인디 밴드 chs와 함께 주차장 콘서트를 열었어요. 작년 6월엔 홍대의 로컬 라멘집 라무라와 컬래버했죠. 데우스 로고와 레이싱 깃발, 그리고 그 사이로 라무라의 닭 로고가 삐죽 올라온 티셔츠를 만들었어요. 글로벌 브랜드와 동네 라면집의 만남, 재밌지 않나요?

“스토리가 없는 브랜드는 오래 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 브랜드 자체가 지닌 모토, 철학을 살리는 게 중요하죠. 실제로 대중의 반응도 변하고 있어요. 전에는 티셔츠로만 알았다면, 이제는 ‘이런 것도 하네?’ 이런 반응이 늘었죠. 컬래버도 같은 맥락이에요. 매출도 중요하지만, 좋아하는 게 겹치는 브랜드끼리 서로를 응원하자는 의미가 크죠.”
_이창훈 데우스 코리아 디렉터, 롱블랙 인터뷰에서

이창훈 디렉터가 데어 제닝스에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똑같이 말한다고 해요. “그걸 하면 당신이 행복한가요? 그럼 하세요.If that makes you happy, just do it.

낭만 가득한 브랜딩으로 국내에서도 팬덤이 강력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브랜딩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보세요!


랄프 로렌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이 한국에 들어온 지도 벌써 41년이나 됐습니다. 1982년 신한인터내셔널이 미국 본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처음 들여왔어요. 1990년대 대학가의 패션이 됐죠. 아이비리그의 프레피룩처럼요. 한국 대학생들은 게스Guess* 청바지에다 폴로 셔츠를 입었다는 것이 차이라고 할까요?
*게스는 1989년 일경물산이 라이선스를 체결해 국내에 진출했다.

하지만 랄프 로렌에게도 흑역사는 있었습니다. 2011년 랄프 로렌 코리아를 설립하고 직진출 하면서, 무리하게 고급화 전략을 펼쳤어요. 예를 들어 아동복의 경우 미국보다 60%가량 비싸게 판매했어요. 같은 시기 소비자들이 직구와 병행 수입에 눈뜨면서 매출은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침체는 생각보다 오래갔어요. 재무제표 상 2019년도만 해도 약 200억원의 미처리결손금**이 있었어요. 공시되진 않았지만 2017년까지도 매출은 역성장했다고 알려졌습니다.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371억원290억원의 적자를 냈어요. 당시 언론 기사 제목들을 보면, “폴로의 추락”, “국내서 위상 흔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예요.
**미처리결손금이란, 해당 사업연도 이전에 생긴 결손금으로 이전 사업연도로부터 이월된 금액이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2019년 즈음부터 랄프 로렌이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부활의 중심에는 무신사가 있습니다. 랄프 로렌은 2018년부터 무신사에 입점했어요. 클래식한 랄프 로렌과 무신사의 만남이라니, 어색한가요? 실은 서로에게 윈윈win-win입니다. 랄프 로렌은 10대·20대 고객층을 만날 수 있었고, 무신사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얻었어요.

특히 랄프 로렌이 무신사 효과를 톡톡히 봤습니다. 무신사는 메인 페이지의 쇼케이스Showcase 코너로 랄프 로렌을 띄웠어요. 무신사가 꼭 알리고 싶은 브랜드를 소개하는 콘텐츠예요. 브랜드의 가치관과 역사, 제품에 얽힌 이야기를 화보와 함께 소개해요.

ⓒ무신사


무신사가 콘텐츠만 만든 건 아닙니다. 랄프 로렌 본사와 협업해서 아예 제품을 단독 제작했어요. 첫 제품은 2020년 3월 선보인 볼 캡 모자. 랄프 로렌의 ‘코튼 치노 베이스볼 캡’에, 태극 문양 자수를 넣었어요. 무신사는 원단을 자르고 자수를 박는 등, 볼 캡을 제작하는 과정을 ASMR 영상으로 찍어 마케팅하기도 했죠.

그 결과 ‘치노 베이스볼 캡’은 무신사에서 3000건이 넘는 구매 후기가 이어질 정도로 인기 제품이 됐어요. 랄프 로렌의 옥스퍼드 셔츠, 럭비 셔츠도 꾸준히 무신사 판매 순위 상위권에 듭니다. 랄프 로렌은 이제 무신사에서만 연간 약 10억원의 매출을 올려요.

무신사와의 협업으로 온라인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랄프 로렌 코리아. 물 들어올 때 재빨리 노를 저었어요. 한때 운영을 중단했던 자사몰을 2022년 재오픈합니다. 랄프 로렌 코리아에 따르면, 2021년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 중 20~30대 비중이 58%에 달해요. 2020년의 44%에서 14%p 상승한 수치입니다.

얼마나 온라인 판매가 잘 됐냐고요? 온라인 판매 비중을 알 순 없지만, 재무제표상 눈에 띄는 항목은 있어요. 판매관리비 항목 중 포장비용. 2019년 8억5000만원 정도였던 포장비용이, 2022년 30억원으로 훌쩍 뛰었어요. 그만큼 온라인 판매가 늘었다는 뜻입니다.

고객이 젊어진 덕분일까요? 제품도 전보다 트렌디하고 컬러풀해진 느낌입니다. 랄프 로렌 본사는 그동안 무채색 계열의 셔츠나 꽈배기 니트를 중심으로 한국에 상품을 공급했어요. 한국 소비자 역시 이를 선호했죠.

최근엔 기조가 바뀐듯합니다. 대표적으로 랄프 로렌의 상징적인 곰돌이 캐릭터, ‘폴로 베어’가 들어간 상품이 눈에 띄어요. 랄프 로렌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에 ‘폴로 베어 샵’이 따로 있을 정도죠. 아이템들이 상당히 컬러풀해요. 파란색 저지 셔츠에는 빨간색과 노란색 페인트로 ‘폴로’라는 글자를 쓰는, ‘폴로 베어’ 프린트가 들어갔어요. 분홍색 바지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골프를 치는 폴로 베어가 박힌, 스웻셔츠도 판매 중이에요.

한국인들의 유별난 사랑을 받는 랄프 로렌의 성공 비결이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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