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밴드들의 내한 공연부터 지하철을 타면 보이는 기타를 멘 사람들까지, 새삼 밴드 음악이 대세가 되었다는 체감이 들어요.
이런 흐름에는 국내 인디 밴드 씬에서 자신만의 음악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된 뮤지션들이 있습니다.
실리카겔 : 실험적인 사운드의 인디 밴드, 대세가 되다

실리카겔의 음악에서는 ‘쇠맛’이 나요. 거칠고 강한 사운드가 리스너들을 몰아세우죠. 하지만 그 속에는 한 줄기의 휴머니즘이 깃들었어요. 제가 실리카겔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예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입력된 명작에서 압축된 영화까지, 조직된 hormone assets 출력된 유서까지, 꿈을 꾸기 위해서 매콤한 환각까지(곡 ‘Tik Tak Tok’)”라고 강하게 말하다가도, 때로는 “대지에 씨를 뿌리고 밤이 오면, 낙타와 길을 헤매고 말하지 못한 비밀과 잠에 들면, 사막에 빛이 내려와(곡 ‘Desert Eagle’)”라고 감미롭게 말해요.
이 독특한 밴드의 탄생지는 2013년의 서울예술대학교예요. 멤버 김건재가 수강한 미디어아트 수업의 과제가, 영상미디어학과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만드는 거였거든요. 더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친구 김춘추와, 친해지고 싶던 김한주를 불러옵니다.
실리카겔이라는 팀명도 이때 생겼어요. 빠르게 정하지 않으면 팀명을 ‘모더니즘’으로 하겠다고 교수님이 압박했죠. 그건 너무 싫었던 세 사람. 마침 눈에 띈 게 껌 통 안에 있던 방부제 실리카겔이었어요. 뭐, 착오가 생겨 결국 공연은 ‘모더니즘’으로 하게 됐지만요.
“합을 맞춰 공연하다 보니, 서로가 재밌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공연을 일회성으로 끝내기엔 아까웠어요. ‘가능성’을 저희 안에서 발견한 거죠. 그렇게 함께하게 됐습니다.”
_김춘추(기타)
실리카겔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운드입니다. 실리카겔의 노래를 들을 때면 ‘사운드에 공들였다’는 생각부터 들어요. 전문가들의 평에서도, 사운드에 대한 칭찬은 빠지지 않습니다.
“한껏 올라간 기타와 비장하게 달려가는 드럼과 베이스는 어쩐지 일을 낼 것만 같은 기세다. 그러더니 이내 불 꺼진 밤거리처럼 잠잠해졌다가 다시 질주하기를 거듭한다. 실리카겔은 짜임새 있게 노래를 설계했으며, 동시에 모든 소리를 뚫고 귀에 박히는 기타 멜로디와 노랫말을 들려주기도 한다.”
_‘NO PAIN’ 리뷰, 신샘이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그도 그럴 게, 실리카겔은 ‘브레이브 뉴 사운드Brave New Sound’를 지향해요. 실리카겔 활동 초기 뮤지션 성기완이 붙여준 캐치프레이즈로, 지금까지 사용 중이죠.
그래서 새롭고 용감한 소리를 선보이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9분이 넘는 트랙을 만들어 중간에 기계음으로 변조한 내레이션도 넣어봐요. 그러다 갑자기 클래시컬한 피아노 솔로 연주가 나타나죠. 6분짜리 노래에서 기타 솔로가 3분을 차지하기도 해요. 멤버 김춘추는 좋은 사운드를 위해 악기 구매에 억대를 썼을 정도.
“어찌 됐든 우리는 소리를 전달하는 사람들입니다. 소리에 진지하고 프로페셔널한 접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런데 소리는 눈에 보이지가 않아요. 그만큼 더 공들여야 합니다. 투자를 아끼지 않아요.”
_김춘추(기타)
‘이건 또 어떤 새로운 소리를 낼까.’ 새로운 악기나 기기를 보면 궁금하다는 이들. 최신의 재료에 멤버들의 실력이 더해져, 생경하고 실험적인 사운드가 만들어지죠.
“초창기에는 실험이 더 과감했어요. 도화지 그 자체였다고 할까요?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었어요. 그때 음악을 요즘 다시 들어보면, 뒤죽박죽이고 예상할 수 없는 소리들이 나와요. 불규칙함이 느껴지죠.지금은 우리도 노하우가 쌓였고, 음악을 만드는 루틴이 생겼어요. 규칙성이 생긴 거죠. 요즘에는 이 규칙성을 어떻게 갖고 놀고, 또 배반하느냐. 좀 더 놀이성이 강한 실험을 하고 있어요.”
_김한주(보컬)
흔히 실리카겔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실리카겔 붐은 온다.” 그리고 요즘엔 이렇게 말해요. “실리카겔 붐은 왔다.” 실험적인 음악으로 팬덤을 넘어 대중에게까지 닿기 시작한 실리카겔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에서 더 만나보세요!

자우림 김윤아 : 음악에 진정성을 담는 법

자우림, 그리고 김윤아는 어느새 27년 차 가수가 됐습니다. 그러는 동안 자우림으로는 정규 11집, 솔로로는 정규 5집까지 발매했어요. 1998년 ‘미안해 널 미워해’부터 ‘매직카펫라이드’ ‘봄날은 간다’ ‘팬이야’ ‘야상곡’ ‘하하하쏭’ ‘17171771’, 2013년 ‘스물다섯, 스물하나’까지. 히트곡도 꾸준히 나오고 있죠.
좋은 노래는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하면서도,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는 어떻게 시대를 초월하는 히트곡을 계속해서 내놓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이런 걸 원할 거야!’라 생각하며 기획하고 쓴 곡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일탈’. 그 외에는 그냥 만드는 거예요. 사실 저희끼리는 뭐가 타이틀 감인지도 잘 정하지 못해요. 음악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앨범을 들려드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달라고 해요. 그게 타이틀곡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궁금증은 자연스레, 김윤아는 ‘노래를 어떻게 만드는가’로 향합니다. 그는 마치 만화를 그리듯, 노래를 만든다고 했어요.
“제가 노래만큼 좋아했던 게 만화거든요. 만화 창작 동호회도 가입할 정도였어요. 덕분에 음악을 만들 때도, 만화를 그릴 때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잡아, 계속해서 ‘네가 그랬단 말이지?’, ‘그럼 난 이렇게 하겠어’, ‘어머, 그게 무슨 말이야?’라며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해 나갔어요. 그걸 음악에 담았죠.”

그 예시 하나로 자우림의 ‘팬이야’, 이 노래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물어봤어요. ‘행복은 사소한 데서 온다’는 본인의 원칙에서 출발한 노래라고요.
“대학생 때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Twin Peaks’ 시리즈를 즐겨봤어요. 거기에 데일 쿠퍼라는, 아주 매력적인 FBI 요원이 나오거든요. 그는 피비린내 나는 무자비한 현장을 다니면서도, 항상 유머를 잃지 않아요. 그리고 동네 카페에 가 커피랑 도넛을 먹으며 너무나 행복해하죠. 제가 처음 배운 행복의 기술이에요. ‘저런 것도 행복이 될 수 있구나.’”
그때부터 김윤아는 일상의 행복을 찾기 시작합니다. 가능한 예쁜 걸 보고, 즐거운 일을 했어요. 본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다녔죠. 그리고 예쁘게 꾸몄어요. 중간고사 기간에도, 풀 메이크업을 하고 학교에 갔죠.
“항상 불안했어요. 밖에 있어도 집에 가면 아버지가 화내진 않을까. 집이 엉망이 돼 있진 않을까. 그래서 더 일상의 행복을 찾는 데 집중했어요. 새벽 5시에 깜깜한 방 안에서, 불 하나를 켜놓고 메이크업을 하며 거울 속 제 자신에게 진짜 이야기했어요. ‘너 오늘 되게 예쁘다’ ‘오늘 시험 잘 볼 거야’ 그랬더니 정말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이때의 경험을 녹여내 만든 곡이, 바로 ‘팬이야’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애써 웃음 지어 보여도. 나는 알고 있어 때로 너는 남들 몰래 울곤 하겠지. 특별할 것 없는 나에게도 마법 같은 사건이 필요해. 울지 않고 매일 꿈꾸기 위해서 (중략) I'm my fan. I'm mad about me. I love myself. 매일 거울 안의 내게 말하곤 해.”
_‘팬이야’ 중에서
혹자들은 자우림과 김윤아의 음악을 두고, 심리 상담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진정성 있는 음악으로 리스너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아티스트 김윤아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에서 더 만나보세요!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 인디 씬에서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신뢰

인디. 영어 인디펜던스Independence의 준말로 음악이나 영화 등 예술 분야에서 많이 쓰이죠. 상업화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부류를 일컬어요.
인디가 곧 언더Underground는 아닙니다만, 언더가 되기 십상이죠. 인디 레이블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는 다릅니다. 강산에, 장기하, 혁오, 카더가든 등 시대를 대표하는 인디 스타들이 한 회사에 있어요.
2010년 출발한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는 어느덧 10년이 넘었습니다. 강명진 대표는 10년을 넘게 버틸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우리 아티스트들은 ‘남다름’이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독보적인 것과는 또 달라요. 독보적이라는 건 누군가 우리보다 낮다 높다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내 취향이 아니라고 그 사람이 음악을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다만 확실한 건 우리 아티스트들이 남다르다는 거예요. 적어도 장기하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장기하밖에 없잖아요. 혁오처럼 음악뿐 아니라 비주얼 면에서도 영역을 넓혀가는 아티스트는 당시에 없었고요.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이 기존과 다른 사람들인 거죠.”
다시 말해 레이블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만든 거죠. 영입하는 아티스트의 기준을 확실히 하면서요.
꼭 뮤지션만 남다른 건 아니에요.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도 마찬가지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예영도 그중 하나예요. 혁오의 스타일리스트로 만나 영입을 제안했다고요. 큰 실루엣의 재킷을 입히거나, 과감하게 치마를 매치하는 등. 기존에 보지 못한 스타일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요.

아티스트 간의 합을 보기도 했죠. 비디오그래퍼 정다운은 소속 뮤지션들을 영상에 담아냈어요. 오래된 카메라로, 아주 날것의 영상 스타일로요. 혁오의 밴드 투어 과정을 담아 독특한 캐릭터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죠. 안무가 윤대란도 마찬가지예요. 최근 장기하의 공연에 참여했죠. 안무를 결합한 독특한 공연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죠.
강 대표 역시 남다른 매니지먼트 철학이 있어요. 아티스트의 의견을 99% 가깝게 존중하는 겁니다. 새로운 아티스트를 영입할 때도 기존 아티스트들의 의견을 꼭 묻습니다.
두루두루는 업계에서 계약서가 없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수입 분배를 구두로 합의하는 게 전부죠. 이 또한 아티스트를 존중하는 강 대표만의 방식입니다. 아티스트 본인이 재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회사를 찾는다면, 바로 내일이라도 회사를 떠나도 괜찮다는 마음이라고요.
“확실하게 해둘 건, 계약서를 쓴다고 해서 상호 신뢰가 없는 관계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게 서로를 신뢰하는 방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요.다만 제가 법을 공부했잖아요. 계약서란 모름지기 서로 잘 지내고 있을 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계약서는 잘 헤어지기 위해 필요한 거더라고요.”
강 대표가 생각하는 회사와 아티스트의 관계는 소속되거나, 품는 관계가 아닙니다.
“저는 아티스트가 클라이언트라고 말합니다. 본인들의 재능을 회사한테 맡겨줬다고 생각하거든요. 두루두루는 그들의 재능을 토대로 최대한 아티스트가 이롭도록 돕는 전문가고요.”
진심으로 아티스트를 위하는 마음,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가 지금도 성장하며 남아있는 이유 아닐까요? 지금도 인디 씬에서 활발히 영역을 넓히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아래 링크에서 더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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