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율 : 1000년 역사의 나전칠기로, K럭셔리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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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프렌즈 B 

901년 전, 중국 송나라 사신은 고려의 나전칠기를 보고 이런 찬사를 남겼어요.

“극정교 세밀가귀極精巧 細密可

‘극도로 정교하고 세밀해, 가히 귀하다’는 뜻이에요. 2023년 일본에서 환수된 고려의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보면 이해됩니다. 신발상자만 한 나무함을 수놓은 자개 조각이 무려 4만5000여 개예요.

고려 시대 나전칠기는 전 세계에 20여 점만 남았어요.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나전칠기 공예도 활발합니다. 세계 1위 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프랑수아 피노 케링Kering 그룹 회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까지. 모두 대한민국의 나전칠기를 소장하고 있어요. 바로 ‘채율’의 작품들입니다.

꽃샘추위가 누그러든 날. 윤경혜 눈이부시게 대표와 함께, 이정은 채율 대표를 만났어요.



윤경혜 눈이부시게 대표

채율은 ‘한국의 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명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2008년 서울에서 출발했어요. 돌반지부터 테이블웨어와 가구까지, 수공예품을 제조해요.

이정은 채율 대표를 만나러,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의 채율 플래그십스토어를 찾았어요. 흰나비 문양의 유리문을 밀고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지하 1층엔 반짝이는 주얼리가 진열돼 있었어요. 지하 2층엔 한옥을 닮은 공간이 펼쳐지더군요. 마당에 자개 달항아리가 있고, 마당을 둘러싼 방들에 가구가 전시돼 있었죠. 모던한 진녹색 탁자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소나무에 삼베를 바르고 옻칠을 했대요.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자, 지하 3층과 4층에도 나전칠기 가구가 있었어요. 지하 4층 바닥에는 조명을 설치해, 1층보다 환했습니다. 그곳 다실에서 이정은 대표와 차를 마셨어요.


Chapter 1.
한국인의 정, 헤리티지가 되다

지하 4층까지 내려가자, 보석함에 들어간 기분이었어요. 이정은 대표에게 말했더니 그가 끄덕였습니다.

“함을 본떠 공간을 설계했어요. 채율의 시그니처 상품이 함이거든요.”

그가 화류나무 함을 보여줬어요. 밝은 초콜릿 색에, 크기는 멜론 두 개가 나란히 들어갈 정도. 나무함의 뚜껑과 옆면에는 네모난 문양이 있어요. 연두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진 기하학 패턴에, 한자를 새겼죠.

“17세기부터 내려온 ‘백수백복百壽百福’ 도안을 활용했어요. 장수와 복을 기원하며 한자로 수와 복을 나열한 거예요. 여기에 넝쿨무늬 순은 경첩을 달아 완성했어요.”

함의 가격은 100~1000만원 대. 이렇게 비싼 걸 누가 사느냐고요? 중요한 날, 귀한 마음을 전하고픈 사람들이 찾아요. 배우들이 결혼할 때 예단함으로 택하기도 합니다.

“전에 프랑스 도자기 브랜드 ‘베르나르도’ 회장님을 뵀어요. 함이 무엇인지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한국인의 정을 담는 상자’라고 소개했어요.”

“무엇이든 가장 귀한 걸 담는다”고 설명했대요. 하지만 ‘정’을 표현하긴 쉽진 않았답니다. 한국 고유의 정신적인 헤리티지니까요.

“우리 한국인은 기념하고, 선물하길 좋아해요. 정이 많죠. 이사할 땐 떡을 돌리고, 아기의 첫돌에는 반지를 선물해요. 결혼할 땐 정성껏 고른 빗이나 거울을 예단함에 담고요.”

채율의 함은 크기와 디자인이 다양해요. 모던한 스트라이프 패턴부터, 잔잔한 도라지꽃 문양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위해, 선택지를 늘렸어요. 이 대표는 88년생 젊은 CEO예요. 헤리티지만큼 ‘트렌드’를 중요히 여깁니다. 

“채율의 사훈이 ‘Keep heritage and stay trendy’예요. 여기서 헤리티지는 함보다, 함에 담는 ‘정’입니다. 정을 나누는 헤리티지를 지키되, 함의 디자인은 트렌디해야 이 시대의 고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어요.”

이정은 채율 대표. 한국의 정신적인 헤리티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과와 함께 나눴다. ⓒ롱블랙

산과 바다를 품은 가구

차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봤어요. 테이블도, 벽에 걸린 거울도, 장식장도 나전칠기였죠. ‘한국적인 럭셔리’를 추구하는 채율은 왜 나전칠기에 주목할까요? 이 대표는 “한국의 자연이 담겼다”고 말합니다.

“나전칠기는 바다와 숲의 만남이에요. ‘나전’은 전복 껍데기의 반짝이는 안쪽을 썰어낸 거예요. 순우리말로는 ‘자개’죠. 한국의 나전칠기는 약 1000년의 역사를 지녔어요.”

자개의 반짝임은 진주 성분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자개를 ‘Mother of Pearl’이라 불러요. ‘진주의 원천’인 셈이죠. 이 자개를 종이로 만들어, 꽃과 나비 모양으로 오려내 나무에 올려요. 옻나무 수액을 덧발라 윤기를 내면, 나전칠기가 됩니다.

“산과 바다를 품은 통영에서 나전칠기가 발달했어요. 통영의 전복 껍데기가 유독 영롱하거든요.

옻칠 강국은 한국과 중국, 일본입니다. 이 지역의 옻나무에 우루시올urushiol* 성분이 많아요. 우루시올 함량이 높을수록 옻칠하면 단단해집니다. 옻칠을 거듭한 가구는 대물림해도 끄떡없죠.”
*점성이 있는 무색 액체. 공기 중에서 검게 변하며, 진득하게 굳는다.

한국의 천연 재료로, 한국의 도안을 활용해, 한국의 장인들이 만든 작품. 이 대표가 나전칠기를 ‘한국적인 럭셔리’로 보는 이유예요.

채율의 함. 격자무늬를 모던하게 해석해, 장인들의 나전칠기 기술로 완성했다. ⓒ롱블랙

Chapter 2.
문화를 지키는 명품 브랜드

새삼 신기합니다. 친언니와 함께 채율을 창업한 2008년에, 이 대표는 겨우 스물한 살이었어요. 어떻게 그 나이에, 한국의 명품 브랜드를 만들겠단 포부를 품었을까요?

“2008년 설 연휴가 지금도 생생해요. 저는 그때 뉴욕에 있었어요. 호텔에서 TV를 보며 엉엉 울었죠. CNN에서 숭례문 화재가 보도됐거든요.”

서울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다가, 휴학하고 뉴욕에 머물던 때였어요. 국보 1호가 스러지는 걸 보며 결심했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문화를 지키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어려서부터 문화예술에 애정이 깊었어요. 아버지께서 해외 출장을 자주 가셨는데, 늘 가족을 데려가셨죠. 덕분에 저는 일곱 살 때부터 홍콩과 싱가폴, 일본에 다니며 아시아의 변천사를 봤어요.”

아버지는 어린 딸을 미술관, 음악회, 그리고 명품관까지 데려갔어요.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 매장을 지날 땐, 반클리프 가문과 아펠 가문이 사랑해서 하나가 된 브랜드라고 알려주셨어요. 홍콩이 영국령이었던 것도 가르쳐 주셨고요.”

감각이 자라난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무역을 하던 아버지에게 고민이 있었답니다. 외국인들에게 선물할 게 마땅치 않았어요. 귀한 선물을 찾다가 수공예품 장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생계가 어려운 걸 알곤 꾸준히 작품을 구입했어요.

“아버지는 컬렉터이자 후원자였어요. 문화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물려주셨죠. 어떤 사람들은 채율을 보고 제가 부자일 거라고 짐작해요.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여유롭게 사업할 정도는 아녜요. 그랬으면 제가 밤새워 일하진 않았겠죠.(웃음)

그리고 부유하다고 해서 누구나 장인들을 후원하진 않아요. 예술가를 지지하는 아버지를 보며 ‘나도 저런 어른이 되리라’ 마음먹었어요.”

채율과 함께 일하는 장인의 손길. 조개에서 채취한 자개를 섬세하게 오려내는 모습이다. ⓒ채율

한국적인 럭셔리는 ‘공석’

그런데 문화를 지킬 방법으로, 럭셔리 브랜드를 만든 이유가 뭘까요?

“국가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가 예술가들을 후원한 선례가 많아요. 프랑스의 코코 샤넬은 생전에 무용가와 작곡가, 시인이 활동하도록 무대를 마련하고 책을 내줬어요. 자존심과 생계를 지켜준 거예요.”

이 대표는 장인들과 협업하는 에르메스 같은 브랜드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마침 럭셔리를 공부하기에 뉴욕만 한 곳이 없었죠.

“뉴욕 5번가에 럭셔리 플래그십스토어가 모여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매장을 돌며 브로슈어를 모으고, 분석했죠. 제겐 각 브랜드가 국가대표로 보였어요. 티파니는 미국, 까르띠에는 프랑스, 구찌는 이탈리아… 아직 ‘코리안 럭셔리’는 없었어요. 그 자리를 공략하기로 한 거예요.”

그해에 친언니와 함께 채율을 만들었어요. 한자로 彩律. ‘색채를 다스리다’라는 뜻입니다. 언젠가 뉴욕에 한국의 색깔이 선명한 깃발을 꽂으리라, 다짐했어요.

푸른색 나비당초 삼베장. 장인들과 함께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연구해, 작품으로 구현했다. ⓒ채율

Chapter 3.
마음을 전해주는 비즈니스

채율의 첫 제품은 ‘은칠보 찻잔’이었습니다. ‘칠보’는 일곱 가지 보석처럼 다양한 색을 지녔다는 뜻이에요. 금속에 칠보 유약을 발라, 섭씨 750~850도의 고온에서 구우면 다채로운 빛깔을 띠죠.

“은칠보는 99.9% 은으로 만든 수공예품에 칠보를 입하는 거예요. 세계 누구나 차를 마시니까, 글로벌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대표의 친언니도 미술을 전공했어요. 자매가 디자인한 찻잔에 ‘은칠보’를 더해줄 장인들을 모셨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찻잔 두 개들이 세트의 가격은 300만원. 누가 살까 싶지만, 만드는 족족 팔렸어요. 비결이 뭘까요?

“은칠보 찻잔의 가치를 아는 것도, 그걸 살 재력을 지닌 것도 40~50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연구했어요. 어떤 찻잔에 커피를 드시는지, 그게 왜 예쁘다고 여기시는지요. 

그 취향대로 찻잔을 제작해, 부모님의 친구분들께 선물했어요. 곧 입소문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어른들은 그걸 직접 쓰지 않았어요. 중요한 자리에 선물로 들고 가셨죠.”

“수입품도 아닌데 왜 비싸냐”고 묻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이 대표는 되물었대요. “국산품은 비싸면 안 되나요?” 채율에는 똑같은 제품이 하나도 없어요. 장인들이 손수 만들어 각각이 ‘스페셜 에디션’이죠. 매장에 온 고객에게 그 소장 가치를 알렸어요. 무형문화재 소목장*, 옻칠 장인과 함께 칠보 가구도 만들었습니다.
*목재로 세간을 만드는 장인.

맛있는 걸 먹으면 함께 먹고 싶은 가족이 떠오르죠. 채율의 작품을 본 고객들은 소중한 사람을 떠올렸어요. 그 소중한 이를 위한 선물로 채율을 장만한 거예요.

“아르노 LVMH 회장이 살 수 없는 게 있을까요? 그런 분이 한국에 오면 뭘 선물해야 할까요? 부와 명예를 가진 이에게 어울리는 선물은 명품 시계보다, ‘진심이 깃든 희소한 작품’일 거예요. 채율은 바로 그걸 제공합니다.”

재난을 피해 간다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함. 물에서 피어나 화재를 막아준다는 ‘연꽃 문양’ 술잔. 이처럼 채율의 작품엔 한국의 고전적인 스토리텔링이 담겼어요.

2022년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겐 채율의 서안書案, 즉 좌식 책상이 선물로 전해졌습니다. 물푸레나무 모서리에 자개로 국화와 나비를 새긴 디자인이에요.

“국화와 나비는 ‘부귀영화’를 뜻해요. 그리고 옛 선비들은 서안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어요. 국빈께 서안을 선물하는 건 ‘깊은 대화가 이어지길 바라는 진심’을 표현한 거예요.”

마음을 전하는 비즈니스. 채율의 일입니다.

은칠보 항아리. 번영을 뜻하는 ‘풍성한 모란’을 새겼다. ⓒ채율

Chapter 4.
장인에게 배우다

20대 초반부터 50~60대 장인들과 협업한 이 대표. 소통이 어렵진 않았을까요?

“힘들었죠. 장인 선생님들 모시려고 새벽부터 고속버스 타고 전국에 돌아다녔어요. 장인 선생님과 작가님, 직원들 틈에서 눈치도 봤고요. 제가 만든 회사에서 제가 혼나니까, 어찌나 서럽던지.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어요. 채율의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많은 분을 설득했죠. 계절마다 찾아뵀더니, 전통을 지키려는 게 대견하다며 도와주시는 분들이 차츰 늘었어요.”

16년 차 브랜드가 된 지금. 채율과 협업하는 장인은 30여 명이에요. 젊은 공예가들과 현대미술 작가들의 참여도 늘고 있어요. 이 대표는 상아색 모란당초 장식장을 가리켰습니다. 

“이 장식장 하나 만드는 데 석 달이 걸려요. 우선 채율 디자이너가 가구의 형태와 패턴을 고안해요. 소목장이 그에 맞춰 나무를 고르죠.”

장인들은 공방을 따로 씁니다. 각각 필요한 게 다르니까요. 소목장은 나무 건조장이 딸린 작업실에서 일해요.

“소목장이 가구를 만들어 옻칠 장인에게 보내요. 옻칠 장인은 가구에 서너 번 옻칠한 다음, 색을 입히죠. 그사이에 채율이 자개 장인에게 패턴을 전달합니다. 자개 장인은 패턴대로 자개를 오려내서, 옻칠한 가구에 부착하죠. 옻칠 장인은 그 위로 다시 서너 번 옻칠해요.”

여러 손길로 완성한 장식장. 손님이 구매한다고 끝이 아녜요. 손님에게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또 옻칠하거든요.

“전통시장에 옻칠을 흉내 낸 관광상품이 많아요. 채율은 최소 일곱 번 옻칠합니다. 삼베에 옻칠하면 직물 질감과 옻이 만나 윤슬처럼 빛나요. 자개에 옻칠하면 빛이 또릿해지고요. 옻칠 가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색감이 화사해져요. 그걸 ‘옻꽃이 핀다’고 말하죠.”

이 모든 걸 장인에게 배웠다며 활짝 웃더군요.

“소목장은 돈을 벌면 좋은 나무를 사고, 자개 장인은 돈을 벌면 고운 자개를 구해요. 저도 수익을 채율에 투자하기로 했어요. 2022년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연 것도, 고객과 가까워지기 위한 투자입니다.”



Chapter 5.
고객의 TPO에 유통을 맞추다

채율의 초기 고객은 ‘귀한 선물’을 찾는 50~60대였어요. 이들을 만나고자, 채율은 처음부터 백화점에서 데뷔했습니다. 팝업스토어를 열다가, 2008년 하반기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첫 매장을 냈어요.

“무역센터와 이어진 코엑스에선 G20 정상회의부터 국제 아트페어까지 열려요. ‘귀빈께 드릴 한국적인 선물’이 풍성하게 오가는 장소죠.”

이듬해에는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에 입점했어요. 이 대표는 이곳이 한국의 ‘해러즈Harrods 백화점’이라고 봅니다.

“영국 런던의 해러즈 백화점은 175년 전에 문을 열었고, 지금도 영국 왕실에 제품을 납품해요. 헤리티지와 럭셔리의 상징이죠.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도 가치로운 브랜드들이 입점한 곳이에요.”

명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중, 수입이 아닌 한국 브랜드는 채율이 유일합니다. 이 대표는 입점 초기에 “한국 브랜드는 럭셔리하지 않다”는 선입견에 맞섰어요.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지하 1층에, 하이엔드 리빙관과 식품관이 함께 있어요. 과일을 고르다가, 리빙관 도자기가 마음에 들면 구입할 만큼 재력과 안목을 갖춘 분들께 어울리는 브랜드임을 설득했어요.”

이 대표의 예상대로,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과 채율의 고객이 겹쳤어요. 고객들은 ‘유니크한 선물’이라며 거듭 찾아왔어요. 16년째 압구정본점을 지키는 채율 매장의 재구매율은 80%. 2019년부턴 관광객이 모이는 롯데호텔에도 입점했습니다.

“전략이에요. 채율은 특별한 날 찾는 브랜드잖아요. 백화점과 호텔도 특별한 날을 맞이한 분들이 가는 곳이고요. 딱 맞는 유통처라고 판단했어요.”

고객의 TPO*에 맞춰 소수의 매장을 낸 결과, 채율은 팬데믹 때 더 성장했어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남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내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채율을 찾게 된 거예요.
*Time, Place, Occasion. 시간과 장소, 경우를 말한다.

“이제는 젊은 고객을 만날 차례”라고 이 대표는 말합니다. 레트로 열풍 덕분에, 20대가 나전칠기를 신선하게 보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자개농을 본 30~40대보다, ‘자개가 올드하다’는 편견이 없죠.

“그래서 가로수길에 채율 플래그십을 연 거예요. 젠틀몬스터와 탬버린즈 플래그십이 있는 곳, 20대가 머무는 곳에 스며들려고요.”

채율은 MZ를 위해 텀블러 출시를 준비 중이에요. 고객 연령층이 낮아지니까, 디자인 작업이 더 수월하대요.

“제가 MZ니까요. 전에는 부모님 취향에 맞췄는데, 이제는 제가 갖고 싶은 걸 디자인하면 돼요.”

채율 가로수길 플래그십스토어. 사진의 지하 2층은, 한옥 마당처럼 개방감을 살렸다. ⓒ롱블랙

사명감 있는 뉴요커를 찾습니다

채율은 MZ에게 다가가는 동시에, 해외 진출을 준비 중입니다.

“처음부터 세계적인 하이엔드를 꿈꿨어요. 다행히 국빈들을 위한 선물로 포지셔닝됐죠.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 더 높아졌으니, 해외에 나갈 적기예요.”

창업 동기를 심어준 뉴욕에서, 2026년에 첫 해외 직영점을 열 계획이랍니다. 이어서 문화의 도시 파리, 런던 순으로 나아가려 해요.

해외 진출의 전략으로는 ‘사람’을 꼽더군요.

“저와 친언니 둘이서 채율을 일궜어요. 한국적인 럭셔리를 만드는 일은 돈만으로도 할 수 없고, 감각만으로도 할 수 없어요. 사명감이 필요하죠. 뉴욕과 파리, 런던에서 사명감 있는 현지 적임자를 발굴하려고요.”

채율을 각 도시에 소개할 ‘사절단’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부터 그런 인재를 찾을 거예요. 아티스트와 상생할 줄 알고, 채율의 기업정신을 이해하고, 고객에게 채율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을요.”

이정은 대표. 채율은 2년 뒤인 2026년에 뉴욕에 진출할 계획이다. ⓒ롱블랙

Chapter 6.
럭셔리는 ‘경험’이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꿈꾸는 채율. 이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오늘날의 럭셔리란, 무엇인가요?” 

“옷이나 가방으로 과시하는 럭셔리 문화는 18~20세기에 지나갔다고 봅니다. 21세기의 럭셔리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쉽게 살 수 있는 걸 ‘럭셔리’라 부르진 않아요. 희소성이 럭셔리의 조건입니다. 이 대표는 이 시대에 가장 귀한 건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말해요.

“채율의 제품은 명품백처럼, 나를 과시하는 데 쓰이지 않아요. 오히려 상대를 높여주죠. 이를테면 청혼할 땐 ‘영원한 사랑’을 뜻하는 채율의 도라지꽃 함에 반지를 담아, 연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요. 그런 감동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죠.”

나누길 좋아하는 한국인이야말로, 이 시대의 럭셔리에 어울리는 정신spirit을 지녔다고 그는 믿어요.

“요즘은 채율의 스테이stay를 구상 중이에요. 숙박업을 말하는 게 아녜요. 채율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공간을 마련할 겁니다. 객실이 하나일 수도, 두 개일 수도 있어요. 럭셔리는 규모가 아닌 질quality로 승부하니까요.”

채율 스테이에서 옻칠 식기로 식사하고, 향긋한 차를 음미하는 겁니다.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겠죠.

“가로수길 플래그십스토어를 4개 층으로 기획한 것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예요.”

지하 3~4층은 갤러리로 쓰여요.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고, 고객에겐 무료 전시를 선사하죠.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다실도 준비했어요.

“모두 바쁘고 힘든 시대예요. 손님들께 쉬어가는 시간을 드리고 싶어요. 제조업으로 시작했지만, 오감을 위한 향수와 차도 개발했습니다.”

세계적인 호텔·리조트 브랜드 ‘아만Aman’에서 영감을 얻었대요. 각 나라의 문화를 녹여낸 공간. 고객이 바라는 경험은 뭐든 제공하려는 기업정신. 채율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럭셔리예요.

채율 플래그십스토어. 고객을 위한 갤러리가 되기도, 쉼터가 되기도 한다. ⓒ롱블랙

Chapter 7.
한국의 아름다움이란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한국적인 것’하면 달항아리나 백자의 단아한 아름다움이 떠올라요. 채율의 제품은 그와는 거리가 멉니다. 강렬한 빨강, 초록색에 번쩍이는 광택까지. 이 대표에게 물었어요. “‘한국의 미’는 소박한 아름다움 아닌가요?”

“선조들은 담백한 조선백자도 남기고, 화려한 고려청자도 남겼어요. 우리가 정의하는 ‘한국의 미’는 조선에 치우친 경향이 있어요. 저는 한국의 미감을 좁은 틀에 가두고 싶지 않아요.

고려 나전칠기의 맥시멀리즘에서 출발해, 서서히 검박한 아름다움을 구현하려 합니다. 무채색의 무광 가구를 선보일 수도 있겠죠.”

5000년 역사를 지닌 만큼, 한국의 미는 무궁무진하다는 겁니다. 이 대표는 ‘한국적인 것’을 말할 때 한옥부터 소환하는 것도 지양해요.

“한옥은 하드웨어예요. 저는 그 안의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을 벗 삼는 마음’ 말예요.”

 ‘소반’에서도 그런 마음이 엿보인대요. 휴대용 다탁이니까, 나무 아래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죠. 이처럼 사물에 깃든 ‘정신적인 유산’을 잇고 싶답니다.

“한국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우리 민족의 ‘정서’라고 믿어요. 하나라도 더 내어주려는 정, 풍류를 즐기는 낭만, 복을 빌어주는 다정함까지. 이 정서를 전 세계로 퍼뜨리는 것. 그게 바로 채율의 럭셔리 비즈니스입니다.”

자개 달항아리. 단아한 형태와 화려한 색채를 아우르고 있다. 채율은 ‘한국의 미’를 다채롭게 표현한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B

187년 역사의 에르메스, 114년 역사의 샤넬, 103년 역사의 구찌. 명품은 세월이 흐를수록 낡지 않고, 깊어집니다. 옻칠이 켜켜이 쌓이며 더 견고해지듯이요.

“채율은 열여섯 살 된 브랜드예요. 이제 시작이죠. 장인, 예술가들과 더 견고해질 거예요. 5년 뒤 뉴요커가 채율 의자에 앉고, 10년 뒤 서울에 온 파리지앵이 채율 스테이에 머물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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