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여러분께 고백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롱블랙 노트를 매일 만드는 제 마음 한편에는 불안이 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더 나은 글을 드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저를 쥐어짤 때도 있어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 불안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한 인물이 떠올랐어요.
박웅현. 한 시대를 풍미한 카피라이터이자 베스트셀러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를 쓴 작가입니다. 1961년생의 그는 TBWA KOREA 조직문화연구소를 이끌며 지금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죠.
2022년 11월, 저는 그와 나눈 대화를 롱블랙 노트로 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주제는 ‘나의 일을 확장하는 법’이었어요.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2026년 1월, 서울 신사동의 TBWA KOREA 사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의 대화 주제는 ‘나를 단단하게 세우는 법’이었죠.

박웅현 TBWA KOREA 조직문화연구소 대표
“웅현 님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대표님, 오랜만입니다”라는 제 인사에 건넨 답이었습니다. 그는 제 이름을 부르면서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전사 메일을 보낸 적이 있어요. ‘저는 그 어떤 직급·직함보다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제 이름이 좋습니다. 웅현 님이라고 불러주실 때 다가가 한 포기 풀이라도 되겠습니다’라고요.”
긴장감이 가라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그를 ‘웅현 님’으로 부르며 품었던 질문들을 가감 없이 꺼내기로 했죠. 제가 최근에 가장 많이 생각한 주제부터 물었습니다.
Chapter 1.
인간은 AI와 달리 ‘종합력’을 품고 있다
AI의 발전은 ‘박웅현의 삶’을 어떻게 바꿨을까요. 더 편리하게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두렵게 만들었을까요. 저는 전자를 예상했습니다. 나아가 ‘그만의 기술 활용법’도 듣겠다는 마음이었죠. 하지만 제 예상을 빗나간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기술에 뒤처진 사람이에요. 유행이 지난 다음에야 ‘그게 유행이었다’고 깨닫는 편이죠. 20여 년 전 MP3가 나왔을 때도 ‘CD와 워크맨이 있는데 그게 왜 필요한가’라고 물었을 정도입니다. AI 역시 후배들만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편이고요.
하지만 ‘AI의 발전이 두려운가’라는 물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두려울 수 있지만, 여기서 벗어날 방법도 있다는 거예요.”
그는 이어 ‘감정’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습니다. “감정은 우리가 AI처럼 일할 수 없게 만드는 방해 요소”라는 설명과 함께였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죠? 이게 감정이에요. 밤길에 운전하다 사슴을 맞닥뜨려 본 사람은 비슷한 상황에서 공포를 느낍니다.
하지만 AI는 어떤가요. 사고를 내도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아요. 감정의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이죠. 이 맥락에서 우리는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AI에게는 방해 요소인 ‘감정과 감성’을 기르는 거죠.”
그는 이 말을 한 뒤 생각이 하나 떠오른 듯, 스마트폰에 쓴 메모를 제게 보였습니다.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어요.
‘AI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관의 강화다. 객관을 추구하면 답은 없다.’

문장을 보며 자연스레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우리가 감정과 주관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죠. 그는 노하우를 들려주는 대신,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생각할 게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좌뇌(논리) 중심으로 살았으니, 이제 우뇌(감성)에만 집중하자는 식의 이분법을 말하고 싶지 않아요. 인간은 애매모호한 유기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눌 수도 없어요. 모든 게 섞여 있죠. MBTI처럼 자꾸 우리를 명료하게 분석하고 정의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됩니다.
대신 저는 ‘종합력’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건 최근 잊히고 있는 ‘전인교육全人敎育*’과도 연결되죠. 모든 걸 잘게 쪼개는 게 아니라, 흩어진 정보에 내 주관을 얹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자질(지성, 감성, 신체 등)을 균형 있게 발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관.예를 들면 이런 거죠. AI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데이터를 완벽하게 분석할 수 있어요. 하지만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요리하다가 라디오에서 나온 협주곡 선율이 마음에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지는 ‘종합’하지 못하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Chapter 2.
조직은 숫자가 아니라 ‘문장’으로 움직인다
‘인간에게는 종합력이 있다’는 말에 궁금해졌습니다. 이 능력을 우리 일에서 어떻게 발현할 수 있는가. 웅현 님은 최근 4년간 조직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일을 들려줬죠.
“조직문화를 컨설팅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뭔지 아시나요? ‘이거 하면 1년 뒤 숫자가 어떻게 바뀌나요?’였습니다. 다들 명료하게 잡을 수 없는 걸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애썼죠.
인간은 모호한 유기체라고 했잖아요? 그런 인간이 모인 조직도 애매한 생명체입니다. 그런데 조직의 변화를 ‘1년간 생산성 10% 상승’ 같은 데이터로 본다면? 우리는 그 안에 또 갇히게 됩니다.”
이해는 됐지만,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선 일에 드는 비용을 당연히 고려해야 하고, 그걸 증명하는 숫자를 보고 싶을 테니까요. 그에게 숫자를 넘어선 변화를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한 대기업 디자이너들의 일을 언어로 표현한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그가 만난 디자이너들의 사기는 꽤 떨어져 있었다고 해요. “기획자로부터 ‘상품이 잘 팔리게 그려달라’는 오더를 주로 받던 이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죠.
“회사 구조상 디자이너들은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어요. 그렇다고 그 구조를 뒤집을 순 없었습니다. 시장을 파악하고 제품을 만드는 이들의 역할 역시 확실하게 있었으니까요.
방식을 바꿀 수 없다면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습니다. 회사 사람들은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어요. 색이나 그림이 조금만 바뀌어도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 역시 다들 이해했죠.
이들은 결코 ‘업무 전선 뒷단’에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 생각들을 모아 슬로건을 제안했어요. ‘You Tell We Show. 당신이 말하면 우리는 보여준다.’ 쇼는 멋진 일이잖아요?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 이 가치로운 일을 하는 게 디자이너들이라고 제안했죠.”
웅현 님은 이렇게 조직문화의 가치를 종합하는 과정을 ‘철학의 문학화’라고 불렀습니다. 달리 말하면 조직의 일을 ‘정확한 개념(철학)’에서 ‘피를 끓게 하는 개념(문학)’으로 표현하는 게 필요하단 거예요.
“모든 기업이 ‘정도 경영’, ‘협업 중시’ 같은 훌륭한 철학을 품고 있습니다. 화장실에도 이런 단어를 붙여둘 정도죠. 하지만 그 말이 구성원의 피를 끓게 하진 않아요.
이때 필요한 건 ‘언어의 핵심을 뽑아서 생략하고 과장해 반복하는 문학화’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코카콜라는 ‘전 세계에 상쾌함을 전한다’고 자신들의 사업을 표현합니다. ‘몸에 좋지 않은 탄산 물을 판다’고 생각하는 직원은 드물 거예요.
일하는 사람들의 객관적인 조건은 사실 비슷비슷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출근할 이유’를 문학적으로 품고 있는가는 저마다 다를 거예요. 이게 있는 조직은 에너지가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Chapter 3.
슬럼프라는 단어로 나를 가두지 말라
웅현 님과 개인과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넘나드는 사이, 제 마음에 떠오른 키워드가 하나 있었습니다.
생각 싸움.
결국 내 감정과 행동을 가르는 건 ‘나의 생각’이라는 겁니다. 어떤 생각이 내 안에서 우위를 차지하느냐가 삶에 있어서 핵심이라는 거죠.
하지만 이 깨달음과 함께 드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다’는 것.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Q. 매 순간 힘이 되는 생각을 하면 좋겠지만, ‘엊그제 나를 힘들게 한 동료의 말’처럼 원하지 않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되려 그 생각이 저를 지배할 때도 있고요.
“이걸 대처하는 방법은 ‘나의 노력’ 밖에 없어요. 그래도 의미 있는 건 있습니다. 일단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하는데 부정적인 게 올라온다’는 의식을 했죠?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걸 눌러야 해요. 저도 똑같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누르고, 다시 떠오르면 또 누르죠.”
Q. 웅현 님에게도 여전히 ‘누르고 싶은 불안’이 찾아올 때가 있나요?
“그럼요. 최근에는 제게 일을 맡기는 분들이 ‘저를 믿고 전적으로 의존하실 때’ 걱정합니다. ‘기대만큼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을 느끼죠.
이때 저도 ‘마음의 주관적 시선’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해요. ‘너무 걱정된다, 어쩌지’라며 잠식될 건지, 아니면 ‘내가 잘 살아왔다는 뜻인가 보다. 건방지지 않게, 천천히 해보자’고 나아갈지 선택하는 거죠. 걱정될 때마다 이건 축복이라고 애써서 생각하는 겁니다.”
Q. 말씀이 이해되지만, 막상 그 상황에 다다르면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 문장을 드리고 싶어요. ‘나를 지배하는 나는 없다.’ 이따금 우리는 ‘지금 슬럼프가 왔다’고 하죠. 하지만 그러라고 명령한 사람은 사실 없어요. 그냥 내가 나를 그렇게 정의한 거죠.
‘난 지금 슬럼프야’라고 말하는 순간, 슬럼프가 시작돼요. 물론 불안이 올라올 수 있어요. 하지만 슬럼프는 내가 붙이는 이름입니다.
그렇기에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물론 이게 단번에 바뀌는 건 아닙니다. 짜증이 올라올 때마다 ‘워워’ 하면서 생각을 긍정으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만 해요. 그래야만 내가 더 나아집니다.”

Chapter 4.
뭉근하게 삶을 쌓아 보자, 분명 넘칠 때가 온다
웅현 님이 생각하는 태도를 두고 강조한 키워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눈앞에 집중’하는 것. 심지어 그는 “눈앞에 집중하는 게 가장 완벽한 미래 준비”라고 말할 정도였죠.
“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앞뒤 따지지 않고 지금 내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훌륭한 미래 준비는 없었어요. 에디터라면 인터뷰를 잘하고, 당장 마감해야 하는 글을 더 잘 쓰려는 게 가장 좋은 미래 대비인 거죠. 자꾸 다른 데를 기웃거리고 딴생각을 한다고 한들, 글쓰기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그에게 삐딱한 속마음을 내비쳤습니다. “내 일에 최선을 다하되, 다른 이에게 성과를 알리고 어필하는 노력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마음은 이해합니다. 나를 누군가에게 어필하려고 노력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게 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종종 후배들에게 ‘너무 스퀴즈 아웃Squeeze Out 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를 알리려고 이것저것 다하다 보면, 결국 나를 들들 볶게 되거든요.
그보다 저는 우리가 스필 오버Spill over 될 때까지 뭉근하게* 기다렸으면 합니다. 내 안에 좋은 것들을 쌓다 보면 넘치는 순간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거든요.”
*‘세지 않은 불기운이 끊이지 않고 꾸준하다’는 뜻
그럼 웅현 님은 젊은 시절에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요. 그는 “물론 지금이야 이렇게 조언하지만, 분명 나의 젊은 시절에도 고뇌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제가 30대 박웅현에게 조언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지금 네 눈앞에 답이 있어. 자꾸 다른 데 기웃거리지 말고 선택한 것 잘하고 있어’라고요.
왜냐면 저도 일하면서 불만을 느낀 시기가 있었거든요. ‘내 퍼포먼스가 괜찮은데 내 월급과 평가는 왜 이 정도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죠. 근데 돌이켜 보니 그때 원했던 보상은 전부 뒤따라왔어요.”
실제로 그가 대중에 알려진 작가가 된 시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는 사십 대 후반이 된 2009년이 돼서야 책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시작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어요.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를 낸 것도 오십 대가 됐을 때였죠.
그는 책을 쓴 계기를 ‘스필 오버’의 순간으로 꼽습니다. 매일 광고 만드는 일에 집중하다가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섭외에 응한 게 계기였다고 했어요. ‘성공한 카피를 만드는 광고인’으로 소개된 그를 본 한 출판사가 제안을 한 거였죠. “창의성에 대한 책을 쓰자”면서요.
“처음 출간 제안이 왔을 때도 ‘창의성을 말로 표현할 수 있나’라는 회의적인 생각도 했었어요. 그만큼 저는 실무에 있을 때 다른 생각이 올라오면 눌러 버리고 광고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곤 했었죠.
결국 스필 오버의 순간을 누리면서 저는 확인했습니다. 앞서서 애쓴 시간이 과거의 저를 위한 미래 준비로 이어졌다고요. 그래서 전 ‘충실한 하루하루만큼 단단한 미래 준비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Chapter 5.
감동하는 힘은 당신을 풍요로운 존재로 만들 것
생각을 바로잡는 것과 충실한 하루를 사는 것. 사실 웅현 님이 나눈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어딘가에서 읽고 들었을 이야기이기도 하죠. 그에게 당연한 말을 왜 우리가 반복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삶이 원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기체잖아요. 유기체는 정보가 한 번 들어왔다고 해서 바로 바뀌지 않아요.
왜 스님이 ‘화두*를 잡는다’고도 하잖아요? 이 말의 뜻에는 ‘유기체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유기체가 아니면 화두를 잡을 필요도 없어요. 회로를 바꾸고 명령을 넣으면 끝이거든요.”
*통상적으로는 ‘관심을 두고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이야기할 만한 것’을 뜻하나, 불교계에선 참선 수행을 위한 실마리를 이르는 말을 뜻한다.
즉,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생명체이기에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단번에 실행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는 예시를 하나 들었습니다.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원칙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서요. 이 원칙은 3인 가족이든, 3만 명의 조직이든 상관없이 적용될 수 있다고 했죠.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 공자가 한 말이죠.
사실 가족이든, 큰 조직을 운영하든 이 한마디만 지키면 충분합니다. 공부하러 방에 들어가는데 부모님이 ‘공부해!’라고 외친다면, 카피를 써갔는데 선배가 ‘글이 왜 이따위냐’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당연히 좋지 않겠죠.
이처럼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지혜는 멀리 있지 않아요. 많은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다만 이를 발견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 어려움을 느낄 뿐이죠.”
내가 이미 알고 있고, 또 읽은 것들을 실행에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가 제안한 것은 일종의 ‘멈춤’이었어요.
그는 이를 ‘노풋No Put’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정보를 끊임없이 넣는 인풋도, 나를 쥐어짜는 아웃풋도 잠시 멈춰야 내 안의 지혜를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었죠.
“지금은 너무 바쁜 세상입니다. 눈 뜨고 잘 때까지 스마트폰이라는 ‘개 떼’에 쫓기듯 정보를 삼키죠. 정보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걸 잠시 멈춰야 안에서 솟아나는 내 생각이 들리기 시작해요. 검색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사유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일상에서 어떻게 사유하고 있을까요. 그가 실천하고 있는 ‘멈춤의 루틴’이 있는지 물었어요. 두 가지를 들려줬습니다.
“최근 밥을 20분씩 먹어보려고 합니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한국 남성들은 평균 10분이면 밥을 다 먹으니까요. 밥숟갈을 들었을 때부터 20분간 식사하기로 결심하면, 입안에 음식이 있을 때 다른 걸 넣지 않게 돼요. 온전히 그 질감과 풍미를 즐기게 되죠.
또 하나 출근할 때 하는 노력이 있습니다. 회사에 도착한 뒤 차 시동을 끄고 1분간 가만히 제 심장 소리를 듣는 거예요. 들숨과 날숨에만 집중합니다. 내 몸이 숨 쉰다는 사실에 감동하는 시간을 가지려는 거죠.”
웅현 님은 우리에게 ‘감동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소위 ‘감동력’은 급변하는 시대에 인간에게 꼭 필요할 능력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었어요.
“내가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음악은 잊기 어렵습니다. 내가 감동했던 쿠키의 향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아요. 이처럼 좋은 건 주변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감동받을 줄 아는 것이 저는 능력이라고 믿어요.
법정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풍부하게 소유하는 삶을 지양하고, 풍요롭게 존재하는 삶을 추구하자’고. 이겁니다. 8000원짜리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20만원짜리 스테이크를 떠올리면서 괴로워하지 마세요. 지금 눈앞에 있는 된장찌개에 집중하는 게 더 풍요롭게 존재하는 길이에요.”


롱블랙 프렌즈 B
‘나를 단단하게 세우는 법’을 들으러 간 자리에서 저는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눈앞에 닥친 상황에 집중하는 것도,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도 모두 ‘풍요로움’이라는 단어로 모아지는 듯했죠.
오늘 노트는 웅현 님이 제게 들려준 한 문장을 나누며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는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Pessoa*가 쓴 문장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죠.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사상가. 여러 개의 자아(이명)를 통해 존재와 감각, 삶의 의미를 탐구했다. 『불안의 책』을 쓴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때로는 내 곁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그것만 가지고도 태어난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롱블랙 피플, 오늘 여러분이 만나는 순간들이 여러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길 바랍니다.

롱블랙 프렌즈 B
여러분께 고백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롱블랙 노트를 매일 만드는 제 마음 한편에는 불안이 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더 나은 글을 드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저를 쥐어짤 때도 있어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 불안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한 인물이 떠올랐어요.
박웅현. 한 시대를 풍미한 카피라이터이자 베스트셀러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를 쓴 작가입니다. 1961년생의 그는 TBWA KOREA 조직문화연구소를 이끌며 지금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죠.
2022년 11월, 저는 그와 나눈 대화를 롱블랙 노트로 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주제는 ‘나의 일을 확장하는 법’이었어요.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2026년 1월, 서울 신사동의 TBWA KOREA 사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의 대화 주제는 ‘나를 단단하게 세우는 법’이었죠.

박웅현 TBWA KOREA 조직문화연구소 대표
“웅현 님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대표님, 오랜만입니다”라는 제 인사에 건넨 답이었습니다. 그는 제 이름을 부르면서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전사 메일을 보낸 적이 있어요. ‘저는 그 어떤 직급·직함보다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제 이름이 좋습니다. 웅현 님이라고 불러주실 때 다가가 한 포기 풀이라도 되겠습니다’라고요.”
긴장감이 가라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그를 ‘웅현 님’으로 부르며 품었던 질문들을 가감 없이 꺼내기로 했죠. 제가 최근에 가장 많이 생각한 주제부터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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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현 대표가 인터뷰 중 칠판에 적은 문장들. 그는 건강한 조직문화를 위한 원칙으로 든 ‘기소불욕 물시어인’을 비롯해 삶의 태도로 ‘노풋No Put’, ‘눈앞에 집중’ 등을 제안했다. 또 그는 좌측 하단에 쓰인 ‘심불시불 지불시도’를 쓰면서 “아는 것을 행하는 방향으로 삶의 축을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롱블랙
서울 신사동의 TBWA KOREA 사무실에서 롱블랙과 인터뷰하는 박웅현 대표. 약 3년 만에 에디터를 다시 만난 그는 급변하는 시대에 필요한 감각과 삶을 지탱하는 태도에 대해 들려줬다. ©롱블랙
박웅현 대표가 이끌고 있는 TBWA KOREA 조직문화연구소의 로고. 기업의 조직문화를 진단하고, 조직의 구심점이 될 철학을 정립한 뒤,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솔루션을 설계한다. ©TBWA
2007년 EBS의 다큐멘터리 ‘시대의 초상’에 출연한 박웅현 대표의 모습. 다큐멘터리 섭외에 응한 것이 이어져, 출판사에서 책 출간을 제안해 그는 사십대 후반,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작가가 됐다. “내 안에 좋은 것들을 쌓다 보면 넘치는 순간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라고 그는 전했다. ©EBS
박웅현 대표는 불안한 순간일수록 ‘마음의 주관적 시선’을 바로잡는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지배하는 나는 없다”며, 의식적으로 불안을 긍정으로 바꾸는 삶의 태도를 강조했다. ©롱블랙
박웅현 대표의 또 다른 저서 『문장과 순간』(왼쪽)과 『천천히 다정하게』(오른쪽). 그는 “힘든 상황을 견디는 방법은 사물을 천천히, 다정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인티앤
박웅현 대표는 인간은 회로를 바꿔 명령만 넣으면 끝나는 기계가 아닌 ‘유기체’라고 설명한다. 그는 “우리가 실행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삶에 스며들 때까지 계속 되새기고 반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롱블랙
롱블랙과 인터뷰를 마친 박웅현 대표. 자신을 ‘웅현 님’으로 불러달라고 했던 그는 “나를 둘러싼 주변에서 감동받을 줄 아는 것 자체가 능력”이라며, 앞으로 ‘감동력’이 인간에게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롱블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