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화려한 매장들로 반짝이는 청담동. 그 안쪽 골목에 수국 핀 정원을 두른 연녹색 이층집이 서 있습니다. 외벽은 손으로 그린 미용 도구 그림으로 가득해요. 흰 강모가 부챗살처럼 펼쳐진 빗, 짙은 나무 손잡이에 듬성듬성 구슬핀이 박힌 쿠션 브러시, 보라색 등에 노랑 빨강 줄무늬가 칠해진 성긴 빗…
간판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건물 꼭대기에 짙은 청동색으로 돋을새김한 프랑스어 한 줄. Officine Universelle Buly. 우리말로 옮기면 ‘불리의 만물 약방’쯤 될까요. 파리의 오래된 가게에서 떼어온 듯 검은 철제문, 그 옆엔 작은 동판이 걸려있습니다. 동판에는 프랑스어로 이렇게 새겨져 있어요.
‘1837년, 오노레 드 발자크는 조향사 장 뱅상 불리와 그의 오피신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 『세자르 비로토』를 썼다En 1837, Honoré de Balzac s'inspira du parfumeur Jean Vincent Buly et de son officine pour son roman César Birotteau.’
철제문을 열면 시간이 바뀝니다. 200년 전 파리의 약방이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짙은 나무로 짜 넣은 격자무늬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운 약제함. 벽 선반엔 라틴어 손글씨가 적힌 하얀 도자기 약병들이 줄지어있고, 대리석 테이블 위엔 공기 펌프를 누르면 향을 뿜어내는 유리 깔기들이 놓여있었죠.
저는 이곳에서 선물용 빗을 하나 샀습니다. 빳빳한 흰색 카라의 남색 원피스를 입은 직원이 물었어요. “이름을 적어드릴까요?” 그는 황동색의 금속 깃펜에 잉크를 찍어 필기체로 이름을 써넣었습니다. 옛 신문지를 닮은 포장지 위에 그 이름표를 붙이고 나니, 뭔가 의식을 치른 듯한 느낌이 들었죠.
가게를 나서는데 시간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들더군요. 신기한 건, 이 이상한 가게가 빠르게 컸다는 겁니다. 2014년 파리에서 출발해 지금은 세계 62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2021년엔 LVMH 그룹에 합류했죠.
궁금해졌습니다. 200년 전 조향사의 이름을 되살린 사람, 공동 창업자 빅투아 드 타야크Victoire de Taillac를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Chapter 1.
19세기의 약방을 되살리다
불리를 이해하려면, 브랜드를 만든 부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빅투아 드 타야크와 남편인 람단 투아미Ramdane Touhami.
람단부터 소개할게요. 화려한 수식어를 지녔어요. 패션계의 전설. 문제아enfant terrible. 연쇄 창업가. 그는 리테일 공간 디렉터로 특히 유명합니다. 구찌 100주년 캠페인과 자라의 카페 브랜드 자카페Zacaffè 프로젝트에 참여했죠.
이력이 소설 같아요. 모로코 이민자 가정, 프랑스 남부 출생. 열일곱에 파리에 왔고, 노숙을 할 정도로 돈이 없었죠. 성공은 빨리 찾아왔어요. 열여덟에 프랑스 최초의 스케이트웨어 브랜드 ‘킹 사이즈King Size’를 만들었고, 스물셋이던 1999년 콘셉트 스토어 ‘레피스리L'Épicerie’를 열었죠. 보그 파리와 르몽드는 “유럽에서 가장 힙한 가게”라 평했어요.
람단과 빅투아가 만난 건 20대 중반, 파리에서입니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됐고, 이후의 창업은 늘 함께였어요. 2002년 파리에 니치 코스메틱 편집숍 ‘파르퓌므리 제네랄Parfumerie Générale’을 열었고, 2006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초 제조사 시르 트루동Cire Trudon을 깨워 브랜드로 되살렸죠. 2013년에는 아름다움과 몸을 다룬 잡지 『코르퓌스Corpus』를 내놓았고요.
불리는 이 연작의 정점입니다. 시작은 오래된 책 한 권이었죠. 골동품상 친구가 두 사람에게 19세기 뷰티 카탈로그를 보여줬대요.
“저희는 병의 아름다움과 제품의 이름, 사용법을 설명하는 방식에 매료됐어요. 제품 하나하나가 ‘작품’처럼 보였거든요. ‘이런 제품들이 우리 욕실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사람은 이런 세계를 가진 옛 프랑스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발견한 이름이 장 뱅상 불리Jean-Vincent Bully였죠.
불리는 조향사이자 화장품 제조자였습니다. 1803년 파리 생토노레 거리에 오피신Officine을 열었어요. 향기 나는 미용 식초로 특허를 내고, 고대 그리스의 미용법을 연구해 ‘윌 앙티크Huile Antique’ 즉 ‘고대의 오일’을 선보였죠.
두 사람은 불리의 이름에서 L 하나를 덜어 Buly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파리 보나파르트 거리에 첫 오피신을 열었죠. 브랜드를 만들며, 빅투아와 람단은 오래된 카탈로그와 프랑스 국립문서보관소의 자료를 뒤졌다고 합니다.
“당시의 향수 가게가 어떻게 운영됐는지, 어떤 제품을 팔았는지,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모든 창작물 하나하나에 깃든 우아함이었습니다.”
우아함. 빅투아는 자신을 가꾸는 행동에 우아함이 깃들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보고 자랐다면서요.

Chapter 2.
아름다움의 세계에는 정답이 없다
빅투아에게 아름다움이란 ‘완성된 모습’이 아닙니다. ‘자신을 돌보는 행동’에 가까워요. 그는 할머니가 겔랑Guerlain 향수를 뿌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모습을 선명히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잠들기 전 머리를 백번씩 빗으며 머릿결을 가꿨죠.
“거창한 행동이라기보다 작은 습관들이었어요. 제가 어릴 때 특히 좋아했던 건 목욕 의식이었어요. 욕조에 무엇을 넣고 목욕할지 고민하는 것 같은 거요. 목욕을 마치면 커다란 백조 깃털 같은 퍼프로 몸에 파우더를 바르곤 했어요.”
빅투아는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어요. 뷰티의 세계에 발을 들인 건 스물두 살. 파리의 콘셉트 스토어 콜레트Colette*가 문을 열 때 홍보담당자로 합류했죠. 키엘Kiehl’s과 이솝Aesop 같은 뷰티 브랜드 창업자들과 가까이 일하며 자신이 뷰티에 끌린다는 걸 깨달았어요.
*1997년 파리에 문을 연 콘셉트 스토어. 패션·디자인·음악·뷰티를 큐레이션하며 파리의 트렌드를 이끈 곳이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됐죠. 저를 사로잡는 건 일상의 역사, 감수성의 역사라는 걸요.”
이 호기심은 여행으로 확장됩니다. 특히 열다섯 살 때 찾은 도쿄, 결혼 뒤 살았던 모로코 북부의 항구도시 탕헤르는 빅투아에게 큰 영감을 남겼어요.
“여행을 하면 우리가 아는 세계가 아주 작은 일부라는 걸, 배울 게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됩니다. 일본의 정원과 온천을 보며 알았어요. 프랑스에서 본 아름다움이 다가 아니란 것을요.
람단과 탕헤르에 살 땐 전통시장 수크의 약초상을 자주 찾았어요. 그곳 사람들은 식물성 오일과 점토, 파우더를 직접 사서 자신을 가꿨어요. 미용엔 정말 다양한 방식이 있단 걸 알게 됐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경험. 빅투아는 “아름다움의 세계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들은 늘 아름다워지려 애써왔죠. 옛날에도 지금도,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요. 다만 그 방식은 모두 달랐던 겁니다.
아름다움을 향한 다양한 취향과 노력을 빅투아는 꾸준히 수집했습니다. 2017년엔 람단과 함께 『자연주의 미용의 지도책Atlas de la Beauté au Naturel』을 발행하기도 했어요. 256 페이지의 이 책엔 세계 각지의 천연 원료 80가지를 그림과 함께 소개했어요. 이 원료를 활용하는 법도 촘촘히 설명했죠.

Chapter 3.
900개의 제품으로 취향을 지키다
정답이 없다면, 가게는 무엇을 팔아야 할까요. 불리의 답은 선택지입니다. 약 900개의 선택지. 불리의 약방에 놓인 제품 수입니다.
잘 알려진 향수와 크림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산 천연 해면*, 인도식 구리 혀 클리너, 베티버 뿌리로 만든 각질 관리 도구까지 선반에 올라가죠.
*바다에 사는 해면 동물을 말려 만든 천연 스펀지.
빅투아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많은 제품이 필요하냐고요.
“요즘 뷰티 시장에선 취향도, 자신을 가꾸는 방식도 점점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불리에서 하고 싶은 건 서로 다른 취향을 지키는 일입니다. 아름다움은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아주 개인적이니까요. 당신의 취향은 당신의 것이고, 제 취향은 제 것입니다.
그래서 불리에는 900개의 제품이 있어요. 고객이 매장에 들어왔을 때 언제나 자신의 취향대로 고를 수 있도록요.”
실제로 불리의 선반엔 낯선 물건이 많습니다. 베티버Vetiver가 한 예예요. 향수에 자주 쓰이는 풀로, 뿌리에서 흙과 나무를 닮은 짙은 향이 납니다. 불리는 이 질긴 뿌리를 얇은 망에 싸 손바닥만 한 도구로 만들었어요. 물에 적셔 팔꿈치나 무릎, 발꿈치를 문지르면 거친 뿌리가 각질을 벗겨냅니다.

구리 혀 클리너는 가느다란 구리 막대의 양 끝을 잡고 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긁어내는 도구예요. 인도에서 오래전부터 입안을 관리하는 데 써온 방식이죠.
빅투아는 불리의 약방이 이런 ‘발견’의 공간이길 바랍니다.
“그냥 윌 앙티크*를 사도 행복하겠지만, 전혀 몰랐던 바디 브러시나 혀 클리너를 발견할 수도 있어요. 자신이 몰랐던 것이, 자신을 돌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고객이 자신을 가꾸는 방법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 가장 흥미로워요.”
*1834년 장 뱅상 불리가 선보인 바디 오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불리의 대표 제품.
그래서 덜 팔리는 제품도 쉽게 없애지 않습니다.
“카탈로그에 있는 모든 제품은 같은 중요성과 같은 존재 이유를 가집니다. 잘 팔릴 것 같은 제품만 만들지 않습니다. 그건 저희 방식이 아니예요.”
신제품을 만들 때도 “불리에 아직 없는 것은 무엇인가”부터 묻습니다.
“저희를 움직이는 건 호기심과 창의성입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것을 개발하고, 파트너에게 전에 해보지 않은 일을 같이 해보자고 설득하죠. 심지어 사용하기 쉽지 않고 조금 복잡한 제품을 만들 때도 있어요.
불리는 단순화하거나 전 세계 어디서나 똑같게 만들거나 스스로를 제한하려는 브랜드가 아닙니다. 가장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좋아하는 것도 바로 그런 점, 약간의 광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약간의 광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이 있습니다. 알코올 대신 물로 향수를 만들기 위해 2년을 매달린 오 트리쁠Eau Triple입니다.

Chapter 4.
과거를 ‘현재형’으로 번역하다
오래된 미용법을 좋아한다고, 그대로 복제하는 건 아닙니다. 불리는 19세기에서 받은 영감을 현재의 기술로 되살립니다. 번역에 가까운 일이죠.
초기 고객들이 자주 물었다고 해요. 이거 그 시절 포뮬러인가요?
“당연히 아닙니다. 19세기의 포뮬러를 그대로 쓸 수는 없어요. 불리는 과거에서 영감을 받는 동시에, 기술과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번역이 ‘오 트리쁠’입니다. 불리를 대표하는 향수예요. 보통의 향수는 알코올에 향료를 녹입니다. 오 트리쁠은 물과 향료를 섞었어요. 뿌리기 전 병을 살짝 흔들어, 우윳빛 액체를 섞어줍니다. 알코올 특유의 날카로운 느낌이 없어요. 향이 섬세하고 부드럽게 퍼지죠.
문제는 비용과 기술이었습니다. 이 향수를 완성하기까지 2년이 걸렸어요. 향수를 고르게 분사할 스프레이도 새로 개발해야 했죠.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향수의 포뮬러는 알코올 향수보다 100배 비쌉니다. 하지만 그건 질문의 핵심이 아니었어요. 워터 향수, 그 향이 퍼지는 방식, 그 부드러움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개발했어요.”
향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특히 사랑받는 ‘리켄 데코스Lichen d’Écosse’는 젖은 이끼와 풀이 떠오르는 서늘한 향이에요. 갈바넘*의 쌉싸름한 풀 향과 제라늄의 허브 향이 겹쳐, 비가 지난 숲 바닥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죠.
*중동의 식물 줄기에서 얻는 수지. 풀을 꺾었을 때 나는 초록의 쌉쌀한 향이 난다.
빅투아에게 특히 추억이 깊은 향은 ‘멕시크 튜베로즈Tubéreuse du Mexique’입니다. 튜베로즈는 달고 짙은 향을 내는 흰 꽃이에요. 여기에 바닐라의 달콤함과 정향의 따뜻한 향신료 냄새, 머스크의 포근한 살냄새를 더했습니다.
“불리 출시 초기 몇 년 동안 매일 저에게선 이 향이 났어요. 수성 제형이 얼마나 특별한지 보여주려고 고객들 앞에서 제 피부에 직접 뿌리곤 했죠. 알코올의 날카로운 첫 향 대신, 튜베로즈의 짙은 꽃 향이 처음부터 부드럽게 퍼지는 걸 맡게 해 드리려고요. 저에겐 영원히 행복한 향기입니다.”
처음부터 익숙한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우유처럼 뽀얀 향수를 처음 본 고객들은 놀랐고, 빅투아와 직원들은 왜 물로 향수를 만들었는지 매번 설명해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 오 트리쁠 향수는 불리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죠.
“제품 개발은 어떤 것은 1년이 걸리고, 어떤 것은 5년이 걸립니다. 미리 알 수 없어요. 아이디어가 하나 있으면, 그 아이디어와 정확히 같아질 때까지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오직 불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품이 탄생하죠.”

Chapter 5.
‘쓰는 몸짓’을 설계한다
불리는 제품을 만들 때 욕실에 서 있는 사람부터 떠올립니다. 어떻게 덜고, 바르고, 씻고, 뿌릴 것인지. 빅투아는 이 움직임을 ‘제스처gesture’라고 불러요.
“저는 제품과 그 제품을 사용하는 제스처를 함께 상상하며 제품을 만듭니다. 제품 기획팀에게도 늘 ‘욕실에 서 있는 실제 사람을 떠올려 보라’고 말하죠.”
2014년에 내놓은 손발용 크림 포마드 콘크레뜨Pommade Concrète가 한 예입니다. 시어버터와 밀랍을 넣어 꾸덕하고 묵직해요. 손에 조금 덜어 체온으로 녹인 뒤 손가락과 손톱 주변, 발까지 천천히 마사지해야 합니다.
빅투아는 “일부러 빨리 흡수되지 않게 만들었다”고 했죠.
“당시 핸드크림은 아주 가볍고 금세 흡수됐어요. 저는 전혀 그러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들여 마사지하면서 손과 발을 이완시키는 게 이 제품의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손발을 마사지하며 나를 천천히 돌보게 되는 거죠.”
오 트리쁠에도 고유한 몸짓이 있어요. 물과 향료가 섞인 에멀전이라 먼저 병을 가볍게 흔듭니다. 그런 다음 손목에 몇 번 뿌리고 끝내는 대신, 머리카락과 몸에 넉넉하게 향을 입혀요. 향수를 ‘뿌리는’ 행동을 온몸에 향을 두르는 시간으로 바꾼 셈이죠.
요즘 빅투아와 람단이 특히 빠져 있는 건 비누입니다. 단단한 고체 비누 사봉 수페팡Savon Superfin, 오일로 몸을 씻는 윌 드 사봉Huile de Savon, 치약처럼 금속 튜브에서 짜 쓰는 빠뜨 드 사봉Pâte de Savon까지 만들었어요.
같은 ‘씻기’라도 손에 쥐고 거품을 내거나, 오일을 피부에 펴 바르거나, 튜브에서 되직한 밤을 짜내는 식으로 몸짓이 달라집니다. 파트 드 사봉은 하나를 만드는 데만 5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금속 튜브여야 했고, 눌렀을 때 원하는 질감이 있었거든요. 향도 충분히 풍부해야 했죠.
“제가 테스트를 50번은 했을 거예요. 아무도 이런 방식으로 비누를 만들지 않으니, 원하는 질감이 계속 나오지 않았습니다. 2년 전쯤 물 없는 포뮬러 전문 연구소를 만나고서야 저희가 원하던 질감이 나왔어요.”
빅투아가 말하는 제스처는 거창한 의식이 아닙니다. 매일 씻고, 바르고, 향을 입히는 평범한 행동을 조금 다르게 경험하게 만드는 것에 가까워요.
“비누를 쓰는 건 누구나 매일 하는 아주 단순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어떤 제품을 사용하냐에 따라, 그 매일의 움직임이 나를 위한 세련된 제스처가 될 수 있어요. 바로 이런 제스처를 제안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불리다움이죠.”

Chapter 6.
단순하면 불리가 아니다
브랜드가 커지면 보통은 단순해집니다. 잘 팔리는 제품에 집중하고, 손이 많이 가는 서비스는 표준화하죠. 불리는 반대로 갑니다. 이 브랜드에서 복잡함은 비용이 아니라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았던 필기체 이름표를 기억하시나요. 이름 하나를 적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남짓. 이 시간을 만들기 위해, 불리는 10년을 들였어요.
2014년 첫 매장. 직원 셋 중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은 한 명이었습니다. 처음엔 캘리그래피 기계를 들였대요. 하지만 매장에서 쓰기엔 너무 느렸죠. 보통의 브랜드라면 손글씨 서비스를 접었을 겁니다. 불리는 반대로 갔어요. 모든 직원에게 캘리그래피를 가르친 거예요.
“전문 캘리그래퍼를 모셔 매주 수업을 했어요. 손재주가 좋으면 석 달, 어떤 사람은 1년 반이 걸립니다. 지금은 전 세계 매장 판매 직원 200명 중 180명이 캘리그래피를 아주 잘 써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거기에 도달할 수단을 스스로 만듭니다. 그게 완벽입니다.”

직원에게 요구하는 건 글씨만이 아닙니다. 900개의 제품을 익히고, 낯선 사용법을 설명하고, 고객이 자기에게 맞는 선택지를 찾도록 도와야 하죠.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회사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브랜드의 진짜 대사들이니까요. 이들을 교육하는 데 쓰는 시간은 전부 버는 시간이에요.”
말로 설명하고, 글로도 설명합니다. 첫 매장을 열던 달, 세 명뿐이던 직원들은 카탈로그부터 만들었어요. 지금 불리의 카탈로그는 128쪽. 900개의 제품을 하나하나 설명합니다.
“저는 아름다움이 진지한 주제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제대로 정보를 얻을 자격이 있고, 문화적·역사적 맥락을 알 자격이 있습니다.”
2021년, 불리는 LVMH 그룹에 합류합니다. 독립적으로 키운 회사를 매각한 이유를 묻자, 빅투아는 담백하게 답했어요.
“불리가 계속 번영하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저희가 직접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에 도달했죠. 그래서 매장의 탁월함과 럭셔리에 대한 비전으로 잘 알려진 파트너를 찾았습니다.”
거대 그룹의 일원이 되면, 단순화하라는 압력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불리가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베티버 도구를 빼면 누군가는 새로운 목욕법을 발견할 기회를 잃습니다. 포마드 콘크레뜨를 빨리 흡수되게 바꾸면, 마사지라는 몸짓이 사라지고요.
“LVMH의 일부가 된 지금은 더 확실히 압니다. 불리를 단순화하면 실패한다는 것을요. 이 디테일과 복잡함은 유지해야 합니다. 브랜드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왜 카탈로그를 단순화하면 안 되는지, 매장을 왜 그렇게 운영해야 하는지 계속 설명합니다. 매일 하는 일이에요.”
처음엔 900개의 제품과 긴 설명, 캘리그래피가 두 창업자의 과잉된 취향처럼 보였습니다. 이제는 달리 보입니다. 불리의 복잡함은 취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취향을 남겨두기 위한 구조였습니다.


롱블랙 프렌즈 B
인터뷰 끝에 불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빅투아는 이렇게 말했죠.
“불리는 세계 각지 아름다움의 비밀을 모아놓은 상점입니다.”
빅투아가 말한 ‘비밀’은 거창한 게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몸을 씻고, 향을 입히고, 자신을 가꾸며 쌓아온 방법들이었죠.
나를 아름답게 가꾸는 수많은 방법을 보여주되, 무엇을 택할지는 각자에게 맡기는 것. 불리가 아름다움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