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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A : 50년 건축 집단이 가장 듣고 싶은 말, “이상한 건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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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프렌즈 K 

최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의 전시*가 화제예요. 80년 명품 브랜드의 역사를 “영화처럼 설계했다”는 평을 듣고 있죠.
*전시 이름은 ‘크리스챤 디올 :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 기간은 2025년 4월 19일부터 7월 13일까지다. 

흥미로운 건, 이 전시 공간 설계를 세계적인 건축사사무소가 했다는 겁니다. 주인공은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이 건축사사무소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았어요. 세계 곳곳에 ‘틀을 깨는 건축’을 남겨왔죠. 

국내에도 이들의 건축물이 세워졌습니다. 거대한 뱀을 닮은 유리 통로가 건물 표면을 감싼 백화점(갤러리아 광교, 2020), 경희궁에 설치돼 150일 동안 통째로 회전한 쇼룸(프라다 트랜스포머, 2009) 등이 대표적이죠.

이들은 어떻게 사람들이 납득하는 ‘낯선 건축물’을 만든 걸까요. 심영규 건축 PD가 이들의 일하는 법을 같이 알아보자며 나섰습니다.


심영규 프로젝트데이 대표·건축 PD 

OMA는 1975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한 ‘건축 실험실’로 시작했습니다.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를 주축으로 4명이 모여, 300명 규모의 건축사사무소로 커졌죠. 사무실도 홍콩과 뉴욕, 호주로 뻗어갔습니다.

OMA의 건축물은 ‘평범함은 사절한다’는 아우라를 내뿜습니다. 어딘가 뒤틀려 있는가 하면, 공중에 떠 있기도 해요. “이게 건물이야?”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죠.

이들의 아우라는 건축계 밖으로도 뻗어갑니다. 1999년엔 리서치·디자인 스튜디오인 AMO를 세워 패션과 디자인까지 영역을 넓혔어요. 20년 넘게 프라다PRADA의 패션쇼 디자인에도 참여하고 있죠.

50년째 경계를 넘나들며 파격을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마침 저는 방한한 OMA의 아시아 총괄 파트너*, 크리스 반 두인Chris van Dujin을 만날 기회를 얻었어요. 롱블랙 팀과 그를 인터뷰했습니다.
*OMA는 크리스 반 두인을 포함해 7인의 파트너가 이끌고 있다. 파트너는 프로젝트를 이끌며 의사결정을 하는 인물을 말한다.


Chapter 1.
네모반듯한 빌딩에 질문을 품은 신문기자

OMA를 이해하려면 1944년생의 창업자 렘 콜하스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렘은 건축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았어요. 원래는 신문기자였습니다. 19살 때인 1963년부터 5년간 네덜란드 헤이그 포스트에서 기자로 일했죠. 

렘이 건축에 빠져든 건 23살이 된 1967년. ‘글보다 건축이 사람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예요. 러시아 여행 중 커다란 네모 박스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거나, 블록을 쌓아 놓은 것처럼 생긴 건축물을 접한 게 계기였죠. 

여기서 영감을 얻은 그, 이듬해 영국의 AA 스쿨*에 들어갔어요. 1972년에는 뉴욕의 코넬대로 넘어가 도시를 연구했죠.
*1847년 설립된 영국 런던의 건축전문학교.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건축 교육으로 명성을 얻었다.

‘거대한 도시 속 건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 질문이 렘의 마음에 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건물을 네모난 틀에 가두는 걸 거부했어요. 오히려 은행과 사무실, 호텔이 반듯한 수십 층 빌딩에 똑같은 모습으로 들어가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그는 ‘삐뚤빼뚤한 건물이 도시에 필요하다’고 믿었어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 1975년 OMA를 세웁니다. 이름의 뜻은 ‘대도시의 건축을 위한 사무소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였어요.

렘의 철학에 공감한 건축가들이 하나둘 모였습니다. DDP를 설계한 고 자하 하디드Zaha Hadid, MVRDV*의 공동 설립자 위니 마스Winy Maas와 야콥 판 라이스Jacob van Rijs도 모두 OMA 출신이죠.
*1993년 설립된 네덜란드 건축사사무소로, 로테르담 마르크달, 톈진 빈하이 도서관 등 실험적인 건축으로 명성을 얻었다.

우리가 인터뷰한 OMA의 아시아 프로젝트 총괄, 크리스 반 두인 파트너는 1996년 OMA 인턴으로 합류했어요. 2014년 OMA의 대표 파트너가 됐죠. 그가 소개한 OMA의 일하는 방식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일단 삐딱한 질문부터 던질 것.’ 크리스는 말합니다. 자신들은 설계에 들어가기 전 ‘이 건물이 꼭 필요해?’, ‘꼭 그렇게만 지어야 해?’ 같은 걸 꼭 묻는다고요.

롱블랙과 인터뷰하고 있는 크리스 반 두인. 1996년 OMA에 입사한 그는, 2014년부터 아시아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 ⓒ롱블랙

Chapter 2.
시애틀 공공 도서관 : 책 대신 거실을 놓은 이유

삐딱한 질문으로 만든 대표작, 미국 시애틀의 공공 도서관The Seattle Public Library이에요. 1999년부터 짓기 시작해, 5년 뒤인 2004년에 완공된 건물이죠.

완성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이 도서관은 지금도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1년에 100만 명 넘게 방문하고 있거든요.

먼저 외관을 볼까요? 11층짜리 도서관은 유리 서랍을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것처럼 생겼습니다. 경사면에 지어져 위치에 따라 1층으로, 또는 3층으로도 들어갈 수 있죠.

3층 입구에 들어서면, 눈앞에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집니다. 유리창을 뚫고 내리쬐는 햇살이 비추는 리빙 룸Living Room이죠. 말 그대로 거실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쉬거나 책을 읽어요.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죠.

책이 있는 서고는 6~9층에 있어요. 전체 도서관에서 서고가 차지하는 면적은 40%를 넘지 않죠. 자연스레 궁금해집니다. OMA는 책이 주인공인 건물을 설계하면서 어떤 질문을 던진 걸까요?

시애틀 공공 도서관은 OMA가 ‘삐딱한 질문’을 던져 완성한 대표작이다. 유리 서랍을 쌓아 올린 것 같은 외관을 가졌다. ⓒPhilippe Ruault

질문 : 도서관의 목적은 ‘책 빌려주기’에 있을까?

‘도서관의 본래 목적은 뭘까?’ 이들이 던진 질문입니다. 먼저 떠오른 답은 ‘책 빌려주기’였어요. 이들은 한 번 더 질문합니다. ‘디지털화 시대에 책을 물리적으로 빌려줄 필요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라고. 여기서부턴 혼자서 답을 찾을 수 없어, 도서관을 찾아다녔어요.

도서관 사람들의 고민도 비슷했어요. ‘책 보관에만 집중했다간, 언젠가 건물이 쓸모 없어질 수 있다’는 것. 고민 끝에 찾은 답은 다음과 같았어요.

“우리가 찾은 도서관의 목적은 책을 빌려주는 것을 넘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 대신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에 가까웠어요. 적어도 미국에선 그랬죠. 그 안에서 알아서 공부하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사회적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었어요.”
_(이하)크리스 반 두인 OMA 파트너, 롱블랙 인터뷰에서

설계의 방향도 여기서 나왔어요. ‘다양한 목적의 모임이 가능한 도서관’이었죠. 책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공간을 만들면 되는 거였어요.

이들이 세운 원칙은 두 가지였어요. ①도서관에서 책이 차지하는 공간은 40% 이하로 줄인다. ②용도별로 ‘공간 박스’를 만들어 쌓아 올린다.

“아무렇게나 써도 무방한 일반적인 모양의 건축물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해법을 하나로 퉁치기보다, 각 용도를 구체적으로 살려보기로 했죠. 이런 아이디어였어요. 어린이가 뛸 수 있는 곳, 사무 공간, 책 보관할 서고, 모임하는 곳 등에 맞는 공간 박스를 구분하자는 거였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1층엔 ‘어린이 센터’를 만들었어요. 유아동 책과 함께, 장난감과 보드게임을 뒀습니다. 책장에는 ‘벌레’와 ‘공룡’, ‘색깔’ 같은 주제로 책을 큐레이션 했어요. 동화 구연을 할 수 있는 ‘스토리 룸’도 따로 뒀죠.

3층 리빙 룸에는 다양한 종류의 의자와 책상을 놓았어요. 낮은 책장을 불규칙하게 배열해, 책을 꺼내 읽을 수도 있게 했죠. 거실답게 한쪽에는 카페도 뒀어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할 수 있게요. 

서고는 6층부터 9층까지, 대신 박스 하나에 4개 층을 채웠어요. ‘북 스파이럴Book Spiral’이라는 이름의 공간엔, 계단 대신 완만한 경사로를 놓았죠. 000번대의 책은 9층에, 999번대의 책은 6층에 놨어요. 이용객들이 9층에서부터 나선 모양 길을 따라 내려가며 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용도에 맞는 박스가 얹어진 도서관. 성과는 어땠을까요? 개관한 첫해에는 하루 평균 8000명 이상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매년 100만 명이 찾는 곳이 됐죠.

북 스파이럴의 모습. 계단 없이 나선형의 경사로가 6층부터 9층까지 이어져 있다. ⓒThe Seattle Public Library

Chapter 3.
베이징 CCTV 본사 : ‘높이 경쟁’에서 벗어난 고층 건물

OMA의 삐딱함은 중국의 공공건물 설계에서도 나타나요. ‘높이 솟은 고층 건물을 지어달라’는 요청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했거든요. 두 건물을 이어 붙이는 설계로, ‘문’을 닮은 건물을 지었죠.

이들이 만든 건물은 중국의 국영 방송사, CCTV*의 베이징 본사였어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 지어 올린 건물이었죠.
*중국중앙텔레비전.

외관부터 살펴볼까요. 일단 건물의 고층부는 비뚤어진 바지를 닮았어요. 기역(ㄱ)자 두 개를 붙여 놓은 것 같기도 하죠. 그 아래에는 육각형 모양의 빈 부분이 있고요. 가장 아랫부분에는 건물 저층부 두 개가 또 이어져 있어요.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삐딱한 건물을 완성한 질문, 뭐였을까요?

OMA가 건축한 베이징의 CCTV 본사. 일반적인 고층 건물의 형식을 파괴한 입체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Philippe Ruault

질문 : 고층 건물은 꼭 위로만 솟아야 해?

CCTV 건축은 전 세계 10개의 건축사사무소가 경쟁한 국제 공모였어요. 방송국의 요구 조건은 딱 하나였어요. “고층 건물을 만들어 달라.”

“솔직히 고층 건물은 건축가에게 가장 지루한 프로젝트예요. 경쟁하는 방법이 하나뿐이거든요. ‘얼마나 높이 지을 수 있느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수 있느냐.’ 의미 없는 싸움이에요. 왜냐면 오늘 가장 높은 건물을 지어도, 내일 누군가 더 높은 걸 지을 테니까요.”

지루한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OMA. 질문을 던진 끝에 떠올린 방법이 ‘빌딩 이어 붙이기’였죠. 빌딩 여러 채를 이어 붙여 ‘3차원 조각’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보자고 한 거예요. 평면의 빌딩 숲 사이에서 비틀어진 건축을 보여주자는 계산이었죠.

이 계획과 함께 이들은 한 가지의 이유를 덧붙였어요. 중국이 고층 건물을 요구한 숨은 의도를 읽어 제안서를 보냈죠.

“프로젝트를 할 당시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기존의 폐쇄적인 국가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 했죠. 그래서 우리는 ‘열린, 투명한 공간’을 국영 방송사에 제안하려 했어요. 그걸 건물에도 녹여냈죠.”

‘열린 문’을 닮은 건물을 만들자는 제안, 결국 방송국의 선택을 받았어요. 그렇게 OMA는 제안대로 52층과 44층짜리 빌딩을 비스듬히 세워서 이은 다음, 하늘이 보이는 뚫린 공간을 만들었죠.

“건물을 만들 때 ‘수직적이고 딱딱한 분위기’에서도 벗어나려 했습니다. 건물의 모든 끝을 하나로 연결해, TV 프로그램 제작 과정이 ‘하나의 흐름’처럼 보일 수 있게 했어요. 방송국 밖 사람들이 건물 안을 걸어볼 수 있는 경로도 만들었죠. 방송국 자체를 공공의 요소로 느낄 수 있게 한 겁니다.”

CCTV 본사의 건축 현장. 빌딩 여러 채를 이어 붙여, 마치 ‘3차원 조각’ 같은 모습을 만들었다. 고층 건물이 꼭 위로만 솟을 필요 없다는 OMA의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Jakob Montrasio

Chapter 4.
갤러리아 광교 : 햇빛이 스며드는 백화점

건축가의 도발적인 질문은 쇼핑몰의 문법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2020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서 문을 연 갤러리아 광교점이에요. 2021년, 국내 최초로 베르사유 건축상*을 받은 건축물이기도 하죠.
*2015년 프랑스에서 시작한 건축 디자인상으로, 유네스코와 국제건축가협회가 주관한다.

백화점은 정육면체 모양으로 세워진 12층 건물이에요. 그 표면은 암석이 연상되는 갈색 무늬가 입혀져 있죠.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에요. 표면의 일부를 거대한 유리 통로가 지나고 있어요. 마치 뱀이 건물 전체를 휘감은 듯한 모습 같죠.

사실 백화점과 같은 쇼핑 시설을 지을 때 지키는 암묵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창문을 없애거나 작게 만드는 것. 고객들이 백화점 안에서 시간이 흐르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전략이죠. 

그래서 보통의 백화점은 창문이 없습니다. 깔끔한 정육면체 모습을 하고 있죠. 외관에 특징을 준다 해도 외벽 자체에 디자인을 더하거나, 스크린이나 조명을 활용하곤 해요. 이런 건축법에 크리스는 또 한 번 질문을 던집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갤러리아 광교의 모습. 거대한 유리 통로가 건물 표면을 지나고 있다. ⓒHong Sung Jun

질문 : 백화점 건물은 꼭 사방이 막혀 있어야 해?

“클라이언트는 자연광을 싫어할 수밖에 없어요. 조절할 수 없는 요소거든요.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고객들이 건물 내부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싶어 하죠.

하지만 동시에 클라이언트도 알고 있었어요. 기존의 백화점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흥미롭지 않다는걸요.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클라이언트에게 있었고, 우린 이를 건축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건물 전체를 감싸는 ‘유리 통로’가 나왔어요. 단, 시각적인 충격만을 위해서가 아녔어요. 백화점과 도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려 했죠. 

“한국에서 백화점은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더군요. 가족이 찾는 사회적 공간이었어요. 특히 광교처럼 주거 중심 지역에선 더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가 짓는 백화점은 도시 안에 있는 ‘모두를 위한 중심지’라고 봤어요. 지역과 적극적으로 연결되고자 했죠.”

그래서 도시의 햇빛을 백화점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유리 통로는 건물 1층부터 옥상까지 이어져 있어요. 낮에는 햇빛이 건물 안으로 번지고, 밤에는 내부 조명에 따라 알록달록한 빛이 바깥으로 나가죠. 도시의 시간 흐름과 백화점 내부가 ‘빛’으로 소통하는 거예요.

건물 전체를 암석처럼 칠한 이유도 있습니다. 주변 도시 풍경과 어울리도록 건물과 자연의 색을 모은 거예요. 마치 도시에서 발견된 ‘유서 깊은 돌덩어리’가 있는 것처럼요.

“수천 년 전에 있었던 거대 돌덩어리를 중심으로 도시가 생긴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또 가까이서 보면 돌 같지만, 멀어질수록 점점 ‘도심 속 카무플라주camouflage·위장 패턴’가 되게 했죠.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건물이 주변에 녹아들도록 한 거였죠.

그래서 이 건물은 각도에 따라 보이기도, 때로는 보이지 않기도 해요. 존재감이 크면서도 동시에 주변에 완전히 섞여 들죠.”

OMA는 ‘백화점 건물은 꼭 사방이 막혀 있어야 해?’라는 질문을 품고, 백화점의 안과 밖이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유리 통로를 설치했다. ⓒHong Sung Jun

Chapter 5.
Q&A : ‘틀을 깨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질문법

크리스 반 두인으로부터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를 붙잡고 당신들의 생각법을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Q&A로 정리했어요.

Q. OMA는 일할 때 무엇을 원칙으로 삼나요. 

“좋은 프로젝트를 하되, 스스로 반복하지 않는 것. 매번 새로운 요소를 담으려 해요. 사무실의 모든 이들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어린 강아지들처럼 들떠 있어요. 뭔가를 당장 해보고 싶어 하죠.”

Q. 원하지 않는 프로젝트도 있나요.

“누군가 우리에게 ‘그냥 멋진 파사드(앞면)만 만들어줘요’라고 한다면, 그건 잘할 수 없어요. 단순히 멋지고 방수 잘 되는 겉모습을 만드는 일은 우리의 원동력이 될 수 없거든요. 우리에겐 그보다 더 깊은 동기인, 궁금해하고 놀라워하는 마음이 필요하죠.”

Q. 혹자는 OMA의 건축에 ‘스타일이 없다’고도 말합니다.

“일관된 디자인 언어를 유지하지 않는 건 의도적인 선택입니다. 만약 누군가 예술가에게, ‘왜 어제 그린 그림을 오늘 또 안 그려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그걸 왜 해요?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없잖아요.’

아무도 해보지 않은 걸 해보는 것, 그게 모든 창작의 원동력이에요.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오늘 단 하나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날은 성공인 거죠. 그게 우리가 아침에 눈 뜨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Q. 크리에이티브가 창의적인 한 명에게서 나오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OMA는 300명 일원이 회사를 만들어 갑니다. 하나의 철학이나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한국에선 ‘천재 한 명이 모든 걸 설계한다’는 이미지가 있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파트너십 구조예요. 7명이 함께 회사를 소유하고, 운영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죠. 어떤 프로젝트는 혼자서, 어떤 건 같이 하기도 하죠. 그게 우리 작업 방식이에요. 한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에요.”

Q. 그럼 어떻게 일하나요. 

“아이디어는 한 사람이 아닌, 집단의 협업에서 나와요. 그래서 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모두가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요. 실제로 팀원 모두가 사무실에서 협업합니다. 제가 OMA에 들어갔던 1990년대에도 그랬죠. 모든 사람이 디자인의 ‘저자’가 될 수 있어야 했어요.”

Q. 그게 가능한 건가요.

“우리는 경계 없이 일합니다. 주니어와 시니어를 구분하지 않고,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경계를 나누지도 않죠.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져올 수 있어요. 가령 인턴십에 참여한 학생들이 첫날부터 디자인 과정에 전부 참여하게 해요. 그게 우리 문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Q. OMA는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나요.

“우리는 입장을 먼저 정하기보다, 관찰하고 분석부터 합니다. 방어하기보다는, 파악하고 이해하려 하죠. 저는 이런 태도가 널리 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점점 좁아지고 있기에, 건축가나 예술가의 사고법이 이 시대에 더 중요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롱블랙과 인터뷰하는 크리스 반 두인. 그는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요소를 담으려 한다”고 밝혔다. ⓒ롱블랙

삐딱한 질문이 ‘여러 겹의 이야기’를 만든다

Q. OMA가 던지는 삐딱한 질문은 어떤 것인가요. 

“이 프로젝트를 왜 하는지, 이 디자인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는 뭘 할 수 있을지를 묻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어떻게 흥미롭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죠.”

Q. 왜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건가요.

“건축, 다시 말해 공간을 만드는 일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해요. 중요한 건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죠.

왜냐면 ‘30층의 본사 건물, 20개의 회의실’ 같은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 프로젝트는 1000가지로도 만들 수 있죠. ‘유일무이한 것’을 만들려면, 의미를 고민해야 해요.”

Q. 의미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네, 우리가 추구하는 건 다양한 겹의 이야기를 건네는 건축이에요.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볼 때, 그리고 건물 안에 들어갔을 때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를 건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 겹의 이야기를 건네는 건축은, 삐딱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걸 왜 해야 하는지’ 파고드는 크리스와 OMA의 태도는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K 

‘독창적인 결과물은, 의미를 고민하는 ‘삐딱한 질문’에서 나온다.’ 크리스와 대화하며 제 마음에 새긴 문장입니다.

혹시 노트를 읽고 저와 같은 마음을 품은 롱블랙 피플이 있나요. 그렇다면, 이 노트를 영감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공유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떠올린 삐딱한 질문이, 내일의 새로운 결과물로 이어질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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