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롱블랙 피플, 우리가 함께 스터디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돼 갑니다. 감각의 시대를 앞서가는 브랜드와 사람에 대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요.
롱블랙 1주년이 돌아오는 이번 주, 다시 한번 <인터뷰 위크 : 감각의 설계자들 2>’라는 타이틀로 스페셜 위크를 진행합니다. 지난 1년 동안 감각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만, 감각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모호하고 멀게 느껴집니다. 감각이란 무엇일지를 더 오래 고민해 온 이들을 만나보면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요.
*롱블랙은 2022년 2월 7~11일 <인터뷰 위크 : 감각의 설계자들>을 진행했다.
이번 위크는 양태오 공간 디자이너와 엽니다. 그가 운영하는 태오양 스튜디오는 『월페이퍼』, 『모노클』, 『디자인 앤솔로지』 등 수많은 글로벌 미디어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바이 디자인』*에서 세계 100대 인테리어 스튜디오 중 하나로 뽑혔죠. 최근에는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100대 스튜디오 ‘AD100’에 포함됐고요.
*세계 3대 아트 서적 출판사 파이돈 프레스에서 발행한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뉴욕 아트 서적 중 하나.
최소현 퍼셉션 대표와 계동 한옥 양태오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카페와 전통 기프트샵을 지나 고즈넉한 골목을 한참 걷자, 그가 사는 한옥 두 채가 나왔습니다.

최소현 퍼셉션 대표
과거의 유산으로 미래를 바꾸는 사람. 양태오 디자이너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카고예술대학과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네덜란드 디자인 거장 마르셀 반더스* 밑에서 수련했고요. 2010년부터 한국에서 ‘태오양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죠.
*Marcel Wanders. 고전성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무이, B&B 이탈리아, 모로소, 몬드리안 호텔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와 함께 일한다.
여러 채의 한옥 공간을 디자인했고, 국립경주박물관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자신의 화장품·가구·향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파이돈 프레스는 그의 작품을 두고 “과거를 현재로 옮기는 데 탁월하다”고 표현했죠. 그는 한국의 전통을 현대의 공간에 가장 잘 구현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가 지내는 한옥의 다이닝룸에 들어갔습니다. 올 봄의 매화 잎이 올라간 금귤정과와 노란빛의 다식, 몇 가지 다과가 작은 소반 위에 차려져 있었습니다.
Chapter 1.
시카고미술관 한국관에서 혼자 숙제를 하던 학생
어린 양태오의 꿈은 고고학자였어요. 친구들은 로봇과 자동차를 좋아했지만, 그는 사무라이 칼, 병마 용품 같은 옛 물건들에 빠졌죠.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해요. 어머니는 미술 수집가였어요. 디자인이란 단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그 시절, 미국의 아트 잡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AD』 원서를 사 모으셨대요. 은행에서 달러를 바꿔 미국에 보내면서요.
어머니는 초등학생이었던 양태오를 매일같이 마중 나갔습니다. 스쿨버스들 사이에 차를 세워놓고, “태오야, 인사동에 고미술상 구경 가자”, “압구정에 새로 생긴 갤러리 놀러 가자”며 그를 불렀죠. 어린이 양태오는 그게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고요.
어머니를 따라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고미술이 좋아졌습니다. 어느 날은 인사동을 구경하다가 잡상* 하나에 꽂혀서 어머니께 사달라고 졸랐죠.
*궁전이나 전각의 지붕 위에 얹어서, 화마로부터 집을 보호해주는 기와 장식
“그렇게 샀던 잡상이 지금 제가 사는 한옥 처마에 올라가 있어요.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죠. ‘태오야, 이 잡상에서 너의 미래를 본 것 같아.’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온 우주가 저한테 말을 걸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살아온 모든 삶의 행적이 ‘한국적인 것’을 가리키고 있더라고요.”
시카고예술대학 재학 시절, 그는 우주의 부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시카고예술대학은 ‘예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곳이었어요. 교수님들은 항상 말했죠. “너희는 인류를 지탱하는 벽돌이다.” 양태오도 자연스레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습니다.
자부심도 막지 못하는 게 있었습니다. 유학생의 외로움이요. 양태오의 외로움을 달래줬던 건 시카고미술관의 한국관이었어요. 다른 학생들이 앤디 워홀, 모네를 보느라 바쁠 때 양 디자이너는 달항아리와 초상화가 하나 있는 작은 한국관을 매일같이 오갔습니다. ‘나보다 먼저 타지에 와 있던 이 아이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며 그곳에 앉아 숙제도 하고 스케치도 했죠.
졸업 후, 그는 마르셀 반더스 스튜디오에서 인턴 생활을 했어요. 그가 했던 일은 네덜란드 전역에 있는 미술관과 고미술상의 카탈로그를 전부 스캔해, 반더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죠. 양태오는 수억 개의 미술품을 보며 안목을 기르고, 반더스에게 공간의 이론을 배웠습니다.
“공부를 엄청 시키셨어요. ‘바닥 모서리에 왜 몰딩이 돼 있는 줄 아느냐. 청소할 때 걸레가 자주 닿아서 벽이 상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같은 이야기를 들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궁금했어요. 그럼 서양 말고, 한국은 어떤 이론을 갖고 있을까?”

Chapter 2.
사라져가는 골목길에서 한국을 보다
답을 빨리 찾지는 못했습니다. 2010년, 한국에 돌아와 ‘태오양 스튜디오’를 설립했지만 ‘유학파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에 충실했거든요.
서구적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넘치던 때였습니다. 그의 첫 프로젝트 퀸kwin 콘셉숍*이 보그지에 실리고, 『이사하는 날』이라는 인테리어 에세이를 출간하고, 당시 유행했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레몬트리』에 글을 연재하면서 ‘양태오’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적인 스타일의 브랜드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옷과 액세서리를 갤러리처럼 전시하고, 한쪽 벽에 10개 이상의 거울을 걸어놓는 등, 실험적인 콘셉트의 숍이었다.
양태오의 ‘기획’이 알려졌던 프로젝트는 2013년 ‘대림바스’ 쇼룸입니다. ‘모던 바스 라이브러리’라는 콘셉트 아래, 쇼룸을 아카이빙 공간으로 꾸몄어요. 프런트를 서재로 만들어서 대림바스의 50년 역사를 전시했죠. 변기에서 절약한 물로 식물을 키우는 공간도 만들었고요.
가장 파격적이었던 건 쇼룸을 라이프스타일 숍으로 만든 겁니다. 양 디자이너가 직접 고른 스폰지, 조명, 칫솔꽂이 등 욕실용품을 프런트에 놓고 판매했죠. 지금이야 너무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라이프스타일 숍’이란 말이 어색해 “욕실 소품 사업을 론칭했다”고 표현됐던 일입니다.
“많은 분이 파격적이라고 생각했죠. ‘쇼윈도’의 개념을 바꿔버렸기 때문에요. 제품은 안 보여주고 콘셉트와 감성을 얘기했죠. 건방지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디자이너가 그걸 왜 챙겨, 왜 숍을 하자 그래’ 하면서요.
그런데, 디자이너는 항상 파이널final을 잊으면 안 돼요. 인테리어 디자인은 그냥 도구예요. 클라이언트가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고 싶다면, 디자이너는 숍을 만들어야 하죠.”
초기의 프로젝트들. 성공적이었지만 지금의 작업과는 결이 좀 다르죠. 양태오는 말합니다. 그때는 자신의 매니페스토manifesto*가 없었다고. 그리고 매니페스토가 있느냐 없느냐가 작업의 결을 결정한다고요.
*이탈리아어로 ‘선언’이란 뜻. 20세기 들어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새로운 예술 운동들이 그 운동의 정신과 의도를 밝히는 글을 의미한다.
“그때만 해도 사대주의적인 발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서양의 것을 따라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작업하다 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당위성이 없어서요. 디자이너가 되는 것과, 디자이너로서 매니페스토를 가지는 건 엄청난 차이거든요. 저는 그걸 찾는 데 4년이 걸렸죠.”
한옥의 임무, 보존되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
양태오의 메니페스토는 ‘전통을 오늘날과 가깝게 만드는 것’입니다. 운명처럼 한옥을 만나고 찾아낸 메시지죠. 그는 2012년, 이사 갈 곳을 알아보다 계동의 한 한옥을 발견했어요. 한옥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대요. “꿈에서 본 한옥과 똑같다”고요.
한옥에서 살면서 그의 작업 세계가 바뀌었습니다. 서구적 공간을 추구하던 그는 ‘어떻게 하면 한옥이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양태오는 1917년 지어진 한옥을 탈바꿈시켰습니다. 우선 현대 기술을 심었어요. 에어컨, 콘센트, 충전기 등을 나무 장 속에 숨겨 넣었죠. 핸드폰 하나로 작동되는 가전들을요. ‘카모플라쥬Camouflage’*, 겉은 전통적이지만 속은 최신 기술로 중무장한 스마트 홈입니다.
*‘위장, 감추다’라는 뜻으로, 주로 군용 장비에 많이 쓰이는 용어. 공간 디자인에서는 인테리어 속에 기능을 감춘다는 의미로도 사용한다.
공간의 역할도 현대에 맞게 변주했습니다. 사랑방이었던 공간엔 삼국시대 토기와 와인 냉장고가 공존합니다. 여자는 출입할 수 없었던 보수적 공간을 누구나 와인 마시며 즐길 수 있는 다이닝룸으로 만든 거예요.
“이 한옥을 처음 공개했을 때 ‘젊은 디자이너가 한옥을 망친다’고들 하셨어요. 아는 만큼 보여서 하는 말이에요. 이 한옥은 도심 보급형 한옥이에요. ‘모던’이란 키워드로 만들어졌죠. 이 친구의 역할은 도심 속 라이프를 잘 구현하는 거고요.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한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 고민이 보이지 않으면요, 이 한옥은 끝나는 거예요. 자기 임무를 다한 거예요. 지방의 오래된 고택들이 그대로 보존돼서 학문적인 데이터로 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회동이나 북촌의 한옥들은 이다음 세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보여줘야 해요.”
양태오의 한옥 리모델링은 세계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월페이퍼』지는 4페이지에 걸쳐 그의 한옥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서울이 다시 살아났다(Seoul revival)”
그렇다면 서울은 죽어가고 있던 걸까요? 그는 북촌으로 이사 온 뒤, 동네의 변화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처음 이사 왔을 땐 정말 ‘골목’이었어요. 수선집, 미장원, 요구르트 판매처 같은, 생활을 위한 비즈니스밖에 없었어요. 집 안이 다 들여다보이는 한옥들이 있었고요. 가족들이 문 열고 마루에 앉아 밥 차려 먹고 있어요. 그게 정말 한국적인 풍경이었죠.
그 한옥들이 다 카페로 바뀌었어요. 일주일에 하나씩 없어지더라고요. 어느 날 갔는데 다 허물어져 있었어요. 그게 익선동이었거든요.”
북촌의 변화를 겪으며 양 디자이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한국의 정서를 지키자. 그러기 위해선 전통을 오늘날과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Chapter 3.
과거 : 망향휴게소, 조선시대 향교를 재현해 문제를 해결하다
전통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살아남아야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현대에도 쓸모가 있어야 하고요. 한옥을 만난 이후 양태오는 전통을 ‘심폐소생’ 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2015년 태극당 리모델링, 2016년 망향휴게소 화장실 리모델링, 2017년 베이징 주중한국문화원…. 모두 그가 낡아가던 전통을 현대에 맞게 되살린 프로젝트입니다.
그는 특히 망향휴게소 화장실 프로젝트를 가장 애정한다고 해요.
“저는 공공 프로젝트가 가장 좋아요. 공공 프로젝트는 디자이너들이 가장 기피하는 프로젝트일 수도 있어요. 예산은 적죠, 시간도 적죠, 내라는 서류는 좀 많아요. 또 무슨 의원회에 모여서 공격받죠… 그런데도 공공 프로젝트가 좋은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방향성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망향휴게소 화장실은 지역과 전통을 되살려, ‘휴게소 화장실’이 갖고 있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공간이 달라지면 사람도 달라진다는 걸 증명한 곳이죠.
“디자인이란 삶의 문제를 가장 아름답게 해결해주는 거예요. 휴게소 화장실의 문제는 다 똑같이 생겼단 거였죠. 어느 곳이든 맥락 없이 벽에 알프스 그림을 붙여놓거나, 어린왕자 테마로 만들어놨어요. 저는 그 대신 ‘천안의 고고함’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천안은 조선시대 향교*가 있는 지역입니다. 전국 각지의 학자며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던 곳이죠. 양태오는 화장실 외부에 의자와 바 테이블, 스탠드를 마련했습니다. 그 위에 통창을 뚫어 천안의 자연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었죠. 풍경을 보며 공부하던 향교의 사당을 재현한 거예요.
*고려·조선 시대에 유교 교육을 위해 국가에서 지은 중등교육 기관. 고려 때 정부에서 각 지방에 교수를 보내 인재를 교육하게 한 것이 시초다.
그 외에도 천안 지역의 유물들을 촬영해 화장실 칸 안에 액자로 걸어두고, 세면대가 있는 공간 중앙에는 작은 정원을 만들어 한옥의 중정을 표현했어요. 일자로 틈새가 있어 하늘이 보이는 화장실 천장은 한옥의 문에서 본떴죠. 망향휴게소 화장실은 2019년 ‘고객 추천 휴게소 화장실’ 1위*에 선정됐습니다.
*한국도로공사 주관.
“환경미화원분들이 저희한테 그런 말씀 너무 많이 해주셨어요. ‘사람들이 바뀌었다, 바닥에 침을 안 뱉는다, 바닥에 휴지를 안 버린다.’ 그게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의 힘이거든요.”
Chapter 4.
현재 : 이스라이브러리, 전통을 현재에 알리는 가장 쉬운 방법
양태오는 자신의 일을 ‘전통적인 인테리어’에서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통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죠. 하지만 전통은 지루하고 어려워요. 전통이 어렵다면, 알리는 방식을 쉽게 만들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양태오는 오늘날에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전통을 알리고 있어요. 브랜드를 론칭하는 겁니다.
2019년 양태오는 처음으로 자신의 브랜드, ‘이스라이브러리’*를 론칭했습니다. ‘이스라이브러리’는 한방 스킨케어 브랜드예요. 사람들이 궁금해했죠. 공간 디자인을 하다 갑자기 웬 화장품 사업이냐고요.
*이름의 이스EATH는 ‘Evolutionary, Achievement from Traditional Heritage’의 약자로, 전통을 통한 진화와 성취를 뜻한다.
“화장품은 도구였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한테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도구요. 저는 여러 전통 카테고리를 다 다뤄보고 싶어요. 전통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출 수만 있다면, 그 도구는 뭐가 돼도 상관없거든요.”
양태오는 기존에 한방이 표현됐던 방식이 아쉬웠습니다. 한복을 입은 광고 모델, 붉은색의 상징, 낡고 전형적이었죠. 그는 한방의 본질이 뭔지부터 고민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께 물었어요. ‘선생님, 한방이 뭐예요?’ ‘한방은 다른 게 아니고요. 사람이 사람을 위하고 싶은 마음이 2000년 동안 모인 게 한방이에요.’ 그 말씀을 하시는데 뒤로 옛 고서들이 쌓여 있는 거예요. 고서는 종이가 얇아 혼자 서 있을 수 없거든요. ‘그래, 저 고서가 기대어 쌓인 모습이 한방의 본질이구나.’”
고서의 모습을 모티프로 이스라이브러리의 패키지를 만들었습니다. 몸통은 고서가 3단으로 쌓인 모양이고, 그 위에 현대미술에서 본질을 상징하는 구 형태의 뚜껑을 올렸죠. 이 패키지는 2019년 『월페이퍼』에서 디자인상을 받았습니다. 포시즌스Four Seasons 중국, 시그니엘Signiel 베트남 호텔 등에 어메니티로 나가고요.
“이스라이브러리를 많이 파는 데는 실패했지만,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해요. 제가 세운 목표는 ‘코리안 매디슨Korean Medicine이라는 게 있다’고 알리는 거였어요. 특히 한방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에 말이에요. 이게 제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이었거든요.”
이스라이브러리를 시작으로 그는 2020년 가구 브랜드 ‘이스턴에디션’, 2022년 향 브랜드 ‘시낭’을 론칭했습니다. 이스턴에디션은 방석에 다리를 달고 사방탁자에 바퀴를 다는 등, 조선의 생활 방식을 도시 생활에 맞게 재현했습니다. 시낭의 쇼룸은 재개발 철거 중인 을지로 세운상가에 있어요. 세운상가의 마지막 테넌트tenant로서, 사라져가는 역사를 목격하고 있죠.
“노자의 도덕경에 제가 진짜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수레바퀴의 중요성은 수레바퀴에 있는 게 아니라 비어있는 그 공간에 있는 거고, 그릇의 중요함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그 공에 있다.’ 왜 우리 시대는 껍데기에만 치중할까, 그게 아쉬웠어요. 그래서 계속 본질을 보여주고 싶은 거고요.”

Chapter 5.
미래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유물을 유리 밖으로 꺼내다
그는 전통을 현대에 알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전통이 살아남을 미래까지 생각합니다. 미래의 공간이, 미래의 생활방식이 어때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요.
2020년, 양태오 디자이너는 국립경주박물관 로비 리모델링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유물을 만나는 곳’으로 만들었어요. 유물을 유물관에서 꺼내 로비에 전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유리관을 없앴거든요. “박물관의 지향점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기획을 시작할 때 시나리오부터 짜요. ‘어떻게 초대받아서 어느 길을 통해서 오지? 도착했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떤 걸 경험하고 어떤 로비를 걸어야 하지?’ 같은 동선을 생각해요. 박물관은 사실, 유물 사진을 찍고 싶어서 오는 곳이죠.”
사진을 더 즐겁게 찍으려면? 유물과의 거리가 가까워야 했습니다. 유리관을 없애자고 하자 반대가 많았죠. 누가 유물을 만지기라도 하면 어쩌냐고요. 양태오는 대신 탄소 저감 장치, 대리석 받침, 대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안전 거리와 보존 환경을 확보했어요. 지금까지도 유물은 한 번도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유물을 지키는 게 유리관이 아닌 관람객이 됐기 때문이에요.
스튜디오 직원들이 2~3일 동안 박물관에 머물며 관객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관객들이 계속 길을 묻더군요. 이동 동선을 모르는 게 문제였습니다. 양태오는 유물관 안에 창을 내서 지금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고, 리프레시를 통해 전시를 끝까지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국립경주박물관 리모델링은 단 두 달 만에, 직원 여섯 명이 이뤄낸 일입니다. 미국 타임지는 ‘2021 세계 100대 명소’로 경주를 선정하면서 특히 국립경주박물관에 꼭 가보라고 소개했죠.
“서울공예박물관 전 관장님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태오 씨, 경주박물관은 디자인이 예쁜 걸 떠나서 제 의식에 큰 충격을 줬어요.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는 위압감을 느끼게 했어요.’”
국립경주박물관이 바뀐 뒤, 많은 박물관이 리노베이션에 들어갔습니다.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사유의 방’을 공개했습니다. 같은 해 ‘전통을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서울공예박물관이 문을 열었고요.
양태오의 작업은 하나의 카테고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박물관, 레지던스, 브랜드… 최근에는 카페 브랜딩과 기업 오피스 컨설팅을 맡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들은 모두 ‘미래의 가이드라인을 잡는다’는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GS에너지 오피스를 만들 때는 ‘에너지’의 가이드라인을 재정의했어요. 석유·석탄이 아니라 사람과 소통이 에너지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없애고 그 자리에 계단을 만들었어요.
동탄의 엘레먼트 바이 엔제리너스A’LEMENT BY ANGEL-IN-US 프로젝트 때는 ‘엔제리너스’라는 이름을 되살렸어요. 진짜 지역에 천사 같은 존재가 돼주냐는 거죠. 엔제리너스 엘레먼트 매장은 피클, 열무 같은 식자재 수급을 동탄과 수원에서만 해요. 테이블을 둬야 할 자리에 동탄의 아티스트 작품을 전시하고요. 이런 게 다 미래에 대한 대비죠. 현재에서 미래로 확장성을 가지는 거예요.”
미래의 라이프스타일, 공예
양태오가 제안하는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은 ‘공예’입니다. 그는 공예 재단법인 예올의 20주년 전시를 감독하고, ‘2022 공예 트렌드 페어’의 총감독을 맡을 정도로 공예에 관심이 깊죠. 그는 공예를 ‘작품’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다시 정의합니다.
“공예는요, 작품이기도 하지만 아날로그적인 라이프스타일이에요. 단발령으로 비녀가 사라지고, 새마을운동 뒤 기와가 사라졌어요. 제 목표는 이렇게 사라진 공예의 ‘실생활에서의 쓸모’를 보여주는 거예요. 공예가 주방용품, 거실 용품으로 살아나는 거죠.”
양태오만 공예를 주목하는 건 아닙니다. 스페인의 패션 브랜드 로에베는 2016년부터 공예상을 만들어 운영해요. 공예는 세계적 관심사죠. 디지털 시대를 지나 아날로그가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모두 밸런스로 이루어져 있어요. 메타버스, NFT 모르면 바보 취급당하는 디지털 시대에서 공예는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도구예요.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에 대한 갈망이 분명 더 생긴 거죠.”
하지만 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공예는 ‘예술품’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양태오는 그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라고 말합니다. 공예는 예술이기 전에 생활용품으로 존재해야 한다고요.
“저는 집에서 그릇, 도자기 같은 공예품 정말 막 쓰거든요. 공예가 현실을 위해 존재해야지, 현실이 공예를 위해 존재할 순 없어요. 공예가 나 봐달라고, 나 사달라고 투정 부리면 안 돼요. 그들이 먼저 현대인들한테 꼭 필요한 물건이어야 해요. 그 존재 이유를 만드는 게 공예가고요, 그들이 만든 당위성을 알리는 게 박람회예요.”
‘2022 공예 트렌드 페어’는 ‘현실의 질문, 공예의 대답’이란 주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공예는 세 가지 현실 문제에 답을 알려줍니다. 환경파괴 문제에는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이란 답을, SNS로 인한 획일화 문제에는 전통을 이어받은 개성이란 답을, 무분별한 산업화 사이에선 손으로 만든 물건의 가치를 알려주죠.

Chapter 6.
마치며 : 시간이 많지 않아요
공간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를 론칭하고, 공공사업을 기획하는 일. 양태오의 일은 이미 디자인을 뛰어넘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죠. 그게 디자인에 대한 오해라고요.
“이게 디자이너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디자인 자체가 기획이고요. 디자인 자체가 큐레이션이거든요. 사람들의 공간을, 생활과 가치관을 큐레이션 해주는 거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무겁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제는 작업에 만족하는 법을 모르겠다고요. 조금이라도 더 이뤄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릅니다.
“디자이너라면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돼야 해요. 인류에 도움이 되진 못하더라도 21세기의 북촌, 서울 정도에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이 업을 끝내고 싶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10년은 너무 빨리 가고요, 제가 언제까지 머리를 굴리면서 일할 수 있을까요.”
프리즈 아트페어* 기간 동안 양태오는 하루에 저녁을 다섯 끼 먹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전날엔 해외 갤러리 손님과 식사를 하고, 공예 전시회 토크쇼에 갔다가, 프로젝트 PT를 하나 마치고, 독서 모임을 4시간 하고, 새벽에 LA와 화상 미팅 끝내고 나니 새벽 세 시 반이었다고요. 자고 일어나니 손가락이 안 펴질 정도로 온몸이 부어 있었습니다.
*Frieze.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로, 지난 9월 2일부터 4일간 한국국제아트페어 키아프와 손잡고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됐다. 역대 최대급 관람객을 기록하며 한국의 아트 열풍을 보여줬다.
양태오는 오해를 많이 받는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면서 ‘인플루언서 디자이너’,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 유학파 디자이너’ 같은 꼬리표가 붙었죠. 하지만 이 정도로 바쁘기에, 오해에 대해 신경 쓸 겨를조차 없습니다. 놀라운 건, 이 오해를 즐기기도 한다는 거예요.
“디자이너는 마치 백조처럼 보이죠. 그런데 가장 처절하고 치열한 직업이에요. 백조의 다리 중에서도 관절이에요. 그런데 저는요, 밖에서 보이는 백조의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앤디 워홀이에요. 예술과 그 시대의 트렌드, 그리고 비즈니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죠. 제가 전통을 말하면서, 나 자신까지 고리타분하게 비치면 저의 세계 자체가 지루해져요. 그래서 ‘양태오’라는 인간은 더 현대적이어야 해요. 그게 전통이 살아남는 길이거든요.”


롱블랙 프렌즈 B
저 역시 양태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중에게 연예인 집을 인테리어했던 사람,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디자이너로 유명하죠. 화려한 외모와 유명세가 그의 철학을 가리는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많은 분이 저한테 물어보세요.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 수 있어요?’ 그 질문이 굉장히 이상해요. 저는 한 번도 ‘인플루언서가 될 거야’ 생각해본 적 없거든요. 그냥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글을 쓰고, 의미를 담고, 기획을 말하다 보니 자연스레 알려진 거죠.”
앞으로도 그는 사명을 알려 나가겠죠. 더 많은 이야기가 들려오기를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그의 영업 비밀을 전합니다.
“저는 책이 없으면 일 못 해요. 큰 프로젝트가 닥쳐오면 무섭다가도 ‘그래, 나에겐 책이 있으니까’ 생각해요. 책은 진짜 고마운게요, 누군가가 혼을 담아서 쓰는 거잖아요. 우리는 읽기만 하면 돼요. 30~40년 동안 만들어온 철학과 지식을 우리한테 고스란히 전수해주는 거잖아요.”
그의 말대로, 오늘도 그가 10년 넘게 쌓아온 철학을 고스란히 전수 받은 데에 감사를 느낍니다. 롱블랙 피플, 슬랙 커뮤니티에서 오늘 전수 받은 내용을 함께 정리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롱블랙 프렌즈 B
롱블랙 피플, 우리가 함께 스터디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돼 갑니다. 감각의 시대를 앞서가는 브랜드와 사람에 대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요.
롱블랙 1주년이 돌아오는 이번 주, 다시 한번 <인터뷰 위크 : 감각의 설계자들 2>’라는 타이틀로 스페셜 위크를 진행합니다. 지난 1년 동안 감각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만, 감각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모호하고 멀게 느껴집니다. 감각이란 무엇일지를 더 오래 고민해 온 이들을 만나보면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요.
*롱블랙은 2022년 2월 7~11일 <인터뷰 위크 : 감각의 설계자들>을 진행했다.
이번 위크는 양태오 공간 디자이너와 엽니다. 그가 운영하는 태오양 스튜디오는 『월페이퍼』, 『모노클』, 『디자인 앤솔로지』 등 수많은 글로벌 미디어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바이 디자인』*에서 세계 100대 인테리어 스튜디오 중 하나로 뽑혔죠. 최근에는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100대 스튜디오 ‘AD100’에 포함됐고요.
*세계 3대 아트 서적 출판사 파이돈 프레스에서 발행한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뉴욕 아트 서적 중 하나.
최소현 퍼셉션 대표와 계동 한옥 양태오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카페와 전통 기프트샵을 지나 고즈넉한 골목을 한참 걷자, 그가 사는 한옥 두 채가 나왔습니다.

최소현 퍼셉션 대표
과거의 유산으로 미래를 바꾸는 사람. 양태오 디자이너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카고예술대학과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네덜란드 디자인 거장 마르셀 반더스* 밑에서 수련했고요. 2010년부터 한국에서 ‘태오양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죠.
*Marcel Wanders. 고전성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무이, B&B 이탈리아, 모로소, 몬드리안 호텔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와 함께 일한다.
여러 채의 한옥 공간을 디자인했고, 국립경주박물관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자신의 화장품·가구·향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파이돈 프레스는 그의 작품을 두고 “과거를 현재로 옮기는 데 탁월하다”고 표현했죠. 그는 한국의 전통을 현대의 공간에 가장 잘 구현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가 지내는 한옥의 다이닝룸에 들어갔습니다. 올 봄의 매화 잎이 올라간 금귤정과와 노란빛의 다식, 몇 가지 다과가 작은 소반 위에 차려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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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 한옥집에 앉아 있는 양태오 디자이너. 양태오는 미술 수집가였던 어머니에게 미적 감각을, 건설사에 다니셨던 아버지에게 건축 감각을 배웠다. ⓒ태오양 스튜디오
2013년 진행한 대림바스 쇼룸. 서재를 콘셉으로 대림바스의 50년 역사와 노하우를 전시했다. 처음으로 쇼룸 내 라이프스타일 숍을 전개해 화제를 모았다. ⓒ태오양 스튜디오
양태오는 2012년, 북촌 계동의 한옥에 이사오며 자신의 매니페스토를 찾았다. 붙어 있는 두 채의 한옥 중 하나의 이름은 청송재. 1917년 지어진 조선시대 후기의 도심 보급형 한옥이다. ⓒ롱블랙
계동 한옥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잡상은 양태오가 어린 시절, 인사동에서 발견해 어머니께 사달라고 졸랐던 잡상이다. ⓒ롱블랙
삼국시대 토기와 와인 냉장고가 공존하는 한옥의 다이닝룸. 양태오는 사랑방으로 쓰였던 공간을 현대에 맞게 다이닝룸으로 변주했다. ⓒ롱블랙
다이닝룸 한 쪽엔 사람들이 모여 와인 한 잔 마시며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갤러리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큰 테이블이 있다. ⓒ롱블랙
한옥 서재에 있는 책들은 양태오가 직접 한지로 겉표지를 싸놓았다. 각종 미술품 사이에 책들이 쌓여 있는 모습이 마치 고서와 같다. ⓒ롱블랙
2016년 진행한 망향휴게소 화장실 리모델링. 조선시대 향교에서 구도를 본떴다. 통창 아래 공부하는 자리를 마련해 자연을 보며 공부했던 사당을 재현했다. ⓒ태오양 스튜디오
이스라이브러리의 패키지는 고서들이 3단으로 기대어 쌓인 모습에서 본떴다. 해당 패키지는 『월페이퍼』에서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이브러리
이스라이브러리의 패키지는 고서들이 3단으로 기대어 쌓인 모습에서 본떴다. 해당 패키지는 『월페이퍼』에서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이브러리
2020년, 국립경주박물관 로비 리모델링. 출입문 하나를 막아 통창으로 만들었다. 경주의 남산과 사자상, 그리고 벤치에 있는 관람객을 같은 뷰에 담기도록 만들어, 예술적 쉼을 구현했다. ⓒ태오양 스튜디오
국립경주박물관 로비 리모델링은 유물을 유물관 밖으로 꺼내면서 관람객과 유물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던 유리관을 없앴다. 처음으로 유리관 없는 박물관, ‘유물을 구경하지 않고, 만나는 박물관’을 제안했다. ⓒ태오양 스튜디오
양태오의 한옥집에 있는 공예·미술품들과 영국 벽지 브랜드 드고네이와 콜레보레이션한 코리안 컬렉션. 그는 ‘2022 공예 트렌드 페어’ 총감독을 맡아 박람회를 기획 중에 있다. ⓒ롱블랙
2022년 1월 진행한 GS에너지 오피스 프로젝트. 가운데 엘리베이터 자리를 없애고 계단을 만들었다. 에너지의 의미를 석유·석탄이 아닌 사람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태오양 스튜디오
GS에너지 오피스 프로젝트를 통해 태오양 스튜디오는 처음으로 오피스 컨설팅을 맡았다. 태오양 스튜디오의 다양한 작업은 모두 ‘미래의 가이드라인을 정한다’는 메시지로 통한다. ⓒ태오양 스튜디오
태오양 스튜디오가 2021년 기획한 동탄의 엘레먼트 바이 엔젤리너스는 자리를 만들어 수익을 낼 수도 있는 가운데 공간을 비워, 동탄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태오양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