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역학자 김승섭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를 말하다


롱블랙 프렌즈 B 

1960년대 실제 NASA 직원이었던 세 흑인 여성 과학자를 그린 영화 「히든 피겨스」(2017)의 한 장면. 주인공이 연구소 밖에 있는 유색인종 화장실에 가기 위해 오줌을 참으며 왕복 1.6㎞를 뜀박질합니다. 그런 그에게 백인 상관이 불만 가득 묻죠. “왜 근무 시간에 자리를 오래 비우는 거요?” 주인공이 성토합니다. “화장실이 800m 거리라는 거 알고 계셨어요?” 이것은 비단 과거만의 이야기일까요.

21세기 대한민국. 백화점·면세점에서 일하는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중 20.6%(2018년 연구)가 제때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 방광염으로 고생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가까운 고객용 화장실 사용이 그들에겐 금지됐기 때문이었죠. 이른바 ‘오줌권’이라는, 그러니까 배설하는 인간의 당연한 권리가 빼앗긴 현장의 고통을, 20.6%라는 명확한 수치로 건져 올린 이는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입니다. 오래전 그를 인터뷰했던 정시우 작가가, 롱블랙을 통해 한 번 더 그를 만났습니다.


정시우 작가 

김승섭 사회역학자는 차별, 고용불안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탐구하는 사회역학자예요. 결혼이주여성,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세월호 생존 학생, 천안함 생존자, 성소수자… 마음이 폐허가 된 이들의 상처를 연구해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자주 아프다’는 근거를 제시해 왔죠.

궁금했습니다. 어떤 사람이길래 늘, 아픔의 현장 가까이에 서 있는지. 그가 자신의 공부를 되돌아본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를 들고나왔다는 소식에 만남을 청했죠. 마주한 곳은 그의 서울대학교 연구실. 전해 받은 명함엔 점자가 도드라져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