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K
C가 영상 하나를 보내줬어요. 구글 뷰처럼 360도 렌즈가 널찍한 사무실을 구석구석 비춥니다. 업무 공간 옆을 빙 두른 책장과 경기장 같은 공간에 둘러앉은 사람들. 배달의민족의 새 사무 공간을 소개하는 영상이래요.
배민이 2월에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입주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기존 업무 공간을 ‘큰집’ ‘작은집’으로 부르던 배민, 이번 사무실은 ‘더큰집’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늘 일하는 공간이 특색 있기로 유명한 회사잖아요. 영상을 보니 한번 둘러보고 싶더라고요. 잠실을 찾아갔습니다.
Chapter 1.
배달의민족은 왜 일하는 공간으로 브랜딩을 할까
롯데월드타워 37층. 배달의민족 시그니처 캐릭터인 ‘배달이’ 모형이 저를 맞아줍니다. 두꺼운 뿔테안경과 민트색 헬멧을 쓰고, 민트색 바지를 입은 그 귀여운 녀석 말이에요. 바로 앞 인포메이션 데스크엔 배민이 지금껏 만들어 온 모든 서비스 이름이 간판으로 전시돼 있습니다. 간판 아래 큰 모니터에 이렇게 적혀있어요. ‘나이스투미츄’. 입구에서부터 웃음이 나오는 걸 보니 여기 배민 사무실 맞나 봅니다.
한 층 올라가면 사무 공간이 시작됩니다. 38층 문을 열자마자 와그작, 자갈이 밟혀요. 그러고 보니 벽엔 붉은색 벽돌이 붙어있습니다. 마치 야외 테라스 같네요.
“이런 대형 빌딩에 배민이 입주한 건 처음이에요. 너무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죠. 야외 공간처럼 개방감을 주고 싶었습니다.”
_김철영 우아한형제들 공간디자인실 이사
사실 배민의 일하는 공간이 화제가 된 건 처음이 아닙니다. 거의 10년 전인 2013년, 석촌호수 옆 ‘(구)큰집’ 사무실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우아한형제들이 2011년 설립됐으니, 갓 2년 된 신생 회사에 불과했죠.
한 층 면적이 100평 남짓한, 지금과 비교하면 작고 소박한 건물이었어요. 하지만 유쾌한 분위기만은 다르지 않았대요. 사무실엔 ‘배고프니까 청춘이다’‘이번 고비가 지나면 다음 고비 온다’ 같은 코믹한 포스터가 붙어있었죠. 창문엔 피터팬 스티커가 붙어있고 그 옆에 ‘우리도 날 수 있어’라고 적어놨고요.
2017년 올림픽공원 옆의 ‘큰집’으로 이사하며 배민 사무실은 더 유명해졌어요. 2018년 iF 디자인어워드 사무 공간 부문 위너로 선정될 정도로요. 파티션 없는 사무실, 경기장을 닮은 공용 공간, 스포츠 역사에 획을 그은 선수들로 브랜딩한 각 층.
매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성스럽게 사무 공간을 꾸며 왔죠. 이번 ‘더큰집’도 공들인 티가 납니다. 1인 회의실엔 모션 데스크가 설치돼 있고, 창가 책장에 놓인 책은 구성원들의 이름을 따 ‘OO님의 인생 책’이라는 사연이 붙어 있어요.
“2015년에 합류할 때 김봉진 의장이 말하더군요. 우리가 함께 할 일은 문화를 다지는 거라고요. 구성원이 더 늘기 전에 문화를 다져놓지 않으면 우리는 문화 없는 회사가 된다고 말이에요. 회사의 문화가 단단하면 브랜딩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죠.
당시에도 이미 배민은 독특한 에너지와 뚜렷한 조직문화가 있었거든요. 제가 김봉진 의장과 함께 한 작업은 그걸 형태로 만들어 보여주는 거였어요. 일하는 방식을 포스터로 만들어 붙인 게 대표적이었고요.
일하는 공간도 마찬가지예요. 보기 좋거나 재미있는 공간을 디자인한 게 아니에요. 조직 문화의 철학을 곳곳에서 되새길 수 있도록 기획했어요. 공간을 통해서 일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질문하게끔 하는 거죠.”
_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궁금해집니다. 공간을 통해서 일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게끔 하다니, 무슨 말일까요.
Chapter 2.
콘택트 : 잡담이 일의 몰입을 만든다
38층 입구에서부터 질문이 시작됩니다. 문이 열리면 맨 먼저 긴 테이블과 싱크대가 보여요. 아니, 탕비실 아닌가요? 보통 탕비실은 사무실 깊숙한 곳에 숨겨두는 것 아닌가요?
배민은 이곳을 ‘우물가’라고 부른대요.
“옛날엔 마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우물가였잖아요. 물도 긷고 빨래도 하면서 대화를 했죠. 회사 입구는 모든 사람이 다니는 길목이잖아요. 이곳이 대화의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일을 잘하려면 잡담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게 배민의 철학이거든요.”
_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그러고 보니 본 것 같습니다. 배민의 일하는 원칙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11가지 방법’ 말이에요. 거기엔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라고 적혀있었죠.
사람들이 섞이고 부딪히는 공간. 전문 용어로 이런 공간을 ‘밍글링 스페이스Mingling Space’라고 합니다. ‘더큰집’은 몰입해 일하는 공간과 밍글링 스페이스가 1:1 정도로 섞여 있대요.
이 얘길 들으니 구글Google이 올 5월 공개한 새 사무실 ‘베이뷰 캠퍼스bayview campus’가 떠오르더라고요. 구글이 ‘100년 뒤 일의 형태’를 고민하며 지은 사무실입니다. 42에이커(약 17만㎡)의 공간 중 절반에 가까운 20에이커(약 8만1000㎡)가 개방형 공간입니다. 2개 층 빌딩에서 1층 전체를 카페와 라운지, 식당 같은 소통 공간으로 채웠어요.
소통의 힘. 특히 창의성과 소속감에 구성원 간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많은 연구 결과가 증명합니다. 미국 미국 럿거스Rutgus 대학의 제시카 메쏘트Jessica Methot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서 “일터에서의 잡담small talk은 창의성과 소속감을 증진시킨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잡담은 여러모로 중요합니다. 협상과 채용 면접, 영업 미팅과 실적 평가 같은 심각한 주제를 부드럽게 풀어주죠. 동료들에 대해 알게 되는 사소한 사실, 그들이 기타를 친다거나 개를 좋아한다는 따위의 이야기는 라포rapport·친밀감를 형성하고 신뢰를 강화시켜요. 우연히 마주쳐 나누는 대화는 협업 가능성과 창의성, 혁신과 실적을 모두 끌어올립니다.”
_제시카 메쏘트,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기고문에서
배민은 2013년의 사무실 ‘(구)큰집’에서부터 ‘우물가 잡담 문화’를 강조해 왔어요. 2017년에 떠들썩했던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지난 4월 유튜브 동시 접속자 수만 명을 기록한 ‘이게 무슨 일이야! 컨퍼런스’는 잡담에서 출발한 대표적인 아이디어예요.
*배민에서 주최한 국내 최고의 치킨 전문가를 선발하는 치킨 능력 평가 시험. 필기 영역과 실기 영역으로 이뤄진다.
“‘치믈리에 자격시험’은 신규 입사자들이 교육용 퀴즈를 푸는 모습을 보면서 브랜드팀이 ‘이걸 크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면서 시작됐어요. ‘이게 무슨 일이야! 컨퍼런스’는 김범준 대표와 기업브랜딩팀이 밥을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가 컨퍼런스로 이어진 사례고요. 물론 회의실에서 진지하게 토론하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죠. 하지만 일상의 편한 대화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디어도 못지 않게 많다고 느낍니다.”
_성호경 우아한형제들 기업브랜딩팀
Chapter 3.
개방성 : 숨는 곳이 없어야 진짜 소통이 가능하다
우물가를 지나 왼쪽 코너를 돌면 트랙방이 나옵니다. 보자마자 알았어요. 학교 운동장처럼 생겨서 트랙방이란 걸요. 원형 계단과 바닥엔 붉은 우레탄이 깔려있죠. 트랙방 역시 배민 조직 철학의 한 축을 담당해요. “모든 것이 한눈에 보여야 한다”는 거예요.
“투명하고 공개적인 소통은 배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예요. 트랙방은 이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고요. ‘더큰집’의 트랙방엔 최대 300명이 모일 수 있지만, 누구나 서로 눈을 마주칠 수 있거든요.”
_손혜진 우아한형제들 기업브랜딩팀장
그러고 보니 ‘더큰집’은 한 층이 5000㎡(약 1514평)에 달하는 데도 여닫는 문이 별로 없어요. 1인 회의실과 집중 업무 공간까지도 모두 뻥 뚫려 있죠. 회의실만 유일하게 문이 있지만, 불투명한 유리 벽으로 속이 언뜻언뜻 비치고요.
“입구에서 서면 공간의 끝이 한눈에 보여야 한다는 게 우리 공간 기획의 룰이에요.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비밀 대화가 생기고,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_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
이런 문화는 온라인에서도 이어져요. 이 회사, 전체 구성원이 다 참여하는 메신저 방이 있대요. 구성원이 2000명에 가까운데도요.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더 친밀하게 협업한다는 건 연구 결과로도 입증됐어요. 코넬Cornell대 프랭클린 베커Franklin Becker 교수팀은 “회사에서 오가는 대화의 87%는 같은 층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분석했어요. 탁 트인 넓은 공간으로 사무실을 옮겼더니, 구성원의 대화가 85%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내놨죠.
음지의 이야기를 햇빛 아래에서 하자
잠깐만요. 그런데 우리가 숨어서 하는 이야기란 게 보통 불평불만이잖아요. 음지를 없애버리면 불평불만을 막아버리는 게 아닐까요?
알고 보니 ‘음지의 이야기를 햇빛 아래서 모두와 함께 나누자’는 취지였어요. 바로 ‘앞담화’ 문화죠. 탕비실이 입구에 것도 같은 이유래요. 가장 은밀하고 닫혀있는 공간을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끌어낸 것 말이에요.
이 앞담화 문화의 정점이 ‘우아한 수다 타임’, 줄여서 ‘우수타’예요. 2주에 한 번씩 전구성원의 익명 질문을 모아 대표가 직접 대답하는 시간이죠. 오프라인으로 열릴 땐 트랙룸에서, 온라인으로 열릴 땐 단체 화상 미팅으로 진행돼요.
이 시간엔 “승급 기준이 뭐냐”는 예민한 질문부터 “냉장고 관리가 엉망” 같은 사소한 불만까지 모두 주제가 돼요. 지금 당장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도 있겠지만, 구성원의 고민을 조직 전체가 함께한다는 점에서 ‘앞담화’의 효용이 보여요.
Chapter 4.
비일상성 : 출근이 여행처럼 설렐 수 있다면
트랙방을 살펴보다가 계단 뒤로 넘어갔어요. 그곳에서 진짜 독특한 공간을 발견했죠. 파란색 타일에 야자수 나무, 그 앞으로는 한강 뷰. 물만 없다 뿐이지 인피니티 풀입니다. 사무실에 웬 수영장이죠?
“배민이 공간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재미’예요.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재미있게 느낄까,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보면서 말이라도 하나 더 꺼낼까, 하고 고민하거든요.
결국 사무 공간이 다 비슷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비일상성’이 중요해요. 경기장처럼 생긴 회의실, 수영장처럼 생긴 휴게 공간처럼요.”
_김철영 우아한형제들 공간디자인실 이사
비일상적 공간은 이 뿐 아니에요. ‘청평같은 방’은 그야말로 교외 펜션을 닮았어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장판 바닥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긴 테이블, 쉴 수 있는 소파와 요리를 할 수 있는 싱크대가 있어요. 이 방에선 워크숍에 온 기분으로 긴 시간 회의를 할 수 있죠.
그 외에도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사무실 창가 책장, 진짜 카페처럼 음악이 흐르는 카페형 사무 공간… 모두 ‘여기가 사무실 맞나?’ 싶어요.
“배민이 지금보다 어려웠을 때도 늘 전망만은 좋은 사무실을 마련했어요. 가장 전망 좋은 자리를 구성원들이 쓰게 하고, 구석구석 재미있는 문구들을 붙여뒀고요. ‘어떻게 하면 회사 오는 게 재미있을까’ 하고 고민하기 때문에 배민 특유의 발랄한 에너지가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_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저는 이 말이 ‘엔데믹endemic 시대 사무실의 의미’에 대한 고민처럼 들리더라고요. 재택이 보편화되고, 사무실 찾을 일이 전보다 줄었잖아요.
심지어 배민은 내년 초부터 일하는 공간을 전면 자율화해요! 사실 원하기만 하면 계속 재택근무를 해도 괜찮은 거예요. 그런데 왜 이렇게 사무실을 공들여 꾸미는 거죠?
“일하기 좋은 공간은 늘 바뀌겠죠. 구성원마다 성향이 다르고, 또 그날 해야 할 업무도 다르니까요. 분명한 건 모든 구성원이 매일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무실에서 오는 순간이 즐겁도록, 일하기 좋은 환경을 계속 고민하는 거예요.”
_김철영 공간디자인실 이사
엔데믹 시대에 걸맞게, 모든 공간에 온라인 회의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어요. ‘더큰집’의 회의실엔 직접 조명이 없어요. 책상은 살짝 광택이 도는 흰색 상판으로 마감했고요. ‘화상 회의를 할 때 가장 화사해 보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조명의 색상과 각도까지 테스트해가며 신경 썼다고 합니다.
Chapter 5.
명확성 : 다소 유치하더라도 메시지는 쉬워야 한다
회의실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회의실 팻말에 눈길이 갑니다. ‘준홍 회의실’‘도연 회의실’… 팻말이 삐뚤빼뚤 아이들 글씨로 쓰여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구성원 아이들의 이름을 따 회의실을 부르고 있었어요. 팻말의 글씨는 그 아이들이 손으로 썼다고 해요.
“배민이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들어온 건 상징적인 일이잖아요. 우리가 이만큼 컸구나, 하고 확인하게 됐달까요. 그럴수록 잊기 쉬운 가장 작은 것들, 가장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에 눈길을 돌리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아이들을 떠올리면 차갑고 세련된 공간에서 누구나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요.”
_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
그러고 보면 배민의 공간 콘셉트는 늘 무겁지 않았어요. 때론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순하고 명확하죠. ‘(구)큰집’의 콘셉트는 피터팬 동화 속 ‘네버랜드’였어요. 롯데월드가 내려다보이는 창문에는 피터팬 스티커가 붙어있었죠. 공간의 이름도 ‘나나의 방’, ‘웬디의 라운지’처럼 지었고요. ‘우리 철들지 말고, 계속 재밌고 새로운 일을 하자’는 의미를 담았대요.
올림픽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큰집’에선 스포츠가 콘셉트였어요. 열여섯 개 층이 스포츠 역사를 바꾼 전설적인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했죠. 스파이크 서브를 처음으로 선보인 장윤창 선수, 야구에서 최초로 커브볼을 던진 캔디 커밍스Candy Cummings처럼요. ‘늘 반복되는 일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해 보자’라는 다짐을 담았어요.
롯데월드가 보이면 피터팬, 올림픽공원이 보이면 스포츠 콘셉트라니. 직관적이어서 좋은데, 조금 일차원적인 느낌도 듭니다. 그런데 한명수 CCO는 “메시지는 원래 유치해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유치한 메시지는 쉽고 경쾌하게 전달되기 때문이에요. 처음 들었을 땐 피식, 웃게 되지만 누구나 바로 메시지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어요. 회사의 철학은 가장 막내, 신규 입사자, 우리를 잘 모르는 회사 지원자에게까지 선명하게 전달돼야 해요. 그 먼 거리까지 메시지가 왜곡 없이 전달되려면 어쩌면 유치해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쉬워야 하죠.”
_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색깔로 비유하자면, ‘로즈 쿼츠rose quartz’는 세련됐지만 좀 추상적이에요. 연분홍색이라고 하기도, 살구색 섞인 다홍색이라고 하기도 애매하죠. 그런데 ‘빨간색’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분명하게 딱 떠오르는 것. 그게 바로 메시지의 본질인가 봐요.
Chapter 6.
재미 : 그곳에선 일이 재미있습니까
‘더큰집’을 한 바퀴 돌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면 회사가 돈이 많아야 하는 것 아닐까.’ 조금 마음이 불편해졌어요.
그런데 한명수 CCO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요. “일하기 좋은 공간은 구성원에 대한 애정과 관찰로 만드는 것”이라고요.
“제가 처음 합류하던 2015년만 해도, 사무실이 굉장히 소박했어요. 대기업에서 온 제 눈엔 조금 충격적이었죠.
그런데 그때도 ‘일하기 좋은 공간’에 대한 회사의 고민은 지금보다 덜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앉은 구성원을 위해서 키 큰 화분을 책상 옆에 놓아주고요, 화장실 오갈 때 신경 쓰이지 말라고 화장실 입구에 발을 사서 걸어주는 식이었어요.”
_한명수 우아한형제들 CCO
배민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2012년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지금도 기억한다고 합니다. 어느날 회사가 구성원들에게 물었대요. “2014년 12월까지 함께 이루고 싶은 것이 뭐냐”고요. “사무실에 간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사원증이 있으면 좋겠어요” 같은 소소한 소원들이 나왔죠.
배민은 그 소원들을 벽에 써 붙였대요. 그리고 형편이 나아질 때마다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며 지워나갔다고 해요.
구성원을 왜 이렇게까지 챙기는 걸까요? 배민이 ‘착한 회사’여서? 김범준 대표는 아니라고 해요.
“늘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어요. 회사는 구성원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회사는 고객을 창출하고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해요. 그런데 그러려면 구성원이 일을 잘해야 하죠.”
그러면서 배민의 조직 슬로건 중 하나인 ‘인사받고 싶으면 먼저 인사하자’를 들었어요.
“결국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접하라’는 게 회사의 원칙이에요. 우리는 구성원들이 일을 잘하길 바라잖아요. 그러려면 구성원이 회사에 애정을 가져야겠죠.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을 줘야 하는 거예요. 회사가 구성원들을 자꾸 챙기는 것도 그래서고요.”
_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일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한참을 들었는데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김범준 대표에게 대놓고 물었습니다. “일하기 좋은 공간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뭘까요.”
“일이 재미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일이 재미있거든요. 여럿이 함께 일로 성장하는 그 자체가 게임 같아요. 그래서 전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일work과 삶life을 분리하는 것, 일은 견뎌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재미를 온전히 느끼려면,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일을 해야 해요. 내게 걱정거리가 있거나 일하는 데 방해되는 요소가 있으면 그것부터 해결해야 하거든요. 각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밸런스를 조절할 수 있도록, 또 각자가 최대치로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_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롱블랙 프렌즈 K
일이 재미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공간. 김범준 대표의 말을 오래 곱씹게 됐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질문이 생겼어요. 내게 일하기 좋은 공간이란 무엇일까.
일에 대한 철학은 사람마다, 기업마다 모두 다를 겁니다. 그러니 모두에게 일하기 좋은 공간도 다르겠죠. 롱블랙 피플, 각자가 생각하는 일하기 좋은 공간은 무엇인가요. 롱블랙 슬랙 커뮤니티에서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