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B
도쿄의 나카메구로. 낮은 담장과 아기자기한 가게가 즐비한 골목여행 명소예요. 그중 오래된 목조 가옥 한 채가 눈에 띕니다. 주말이면 수백 명씩 다녀가요. 오니버스 커피 나카메구로점입니다.
하얀 외벽과 나무 기둥, 고풍스러운 벽면 타일. 목조 건물을 개조한 2층짜리 가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1층 테라스엔 고동색 벤치 두세 개가 띄엄띄엄 놓였어요. 사람들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저마다 공간을 즐깁니다. 길거리에 서서, 벤치에 앉아, 난간에 기대어 커피 타임을 만끽하죠.
뉴욕타임스는 오니버스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만약 당신이 도쿄에서 36시간을 보낸다면 이 커피숍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요. 오니버스 사카오 아츠시 대표를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사카오 아츠시 오니버스 커피 대표
목공 장인이었던 사카오 대표의 아버지에겐 오랜 습관이 있었어요. 매일 오전 10시, 그리고 오후 3시에 캔 커피를 마셨죠. 곁에서 목공 일을 돕던 사카오 대표도 캔 커피를 마시곤 했어요. 커피란, 캔 커피가 다인 줄 알았다고요 해요.
사카오 대표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건축사무소에 입사했어요.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만두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요. 그리곤 뜻밖에 카페 문화에 빠져버립니다.
‘단골 카페가 생기면 항상 같은 자리에 앉고, 점원은 얼굴을 기억해 주고.’ 당시 일본엔 없던 문화였습니다.
‘일본에도 생활에 밀접한 카페 신을 만들겠다’며, 2012년 도쿄 오쿠사와에 문을 연 것이 오니버스의 시작입니다. 카페는 트렌드가 아닌, 일상이라고 말하는 사카오 대표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Chapter 1.
커피 한 잔이 소중해지는 30초의 비결
일본 식당이나 술집에 가면 꼭 듣는 말이 있어요. “어서오세요, 몇 분이신가요?” “주문 정해지셨나요?” 계산할 때도 마찬가지죠. “1만엔 받았습니다, 2800엔 돌려드립니다.”
이유가 있어요. 다들 매뉴얼을 잘 지키거든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말을 들을 확률이 높아요.
오니버스 나카메구로점은 지난주와 어제, 오늘의 대화가 다 달랐어요. “오니버스 커피 처음이세요?”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오늘 날씨엔 이런 커피도 추천 드려요.” 접객 멘트 대신 진짜 대화가 오갔죠. 조금 느리고 서투른 관광객의 주문에도, 한결같이 살가웠어요. 비결은 매뉴얼이 없다는 것.
“처음 들어온 분들은 힘들어해요. 매뉴얼이 없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일하는 사람들끼리 도와주는 분위기가 형성됐죠. 저는 그저 ‘개성을 드러내는 게 좋다’고 자주 말해줄 뿐이에요. 한 번 들어오면 다들 꽤 오랫동안 일하는 편이죠.”

어쩌면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사이
서로의 인생을 공유하는 사이. 사카오 대표가 정의하는 손님과 직원의 관계입니다. 짧은 순간이 조각조각 모여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거죠.
“1인 가구라면 친구나 가족보다, 카페 직원 얼굴을 더 자주 볼 확률이 높죠. 직원들에게 강조해요. 30초든, 1분이든, 손님과 우리는 서로 인생을 공유하고 있다고. ‘다녀오세요’라든가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라는 말을 주고받자고요.”
2012년 첫 매장을 열었을 때, 사카오 대표 혼자서 일했어요. 손님과 일대일로 가까워졌죠. 그렇게 친해진 손님이 또 다른 손님을 데려왔어요. 가볍고 담백한, 일상의 관계가 늘었습니다.
“당시 도쿄의 커피숍들은 하나같이 화려했어요. 빌딩 7층에 있을 법한, 고급스럽고 근사한 이미지였죠. 편하게 가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분위기는 아니었죠. 이런 스타일 자체는 없었으니까, 어쩌면 1부터 시작한 셈이죠.”
창업하고 11년이 지난 지금. 오니버스는 일본 커피 신scene에 변화를 일으켰다는 평을 듣습니다. 커피 맛이나 공간이 주는 매력도 크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주인공이니까요.
“예전엔 ‘어떤 드립커피를 드릴까요?’ 물으면 ‘아무거나 주세요’ 하는 분이 많았어요. 요즘은 손님이 먼저 말씀하세요. ‘오늘은 이런 기분이니까, 이런 드립을 주세요.’ 취향을 찾아가는 커피 문화가 자리 잡았어요.”

Chapter 2.
버스정류장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오니버스 시작은, 사카오 대표가 23살에 떠났던 배낭여행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가방 하나 짊어지고 1년간 태국, 인도, 네팔, 캄보디아 등을 돌아다녔죠. 그중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은 호주였어요.
“호주에서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셨어요. 원두 자체 맛도 있지만, 분위기가 작용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직원이랑 손님이 스몰토크를 많이 하는데요. 그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죠.”
하루는 저조한 컨디션으로 커피숍을 찾았대요. 그에게 직원이 말했죠. ‘오늘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이방인인 그에게 이 한 마디가 큰 위로로 다가왔어요. 다음 날, 직원은 또 다른 인사로 커피를 건넸어요.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 다행이다!’
“삶을 살아가는 순간마다 누군가 건네 오는 한마디가 있잖아요. 커피 한 잔에 말 한마디가 얹어질 때. 별거 아닌 말이라도 커피 맛은 또 달라지거든요.”
일본으로 돌아온 사카오 대표. 2012년 1월, 오니버스 커피를 엽니다. 오니버스는 포르투갈어로 ‘공공버스’라는 뜻이에요.
“배낭여행 때 장거리 버스를 타면 20시간, 어느 땐 꼬박 하루를 이동했어요. 일본인, 한국인, 유러피언. 버스정류장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거점이더라고요. ‘잘 가’라든가, ‘어서와’라든가.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곳.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닿았어요.”
하지만 창업 초기엔 순조롭지 않았어요. 1년 정도는 찾아오는 손님 없이 대부분 혼자서 가게를 지켰죠.
“4, 5년까지는 너무 힘들었어요. 잘 운영하기 시작한 건 최근 5년이에요. 우린 드립 커피만 파는데, 초반엔 ‘캐러멜 마키아토 있어요?’ ‘라테에 시나몬 가루 뿌려주시나요?’ 이런 주문이 많았죠. 스타벅스처럼요. 터닝 포인트는 나카메구로점이었어요. 해외 관광객이 오면서 입소문을 탔죠. 거기가 없었다면 지금도 없었을 거예요.”

Chapter 3.
공간 : 시간과 스토리를 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오니버스 나카메구로점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공간을 볼까요. 카운터 옆으로 나무 계단이 보이네요. 다 오르니 2층에 통유리 방이 나와요. 창가 자리에 앉아 봅니다. 밖으로 기차길이 보여요. 실제로 전철이 다니는 철로죠.
“전 집주인은 주택의 낡은 느낌을 없애려고 애썼어요. 깨끗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죠. 저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고전적인 일본풍 가옥이지만, 스페셜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반전 매력을 의도했죠.”
올 봄에 롱블랙이 인터뷰한 초크 보이의 초크 아트도, 곳곳에 그려져 있습니다. 드립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법부터 화장실 위치, 메뉴 안내까지. 시선이 닿는 곳에 자연스럽게 위치하죠. 서정적이면서 빈티지한 풍경에 사람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댑니다.
한편 야쿠모점은 분위기가 또 달라요. 한적한 주택가에 있죠. 우리나라로 치면 서래마을 같은 동네입니다. 이 매장은 바닥에 깔린 나무 데크가 눈에 띄어요.
“치바현에 있는 전통주 양조장에서 가져온 나무예요. 100년도 더 됐어요. 자연농법으로 술을 만들던 노포 창고를 없앤다길래, 얻어와서 가공했습니다. 오랜 세월 사용해 온 통이니까, 아마도 좋은 균들이 스며들어 있겠죠. 양조장의 스토리도 배어있고요. 이 나무가 있다면, 우리 가게도 오래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썼어요.”
시부야에도 점포가 두 군데나 있어요. 먼저 도겐자카점의 위치는 직장인으로 북적이는 길목. 의자를 없애고 스탠딩 바를 뒀어요. 한 잔 홀짝 마시고 떠나는 느낌으로요.
다른 한 군데는, 호텔 1층에 입점한 ‘ABOUT LIFE COFFEE BREWERS’. 낮엔 커피를, 저녁엔 크래프트 맥주를 즐길 수 있어요. 관광객에겐 시부야의 일상을 소개하고, 현지인에겐 일상을 벗어난 즐거움 준다는 콘셉트입니다.

Chapter 4.
콘텐츠 : 커피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다
커피를 일반적으로 마시게 된 건 17세기. 점점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동시에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작물이 되어갑니다. 커피의 가치는 폭락했고, 생산자들은 어려움을 겪었죠. 질보다 양을 요구하는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됐으니까요.
그런 상황을 우려해 ‘커피 생산자를 지키고, 커피 품질을 높여가자’라는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1982년, 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SCAA)가 생겨난 배경이에요. 뛰어난 커피엔 적정한 가격을 매기고, 안정적인 생산을 실현하자는 취지였죠.
오니버스는 일본 스페셜티 커피협회(SCAJ) 기준을 따릅니다. ‘소비자 손에 들고 있는 컵 안의 풍미가 훌륭하고, 소비자가 맛있다고 평가하여 만족하는 커피일 것.’
맛있는 원두를 찾아 에티오피아, 르완다 같은 생산 지역을 다닙니다. 사카오 대표가 가장 애착을 두는 곳은 르완다예요. 내전과 학살의 역사를 가진 나라죠. 최근 경제성장률이 높아졌고, 그 부흥엔 커피 생산이 크게 공헌했습니다.
‘커피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생활을 향상시키자.’ 사카오 대표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려요. 무턱대고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하고, 디스카운트 협상을 마구잡이로 하는 일. 원두 업계에선 흔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런 행위를 오니버스는 철저히 지양합니다.
“스페셜티 커피를 팔려면, 그 본질이 뭔지 생각해야 해요. 손님과 우리는 물론, 저 멀리서 원두를 만드는 사람들까지도요.”
원두를 수입하기까지 시간을 들여 신뢰 관계를 구축하죠.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는 좀처럼 무너지지 않습니다. 안정적인 관계가 좋은 원두, 맛있는 커피와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작년에 한 농원에서 원두를 구해왔는데, 올해는 맛이 없어요. 그래도 웬만하면 다시 구매하는 편입니다. 의리는 아니고요. 이렇게 하면 내년엔 또 맛있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거는 거죠.”

스페셜티 커피를 다시 정의하다
오니버스 커피에선 커피만 팔지 않습니다. 원두를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배양토와 비누를 팔아요. 도쿄 미타카의 한 농원과 협업한 결과물입니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혔을 때, 사카오 대표는 원두와 흙을 공부했어요. 배양토는 흙을 발효시켜 만들거든요. 이렇게 쌓은 지식을 가지고 르완다를 찾아갑니다. 유기비료를 만들어 농가에 나눠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커피 농원은 대부분 농약을 쓰거든요. 소독도 해야 하고요. 그러다 보면 점점 흙이 단단해져요. 풍족했던 토양이 점점 빈약해지죠. 그래서 르완다에서 요즘 흙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
어떻게 하면 ‘커피’를 매개로, 사람과 자연을 풍요롭게 할까. 사카오 대표는 거듭 자문합니다. 지금까지 찾아낸 답은 질(quality), 환대(Hospitality),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이 세 가지가 오니버스 중심축이에요. 그냥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아니라, 손님이 마음 편한 공간이 되고 싶거든요.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출근하기 싫다’던 마음이 살짝 ‘오늘도 열심히 살아봐야겠다’고 바뀔 수 있는. 그런데 이 환대도 결국, 커피가 지속 가능 해야 존재하는 법이거든요.”
원두 생산 국가를 주기적으로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 관계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간의 인연이니까요. 오래 전 그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20대에 떠났던 배낭여행지에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현지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장기간 전쟁 국가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난 아이들.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아이들. 운명처럼 빈곤을 짊어진 아이들과 조우했죠.
“그때 생각했어요. 저는 어쩌다 운 좋게 선진국에서 태어나, 풍족하게 살아왔잖아요. 언젠가 일을 하게 된다면 이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해야겠다, 그게 저의 역할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막연했지만요.”
그래서 그가 정의하는 스페셜티 커피가 따로 있습니다.
“나의 커피 소비가,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는 문화. 제가 생각하는 스페셜티 커피란 그런 거예요. 이 기본이 지켜지면 맛은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키우는 사람이 건강해야, 원두를 건강히 키울테니까요. 그럼 그 커피를 파는 직원의 서비스도 자연스레 갖춰지기 마련이죠.”

Chapter 5.
마치며 : 밸런스가 커피 비즈니스를 좌우한다
사카오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었어요. ‘현장’과 ‘본질’이었죠.
“투명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커피를 만들어 나갈 때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현지에 가는 거거든요. 현장에 가야 하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과도 같은 맥락이에요.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죠. 그 기준점은 ‘본질’입니다. 맛있는 커피의 본질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찾는 중이에요.”
커피 한 잔으로 인생이 바뀐 사카오 대표. 이제 그가 만드는 커피 한 잔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 맛있는 한 잔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혹은 자연이 희생되고 있다면? 만약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환경이 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오니버스를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커피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각 산지에선, 열대림이 벌채되고 있어요. 항상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실천하고 싶어요.”


롱블랙 프렌즈 B
오니버스는 커피 한 잔으로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사람을 잇는 중입니다. 올해 4월엔 태국과 대만에 둥지를 틀었어요. 오니버스 커피를, 한국에서도 맛볼 날이 올까요?
오늘 오니버스 이야기, 요약해 볼게요.
1. 오니버스는 2012년 도쿄에 처음 문을 엽니다. 핸드드립 커피와 함께, 매일 다른 인사말을 건네는 환대로 도쿄 카페 신을 바꾸었다는 평을 듣습니다.
2. 오니버스는 포트투갈어로 ‘모두를 위한 버스’라는 뜻입니다. 사카오 대표는 오니버스가, 손님과 직원이 인생의 한순간을 공유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장소가 되길 바라죠.
3. 오니버스는 지점 마다 공간 분위기가 달라요. 구옥을 개조한 나카메구로는 고즈넉합니다. 직장인으로 붐비는 도겐자카점은 시크한 분위기의 스탠딩 바예요.
4. 오니버스는 현지 농가와 공정한 가격에 원두를 거래합니다.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배양토나 비누를 만들기도 하죠.
5. 누군가의 커피 소비가, 다른 누군가와 환경을 착취하지 않는 문화. 오니버스가 정의하는 스페셜티 커피 문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