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스포츠 : 연 8000억 매출의 50년 아웃도어 브랜드, 오리진을 말하다

이 노트는 코오롱스포츠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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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프렌즈 K 

C가 전시를 하나 추천해 줬어요. 제가 좋아할 거라면서요. 제목은 에버그린 에너지Evergreen Energy. 에버그린, 제가 좋아하는 단어예요. 냉큼 용산 레이어20 스튜디오를 찾아갔죠.

용산 원효로, 베이지색 벽돌의 6층 건물. 과연 전시장인가, 싶게 낡은 건물이에요. 그런데 1층의 검은 암막을 젖히고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갑자기 울창한 숲이 펼쳐져요. 쭉쭉 뻗은 전나무들 사이로, 흙과 나무껍질로 뒤덮인 오솔길이 펼쳐져요. 나뭇잎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어디선가 안개가 피어올랐죠. 피톤치드 향이 훅 밀려들었고요. 어느 새벽녘, 깊은 숲에 들어온 것 같아요. 이 기획… 뭐죠? 

전시의 주인공, 코오롱스포츠예요. 맞아요, 익숙한 그 아웃도어 브랜드입니다. 50주년을 맞아 7개월 동안 이 전시를 준비했다더군요.

올해는 여러모로 코오롱스포츠에 특별한 한 해라고 합니다. 브랜드 연 매출이 8000억원(글로벌 포함)을 돌파할 걸로 보인대요. 역대 최고치인데다 지난해(6000억원)보다 133%가량 오른 수치입니다. 내년은 1조원 매출을 노리고 있고요. 

코오롱스포츠가 그 정도였나요. 그런데 5년 전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해요. 반대로 위기의식이 강했다는 겁니다. 2018년만 해도 연 매출이 4200억원이던 이 브랜드, 불과 5년 사이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반전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죠. 한경애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하 코오롱FnC) 부사장과 브랜드의 상품·마케팅 전략가들을 만났습니다.

Chapter 1.
질문 : 아웃도어의 오리진은 무엇인가

코오롱,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코리아 나일론Korea Nylon’에서 앞뒤 글자를 딴 단어예요. 맞습니다. 코오롱은 원래 나일론을 만들던 회사였어요. 코오롱스포츠는 그 회사의 기술을 상징하는, 국내 최초의 아웃도어 브랜드였죠. 1973년에 탄생했어요. 

한국 최초의 나일론 아웃도어 재킷(1973년), 최초의 등산용 백팩(1975년), 최초의 다운재킷(1978년)을 모두 코오롱스포츠가 만들었습니다. 인명 구조를 목적으로 한 등산 재킷(라이프텍Lifetech, 2006년)을 만든 것도 코오롱스포츠가 처음이었죠.

아웃도어 패션 시장이 끓어오르던 때가 있었어요. 2000년 불과 2000억원 규모이던 시장은 6년 만에 5배 성장합니다. 업계 선두 그룹이던 코오롱스포츠, 2013년 매출액이 6800억원을 찍을 정도로 몸집을 불렸어요.

산이 높으면 골이 깊던가요. 등산복 브랜드의 고전이 시작됩니다. ‘아저씨 옷’이라 불리기 시작했어요. 2014년 7조원까지 커진 아웃도어 시장, 2018년 2조원 규모로 줄어듭니다. 2019년, 코오롱스포츠는 위기감 속에 총괄을 교체합니다. 한경애 부사장*으로요.
*2005년 코오롱FnC에 합류해 지속가능성과 로컬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시리즈Series와 래코드RE:CODE, 에피그램epigram 브랜드를 디렉팅했다.

한경애 부사장,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경험을 떠올렸어요. 2주 간 이어진 여행 내내 생각했대요. ‘아웃도어의 오리진Origin은 뭘까.’

“순례에 오른 여행객은 모두 저처럼 배낭 하나만 메고 있었어요. 옷을 여러 벌 챙길 수 없으니, 한 벌의 옷으로 나를 지켜야 했죠. 이 옷이 나를 얼마나 잘 지켜주는가, 그게 생명과 연결되는 거예요. 그때 알았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옷.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 그게 아웃도어 패션의 본질인 거예요.”
_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다양한 자연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 이 정의는 코오롱스포츠 리브랜딩의 방향타가 됐습니다. 보통 리브랜딩을 할 땐 타깃 고객을 재정의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코오롱스포츠는 세대를 초월한 브랜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대요.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가 올드old했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젊은 브랜드가 돼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죠. 아웃도어는 ‘에이지리스age-less’ 브랜드가 돼야 하거든요. 본질에 집중하면 트렌드도, 고객 연령대도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_양선미 코오롱스포츠 기획팀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코오롱스포츠는 대한민국 최초 아웃도어 브랜드로, 2023년 50주년을 맞았다. 나일론 재킷을 시작으로 등산, 낚시 등 아웃도어 활동에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왔다. 사진은 50주년 전시에서 코오롱스포츠가 공개한 아카이브의 일부. ⓒ코오롱스포츠

Chapter 2.
해답 : 자연으로 가는 길엔, ‘나이’가 없다

자연과 인간. 브랜드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 코오롱스포츠. 리브랜딩을 앞두고 ‘자연’의 사전적 정의부터 확인했어요.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존재하는 것.’ 그리고 브랜드의 미션을 정립합니다. “자연으로 가는 일을 돕는다.” 

2019년 리브랜딩을 결심하며, 코오롱스포츠는 두 가지 변화를 꾀합니다. 조직 문화 혁신과 시그니처 상품 개발. 

먼저 주목한 건 사람이에요. 리브랜딩을 이끌 이들을 모았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얼마나 적극적인가, 이게 핵심이었죠. 상품 기획은 물론, 기술 개발과 마케팅의 방향도 바꿔야 했으니까요.

“브랜드 리뉴얼엔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단호하게 결론내고 빠르게 변화를 실행해야 하죠. 변화가 시장에 천천히 전달되면 실패합니다. 짧은 시간에 각인될 강한 변화를 일으켜야 해요. 리브랜딩의 방향성에 공감하고, 빠르게 실행할 팀이 필요했습니다.”
_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상품 전략도 바꿨습니다. 대표적으로 ‘꽃무늬 티셔츠’를 앞에 내세우지 않기로 해요. 매년 수천 장씩 팔리며 매출을 견인하던 제품이었죠. 하지만 이런 제품이 늘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고 느꼈대요. 

“코오롱스포츠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아니에요. 자연으로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여기에 집중한 상품을 내야 했어요. 그래야 지속 가능한 브랜드가 된다고 봤어요.”
_김정훈 코오롱FnC 상무(디지털마케팅실 총괄), 롱블랙 인터뷰에서

2019년 겨울엔 주요 의류 라인의 신상품을 내지 않았어요. 다운 재킷 ‘안타티카Antarctica*’가 대표적입니다. 브랜드에서 가장 우수한 보온력을 자랑하는, 시그니처 라인이죠.
*남극 대륙을 뜻하는 영어 단어. 코오롱스포츠는 1988년부터 남극 연구원을 위해 보온 재킷을 개발해 왔다. 이 제품을 2012년 대중을 상대로 출시한 게 안타티카 라인이다.

핵심 라인의 신상품이 나오지 않는 것. 판매점엔 청천벽력이었죠. 영업 담당자도 반발했대요. 하지만 기획팀은 밀어붙였어요. “1년간 기다려달라. 완성도 높은 제품을 내놓겠다”면서요. 트렌드에 골몰하기보다, 아웃도어 활동가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묻기 시작했어요. 직원들은 브랜드 옷을 입고, 직접 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전체 제품 가짓수도 줄였어요. 

“패션계는 관행적으로 옷을 너무 많이 만듭니다. 진짜 잘 팔릴 옷이 뭔지는 사실 모두 알거든요. 주력 제품을 돋보이게 하려고, 좀 덜 돋보이는 옷을 함께 만들죠. 안 팔릴 옷을 만드는 건 환경을 해치는 일이잖아요. 이걸 없애기로 했어요. 꼭 팔릴 옷만 만들자고 했죠.”
_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2019년부터 코오롱스포츠 총괄을 맡았다. 그는 “브랜드 리뉴얼엔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각인될 강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롱블랙

Chapter 3.
R&D : 아웃도어에는 ‘걸작’이 필요하다  

본질에 대한 집중. 기술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코오롱은 합성섬유 기술로 출발한 브랜드잖아요. 차원이 다른 기술력을 보여주기로 합니다.

2020년 하반기, 2년 만에 공개된 안타티카. 방수 기능이 있는 고어텍스로 겉을 감싸고, 부피를 줄이면서 보온력을 높이기 위해 박스월 공법*을 썼어요. 안감은 기존 소재보다 19% 더 따뜻한 그라핀 코팅 소재를 사용했고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출시된 3만 장이 2개월 만에 완판!
*옷의 안감과 겉감을 맞붙였을 때 생긴 공간에 오리털, 거위털 같은 충전재를 넣는 방법 

트렌드를 위한 기술은 개발하지 않는다

고객 눈에 들기 위한 R&D 원칙은 한 가지. 공을 들일 수 있는 만큼 연구하는 것이었어요. 기획팀은 서멀 마네킹Thermal Manikin* 테스트, 20~30명 인원을 대상으로 보온력 테스트를 했어요. 피험자들은 저온 실험실에서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전율감과 한서감을 체크했죠. 옷 무게와 지퍼 위치까지 바꿔가며 옷의 보온력을 점검했습니다.
*옷의 보온성을 재기 위한 인체 모형

“1년 내내 시간과 싸웠어요. 수백 개의 조건을 실험하면서 안타티카를 완성했죠. 그랬더니 출시할 때 두렵지 않더군요. 준비가 돼있었으니까요.”
_양선미 코오롱스포츠 기획팀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궁금해집니다. 사실 다운재킷을 입고 남극 갈 일은 거의 없잖아요. 대부분 가볍게 산을 오르는 정도죠. 이 정도의 R&D가 과연 필요할까요? 

R&D 총괄 김정훈 코오롱FnC 상무는 “그럼에도 적정 기술과 원천 기술은 다르다”고 말하더군요. 적정 기술은 지금 딱 팔리기 좋은 상품을 위해 기존 기술을 조합하는 것이죠. 원천 기술은 소재의 근본을 파고들어요. 가장 앞선 미래 기술을 선점하는 싸움이죠.

2021년 코오롱스포츠는 별도 R&D팀을 만들었습니다. 연구실은 역삼동 본사 옆 빌딩 지하에 마련했죠. 이곳에선 산 뿐 아니라 악천후의 바다까지 견딜 수 있는 의류, 보온성을 넘어 초경량으로 휴대성까지 높인 옷을 개발하고 있어요.

“R&D팀은 트렌드, 세련됨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지 않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마스터피스(걸작)를 만드는 것이에요. 수목한계선*을 넘어선 환경에서 체온을 조절해 주는 옷, 100g을 덜기 위해 고민하는 백패커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죠.”
_김정훈 코오롱FnC 상무, 롱블랙 인터뷰에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경계선

좋은 기술은 더 지속 가능한 옷을 만드는 데도 필요합니다. 2022년 코오롱스포츠는 ‘모노 머티리얼Mono Material’ 기술을 구현합니다. 옷 한 벌을 단 하나의 소재로 만드는 거예요. 안감과 단추, 지퍼와 마감재 모두를 나일론으로 통일했죠. 고도의 나일론 가공 기술 덕에 가능했어요. 

왜 하나의 소재만 쓰냐고요? 의류 재활용 때문입니다. 보통 옷에는 다양한 소재가 섞여 있잖아요. 100% 재활용할 수 없어요. 옷이 버려질 일 없게 만드는 것. 버려지는 소재로 옷을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인 셈이에요.

코오롱스포츠가 50주년 전시에서 하나의 소재만으로 옷을 만드는 기술 ‘모노 머티리얼’을 단계별로 소개한 공간. ⓒ코오롱스포츠

Chapter 4.
충돌 : 이질적인 장면이 부딪쳐야, 고객이 눈길을 둔다

리브랜딩이 제품과 기술만으로 완성되진 않죠. 새로운 브랜드를 알릴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코오롱스포츠가 공간 마케팅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2019년 10월, 청계산 입구에 ‘솟솟618’이 문을 엽니다. 솟솟. 코오롱스포츠의 상록수 로고를 한글로 형상화한 애칭이죠. 솟솟618은 자그마한 카페 겸 등산용품 전문점입니다. 철제로 마감한 외관은 모던하고, 자연석과 원목으로 마감한 실내는 따뜻한 분위기죠. 바닥엔 조약돌이 깔려있고요. 주변 두부집과 오리고기 가게 사이에, 이질적인 공간이었어요. 젊은 등산객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등산용품을 빌리곤 합니다.

2019년 11월 낙원상가 앞에 들어선 ‘솟솟상회’는 어떤가요? 리셀 제품을 팔고, 1973년부터 제작해 온 브랜드 광고를 틀었어요. 매장 내부는 재활용 자재로 채웠고요. 2021년 8월 문을 닫았지만, 그전까지 MZ 하이커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청계산 입구와 낙원상가. 모두 젊은 세대가 가장 좋아할 위치는 아니죠. 힙한 매장을 왜 이런 곳에 들였을까요. 

“충돌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질적인 건 눈길이 가잖아요. 낙원상가는 지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곳이죠. 젊은이의 거리인 익선동, 어르신들이 계시는 탑골공원 사이에 있잖아요. 이런 충돌 사이에서 다소 생경한 광경을 연출하는 것. 그게 코오롱스포츠에 필요한 새로움이었어요.”
_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청계산 입구에 위치한 솟솟 618. 주변 상권과 충돌하는 인테리어로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코오롱스포츠

충돌은 광고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충돌의 철학은 리브랜딩 직후 광고에서도 돋보입니다. 기억하시나요? 한겨울의 아이슬란드. 배우 김혜자 씨가 오로라를 보고 있어요. 마지막 카피가 가슴을 쳤죠. “나를 믿고 걸어갑니다.”

지금 돌아보면 과감한 결정이었어요. 올드함을 버리려고 리브랜딩을 단행했잖아요. 그런데 젊은 모델을 채용하던 업계 관행을 버렸죠. 김혜자 씨를 캐스팅할 때 한 부사장은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떠올렸다고 해요. 드라마 속 김혜자 씨는 “오로라는 에러야. 하지만 에러도 아름다울 수 있어. 나는 오로라를 만나는 순간에 막 울 것 같아”라고 말했죠.

“젊어 보이려고 노력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쌓은 시간이 그냥 쌓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모델이 김혜자 선생님이었어요. ‘나를 믿고 걸어간다’는 카피는, 회사 구성원과 고객 모두에게 코오롱스포츠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였고요.”
_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Chapter 5.
50주년 : 팔려고 하지 말고, 감각하게 하자 

본질을 찾고 나면, 다음은 무엇일까요.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본질을 느끼게 하는 거죠. 이번 50주년 전시가 대표적입니다. 역사의 기록을 풀 것, 하지만 설명하지 않을 것. 그렇게 ‘에버그린 에너지’라는 제목의 전시가 탄생했죠. ‘한결같다’는 에버그린의 뜻처럼, 무한히 지속될 힘을 떠올리며 전시명을 지었습니다.

50년을 이어온 브랜드. 자료는 차고 넘쳤다고 해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제품만 800여 개가 모일 정도였죠. 김정훈 상무와 남지원 코오롱스포츠 마케팅 파트리더는 꼬박 3개월 동안 대회의실에서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대요.

“추려내고 추려내도 자료가 너무 많았어요. 이 자료를 다 전달하면 안 되겠구나, 이러다 학습 공간이 되겠구나, 싶었어요. 억지로 학습을 시키거나, 시즌 상품을 팔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저 전시장을 나설 때 ‘상록수’ 로고가 기억났으면 했어요.”
_남지원 코오롱스포츠 마케팅 파트리더, 롱블랙 인터뷰에서

학습보다 감각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다 용산의 레이어20 스튜디오를 발견했죠. 1층의 천정 높이가 다른 건물의 두 배가 넘었죠. 이 층고를 보며 반전을 떠올렸대요. 도심 재개발 지역의 낡은 건물 안에서 숲의 장관이 펼쳐지는 반전 말이에요.

1층이 브랜드를 느끼는 공간이라면, 2층은 브랜드를 이해하는 공간이었죠. 상록수 로고를 형상화한 ‘솟솟터널’을 만들었습니다. 여섯 갈래로 뻗은 가지는 각각 브랜드 역사를 보여주는 방이 됐어요. 1973년에 출시된 나일론 재킷을 만져보고, 역대 로고 와펜wappen을 구경하다 두 개를 골라 가져갈 수도 있었죠.

“공부가 아니라 체험을 하는 공간이 되길 바랐습니다. 요즘 잘 팔리는 제품이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제품들을 보여줬고요.”
_남지원 코오롱스포츠 마케팅 파트리더, 롱블랙 인터뷰에서

전시 굿즈 역시 본질에 집중해 만들었어요. 코오롱이 만든 섬유 ‘아라미드Aramid’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질긴 신발끈 ‘헤라클레이스’로 채운 생존 키트. 나무가 아닌 돌가루로 만들어 방수 기능이 있는 노트. 모두 유행보다 실제 산에 오를 때 챙길 법한 아이템입니다. 

코오롱스포츠에서 만든 세상에서 가장 질긴 신발끈, ‘헤라클레이스’를 사용한 하이킹슈즈 ‘보이져’. 헤라클레이스는 아라미드라는 자체 개발 섬유를 활용했다. ⓒ코오롱스포츠

Chapter 6.
에버그린 : 작은 울림의 반복은, 뚝심이 된다 

사실 코오롱스포츠, 하나의 패션 브랜드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사회적 메시지에 집중하는 걸까요? 

“옷이란 건 결국 사람들의 생활 속에 있는 거잖아요. 패션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생명력을 잃습니다. 끊임없이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바라봐야 하죠.”
_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그렇다면 한발 앞서 사회 변화를 읽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요?

“늘 관찰합니다. 시장 조사를 위해 해외를 나가잖아요. 뉴욕, 도쿄, 런던… 저는 패션 매장만 구경하지 않아요. 이 도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봅니다. 커피 대신 블렌딩 티를 마시는 모습, 전기차를 타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죠.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_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코오롱스포츠에도 ‘지속가능성’은 큰 화두예요. 새로운 매장을 낼 때 버릴 자재를 만들지 않습니다. 문 닫는 매장에서 자재를 떼어내 다시 조립하죠. 가벽을 만들지 않으려 가구에 옷을 진열하기도 해요. 2022년 제주 탑동에 문을 연 솟솟리버스. 바다에서 건진 폐스티로폼과 부표를 진열대로 쓰고 있어요.

자재를 재활용한 매장,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듭니다. 팀원들조차 가끔은 “비용이 걱정된다”며 반대한다고 해요.

“인식이 바뀌어야 해요. 돈을 아끼려고 재활용하는 게 아니에요. 환경을 지키려고 재활용하는 겁니다. 환경을 지키는 일에는 원래 돈이 듭니다. 돈을 써서라도 환경을 지켜야죠. 멋진 옷만으로는 오래가는 브랜드가 될 수 없어요. 신뢰를 줘야 오래가는 브랜드가 됩니다.”
_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한 부사장은 이런 행보를 ‘울림을 쌓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한 강연에서 저희 친환경 활동 때문에 사업을 시작한 분을 만났어요. 버려진 잠수복으로 가방을 만드는 분이었죠. 우리 브랜드의 ‘모노 머티리얼’ 정책을 보고 사업을 착안했다고 하시더군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는 게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원칙을 더 많이 알리고 있습니다.”
_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코오롱스포츠의 다음 목표는 뭘까요. 다음 50년, 그러니까 ‘100년 브랜드’를 위한 오리진을 찾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목적에 따른 기능성 제품군을 늘리고 있어요. 트레일 러닝*과 초경량 백패킹 라인, 낚시에 필요한 옷과 장비를 만드는 브랜드(웨더몬스터)가 그 주인공이죠.
*trail running. 산악 달리기. 

“자연에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과거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브랜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자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자연이 없으면 아웃도어 옷도 필요가 없으니까요. 더 많은 이들이 아웃도어를 즐길 수 있으려면, 결국 자연을 보호해야 하죠.”
_김정훈 코오롱FnC 상무, 롱블랙 인터뷰에서

멋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적 실익이 채워지지 않으면 어떨까요. 브랜드를 지속할 수 없겠죠. 이 물음에 한 부사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늘 시험대 위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목한 화두가 정말 미래 지향적인지 시험받고 있죠. 분명한 건, 방향성이 맞으면 반드시 비즈니스가 됩니다. 사회 변화를 읽고, 계속 그 방향으로 가면 언젠가 이익으로 돌아옵니다.”
_한경애 코오롱FnC 부사장, 롱블랙 인터뷰에서

코오롱스포츠는 상록수를 형상화한 로고를 1974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50주년을 맞이한 이들은 이제 자연을 보호한다는 목표로, 100년 브랜드를 바라보겠다고 했다. ⓒ코오롱스포츠


롱블랙 프렌즈 K

자연이 있어야 아웃도어 패션이 있다. 왜 코오롱스포츠가 오리진을 파고든다고 했는지, 이제 좀 이해가 됩니다. 오늘은 제 마음에 남은 문장들로 노트를 정리해 볼게요. 

1. 아웃도어는 ‘에이지리스age-less’가 돼야 한다. 본질에 집중하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2. 브랜드 리뉴얼엔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단호하게 결론내고, 변화를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3. 최고의 기술은 꼭 극한의 자연에서만 필요하지 않다. 일상에서도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
4. 멋진 옷만으로는 오래가는 브랜드가 될 수 없다. 신뢰를 줘야 오래가는 브랜드가 된다.
5. 늘 시험대 위에 오르는 게 비즈니스다. 단, 방향이 맞으면 언젠가 이익이 생길 수 있다. 

롱블랙 피플, 코오롱스포츠의 이야기 어떻게 읽으셨어요?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다면, 슬랙 커뮤니티에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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