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롱블랙 프렌즈 C
얼마 전 제 시선을 잡아끄는 책을 서점에서 발견했어요.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 어? 창의성은 AI 시대에 우리가 꼭 갖춰야 하는 역량 아니었나요? 그런데 이게 ‘집착’이라고…?
책을 펼쳐 보니, 이런 주장이 보였어요.
“우리는 아무런 비판 없이 신비에 가까운 힘을 창의성이라는 숭배의 대상에 부여하면서 우리의 모든 욕망과 불안을 그 대상에 투영한다. (...) 창의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매우 놀랍다.”_13p
책의 저자는 미국 출신의 문화사 연구자 새뮤얼 W. 프랭클린Samuel W. Franklin.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에서 인문학적 사고법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는 “창의성에 대한 통념을 뒤집어 보자”며 이 책을 썼어요. 이런 주장을 펼친 이유, 뭘까요?
Chapter 1.
창의성은 주목받은지 100년도 되지 않았다
‘창의성’이 어떻게 정의됐는지를 먼저 짚어 볼게요. 표준대국어사전은 창의성을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이라고 소개해요. 영어 단어인 creativity의 뜻도 비슷해요. ‘뭔가를 창조하기 위해 상상력이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하죠.
*the use of imagination or original ideas to create something. 옥스퍼드 영영사전의 정의다.
좋은 뜻이죠? 하지만 저자는 이 창의성이 사회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쓰인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어느 분야에 있는 누구나 갖춰야 하는 ‘숭배의 대상*’이 됐다고 꼬집었죠.
*2023년 저자가 미국에서 책을 출간할 당시 원제는 『The cult of creativity창의성의 숭배』였다.
“위대한 천재들의 걸작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3학년생들의 일상적인 행동도 창의성에 포함될 수 있다. (...)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이렇게 때로는 상충되는 의미들이 한 텍스트 안에서도 나란히 등장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_13p
저자가 창의성의 역할이 너무 커졌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있어요. 200년 전만 해도 창의성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었거든요. 심지어 고대에는 단어 ‘creative창의적인’가 신을 설명할 때 주로 쓰였다고 해요. 당시 예술가도 신의 뜻을 받아 적는 존재로 여겨졌죠.
“1950년경 이전에는 창의성이라는 주제를 명시적으로 다룬 기사, 책, 에세이, 논문, 시, 강의, 백과사전 항목 등은 전무했다. (...) 흔히 사람들은 창의성이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창의성은 ‘철학적 또는 역사적 배경이 빈약한’ 말이다.”_15p
창의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50년대. 20세기 중반이에요. 저자는 그 이유를 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기에서 찾아요. 양쪽이 우주 기술 경쟁을 벌인 게 계기였어요. 전에 없던 걸 개발하려다 보니,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죠.
요약하면 ‘창의성은 주목받은지 100년도 안 된 가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럼 궁금해져요. 창의성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의 필수 능력으로 자리 잡은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