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밭 : 감자를 지키려고 만든 빵, 춘천에 150개 일자리가 생겼다


후배들을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사회에 막 나온 10여년 전만 해도 이 정도로 팍팍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취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집값은 너무 뛰었습니다. 아무리 알뜰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게 서울살이입니다. 

최근에 춘천 감자밭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부 농부가 운영하는 카페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예쁜 정원으로 소문났다가, 나중엔 감자빵으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빵 판매까지 합쳐 연매출이 200억원, 직원이 15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것이 불과 3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란 겁니다.

궁금해져서 만났습니다. 모든 20대가 당연하다는 듯 도시살이를 선택하는 지금, 이 부부는 왜 지역을 택했을까요. 감자밭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밭BATT’의 이미소·최동녘 대표를 만나 물었습니다. 



이미소·최동녘 밭BATT 대표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서울 성수동의 사무실과 경기 의왕시 타임빌라스의 카페 ‘더 밭’에서였습니다.

한국 나이로 이제 서른 셋이 된 동갑내기 부부는, 참 닮은 구석이 많았습니다. 두 사람 다 경상도 출신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강원도에서 자랐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도 둘 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아버지로 꼽는 게 같았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해맑지, 싶게 함박 웃음을 터뜨리곤 했습니다.

부부의 이야기를 듣자니, 이들의 성공은 3년 사이에 이뤄진 게 아니더군요. 그것은 이들이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들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Chapter 1.
이미소 : 기업가 정신을 아버지에게 배웠다

저 이미소를 설명하려면 아버지 얘기부터 해야 합니다. 저는 스스로 다이아수저라고 불러요. 제가 사업가가 된 건 아버지의 교육 덕분이에요.

아버지는 거창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의 다섯 남매 중 막내 고모를 빼면 모두 초등학교만 졸업할 정도로 가난했대요. 아버지는 중학교를 졸업하셨어요. 소아마비를 앓으셨기 때문에 중학교 학비가 면제됐다고 해요.

부모님은 춘천에서 여러 자영업을 전전하셨어요. 시골 금은방부터 포장마차, 두부식당, 닭갈비식당… 

형편이 넉넉했던 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땐 방에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서 패딩을 껴입고 잤어요. 장사가 신통치 않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투자가 결정적이었어요. 아버지는 수천만원씩 목돈이 모일 때마다 회사들에 투자하셨어요. 지금 용어로는 엔젤 투자angel investment*죠. 신발 끈 만드는 회사, 게임 회사, 가스 안전용품 회사… 그리고 마지막에 투자한 회사가 감자 종자 개발 회사였어요.
*개인 투자자가 벤처 기업에 자금을 대고 대가로 주식을 받는 초기 투자 형태

그러니까 아버지는 기업가 정신으로 가득찬 분이었습니다. 어린 제게 데일 카네기의 『행복론』, 『인간관계론』을 읽게 하셨죠. 열여덟살 때,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다가 뛰어갔어요. “아빠! 여기 나오는 부자 아빠가 바로 아빠야!” 거기 적힌 부자 아빠의 철학이 아버지가 늘 제게 들려주신 말씀 그대로였거든요.

아버지는 늘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어요. “네가 가진 가장 값진 건 시간이다. 돈보다 시간이 훨씬 중요하다. 시도를 해 보고 안 되면 빨리 접어라. 그래야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다.”

자기다움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한번은 제가 노란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들어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