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히 : 손님과의 케미스트리로, ‘스강신청’ 오마카세 집이 되다


롱블랙 프렌즈 K 

얼마 전에 C와 스시 오마카세에 다녀왔어요. 사실 저는 오마카세를 그리 즐기지 않아요. 비싸고 너무 격을 차리는 느낌이라서요. 그래서 거절했는데, C가 “1년 만에 9만명을 뚫고 예약 성공한 곳이니 안 가면 바보”라는 거 있죠.

C의 손에 끌려 들어간 아루히ある日. 제 걱정과 달리 유쾌한 분위기였습니다. 가격도 디너 오마카세 3만8000원. 10만원이 당연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저렴했어요. 충격적인 건 가격뿐 아니었습니다. 셰프님이 ‘떴다 떴다 비행기’ 노래에 맞춰 우니 마끼를 건네주시고, 옆에서 한 손님은 춤을 추고, 퇴장할 땐 에버랜드 테마송이 나왔어요.




김락근 인스턴트펑크 대표 

‘스강신청’이란 말을 아시나요? ‘스시’에 ‘수강신청’을 붙여 만든 합성어입니다. 대학교의 수강신청만큼 예약이 힘든 스시집이란 뜻이에요. ‘스강신청’의 시초가 바로 여의도 아루히입니다.

내궁, 바비정, 40만 미식 유튜브 ‘비밀이야’… 내로라하는 F&B 전문가들이 찾아와요. 여의도 직장인이나 주민들은 아루히에게 “여의도의 축복”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죠.

오염수 방류, 급증한 일본 여행 등의 이유로 많은 오마카세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아루히 예약 경쟁률은 여전히 9만명 대 1. 비결은 가격과 맛 이전에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스시 집에서 무슨 말이냐고요? 아루히의 이용, 이미연 대표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Chapter 1.
춤추고 노래 부르는 오마카세

아루히는 예약부터 색다른 경험입니다. 한 달에 두 번 캐치테이블로 열리는 예약창은 2초컷. 예약에 성공하면 ‘98,139명을 뚫고 예약을 성공했어요!’라는 멘트가 뜨죠.

자, 예약에 성공했으니 아루히에 찾아가봅시다. 여의도역 5번 출구로 나와 1분 거리에 있는 오래된 종합상가로 들어갑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아루히와 아루히 니와로 구분된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캐치테이블로 예약한 손님은 아루히 니와*에서 오마카세를 즐기게 됩니다.
*아루히는 본관, 아루히 니와는 별관의 개념이다. 현재 아루히 본관은 대관 형식으로만 운영 중이며, 2023년 12월 영업을 재개할 예정이다

아루히에 입장하면 차분한 가요가 흐릅니다. 어제 본 이웃처럼 반갑게 인사해주는 직원의 안내로 자리에 앉습니다. 2인 1병 필수 주문인 사케는 5만원대부터 10만원대까지 종류가 다양하죠.

초밥이 나오기 시작해요. 처음엔 유자페스트를 뿌린 광어, 찐 전복, 참돔초밥 등 무난한 메뉴가 등장하죠. 그러다 브란지노* 초밥, 금태** 초밥처럼 3만8000원이라는 가격이 무색한 초밥이 상에 올라요.
*지중해에 번성하는 흰살 생선. 흔히 유럽 농어라고 불린다.
**눈볼대의 경상도 사투리. 지방이 많아 고소한 풍미를 내며, 생선의 황태자라고 불린다.

초밥만 차분히 먹는 게 아닙니다. 중간중간 포토 타임이 있어요. 셰프가 다가와 접시를 내밉니다. 생참치 속살과 뱃살이 꽃모양으로 담겨 있죠. 사케병 입구에 꽂은 마끼, 편백 판 위를 수놓은 우니 등. 중간중간 만들어주는 사진 찍을 요소들이에요.

이번엔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생일 축하 노래가 나와요. 손님 중 한 분의 생일이라고 합니다. 셰프는 손님에게 케이크 모양 후토마끼를 건네고, 다른 손님들은 박수 치며 노래를 불러요.

분위기가 무르익자 코요테의 ‘순정’, 이정현의 ‘와’ 같은 90년대 테크니컬 가요가 흘러나와요. 16석 가게 안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지죠. 코스가 끝나고 퇴장할 시간이 되자, 이번엔 에버랜드 테마송이 나와요. 셰프와 손님들은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혼자 스시 먹으러 왔다가, 친구가 돼 퇴장합니다.

오마카세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인 포토타임. 아루히는 맛뿐 아니라 볼거리도 챙긴다. 사케병 입구에 꽂은 마끼의 모습. ⓒ아루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