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영 : 내 공부가 어디로 향하는지 직시해야 합니다


요 며칠 제 마음에 박힌 말이 하나 있어요. 

“그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겁니다. 그 문제가 쉬웠다면 내가 필요 없습니다.”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이 한 유튜브 프로그램에서 한 말입니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그를 멘토로 생각해본 적은 솔직히 없습니다. 그런데 저 말을 듣고 그가 달리 보였어요. 

한 분야의 프로페셔널이자, 선배 직업인으로서 좋은 레퍼런스를 들려줄 사람으로요. 롱블랙이 송 부사장을 만나 감각과 일, 공부에 대해 물었어요.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

어린 시절의 기억 중 하나는 청계천에서 해적판 레코드를 사 들었던 겁니다. 좋아하는 그룹이 앨범을 냈는데 한국에는 발매되지 않았거든요. 가사를 몰라서 발음이 들리는 대로 한글로 받아썼어요.

그때는 그러니까, 허기가 있었어요. 갖고 싶어도 정보가 없으니까. 가사 적힌 종이 한 쪼가리가 귀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요. 사람들이 계속 똑똑해지고 있어요. 당연히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일도 진화해요. 똑똑한 사람들이 새로 들어와서 그 위에 가치를 계속 쌓아 올리니까요. 그래서 일은, 원래 어려워지기 마련입니다. 마치 진화론 같은겁니다. 

내가 처음 시작한 일은 쉬울 수 있어요. 무주공산이니까. 하지만 곧, 아주 빠르게, 잘 되기 시작하는 순간 어려워집니다. 경쟁자가 많아질 테니까. 

어떻게 날을 벼리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Chapter 1.
데이터가 나를 삼켰다 

전 무조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라고 합니다. 평균적인 일은 A.I인공지능로 대체됩니다. 이젠 깊게 공부하고 수련한 사람만이 직업 세계에서 살아남아요. 

저는 데이터가 좋았습니다. 전산학을 전공했고 컴퓨터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주로 데이터를 보거나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전공까지 할 땐 일단 이게 좋아서 택했겠죠. 

데이터는 많아요. 바람도, 물도 다 데이터예요. 저는 그 중에서도 사람이 남긴 데이터에 끌렸어요. 사람의 마음을 읽고 해석하는 작업이 좋아요. 데이터가 저를 삼킨 겁니다. 저는 사람이 타고난 기질은 바꿀 수 없다고 믿습니다. ‘meant to be(~될 운명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저희 회사의 연구소장인 윤준태 박사님이 20년 전쯤 말했어요. “연구만 하고 싶다”고. ‘무슨 도인인가?’ 싶었죠. 지금은 그 뜻을 알아요. 예전에는 돈을 벌려고 일을 했다면 지금은 이 일을 잘하려고 돈을 벌어요. 성취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 자체가 좋습니다. 그런 일이 분명 여러분한테도 있을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시대 방향과 맞으면 더욱 좋아요. 그런데 그건 운이에요. 제가 이 일을 10년쯤 하고 있을 때 ‘빅데이터Big Data’라는 말이 나왔어요. 중요한 건 제가 ‘10년 뒤에 빅데이터 전문가 해야지’ 이러면서 데이터 연구를 하진 않았다는 거죠. 

그 기회의 순간이 오기는 올지, 얼마나 빨리 올지, 오더라도 그 수혜자가 나일지. 그건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다른 일에선 기회를 알 수 있나요? 더 화려하고, 쉽고, 멋진 일은 뭐가 있죠? 없어요. 그 어떤 것도.

“2016년에 했던 인터뷰 영상 중에 많은 분이 공감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약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10년간 고양이를 키우고 고양이 연구를 해보라, 10년 후 모든 사람이 고양이를 좋아하면 당신은 아마 대가가 되어 있을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고양이가 떴습니다. 제가 미처 몰랐던 것은 10년이 아니라 5년 만에도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몰입의 정도와 기세에 따라 내 일의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_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중에서

롱블랙과의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송길영 부사장 ⓒ롱블랙

Chapter 2.
언어가 없기 전부터 하는 일이 진짜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커리어의 터닝포인트turning point가 언제였나요?” 

2006년이었어요. 그런데 그때가 터닝포인트였다는 걸 당시엔 몰랐습니다. 2010년에 깨달았어요. ‘아, 나 그때 결정했었구나’.

2006년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2000년에 다음소프트에 입사해 쭉 해왔던 데이터 연구를 여전히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더 신나게 했어요. 지금 16년째 열고 있는 워크숍을 그때 처음 시작했고, 많은 학자들과 만났고, 많은 일을 벌였어요. 몰입하느라 몰랐는데, 그때 길이 정해졌던 겁니다.

그리고 나서 2010년 ‘빅데이터’라는 말이 생겼어요. 그때 제가 ‘발견’됩니다. 그저 내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었는데 비로소 대세가 된 거죠. “요즘 빅데이터가 유행이야, 누가 이 일을 하고 있지?”라고 물을 때, 진작부터 하고 있었던 제가 발견되는 거예요. 언어가 없기 전부터 하는 일이 진짜입니다. 

그렇게 발견되기 위해서라도 먼저 하고, 오래 해야 합니다. 남들이 ‘이게 좋아보인다, 유행이다’하는 것은 이미 경쟁이 무한대예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구글에 검색해 보세요. 비슷한 게 나오면 안하는 겁니다. 나는 다르니까요. 그리고 소중하니까요. 검색해서 나오는 걸 하면 카피캣이 돼요. 

제가 그랬습니다. ‘별이 저기에 있구나’하는 걸 알았어요. ‘저기에 뭔가 보물이 있고, 그게 사람들한테 굉장히 유용할 것이다. 이걸 탐구하는 일은 옳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그 가치가 언제 올 것인지, 얼마나 빠르게 오게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울 수 없었어요. 제 앞에 ‘앞선 사람’이 없었거든요. 이건 우리 연구팀이 처음 하는 일이었어요. 우리의 결과물이 현행화*의 맨 끝이었어요.
*시대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

굴을 파는데, 직선으로 판 게 아니에요. 굴을 이렇게 저렇게, 갈지자로 파면서 움직였어요. 그러니 오래 걸렸죠. 20년 걸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 위안일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제게는 필요했어요. 왜냐면 그렇게 안 했다면, 아류에 불과했을 거예요. 아류. 사이비는 비슷해 보이나 진짜가 아닌 것이죠. 탐색의 기회만큼 축적되는 무엇인가가 나와요.

“데이터에서 건져야 할 것은 인과관계입니다. 상관관계만으로는 미래를 바꿀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어떤 원인에서 나오는지를 알아야 시도해볼 텐데, 그렇지 않으면 점을 치듯 미래를 예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는 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지않을까요. 현재를 열심히 살면 좋은 미래가 만들어지므로 굳이 예측할 필요가 없겠죠.”
_송길영 <상상하지 말라>중에서.


Chapter 3.
송길영의 점핑 스테이지

점핑 스테이지Jumping stage 때 저는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강의실 뒷자리에서 배웠어요. 전산학이라는 지식만으로 사람의 흔적, 데이터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죠. 통찰력이 필요했어요.

대학교에 찾아가, 종교학·철학·사회학·심리학 교수를 만났어요. 분석하고 있는 데이터를 보여드리고 조언을 들었죠. 교수님들께서 추천하는 인문학 책을 읽고, 인문학 전공자를 직원으로 모셔오고요. 

제 동료들과 토론하면서 배웠어요. 그분들이 지치고 않고, 20년 동안 말해줬어요. “그게 아닙니다, 이게 맞아요”라고. 

창의성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토랜스E. Paul Torrance 교수는 창의성을 선명하게 정의합니다. 문제를 잘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에요.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고, 목표와의 균열이 뭔지 보는 겁니다.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 시도를 하고, 그 시도를 점검하고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게 창의성입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전구가 탁 켜지는 거? 네버never. 절대 그런 건 없습니다. 

힌트를 드린다면, 맨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답이 아닙니다. 그건 남들도 다 생각합니다. 처음 나온 것을 계속 조각해 나가는 겁니다. 조각해 나가는 과정, 그 지난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해요. 그러다 보면 날카롭게 벼려집니다.

‘코스트 다운’ 말고, ‘레비뉴 업’ 

지금 하는 일의 목적이 ‘코스트 다운Cost Down, 비용 및 원가 절감’인지 ‘레비뉴 업Revenue Up, 매출 증대’인지 구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처음 데이터 일을 할 땐, 저는 클라이언트 기업의 제품·서비스의 품질을 점검하는 일을 했어요. 사람들이 회사에 클레임을 걸고 화를 내잖아요? 그 데이터를 보는 겁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중한 일이긴 한데, 이런다고 기업 매출이 오르나? 기업은 ‘코스트 다운’ 보다 ‘레비뉴 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다음엔 뭘 팔까?’에 답을 주는 게 가치가 더 높은 거죠. 그래서 10년차 때쯤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바꿨어요. 주광성走光性 식물처럼 움직여야 해요. 햇빛을 따라 방향을 트는. 

‘코스트 다운’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나도 ‘코스트(비용)’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당신이 회사의 재고 관리 비용을 20%나 줄여줬어요. 그럼 회사가 이렇게 말해요. “다음엔 얼마나 줄일거야?” 5% 밖엔 못 줄여요. 이미 20% 줄였으니까. 3년째가 되면 1%밖엔 못 줄이죠. 그럼 이제 회사가 말해요. “누구세요?” 토사구팽이죠. 

“진정성authenticity의 어원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정성 있는 행동이란 내가 의도하고, 내가 행한 거예요. 

이를 업의 관점에서 풀어보면 주체성과 전문성이라는 두 가지 덕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느냐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갖춘 순간, 우리는 신뢰를 얻습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장인 또는 예술가라 부릅니다. 일의 주체가 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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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중에서

롱블랙 독자에게 남길 메시지를 적는 송길영 부사장 ⓒ롱블랙

Chapter 4.
트렌드만 좇다보면 조갈이 든다 

트렌드만 보다보면, 잘못하다가 조갈*이 듭니다. 자꾸 단 것을 먹으면 나중에 갈증이 커진다고 해요. 조심해야 합니다.  
*燥渴 : 입술이나 입 안, 목 따위가 타는 듯이 몹시 마름.

이런 겁니다. 작년에는 ‘빨간색’이 트렌드였어요. 올해는 다들 ‘파란색’을 사라고 합니다. 진짜 빨간색, 파란색인지보다, 왜 빨간색인지 물어야 합니다. 상대에게 “외롭니?” “힘드니?” “그럼 책이나 같이 읽을래?” 말을 거는 겁니다. 그럼 상대에게 굳이 빨간색을 줄 필요가 없어요. 현상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왜’를 바라봐야 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데이 클래스가 유행이잖아요? 케이크 만드는 거 일주일이면 배울 수 있대요. 바리스타도 넘쳐요. 공인중개사는 40만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험을 봅니다. 

이것도 다 공부라고 할 수 있어요. 정해져 있는 답을 효율적으로 내는 공부죠. 계속 뭔가를 시도하고 있다는 위안, 안도감도 얻을 수 있겠죠. 

지금 직장인들이 ‘내 공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한번 용감하게 직시해 봤으면 합니다. 이왕 공부를 한다면 ‘내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해요. 평가 받는 공부, 10대 1을 뚫었다, 하는 공부 말고요. 만약 마케터라면 경제학자 앨빈 로스Alvin Roth 교수의 저서 ‘매칭Matching’을 읽어보는 겁니다. 

내 안이 차오르는 공부를 하면, 그 공부의 중심이 나한테 있게 됩니다. 공부 자체가 즐거우면 삶이 아름다워져요. 진리에 대한 탐구, 거기서 느껴지는 만족감이 정말 큽니다. 

“현재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데도 불안함에 뭔가 계속 배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아니라 일상에서 내가 하는 일 자체를 혁신하면 어떨까요? 

혁신과정 자체가 배움의 과정이 되어 내 경쟁력으로 치환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중요한 것은, 일을 해야죠. 더 중요한 것은, 대행을 주면 안돼요.”
_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중에서

송길영 부사장이 롱블랙 피플에게 남긴 메시지. ⓒ롱블랙

Chapter 5.
고객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세요 

직장인 분들이 ‘고객’ 공부도 많이 할 텐데요. 저는 사실 ‘고객’이란 말은 안 좋아해요. 경영학 전공한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 말끝마다 고객을 언급합니다. 아직 구매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을 부르는 말도 있어요. ‘포텐셜potential 고객’. 잠재적 고객이란 거예요. 

농담처럼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인간이 물건을 안 살 수도 있지 않아요? 사람이 꼭 물건 사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고객이 아니라, 그냥 사람입니다. 저는 이게 인식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생각해요. 고객은 상대를 대상화, 도구화 하는 언어입니다. 그냥, 사람이라고 하면 돼요. 사람이 우리 물건 좋아하면 사겠죠. 왜 고객과 비고객, 잠재 고객으로 분류하나요.  

데이터 연구자들은 이제 ‘데모그래픽demographic·인구통계학’은 보지 말자고 해요. 연령, 성별, 지역은 보지 말자는 거예요. 넷플릭스는 ‘너 몇살이야’ ‘여자야, 남자야’ ‘어디 살아’ 묻지도 않아요. 그냥 ‘아 이런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해요. 그럼 이 사람이 10대든, 20대든 상관 없어요.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이 영화도 좋아하겠지, 이런 식으로 움직여요. 

예를 들어, 성장에 목마른 30대를 고객 페르소나로 그렸다고 해봐요. 하지만 50대여도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성장을 원한다면? 그럼 그 사람도 우리 고객일 수 있는 겁니다. 

이른바 ‘젠지Gen Z’라는 것도 단순한 연령 구분은 아니라고 봐요. 그 분들이 자라온 환경, 컨텍스트context와 연결된 단어예요. 한국 GDP국내총생산가 올라가고, 전보다 개방된 사회에서 사는 20대잖아요. 이전 세대와 인식의 틀, 기준이 다르죠. 그러한 구분은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의미 소비 시대에는 상품이 사상이 되고, 사상이 상품이 됩니다. 철학이 팔리는 것이지 물질이 팔리는 게 아니에요.

열렬한 팬이 옹위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후광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대중의 호기심과 선망 같은 것이 만들어져 그다음 사용자를 낳습니다”
_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중에서

“사고의 중심을 기술에 놓지 말고 그것을 쓰는 사람의 일상생활에 놓아야 합니다. 무엇을 만들든, 무엇을 팔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