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 “100년 뒤 서울엔 산과 강, 바람이 있을까” 건축가가 묻다


롱블랙 프렌즈 K 

지난달 27일,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막을 내렸어요. 역대 최다 인원인 92만여 명이 행사장을 찾았죠. 비엔날레의 부제는 ‘산길 물길 바람길의 도시 서울의 100년 후를 그리다.’
*전 세계 건축가들이 모여 지구와 서울의 문제와 미래를 고민하는 장으로 2년마다 개최된다. 올해는 62개 도시의 132개 팀이 참여했다. 

비엔날레 총감독은 조병수 건축가. 땅속에 짓는 ‘땅집’과 ‘꺾인 지붕 집’, ‘지평집’이 유명합니다.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그의 철학이 녹아있어요. 

파주 헤이리의 카메라타 뮤직 스튜디오, 거대한 바위 동산을 살려 지은 남해 사우스케이프 호텔&빌라, 도심 속 고목처럼 생긴 경복궁 앞 트윈트리타워도 그의 작품이에요. 

조병수 건축가는 자연에 스며드는 건축을 강조합니다. 도시가 어떻게 잃어버린 땅의 흐름을 되찾을 수 있다는 걸까요? 서울 서촌에 자리 잡은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심영규 글로우서울 CCO가 함께했어요.



심영규 (주)글로우서울 CCO 

저는 조병수 소장의 건축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투박하지만 세련되고, 즉흥적이지만 자연스럽다. 그는 자신의 건축을 ‘사과 상자’와 조선시대 ‘막사발’에 비유해요.

조 소장의 사무실 역시 그렇습니다. 단출하지만 정갈해요. 그래서 편안합니다. 하얀 천장과 벽. 공간을 구분하는 건 얇은 철제 기둥 두 개뿐. 화려한 가구는 없습니다. 상판과 옆면만 있는 나무 책상, 합판 두 개를 엇갈려 얹은 나지막한 탁자가 전부예요. 대신 커다랗게 뚫린 창문들마다 서촌 풍경이 한가득 담깁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LP 한 장을 꺼내 들었어요. “한 곡 듣고 천천히 시작하자”고 했죠.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커다란 목재 스피커에서, 재즈 선율이 흘러나왔어요. 잠시 후 커피 한 모금과 함께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Chapter 1.
나의 주춧돌은 한옥과 시골집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병수 소장. 28평 남짓한 개량 한옥에서 자랐어요. 모든 방이 바깥과 연결된 한옥. 집 안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었죠. 창호지를 통과한 햇빛과 달빛.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늘 곁에 있었습니다. 

방학이 되면 친척들이 있는 시골로 갔어요.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신오리. 그곳에서 사촌들과 산을 오르내리고, 개울에서 물장난 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연 속에 있는 게 행복했죠. 

처음부터 건축가를 꿈꾼 건 아닙니다. 막연하게 동경한 적은 있었지만요.

“사촌 형님이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어요. 도면 그리기 과제를 할 때 옆에 붙어 들여다봤죠. 어린 눈에 그게 꽤 멋져 보였어요.”

조 소장은 20대 초반까진 예술가를 꿈꿨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즐겼어요. 벽제 가마터에 찾아가 도자기를 배우기도 했어요. 도예가가 되려고요.

그를 건축의 길로 이끈 건 세종문화회관입니다. 1978년 광화문에 들어선 커다랗고 세련된 건물. 눈길이 안 갈 수 없었어요. 오픈 기념 전시회에 갔더니 도면이 있었죠. 이 그림이 건물이 된다니. “대단하고 멋지다”싶었어요.

“인간이 그렇게 커다란 건물을 짓는다는 게 굉장히 멋졌어요. 그전까진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날거나, 큰 원양 어선을 타고 먼바다로 나가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죠. 그런데 건축은 내가 한번 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디자인하고 만든다는 점에서, 예술적인 부분이 있으니까요.” 

롱블랙과 인터뷰 중인 조병수 소장. 예술가를 꿈꾸던 그는 세종문화회관 도면을 보고 건축에 흥미를 갖게 됐다. ⓒ롱블랙

Chapter 2.
몬태나대학 건축과의 예스맨